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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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독자들이 책을 읽고 당신들의 공간은 어떠한지 둘러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이 먼저인지 도로가 먼저인지 건물이 먼저인지 혹은 그이상으로 강하게 작동하는 무형의 가치나 세속적인 가치가 먼저인지.

< 새롭게 바라보는 눈으로, 자문하는 태도로>
제2장에서는 건축학적 시선으로 ‘국회의원들은 왜 고함을 칠까’라는 질문을 해결한다. 우선 흰쥐 실험과 극장 공간 논리를 설명하여 이해를 돕는다. 흰쥐는 한 상자에 가두었을 때, 집단으로 나뉜 패거리끼리 싸우며 서로에게 부상을 입힌다. 흥미로운 건 상자 크기를 1/4로 줄이니 치즈도 나눠먹을 정도로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독방 생활을 하게 되니 지능 지수 검출이 어려울 정도로 멍청해진다. 즉, “적당한 거리가 사회적 관계와 유대를 증대시키고, 나아가 개인의 지능까지 향상시킨다는 것(p.42)”을 흰쥐 실험이 보여준다.

또 하나는 극장 공간의 원리. 오페라 극장은 확성 장치를 쓰지 않아 연기자의 육성이 들리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관객을 수용하면서도 무대에 가까이 앉게 공간을 구성한다. 그래서 경사가 지더라도 객석을 무대와 근접하게 만든다. 반면 영화관은 그렇지 않다. 확성 장치가 잘 갖추어져 있고, 화면이 커서 좌석이 가깝지 않아도 되기에 경사도 완만하고 스크린과는 멀어진다.

두 가지 건축시선을 장착했다면, 한국 국회 의사당의 문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국과 한국 국회 의사당 사진을 보면 차원이 다르다. 영국은 불편해보이는 의자와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의자와 의자 간격이 좁고, 거기에 사람들이 앉아서 토론한다. 반면 한국은 널찍한 공간에 푹신하고 팔걸이까지 있는 의자가 앞뒤좌우로 여백이 널널한 곳에 배치되어있다. 그리고 의자 하나에도 공간을 많이 쓰니 단상과 거리는 멀어진다. 사진을 보면 영국은 초중고 교실이라는 생각이 들고, 한국은 대학교 대강당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생각할 때 일하기 쾌적한 공간은 한국 국회 의사당일 가능성이 높다. 개인만 놓고 보면 원하는 대로 편하게 자세를 취할 수 있으니. 그런데 다수와 치열한 토론이 일인 사람들에게는 그 공간은 사람을 나태하게 한다. 단상에 있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멀리 있는 사람과 말하려몀 큰 소리를 빽 질러야 하고, 거리는 멀고 경사는 완만해서 단상이 아닌 앞 사람의 머리가 보여 가뜩이나 집중하기 어려운데 의자는 내 집 소파처럼 한없이 편하다.

P.24
질문의 과녁이 바뀐 순간 내 얼굴은 어둠 속 해골에 담긴 물을 맛있게 마시고 아침에 그것을 발견한 원효대사의 표정과 비슷했으리라.

​필자는 위 인용구를 책 읽으며 계속 느꼈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졸거나 공허한 시선으로 멍하니 있는 정치인들, 그게 아니라면 소리를 빽빽 질러대는 국회의원들을 목격할 때면 ‘저 사람들은 왜 저래?’, ‘또 저러네 정치인들’ 하고 이해하지 못 했다. 몇몇 국회의원들로 한국 정치 수준을 논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질문의 과녁을 바꿨다. 나는 단순히 한 국회의원의 태도에 질문했다면, 저자는 공간에 질문했다. 그리고 흰쥐 시험과 극장 원리를 대입하고, 타국의 공간과 비교하며 몰랐던 국회 의사당 공간의 구조적 문제를 발견했다.

<비판과 지적, 그 이상의 통찰력과 도시를 관통하는 시선>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저자의 부드러움 때문이다. 저자는 문제를 지적하는 게 아닌 현상을 파악하는 것으로 책을 풀어낸다. 예리한 시선을 유지하지만 따가운 말로 공격하지 않는다. 비판은 공격이 아니지만, 비판을 빙자해 사람과 사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P.9 (여는 글)
이 책을 굳이 정의하자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도시에 대한 판이 박힌 인식을 한 꺼풀 벗기면 그 아래 어떤 다른 모습이 숨겨져 있는지 찾으러 떠나는 ‘탐험기’에 가깝다. 그래서 이글은 우리 도시의 문제점을 끄집어내 비판하는 데엔 관심이 없고, 그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문제를 꼬집고 사람을 지적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 현상의 이면에 있는 그 나라의 문화와 사고를 설명하는 글을 썼다.

추모의 공간이 혐오의 공간이 되어 버린 이유, 제 기능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 박힌 쐐기돌이나 장점만큼 문제가 많은 온돌이 아직 만연하게 자리잡은 이유, 한국의 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 길이라고 생각이 드는 이유. 이런 현상 뒷면에 놓인 한 국가의 정신이나 익숙함을 보여준다.

P.144
재미있는 것은 건물 사용인들이 너무 당연하게 건물 앞길을 전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도로 포장, 배수 시설, 가로등 설치는 물론이고 청소나 보수를 위한 비용은 단 한 번도 지불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시민은 드물다는 것이다.

상가들이 줄 지어진 곳에 외부 간판이나 의자, 주차장을 마련해놓고, 그 외의 일은 하지 않는 문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일상에서 줄곧 지나가는 길을 지나치기만 한 나를 반성하게 됐다.

이 책을 통해 묻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기계처럼 세워지는 건축문화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전형을 보고 우리의 전통을 발견하기도 했으며, 이유없이 익숙해지고 정착된 사고를 깨닫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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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아직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유발 할 책 몇 줄을 소개한다.

P.155
모든 건물이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정학적 장점을 누리면서도 자신이 자리 잡은 도로와 광장에 대해서는 어떤 기여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상 광화문 ‘거리’가 광화문 ‘광장’이 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P.156
건축의 공공성보다는 개인성이 득세하는 한국의 도시 환경에서 어느 날 갑자기 유럽 같은 광장을 기대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P.171
도시는 아무도 ‘도대체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해’라는 자문을 하지 않는 전대미문의 집단 최면 상태에 빠져 맹목적인 높이 경쟁에 몰두했고… 그리고 저층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시민은 자신의 집은 점점 어둡고 황량해진다는 사실은 잊은 채, 길 건너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다른 건물의 꼭대기만 바라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따뜻해서 좋았던 부분은 10장 ‘누구를 위해 꽃을 심는가’였다. 저자는 닫는 글에서 속마음을 고백한다.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10장에서 따스한 이야기로 드러났고, 사실 마지막으로 인용한 171 페이지 글에서 눈치 채는 게 가능했다.

당신이 공간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고민해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면, 혹은 그동안 내가 걸어다니는 공간에 너무 무심했다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 목차를 보며 ‘어, 나도 이런 생각해본 적 있는데!’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필자의 서평이자 반성문이기도 한 이 글에 공감한다면 한번 더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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