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차일드 44]를 읽으면서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과 흡사한 느낌에 살짝 의아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영화 개봉 시에 표절시비가 있었나 보다. 표절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베를린]을 보고 본 작을 읽었다면, 반대로 본 작을 읽고 [베를린]을 봤다면 두 작품의 유사성이 단 번에 느껴질 정도로 [베를린] [차일드 44]는 많은 설정을 공유하고 있다. 시나리오를 류승완 감독이 직접 썼는지 다른 작가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론 대놓고 표절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시나리오 작업 시 [차일드 44]를 참조한 건 확실한 것 같다.

 

본 작이 비록 [베를린]과 흡사하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1(전체 내용의 1/3)에 국한된 얘기일 뿐이다. [차일드 44] [베를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용적인 면에서) 방대하고 촘촘한 대작이다. 일단 배경을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로, 주인공 레오 데미노프를 국가안보부(MGB - 비밀경찰인 KGB의 전신)의 총망받는 요원으로 설정한 것만으로 본 작은 흔한 연쇄살인 스릴러물이 범접할 수 없는 개성을 획득했다. 간단하게 말해 [차일드 44]는 스릴러물로써 뿐만 아니라 시대물로써의 걸작으로도 분류될 수 있다.

 

[베를린]이 분단국이란 한국의 현실을 빼면 평범한 액션스릴러에 불과하듯, [차일드 44]도 시대배경을 빼고서는 이야기 할 수 없다. 본 작에서 스릴의 대부분은 레오가 MGB에서 좌천되면서 겪게 되는 심경의 변화, 정부의 감시와 핍박으로부터의 도주, 그러한 시대적 난관을 극복하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 등을 통해서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중반쯤 되면 범인의 정체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수준임에도 끝까지 스릴과 재미를 잃지 않고 정주행 할 수 있는 원동력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굴하지 않고 사건에 매진하는 레오(와 그의 아내 라이사)의 활약에 있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어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실제 연쇄살인 사건을 픽션화 했지만 본 작에도 물론 아쉬움은 있다. 연쇄살인범의 살인 동기에 선뜻 공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도, 그 트라우마의 중심에 레오가 있다 하더라도, 수많은 어린아이를 살해한 이유가 단지 레오를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정은 레오와 살인범을 엮기 위한 설명으로는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1930년대 우크라이나 대기근과 20년 후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라는 두 시대의 비극을 하나의 소설로 풀어내고자 했던 작가의 과욕이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를 끌어들인 셈이다. 여기에 후반부 밝혀지는 레오의 기억상실까지 더해지면 막장도 이런 X막장이 있나!” 싶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처럼 살인범 캐릭터와 살인 동기에 공감하기 어렵다 보니, 오히려 악역으로 두드러지는 캐릭터는 바실리이다. 충분한 캐릭터 설명 없이 중반부 갑툭튀한 살인마보다, 레오에 대한 삐뚤어진 경쟁의식으로 초반부터 집요하게 레오를 괴롭히는 바실리야 말로 독자들의 공분을 이끌어내는 악인이며, 종반에 가서는 살인범의 죽음보다 바실리의 허무한 죽음에 더 큰 아쉬움을 느낄 정도로 비열함의 끝을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 바실리, 그는 진정 매력적인 악역으로서 보다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을 맞을 자격이 충분했다!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가 과연 재미있을까…?’ 책을 손에 들고 첫 장을 넘기며 가졌던 의문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의 생각은 이렇다. ‘스탈린대신에 XX, 전XX’을 대입하면 그 생소한 시대는 다름아닌 우리의 역사가 된다. 다시 말해 충분히 보편적인 감동과 재미를 안겨주는 소설이라는 말이다. 낯선 배경이란 설명에 혹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 읽어 보시길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