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로즈의 아홉 가지 인생
도나 프레이타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즈의 아홉 가지 인생]
_ 도나 프레이타스

다채롭고 반짝이는 삶을 연상시키는 ‘아홉 가지 인생’은 제목에서나 그렇지 내용에서는 빛나지 않는다. 그중 어떤 인생에서 로즈는 진실된 자신으로 살 수 있었나? 생각한 적 없는, 인생에 없던 선택지가 등장한 것도 모자라 그 선택지만이 답이라고 주위에서 떠들어댄다. 원하지 않는 기로에 놓인 그녀가 강요 받은 다른 삶 혹은 다른 자아는 로즈를 얼마나 공격했을까.

하지만 그토록 저항해오던 삶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로즈가 자신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또는 받아들이는 모습에 감동받는다.

✔️ 모성과 부성은 과연 무엇일까. 부모가 된다면 가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 아이에 대한 사랑이다.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은 아이를 우리의 선택과 욕심으로 나았으니 마땅히 져야 할 책임 그리고 그 이상의 설명할 수 없는 피로 맺어진 관계에 가지는 감정. 그런 것을 우리는 부성, 모성으로 말한다.

부모의 선택에 의해 태어날 아이가 행복하려면 부모의 선택은 자의가 되어야 한다. 모두에게 부성과 모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아이를 원히지 않는데 한 쪽의 강요와 칭얼거림으로 태어난 아이는 원하지 않은 사람 쪽의 사랑을 못 받을 수 있거니와 아이는 당당하게 요구하지도 못할 것이다. “마음대로 나를 낳았으면서 왜 마땅한 책임을 다하지 않아요?” 라는 요구. 혹은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안 다면 요구도 심지어 원망하지도 못할 것이다.

부와 모 중 아이를 원하는 사람은 아이를 원하지 않는 상대를 위해서도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도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로즈의 남편 루크처럼 칭얼거림으로, 세상 사람이 다 그랬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이혼이나 외도를 하는 치사한 방법으로 설득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는 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며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따르는 희생은 누군가 한 세상을 잃을 수 일인데도 어떤 한 세상을 잃은 건 루크가 아니라 로즈였다.

임신이 된 후부터 혹은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후부터 시작되는 게 부성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부터 부성이라고 생각한다. 루크는 부성이 강했다. 아이의 출생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출생 후 루크의 부성은 자신이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었다. 반면, 로즈가 박사로 하는 일은 가정을 위한 게 아니라 오직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일이며, 로즈 한 명을 위한 자아실현의 일이어서 가정을 위한 일에는 속하지 않는다. 루크의 일은 자신의 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근데 만약 가족이 없더라면 루크는 그 일을 포기했을까?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도 일을 했을 터다. 하지만 루크는 로즈가 힘겹게 탄 연구지원비에 진심어린 축하를 하지 않았다. 단지 짧은 장면 묘사만으로 문제의 핵심을 꿰뚫었다.

유독 부성보다 모성이 더 진하다고 말해지는데, 그것은 그렇게 만든 세상의 틀 안에서 강요되어지는 것이다. 내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부, 모에게 모두 있을 수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여성을 육아라는 책임을 마땅히 가져야 할 존재로 지목했다. 그리고 모두가 틀렸다고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생각도 맞다는 걸 한 개인으로서 알리려고 애쓰는 로즈의 삶 때문에 이 책은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 다가온 9가지 삶에서 로즈가 사랑하려 애쓰는 모습을 책을 통해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도널드 리치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리는 낭만, 영국은 신사, 체코는 야경, 스위스는 자연. 이처럼 특정 국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키워드나 분위기가 있다. 일본이라 하면 고요와 일본 가정식이나 애니메이션처럼 특유의 소소한 분위기가 생각난다. 이건 아마 매체가 보여주는 한정된 장면만으로 느낀 일본이라는 세상이다. 아주 짧게 몇 시간의 영화로 본 일본, 일본으로 자주 여행을 간 지인들의 이야기로 들은 일본, 역사가 말해준 일본처럼. 몇몇 타인이 눈으로 본 일본은 전달 받으며 내가 구축한 일본이라는 세상에 도널드 리치가 본 일본도 더했다.

