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가 들려주는 백범 일지
이경순 지음, 송준일 그림 / 세상모든책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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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개구장이이고 힘이 세고~ 고집도 셌던 김구 선생님

크면서 부터는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온 평생을 우리 민족과 나라를 위해 몸바쳐 일해온 우리 계레의 위대한 스승이자

꺼지지 않는 등불로 남을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사람  백범 김구 선생님



그가 직접 들려주는 백범일지, 절대 자신의 행적을 남에게 과시하지 위해서 쓴 게 아니라 그야말로

솔직하게  자신의 신념, 일,  가족에 대한 것까지 솔직하게 써내려 간 자서전이다.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에 자라나 

17세에 과거에 낙방한 후 양반, 평민 차별없는 평등을 내세우는 동학에 입도하여

수백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동학농민운동시기에는 최연소 황해도 동학군의 선봉장으로서

해주성을 습격했다가 관군에게 패퇴하고 

21세에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치욕을 씻고자 조선인 복장을 하며 염탐하던

일본인 중위를 아주 대담하게 무찌른다.

이 사건때문에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고종황제의 형집행 보류로 사형집행 전날 풀려나는 등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그 이후 공주 마곡사의 승려가 되고, 또 훈장일을 하면서 나중에는 황해도에 학교를 세우며

계몽운동에 앞장선다. 이 밖에도 애국 활동에 끊이지 않고 참여했던 김구 선생님은

국권을 되찾기 위해 을사조약의 무효화 투쟁을 벌이고 신민회에도 가입해서 황해도 총감이 되기도 한다.

105인 사건등으로 수감되어 출옥하고 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 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이 되고 이봉창 일본천황 암살사건 및 윤봉길의 폭탄투척사건을 지도하기도 한다.

그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최초의 정식군대인 광복군을 만들며 열심히 훈련시키며 자주 독립의

열의를 불태우나 일본의 항복으로  그 뜻은 멀어지고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와

남북한 지도자들의 단독정부 설립의지로 인해 조선이 남북한으로 두동강이가 나고 만다.

김구 선생은 분단국이 설립된 이후에도 끝까지 조국 통일을 부르짖으며 힘썼으나

1949년 6월 서울의 자택인 경교장에서 74세의 나이에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였다.

<지금 일지를 기록하는 것은 너희들로 하여금 나를 본받으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너희들 또한 대한민국의 사람이니

동서고금의 많은 위인 중 가장 숭배할 만한 사람을 선택하여 배우고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  '백범일지' 아들에게 전하는 유서 중에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 중에서

자식에게 전하는 유서와 소원을 말하는 위 두 인용문에서만 보더라도 백범 김구 선생님이 얼마나 우리나라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고, 우리나라를 사랑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를 민족의 지도자, 계레의 스승으로 영원히 기억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한시도 나라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고귀하고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또 자신의 살점을 떼어서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려했던 효성 지극하고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고 다그치며 반성하고 노력하셨던 김구 선생님을 보면서 과연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자식으로서, 정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지 뒤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김구 선생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떳떳하고 당당하게 열심히 살아가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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