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험능력주의 -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평점 :
이 책은 인간성을 무시하는 시험능력주의를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신봉하는 한국 사회에 정신 차리라고, 어깨를 잡고 흔들듯 신랄한 비판을 쏟아낸다. 저자가 수십 년간 연구하며 속앓이를 하고 분노했을 답답함이 책에서 느껴졌다.
프리미어리그 유명 구단인 맨유의 전 감독 퍼거슨의 별명은 헤어 드라이어다. 선수가 실수하거나 정신이 해이해졌다 싶으면 격분하는데 머리가 휘날릴 정도로 말한다고 하여 붙은 별명이다.
저자에게도 이 별명이 착, 달라붙는다. 공정과 노력을 논하느라 묵인했던 문제를 이제는 직시하라고 책으로 말하며, 헤어 드라이어 역할을 자처한다.
<청년들에게 이 책을>
교육 정책을 담당하거나 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현재 청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히, 갓 수능을 끝낸 20대 초반 청년들, 고시 등 각종 자격 시험을 통과한 청년들에게 말이다.
비인간적인 시험 체제에 분노하며 공부했던 시절과 밥 먹을 시간조차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온 수험생 시절의 고통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합격 후에는 자신이 열심히 해서 결과를 얻었다는 자부심에 도취한다. 필자도 그러했다. 합격에는 노력이 가장 많은 기여를 했으며, 그 외에 작동한 경제력이나 운은 판단 요소가 아니다.
있는 경제력을 어쩌냐, 경제력이 있다고 내 노력이 무시되는 건 괜찮나, 경제력이 없다는 건 핑계다, 컨디션/건강/가정환경이 어떻든 노력은 답해준다. 이런식의 태도는 핀트를 잘못 잡았다는 증거다. 노력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바꿀 건 바꾸자는 말임에도 분노하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시험의 고통을 잊은 사람에게 다시 기억을 되돌리게 하고 싶다. 틀린 걸 미래 세대에게는 남겨주지 말자고. 틀린 건 고쳐야 한다고. 우리가 받지 못한 옳은 교육을 어린아이들에게는 누리게 해주자고.
<무엇이 틀렸는가>
저자는 문제를 조목조목 나열한다. 소수점으로 사람을 나열할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인 시험 문제를 분석하고 ‘공정한 평가’는 무엇인가를 논하는 데 천착한 현시점에서 저자는 그 뒤에 가려진 이면을 드러낸다.
한국 사회의 시험이 왜 틀렸으며, 어떤 문제를 야기하고, 우리는 어떤 고통을 무시하고 있는지 말이다.
-
“교육과 시험은 분명히 별개의 것이지만, ‘시험’이 ‘교육’을 이겼다.”
우리는 교육 논의를 할 때 제1화두로 시험을 말한다. 그리고 시험 방식이 교육 논의의 전반을 자치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에서 시험은 대학 그리고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예를 들어, 대입에서 수능과 학종, 면접 등 평가 방식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하는 건 교육을 논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대학 입학에 옳은 방식인가를 토론하는 일이다.
즉, 무엇이 옳은 교육인지 논하는 게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개발하는 일이 교육을 발전시키는 방향인데 말이다.
시험에서 고득점 하는 게 교육의 목표가 되어버리니, 선생은 학생이 어디에 재능이 있고 무엇이 관심이 있는지 살피지 않고, 시험공부를 하는 쪽으로만 몰아넣는다. 꾸미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은 공부에 흥미가 없는 게으른 아이로 치부하고, 손 놓아 버린다.
교육은 시험에 묻혀버리고, 학생의 고유한 재능과 관심은 시험에 의해 게으름과 일탈로 전락한다. 시험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선 안 되지만 이미 시험은 교육의 전부가 되었고, 전공은 시험 점수에 의해 정해진다.
-
“응시자의 소양이나 적성 평가, 필요한 훈련이나 주변인의 추천 등의 절차가 오히려 제대로 된 능력 평가일 수 있어도 절차적 공정성이 지켜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온 나라가 시험 준비를 위한 전쟁터가 되어도 그리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험 고득점은 과연 직무에 맞는 자격일까? 교사의 자격은 기본적인 교과 지식과 교육 지식을 갖추었다면 기본 이후에는 가르치는 능력이나 판서 능력, 학생과 대화하고 학생의 관심과 재능을 발견하는 인성과 노력이 더 중요한 자질이 아닐까. 한 문제를 더 맞히는 것보다는 말이다.
3점 더 받는 것보다 정말 직무와 연결되는 경험이나 노력을 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를 헤아릴 수 없다.
절차적 공정성은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정말 직업에 맞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지 우리는 충분히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
여기서 저자는 한국 사회가 시험 외 다른 평가 방식에는 힘을 쏟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 미국은 교수 자격을 판단할 때, 평가자에 학생도 포함되고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지만 한국은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한국은 그간 수능 외 방식에는 신뢰를 잃은 상황이라는 점 또한 주목하게 한다. 각종 비리만 해도 학종과 면접이라는 수단은 공정성에 의문을 품게 했다.
-
직업은 모이고 모여 사회를 움직인다. 그렇기에 직업윤리에 있어 책임감과 그에 맞는 능력이 중요한데, 한국 사회는 이 모든 것 또한 시험으로 가려버린다.
돈과 명예, 권력을 주는 직업에 모든 인재들이 모이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진정한 꿈과 관심사와 호기심은 무시한 채, 꿈을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으로만 한정 짓게 한 우리 사회는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막고 있다.
의사, 변호사 등 특정 전문직에만 인재가 가는 사회를 과연 우리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심각히 고민해볼 시점이다.
-
“학력•학벌주의, 그리고 능력주의와 관련된 여러 병리적인 사회현상은 단순히 ‘교육과 관련된’ 현상이 아니고 지위 배분과 권력 재생산, 노동시장 작동 등 지배체제의 일부이며,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단단하게 굳어진 구조적 현실임이 분명하다.”
이 문장은 책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잘 맞물린 톱니바퀴라면 하나만 고쳐도 돌아갈 테다. 정말 틀린 게 평가방식이라면 평가라는 톱니를 새것으로, 크기에 꼭 맞는 톱니로 바꾸면 된다. 시험이 아니라 다른 숱하게 나온 제도 중 알맞은 것으로 고르면 될 일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톱니 하나만 어긋난 게 아니다. 통째로 어긋나고 톱니 하나하나마다 제 각기 문제를 지니고 있다. 구조적인 문제는 교육의 폐단으로 귀결되었고, 그렇기에 모든 곳에서 손을 봐야지만 비로소 교육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노동도 마찬가지로 고장난 하나의 톱니에 속한다. 노동의 천시는 한국 사회를 병적으로 차별성이 도드라지게 만들었고, 임금격차는 사회에 필수적인 직업(청소 노동자, 돌봄 노동자 등)을 기피하게 했고 기피하는 방법은 돈•권력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그 수단을 시험으로 만들었다.
물론 저자는 말한다. 이 모든 건 어떤 혁명 정부가 나와도 바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건 그만큼 고칠 지점이 만연하다는 사실이니, 지금부터라도 개선을 시작해야 함을 우리 모두가 인지하고 하루빨리 실천해 옮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