이 책을 간단히 요약하면 작가 ‘도널드 리치’가 일본에 살면서 느낀 내용을 적은 일본에 대한 개인적인 ‘보고’다.총 20개의 소주제로 구성돼있다. 작가는 자주 서양과 동양의 차이, 그 중에서 특히 일본의 차이를 설명하며 글을 진행해 나간다.

서양과 동양이라 할 때, 잘 알고 있는 주제에서는 이미 아는 차이가 보이기도 했으나<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은 여러 주제로 나눠 있어 처음 느껴보는 차이도 보였다. 작가는 일반화 해서 차이를 말한다고 언급한 부분이 있다. 일반화한다는 느낌은 차이를 설명할 때는 당연히 존재한다. 당연히 세세하게 보아서 같은 것은 있을 수 없고 차이는 결국 크게 보이는 것들로 분류한 묶음 아닐까. 물론 그 느낌이 거북할 때가 있지만, 본 책은 아니었다.

차이가 맞다고 강력하게 어필하는 거라면 읽는 과정에서 반감이 들 수 있었다. 어느 책이나 마찬가지이듯 작가의 글에 모두 공감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고집센 주장가가 아니다.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방인이었음에도, 심지어 그 당시시기를 고려해보면 우월의식이 더 강할 수 있었음에도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차이를 주장하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차이를 드러내고 일본이 다른 이유를 자신의 경험내에서 들여준다.

P. 9) 다른 존재의 양식에 열린 마음을 가진 낭만주의자에게 일본은 놀라움으로 가득한 곳이야.

<일본의 리듬>에서는 다음처럼 말한다.

P. 112) 모든 문화는 자신만의 리듬을 갖는다. 낮과 밤을 나누는 방법이라든지, 언제 속도를 내야 하고 언제 늦춰야 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 글 곳곳에서 위에 인용한 두 문장처럼 작가의 열린 자세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자주 보인다. 왜일까 하는 물음으로 일본을 말한다. 익히 아는 서양과 동양, 서양과 일본의 차이를 더 파고 들어가 이유를 알아내고 설명해준다. 20개의 주제로 구성돼 있어 한 주제에서 깊이 들어갈 수 없지만, 그 전달이 명료하게 온다.

책을 덮고 맴도는 생각은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패턴’이라는 단어를 느끼러 일본에 가보고 싶다는 것. 규치적인 패턴, 무늬의 패턴이 아니라 그 너머의 의미가 분명 있다. 도널드 리치가 느낀 일본의 패턴은 과연 무엇일까. 글로는 읽었지만 그 느낌을 글이 아닌 공기와 함께 온 감각을 동원해 만나고 싶어졌다.

P. 8) 모든 것이 미국과는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일본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요.

서문의 이 말이 궁금하다면, 일본이라는 세상을 더욱 넓히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물 ‘강치우’
차갑고 냉정한 인물이다. 늘 여유롭고 당황하지 않는 태도는 인간관계에서 언제나 우위를 차지하는 걸 성공시킨다. 한마디로 정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단면적인 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냉소한 게 전부는 아닌 인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모습만 보여주는 건 아니었다. 어딘가 숨어있다가 삐져나오는 따뜻함이 종종 발견된다. 일이 들어오지 않는 이기동에게는 무슨 이유로 그런지 넉넉한 돈을 주고 일을 맡기곤 하는 모먼트까지.

오직 자신만을 믿는, 독단적이며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인물처럼 느껴지지만 ‘책점’을 자주 보는 귀여운 구석도 있다. 그렇다고 책점을 보고 벌벌 떠는 성격은 아니지만, 책점이 안 좋을 땐 어딘가 찝찝해한다.

