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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임동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5년 7월
평점 :
학창 시절 싫어했던 과목 중에 '한국지리'가 있었다. 기후와 자연환경, 지역개발 등으로 채워져 있는 교과내용에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때의 영향 때문인지 지금 나는 꽤나 심각한 길치, 방향치로 처음 가는 길은 어김없이 헤매고 또 헤맨다. 그런 내가 무려 '정치지리학'을 다룬 책을 펼쳤다는 것은 스스로도 참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비에서 출간된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을 읽었다. 이 책을 보게 된 계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난 6월 '유신시대 사람들의 삶과 앎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주제로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진행했던 기획 강좌에 참석하고서 생겨난 '1970년대 도시개발'에 대한 관심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매일 발을 딛고 살고는 있지만 도무지 좋아지지는 않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시골촌놈이 상경해 어느덧 서울생활 4년차가 되었고,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야할 공간이므로 몸은 금세 적응을 했지만, 쉽게 정을 주지 못하는 마음의 문제는 의지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서울을 떠올리면 전 국토 면적의 0.6%에 해당하는 공간에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넘는 천만 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출퇴근 시간대의 지하철과 주말에 번화가를 걸으며 이 도시를 몸소 체험하고 나니, 도시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단순히 머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몸으로 겪은 불편이 만들어낸 의문이어서인지 책을 읽으며 하나씩 궁금증을 풀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1장과 2장에서는 동사무소에 얽힌 정치이야기와 행정구역 개편의 배경과 이유 등을 설명한다. 책을 읽으면서 일상의 아주 가까이에 있는 동사무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것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기관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행정구역이 주민통제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1970년대의 강남 개발, 아파트 신화에 대한 궁금증이었기 때문에 그에 관련된 내용을 다룬 4장과 5장에 관심이 갔다.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던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였다. 한계에 달한 강북의 인구와 시설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였고, 1970년 경부고속도로의 건설 등 대규모 건설사업과 함께 더욱 본격화되었다. 강남으로의 이주가 처음부터 순조롭지는 않았다. 이에 박정희 정권은 국회와 대법원 등의 기관을 여의도와 강남에 각각 입지시키고, 기존의 명문 고교를 강남으로 이주시켰으며, '강남개발특별법'을 재정해 사실상 투기를 장려했다. 부동산 투기와 아파트 건설이 이어졌고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강남공화국이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강남 개발과 아파트 건설로 우리 삶도 크게 바뀌었다. 삶의 편리는 얻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어두운 이면은 이로부터 강남이 빈부격차의 진원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강남 그리고 아파트에 대한 열망은 오늘도 여전히 식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허망한 꿈을 좇게 한다는 사실에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8장과 9장은 신자유주의 이후 도시의 변화에 대해서 다룬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에도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경제성을 위한 개발 논리로 도시경관의 변화를 겪게 된다. 건강한 도시'계획'이 아니라, 무분별한 도시'개발'이 이어져온 것이다. 시종일관 개발주의 정책을 펼친 이명박 전 시장과 오세훈 전 시장의 잔재는 아직까지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는 듯하다. 개발보고서는 잔뜩 있는데 진단보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임동근 박사의 말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마지막 10장에서는 박원순 시장의 '마을만들기' 사업에 주목한다. 박원순 시장은 취임 이후 개발로 인한 도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협동조합과 마을운동을 접목하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그 결과 최근 몇 년 사이에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기는 했지만 한편에서는 그 성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마을만들기, 마을공동체라는 것은 단숨에 눈에 보이는 어떤 성과를 내기 위해 결과지향적으로 가야할 사업이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방식으로서 멀리 보며 지속해 가야할 사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언급하는 객관적인 지적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고, 이제는 리더의 가치 선언, 확실한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는 지적에 공감했다.
팟캐스트로 방송했던 내용을 엮어서 정리한 책이라 구어체로 된 표현이 읽기 쉽고 이해에도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정치지리학이라고 하는 생소한 영역의 지식과 내용을 일상의 사례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도시를 통해 정치적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다. 책을 읽고, 한걸음 물러서서 내가 살아가는 공간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만족스럽다. 보이지 않는 이면의 진실을 확인하고는 분노가 차오르기도 했지만, 4년간의 마지못한 동거를 뒤로하고 앞으로도 내가 발 딛고 살아갈 서울과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아 기쁘다. 나와 같이 서울의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꺼이 추천한다.
cf. 같이 읽어볼 만한 책들
전진성,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 천년의상상
강준만,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인물과사상사
찰스 몽고메리,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미디어윌
정기용, <서울 이야기>, 현실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