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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명랑하게, 매일 하는 심신단련 - 소란한 세상에서 나만의 리듬이 필요할 때
신미경 지음 / 서사원 / 2025년 6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신미경 작가의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와 '혼자의 가정식'을 읽었다. 이번에 제목이 꽤 상세한 새 책이 나와서 덥석 읽기 시작했다.
『느리고 명랑하게, 매일 하는 심신단련』라는 제목에서 '느리지만 명랑하기에 지치지 않고 매일 할 수 있는 몸과 마음 다지는 법'을 알려주겠단 확신이 들었다.
도시에서 숨는 법

작가는 덕수궁 연못 근처에서 편안한 은둔 장소를 발견했다. 친숙한 도시와 역사적 공간 그리고 초록빛 연못이 함께 어우러진 곳으로 한없이 고요하지도 소란스럽지도 않은 곳이다.
숨기 좋은 곳에 가면 느린 삶을 배운다. 아무것도 읽지 않고,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않으며,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은 채 고요히 머물며 그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눈이 맑아지면 이내 머릿속이 개운해지고 청정함이 깃든다. 피부에 와닿는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완벽히 머문다. p24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현실에 머물며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이런 공간이 나에게 있을까.
"없다."
그나마 나의 아지트에서 하루의 몇 분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꼭 뭔가를 한다. 회사 일을 포함 기타 등등의 걱정거리를 잊기 위한 다른 무언가를 한다. 책을 읽든 뭘 쓰든 숏폼을 보든 눈도 바쁘고 머리도 바쁘게 만들고야 만다.
몇 분이라도 가만히 앉아 심장 호흡을 하며 고요히 머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기분 널뛰는 것이 줄고 평온의 시간이 길어진다면 해봐야지.
디지털 디톡스의 일환으로 작가는 잘 쓰던 에어팟을 팔아 없애고 폰 사용을 줄이고 SNS를 탈퇴한다. 처음에는 울화병이 났지만 서서히 아날로그 생활에 적응한다. 기계와 맞닿는 시간을 줄여나가자 결국 보이는 것이 사람이더라는 거. 익명으로 활동하는 온라인보다 마주하는 현실에서 서로를 더 많이 살피게 되는 법.
메일보다는 통화가 통화보다는 대면 대화가 일을 빠르고 제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과 일치한다. 일뿐만 아니라 사람이 보이니까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밀가루 단식
밀가루를 그만 먹기로 결심하다

온몸의 세포가 바뀌는 기간이 80일이라 한다. 그동안 밀가루 단식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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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가벼운 몸, 일정한 기분을 유지하는 정신, 빛나는 피부처럼 우리가 많은 돈을 들여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이 절제력으로 해결이 된다면 얼마나 저렴한지 모를 일이다. p113
밀가루 포함 탄수화물을 줄이는 일은 몹시 저렴하나 거대한 절제력이 필요해서 몹시 어려운 일이다. 안 좋다는데 왜 제일 맛있냐고..
원래 청경채와 브로콜리를 좋아하고 고기는 안 먹을 수 있는데 수제비나 밥을 안 먹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 해보겠다는 말이 안 나온다. 수제비라는 세 글자를 쓰면서도 먹고 싶어지는 이 마음을 어쩌겠나. 감자랑 호박 등등을 넣어 밀가루보다는 야채를 많이 넣은 수제비를 만들거나 잡곡을 섞어 밥을 짓는 정도로 타협해 보자.
당뇨도 그렇고 다이어트도 그렇고 탄수화물을 줄어야 하는 이유는 크고도 많다. 거기에 빛나는 피부라니 안 먹을 이유는 충분하다.
탄수화물을 끊고 피부 좋아졌다는 연예인 혜리가 퍼뜩 머리를 스친다.
마음 챙김 글쓰기
삶에 고민이 생길 때면 평소보다 곱절로 책을 읽는다. 이때는 질보다 양을 추구하며 쉬지 않고 읽고 내 고민에 답을 찾아가면서 동시에 독서 감상문을 쓰는데, 내가 볼 때는 이것이 가장 좋은 마음 챙김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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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인 글, 권위 있는 글, 어쩐지 거북한 글마저도 늘 깨달음을 주었다. p232
여러 사연을 만나면 자신의 고민 정도가 작게 느껴진다는 점이 좋았고, 공감 가는 문장 발췌만으로도 스스로 어디에 가치를 두는지 보여서 좋았다는 거다.
머리가 복잡할 때 나도 책을 찾는다. 여러 책을 두고 한꺼번에 마구 읽어서 뒤죽박죽 섞이기도 하는데 그 안에서 헤매는 게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보다 나았다. 서평을 몰아서 쓰면서 이걸 왜 쓰나 싶기도 하고 일종의 회피라는 생각도 했다.
마음 챙김 글쓰기라고 명명하니 고급 져 보인다. 앞으로는 회피 아니고 마음 챙김 글쓰기라고 생각해야겠다.
차분한 열정
동기부여는 분명 성취 열망에서 생겨나지만, 작심삼일이나 번아웃으로 끝나는 까닭도 역시 과도한 열망 탓이다. 이게 무슨 뫼비우스의 띠 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내 경우 기대감이 클수록 빠르게 지쳤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보상을 바라지 않고 무엇이든 작게 시작해서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다. 기대가 작을수록, 아니, 기대 자체를 망각할수록 오래 유지되는 차분함이 있다. p276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할 일을 대부분 매끄럽게 잘 마친 다음 잠옷으로 갈아입고 포근한 침대에 누웠을 때, 마음에 거슬리는 게 하나도 없는 하루의 힘은 분명 차분함으로부터 나온다. 달리 말하자면 평정심이다.
바쁜 낮 시간에는 잊고 있다가도 찜찜한 일은 자기 전 기필코 생각이 난다. 이불킥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자괴감은 이불과 함께 마음 위에 착하고 안착하는 특기가 있다.
과정을 즐기는 작은 마음으로 하루의 할 일들을 해나가는 것의 힘은 평정심에서 나온다.
작가는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건강한 식사 원칙을 지키며 하루 2시간 운동 루틴을 이어가고 있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하나하나 실천한 방법들을 얘기해 준다.
종종 아무것도 하기 싫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엄마 배고파" 혹은 "엄마 OO 어딨어?"란 소리가 날 불러일으키고 움직이게 만든다. 아직은 막강한 아이들의 '엄마' 소리가 있기에 마음 놓고 무기력할 수도 침울할 수도 없다. 운동을 2시간 하지는 않지만 작은 루틴들도 날 의자에 앉히고 뭔가를 하게 만든다.
나이가 더 들고, 아이들이 집을 떠난 후 찾아올 무기력을 생각하면 나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돌볼 수 있는 방법들이 필요하다. 그 돌봄 기술을 경험에 입각해 소곤소곤 얘기해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