이렇게 냉소적이면서도 따뜻함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 강치우의 모습은 어쩌면 딜리터와 작가라는 두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라 가능하다고 추측된다.

딜리터와는 다르게 작가로서 그는 잘 듣는 사람이다. 그냥 들어주고 있는 게 아니라 상대가 별뜻 없이 쏟아내는 말 속에서 쓸 만한 내용을 고르는 일을 한다. 타인의 삶을 이야기로 가공해 의미를 부여하는 일. 두 가지의 직업 사이에서 형성된 강치우라는 인물의 성격이 이해가 된다.

P.44 ) “비겁한 작가가 그나마 열심히 할 수 있는 행동이 세상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이더라도 작가라면 편견을 가지면 안됩니다.”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를 이해한다는 내용의 책을 읽고 독자가 작가 강치우에게 날 선 질문을 했을 때 강치우가 한 대답이다. 세상 사람을 이해하는 것,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일지언정 작가는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이런 태도가 강치우의 경청 능력과 따뜻함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 ‘현실’은 어디에, 그리고 무엇인가

여느 판타지가 그러하듯 이 책의 이야기도 꼭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어디선가 인물이 살고 있을 것 같고, 내가 옆 사람이 엄청나거나 엄청나진 않아도 소소하게 놀랄 정도의 능력을 숨기고 있을 듯 하다.

책에서는 어릴 적부터 물건을 만지면 깨는 사람이 딜리터가 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들 마이더스의 손 반대로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딜리터의 자질을 가진 설정이라니. 더욱 현실에 있을 법하게 묘사했다.

또한, 강치우를 주인공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마치 작가 강치우가 쓴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 특히, 책 마지막 장이 이런 기분을 더욱 유도한다. 출판사가 말렸지만 열린 결말을 위해 마지막 문장에 ‘.’을 찍지 않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책 마지막 문장에는 ‘.’이 없다. 이건 아마 실감있게 하려는 하나의 장치가 아닐까.

그리고 레이어를 넘나드는 이야기에서 인물들은 현실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장면이 있다. 현재 있는 곳이 현실이라면 소하윤이 잘 살고있는 다른 차원은 현실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현실에서 환상을 읽고 있는 와중, 판타지 소설에서 현실이 무엇인지 고민한다는 설정이 오묘하게 다가왔다.

* 딜리팅의 의미
“딜리팅의 진짜 의미는 물건을 사라지게 하는 가 아니라 사람을 다른 차원으로 옮기는 거라고 적혀 있었어요.”

책은 ‘다른 차원’을 포토샵의 레이어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포토샵을 이용해보면 특정 레이어를 클릭 한번으로 투명하게 만들어, 지워진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를 우리는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

책은 ‘사라짐’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딜리팅이라는 사라짐의 의미는 다른 차원으로 옮겨진다는 것이다.

딜리팅이 다른 차원으로 옮기는 행위라는 걸 모른 채 딜리팅을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내 눈 앞에 없다는 의미이며, 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타인을 위한 게 아닌 자신을 위해 이용하게 된다. 나의 잘못을 감추는 용도로, 나에게 위험이 되는 존재를 없애는 용도로 말이다. 책에서는 흔적을 없애주는 사람, 조직폭력배나 살인청부업자들의 뒷정리를 해주는 사람인 더스트맨이 그러하다.

하지만 딜리팅의 본 의미를 아는 강치우는 다르다. 자신이 아닌 여자친구를 위해 딜리팅을 실행한다. 지금 존재하는 공간에서 힘들어 하는 하윤을 위해, 죽어서 사라지려는 하윤에게 다른 차원으로 사라지자고 한다.

죽음을 아는 존재는 없다. 하지만 죽음으로 인해 사라졌다는 건 살아있지 않은 상태로 인식된다. 그래서 강치우는 죽음으로 사라진다는 건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게 아니라 완전히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죽음보다 딜리팅으로 사라지는 법이 낫다고 생각하여 딜리팅을 실행한 게 아닐까.

