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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독서 - 안나 카레니나에서 버지니아 울프까지, 문학의 빛나는 장면들
시로군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11월
평점 :

작가 소개
시로군(이시욱)
15년 동안 '막막한 독서'라는 독서 모임 진행
1000회가 넘는 모임을 가지며 300여 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돈키호테부터 안나 카레니나,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까지 제목으로는 익숙하기 그지없는 고전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나눠준다. 『죄와 벌』
어떤 사람이라도 어디든 갈 곳이 한 군데는 있어야 하거든요. 왜냐하면 어디든 꼭 가야 할 그런 때가 있는 법이니까!
'죄와 벌'은 갈 곳 없는 사람이 '어딘가 갈 곳'을 찾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기도 하다. p65
위는 술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가 한 말이다. 술주정뱅이든 살인자든 사람에게는 갈 곳,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황금기를 살고 있든 밑바닥을 살고 있든 어디든 꼭 가야 할 그런 때는 있기 마련이니까. 마르멜라도프에게는 술집이 그러한데 신세한탄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을 거기서 만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2곳을 가지고 있다. 내 방의 아지트 그리고 집 근처 카페이다. 힘들 때 고향이 먼저 생각나기도 하는데 거리상의 이유로 쉽게 갈 수가 없다.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로 기억되는 소설이다.
이 문구 때문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원문이 뭔지 궁금했는데 "I would prefer not to ····"이다.
번역이 출판사마다 다르다.
"안 하고 싶습니다"(창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문학동네)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현대문학)
내가 기억하고 있는 문구는 문학동네의 번역이었다.
인간 복사기 역할을 하던 바틀비가 필경사 일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사무실에 나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하루 종일 벽만을 바라본다.
바틀비는 일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지만 너무 늦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탈진 상태였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사는 법을, 바깥 풍경과 햇빛을 즐기는 법을,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일터가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하는 자신을, 인간 복사기가 아닌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어 버린 게 아닐까. 자신의 다른 모습을 그려볼 의욕조차 지닐 수 없을 정도로 "다 타서 꺼져버린 탈진한 영혼"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바틀비를 성과사회의 탈진한 인간의 모습에 빗대었다.
성과사회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끝없이 스스로를 착취하고 고갈시키는 사회다. 노력한 만큼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성취감을 느끼다가 스스로 탈진 상태에 빠진다.
문득 얼마 전 접했던 '은퇴 없는 나라' 영상이 떠오른다. 새로운 분야의 일을 시작해서 큰 성과가 나기도 했고, 우수 사원으로 뽑히기까지 해서 퇴사 대상자가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우리 세대는 야근 특근에 합숙까지 하면서 일을 했다. 출장도 밥 먹듯 다녔는데 큰 거부감이 없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서로의 모습을 보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거다.
1853년에 쓰인 소설에서 얼마 전까지 익숙했던 직장 분위기가 읽힌다.
카프카의 『변신』과 함께 직장인이 주인공인 직장인 소설이고, 우리가 직장 생활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해준다는 설명이 팍 와닿았다.
책 읽기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
p379
그저 어떤 페이지를 펼쳐놓고 지금까지의 삶을 멍하니 생각해 보는 것, 무거운 철학 책에 누군가 휘갈겨 놓은 낙서를 보며 현재 나의 위치와 모습을 두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것, 낯선 외국 작가의 쉽게 소화가 안 되는 난해한 문장들을 읽으며 답답함을 느끼는 것. 이런 것들이 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경험들일 것이다. 책은 우리로 하여금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을 것을 느끼게 한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딴 생각에 빠지게 한다.
책 읽기가 나에게 주는 것을 생각해 봤다. 책은 나를 웃게도 만들고 슬프게도 만들고 때로는 힘을 내게도 한다. 공부보다는 덜 하지만 종종 많이 졸리게도 만든다.
막독 리스트

밀리의 서재로 여기 나온 고전들을 받아서 조금씩 읽고 있다. 과거에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기에는 나의 기억력이 미천하기만 하고 작가의 설명을 읽고 있노라면 같은 책을 읽긴 한 건가 싶다.
대다수의 고전이 지루해서 읽는데 큰 인내심이 필요했던 것만 확실히 기억난다.
간혹 번역서를 읽다가 원본이 궁금할 때가 있었다. 이해가 안 된다든지 문맥이 어색해서 반복해서 읽게 만들 때 그랬다. 내 영어 실력으로 원본을 정확히 읽어낼 도리가 없을 거라 실제로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이 책의 저자 시로군은 국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출판사 별로 주요 구절 번역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가 나오는데 확실히 번역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지는구나를 알 수 있었다.
고전에 대해 얘기하는 『막막한 독서』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같은 책을 분명 나도 읽었는데 사고의 깊이 차이 때문일까. 내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도 하지만 많이 어렵다.
고전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독서모임#독서노트#독서기록#막막한독서#시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