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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꼭 보고 싶었는데도 어쩌다 보니 이제야 읽게 되었다. 웬디 수녀는 언젠가 유럽 미술관 순례를 하면서 작품들을 설명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된 바 있다. 유럽 미술관에 몇 번 갔었을 때마다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일반에게 잘 알려진 명화만을 골라서 빨리 봐야 했던 그냥 수박 겉핥기식의 감상과는 질적으로 달리, 비록 TV라는 간접 매체를 통해서 본 것이라 원화의 생동감은 덜 하긴 했지만 그녀가 소개하는 작품들을 오히려 제대로 감상한 느낌이었다. 풍만하고 인자해 보이는 할머니 수녀님의 차분하면서도 꼼꼼하고 일견 날카로운 지적이 함께 한 작품 소개는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은 웬디 수녀님이 마드리드에서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빈, 상트 페테스부르크, 베를린, 파리, 안드베르펜, 암스테르담과 헤이그를 거치는 유럽의 미술관들이 있는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랑하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미술작품 감상에 관한 일종의 안내서이다. 그녀는 많은 작품 중에서 어떤 작품을 독자들에게 소개해야 할지 참으로 심사숙고 하면서 행복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쉽고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된 것이니, 독자의 한 사람인 나로서도 굉장한 행운을 가진 셈이니 감사한다.
작품 설명은 작품당 한 페이지 분량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그 속에 배경설명은 물론이고 꼼꼼한 지적(정말 놀라울 정도로 세심한 관찰력이다)과 함께 수녀님의 애정어린 감상이 더해진다. 작품을 먼저 보고 그녀의 글을 읽을 때와, 글을 먼저 읽어보고 나서 어떤 작품일까를 상상해 보는 두 가지 방법을 나는 다 해봤다. 감상이 조금 달랐지만 내용을 먼저 보고 작품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경험도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의 말에 공감하기도 하고 의아해하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한 번 더 내 몫으로 남겨진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해보았다. 평범한 독자인 내 눈을 통해 본 것과 깊고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그녀의 눈으로 본 같은 작품이 어떻게 다른지 감히 비교해 보고 싶었다. 일반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들은 비교적 익숙한 것들이 눈에 띄었지만, 그녀를 통해 또 다른 시각으로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생 연륜이 쌓인 그녀에게서는 단편적인 작품 지식이 아니라 인생과 종교, 예술에 대한 진지한 이해와 연관성을 느낄 수 있었다. 지성적인 머리와 따뜻한 마음으로 모두 느끼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멋진 능력을 가진 그녀가 참 부러웠다.
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렘브란트나 루벤스, 미켈란젤로의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녀가 선택한 작품이 내 취향과는 조금 달랐던 것이 아쉬움이었다. 또한 수녀님이었던 때문인지 종교적인 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종종 선택되었고, 신화 속 이야기를 다룬 그림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도 아쉬웠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들의 대표작을 선정한 것이 아니라 수녀님이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작품들을 위주로 고른 것이라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었다.
조금씩 아껴가며 읽는 동안 무엇보다 눈이 아주 즐거웠다. 무엇보다 그녀 덕부에 나는 특별히 마음에 드는 작품을 몇 작품 만날 수도 있어서 행운이였다. 그녀가 다녔던 곳을 나도 함께 따라 가면서 그녀 옆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얘기를 들으며 우아하게 작품을 감상했던것 같은 꿈 같은 느낌이 아직 남아 있다. 가을을 맞으며 웬디 수녀님과 함께 미술감상 여행을 하면서 풍요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일상 속 행복이 진정 소중한 것임을 나는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