책을 읽으며 사라짐과 죽음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죽음은 완전한 사라짐일까, 죽음을 경험한 자가 없는 세상에 죽음을 완전한 사라짐이라 할 수 있을까, 죽음이 만약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이라면 딜리팅은 살인과 동의어가 아닐까.

죽음이 다른 차원으로 가는 딜리팅의 의미와 같다면 딜리터는 살인자가 되는 게 아닐까. 의도가 어떻든 강치우처럼 하윤을 위한 선택이었든 함훈처럼 악한 의도에 의한 선택이었든 둘 다 살인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엄밀히 따지면 둘 다가 아니라 강치우는 살인을 두 번한 것이고, 함훈은 살인 의뢰자인 게 아닐까. 아니면 하윤은 자살이고, 함동수는 타살인가.

<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는 페이지터너다. 금방 읽히는 만큼 직관적인 책이다. 자칫 단순하다는 평을 받을 수 있지만, 책 깊은 곳에는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장치가 있다.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은 드라마같다. 친근하게 다가와 생각을 많게 하는 드라마. 고전에 비해 가벼움은 있고 깊이나 상세한 묘사가 덜한 건 맞지만, 몇몇 고루한 고전이 못하는 걸 이 책은 한다.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머릿속에서 토론하게 만들었다. 이 책이 드라마였다면 클립 영상으로 돌아다니며 그 댓글에는 분명 죽음과 옮겨짐 그리고 사라짐의 의미에 대해 상당한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험능력주의 -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인간성을 무시하는 시험능력주의를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신봉하는 한국 사회에 정신 차리라고, 어깨를 잡고 흔들듯 신랄한 비판을 쏟아낸다. 저자가 수십 년간 연구하며 속앓이를 하고 분노했을 답답함이 책에서 느껴졌다.

프리미어리그 유명 구단인 맨유의 전 감독 퍼거슨의 별명은 헤어 드라이어다. 선수가 실수하거나 정신이 해이해졌다 싶으면 격분하는데 머리가 휘날릴 정도로 말한다고 하여 붙은 별명이다.

저자에게도 이 별명이 착, 달라붙는다. 공정과 노력을 논하느라 묵인했던 문제를 이제는 직시하라고 책으로 말하며, 헤어 드라이어 역할을 자처한다.

<청년들에게 이 책을>

교육 정책을 담당하거나 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현재 청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히, 갓 수능을 끝낸 20대 초반 청년들, 고시 등 각종 자격 시험을 통과한 청년들에게 말이다.

비인간적인 시험 체제에 분노하며 공부했던 시절과 밥 먹을 시간조차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온 수험생 시절의 고통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합격 후에는 자신이 열심히 해서 결과를 얻었다는 자부심에 도취한다. 필자도 그러했다. 합격에는 노력이 가장 많은 기여를 했으며, 그 외에 작동한 경제력이나 운은 판단 요소가 아니다.

있는 경제력을 어쩌냐, 경제력이 있다고 내 노력이 무시되는 건 괜찮나, 경제력이 없다는 건 핑계다, 컨디션/건강/가정환경이 어떻든 노력은 답해준다. 이런식의 태도는 핀트를 잘못 잡았다는 증거다. 노력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바꿀 건 바꾸자는 말임에도 분노하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시험의 고통을 잊은 사람에게 다시 기억을 되돌리게 하고 싶다. 틀린 걸 미래 세대에게는 남겨주지 말자고. 틀린 건 고쳐야 한다고. 우리가 받지 못한 옳은 교육을 어린아이들에게는 누리게 해주자고.

<무엇이 틀렸는가>

저자는 문제를 조목조목 나열한다. 소수점으로 사람을 나열할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인 시험 문제를 분석하고 ‘공정한 평가’는 무엇인가를 논하는 데 천착한 현시점에서 저자는 그 뒤에 가려진 이면을 드러낸다.

한국 사회의 시험이 왜 틀렸으며, 어떤 문제를 야기하고, 우리는 어떤 고통을 무시하고 있는지 말이다.
-
“교육과 시험은 분명히 별개의 것이지만, ‘시험’이 ‘교육’을 이겼다.”

우리는 교육 논의를 할 때 제1화두로 시험을 말한다. 그리고 시험 방식이 교육 논의의 전반을 자치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에서 시험은 대학 그리고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예를 들어, 대입에서 수능과 학종, 면접 등 평가 방식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하는 건 교육을 논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대학 입학에 옳은 방식인가를 토론하는 일이다.

즉, 무엇이 옳은 교육인지 논하는 게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개발하는 일이 교육을 발전시키는 방향인데 말이다.

시험에서 고득점 하는 게 교육의 목표가 되어버리니, 선생은 학생이 어디에 재능이 있고 무엇이 관심이 있는지 살피지 않고, 시험공부를 하는 쪽으로만 몰아넣는다. 꾸미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은 공부에 흥미가 없는 게으른 아이로 치부하고, 손 놓아 버린다.

교육은 시험에 묻혀버리고, 학생의 고유한 재능과 관심은 시험에 의해 게으름과 일탈로 전락한다. 시험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선 안 되지만 이미 시험은 교육의 전부가 되었고, 전공은 시험 점수에 의해 정해진다.
-
“응시자의 소양이나 적성 평가, 필요한 훈련이나 주변인의 추천 등의 절차가 오히려 제대로 된 능력 평가일 수 있어도 절차적 공정성이 지켜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온 나라가 시험 준비를 위한 전쟁터가 되어도 그리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험 고득점은 과연 직무에 맞는 자격일까? 교사의 자격은 기본적인 교과 지식과 교육 지식을 갖추었다면 기본 이후에는 가르치는 능력이나 판서 능력, 학생과 대화하고 학생의 관심과 재능을 발견하는 인성과 노력이 더 중요한 자질이 아닐까. 한 문제를 더 맞히는 것보다는 말이다.

3점 더 받는 것보다 정말 직무와 연결되는 경험이나 노력을 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를 헤아릴 수 없다.

절차적 공정성은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정말 직업에 맞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지 우리는 충분히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
여기서 저자는 한국 사회가 시험 외 다른 평가 방식에는 힘을 쏟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다. 미국은 교수 자격을 판단할 때, 평가자에 학생도 포함되고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지만 한국은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한국은 그간 수능 외 방식에는 신뢰를 잃은 상황이라는 점 또한 주목하게 한다. 각종 비리만 해도 학종과 면접이라는 수단은 공정성에 의문을 품게 했다.
-
직업은 모이고 모여 사회를 움직인다. 그렇기에 직업윤리에 있어 책임감과 그에 맞는 능력이 중요한데, 한국 사회는 이 모든 것 또한 시험으로 가려버린다.

돈과 명예, 권력을 주는 직업에 모든 인재들이 모이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진정한 꿈과 관심사와 호기심은 무시한 채, 꿈을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으로만 한정 짓게 한 우리 사회는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막고 있다.

의사, 변호사 등 특정 전문직에만 인재가 가는 사회를 과연 우리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심각히 고민해볼 시점이다.
-
“학력•학벌주의, 그리고 능력주의와 관련된 여러 병리적인 사회현상은 단순히 ‘교육과 관련된’ 현상이 아니고 지위 배분과 권력 재생산, 노동시장 작동 등 지배체제의 일부이며,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단단하게 굳어진 구조적 현실임이 분명하다.”

이 문장은 책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잘 맞물린 톱니바퀴라면 하나만 고쳐도 돌아갈 테다. 정말 틀린 게 평가방식이라면 평가라는 톱니를 새것으로, 크기에 꼭 맞는 톱니로 바꾸면 된다. 시험이 아니라 다른 숱하게 나온 제도 중 알맞은 것으로 고르면 될 일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톱니 하나만 어긋난 게 아니다. 통째로 어긋나고 톱니 하나하나마다 제 각기 문제를 지니고 있다. 구조적인 문제는 교육의 폐단으로 귀결되었고, 그렇기에 모든 곳에서 손을 봐야지만 비로소 교육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노동도 마찬가지로 고장난 하나의 톱니에 속한다. 노동의 천시는 한국 사회를 병적으로 차별성이 도드라지게 만들었고, 임금격차는 사회에 필수적인 직업(청소 노동자, 돌봄 노동자 등)을 기피하게 했고 기피하는 방법은 돈•권력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그 수단을 시험으로 만들었다.

물론 저자는 말한다. 이 모든 건 어떤 혁명 정부가 나와도 바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건 그만큼 고칠 지점이 만연하다는 사실이니, 지금부터라도 개선을 시작해야 함을 우리 모두가 인지하고 하루빨리 실천해 옮길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 독자들이 책을 읽고 당신들의 공간은 어떠한지 둘러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이 먼저인지 도로가 먼저인지 건물이 먼저인지 혹은 그이상으로 강하게 작동하는 무형의 가치나 세속적인 가치가 먼저인지.

< 새롭게 바라보는 눈으로, 자문하는 태도로>
제2장에서는 건축학적 시선으로 ‘국회의원들은 왜 고함을 칠까’라는 질문을 해결한다. 우선 흰쥐 실험과 극장 공간 논리를 설명하여 이해를 돕는다. 흰쥐는 한 상자에 가두었을 때, 집단으로 나뉜 패거리끼리 싸우며 서로에게 부상을 입힌다. 흥미로운 건 상자 크기를 1/4로 줄이니 치즈도 나눠먹을 정도로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독방 생활을 하게 되니 지능 지수 검출이 어려울 정도로 멍청해진다. 즉, “적당한 거리가 사회적 관계와 유대를 증대시키고, 나아가 개인의 지능까지 향상시킨다는 것(p.42)”을 흰쥐 실험이 보여준다.

또 하나는 극장 공간의 원리. 오페라 극장은 확성 장치를 쓰지 않아 연기자의 육성이 들리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관객을 수용하면서도 무대에 가까이 앉게 공간을 구성한다. 그래서 경사가 지더라도 객석을 무대와 근접하게 만든다. 반면 영화관은 그렇지 않다. 확성 장치가 잘 갖추어져 있고, 화면이 커서 좌석이 가깝지 않아도 되기에 경사도 완만하고 스크린과는 멀어진다.

두 가지 건축시선을 장착했다면, 한국 국회 의사당의 문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국과 한국 국회 의사당 사진을 보면 차원이 다르다. 영국은 불편해보이는 의자와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의자와 의자 간격이 좁고, 거기에 사람들이 앉아서 토론한다. 반면 한국은 널찍한 공간에 푹신하고 팔걸이까지 있는 의자가 앞뒤좌우로 여백이 널널한 곳에 배치되어있다. 그리고 의자 하나에도 공간을 많이 쓰니 단상과 거리는 멀어진다. 사진을 보면 영국은 초중고 교실이라는 생각이 들고, 한국은 대학교 대강당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생각할 때 일하기 쾌적한 공간은 한국 국회 의사당일 가능성이 높다. 개인만 놓고 보면 원하는 대로 편하게 자세를 취할 수 있으니. 그런데 다수와 치열한 토론이 일인 사람들에게는 그 공간은 사람을 나태하게 한다. 단상에 있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멀리 있는 사람과 말하려몀 큰 소리를 빽 질러야 하고, 거리는 멀고 경사는 완만해서 단상이 아닌 앞 사람의 머리가 보여 가뜩이나 집중하기 어려운데 의자는 내 집 소파처럼 한없이 편하다.

P.24
질문의 과녁이 바뀐 순간 내 얼굴은 어둠 속 해골에 담긴 물을 맛있게 마시고 아침에 그것을 발견한 원효대사의 표정과 비슷했으리라.

​필자는 위 인용구를 책 읽으며 계속 느꼈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졸거나 공허한 시선으로 멍하니 있는 정치인들, 그게 아니라면 소리를 빽빽 질러대는 국회의원들을 목격할 때면 ‘저 사람들은 왜 저래?’, ‘또 저러네 정치인들’ 하고 이해하지 못 했다. 몇몇 국회의원들로 한국 정치 수준을 논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질문의 과녁을 바꿨다. 나는 단순히 한 국회의원의 태도에 질문했다면, 저자는 공간에 질문했다. 그리고 흰쥐 시험과 극장 원리를 대입하고, 타국의 공간과 비교하며 몰랐던 국회 의사당 공간의 구조적 문제를 발견했다.

<비판과 지적, 그 이상의 통찰력과 도시를 관통하는 시선>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저자의 부드러움 때문이다. 저자는 문제를 지적하는 게 아닌 현상을 파악하는 것으로 책을 풀어낸다. 예리한 시선을 유지하지만 따가운 말로 공격하지 않는다. 비판은 공격이 아니지만, 비판을 빙자해 사람과 사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P.9 (여는 글)
이 책을 굳이 정의하자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도시에 대한 판이 박힌 인식을 한 꺼풀 벗기면 그 아래 어떤 다른 모습이 숨겨져 있는지 찾으러 떠나는 ‘탐험기’에 가깝다. 그래서 이글은 우리 도시의 문제점을 끄집어내 비판하는 데엔 관심이 없고, 그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문제를 꼬집고 사람을 지적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 현상의 이면에 있는 그 나라의 문화와 사고를 설명하는 글을 썼다.

추모의 공간이 혐오의 공간이 되어 버린 이유, 제 기능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 박힌 쐐기돌이나 장점만큼 문제가 많은 온돌이 아직 만연하게 자리잡은 이유, 한국의 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 길이라고 생각이 드는 이유. 이런 현상 뒷면에 놓인 한 국가의 정신이나 익숙함을 보여준다.

P.144
재미있는 것은 건물 사용인들이 너무 당연하게 건물 앞길을 전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도로 포장, 배수 시설, 가로등 설치는 물론이고 청소나 보수를 위한 비용은 단 한 번도 지불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시민은 드물다는 것이다.

상가들이 줄 지어진 곳에 외부 간판이나 의자, 주차장을 마련해놓고, 그 외의 일은 하지 않는 문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일상에서 줄곧 지나가는 길을 지나치기만 한 나를 반성하게 됐다.

이 책을 통해 묻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기계처럼 세워지는 건축문화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전형을 보고 우리의 전통을 발견하기도 했으며, 이유없이 익숙해지고 정착된 사고를 깨닫기도 했다.

———————

이외에도 아직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유발 할 책 몇 줄을 소개한다.

P.155
모든 건물이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정학적 장점을 누리면서도 자신이 자리 잡은 도로와 광장에 대해서는 어떤 기여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상 광화문 ‘거리’가 광화문 ‘광장’이 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P.156
건축의 공공성보다는 개인성이 득세하는 한국의 도시 환경에서 어느 날 갑자기 유럽 같은 광장을 기대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P.171
도시는 아무도 ‘도대체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해’라는 자문을 하지 않는 전대미문의 집단 최면 상태에 빠져 맹목적인 높이 경쟁에 몰두했고… 그리고 저층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시민은 자신의 집은 점점 어둡고 황량해진다는 사실은 잊은 채, 길 건너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다른 건물의 꼭대기만 바라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따뜻해서 좋았던 부분은 10장 ‘누구를 위해 꽃을 심는가’였다. 저자는 닫는 글에서 속마음을 고백한다.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10장에서 따스한 이야기로 드러났고, 사실 마지막으로 인용한 171 페이지 글에서 눈치 채는 게 가능했다.

당신이 공간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고민해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면, 혹은 그동안 내가 걸어다니는 공간에 너무 무심했다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 목차를 보며 ‘어, 나도 이런 생각해본 적 있는데!’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필자의 서평이자 반성문이기도 한 이 글에 공감한다면 한번 더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