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1980년의 시대는 우리나라가 그리 잘살지도 그리 못살지도 않았던 시대라고 내 기억속에는 남아있다. 물론 우리집이 잘살았던 것은 아니고 나도 어릴적에 세들어 사는 집, 연탄보일러를 때고 살았던 그런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환경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동네의 경사진 골목 골목은 모두 연탄재로 뒤덮이고 아이들은 썰매가 없어서 푸대자루 등을 들고 동네에서 타고 놀았었던 기억이 내 머릿속에는 그림처럼 남아있다. 그래서 일까? 조정래씨의 [비탈진 음지]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어릴적에 살았던 동네의 잔상들이 머릿속에서 내내 그림자처럼 머물고 있었다. 주인공 봉천이 사는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가 살았던 동네마냥, 주인공이 겪은 일이 마치 그시절에 내가 겪은 일 마냥 느껴졌던 이유도 아마 그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어릴 적에 보고 느꼈던 서울은 그리 잘사는 동네가 아니었다. 물론 나는 강남권에 살지 않았고 강북에서도 시골에서 갓 상경한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는 동네라고 하는 변두리에서도 변두리에 살았으니 내 눈속에 보여지는 서울은 그랬다. 잘사는 사람보다 못사는 사람이 더 많았던 그랬었던 서울. 그리고 '가난'이라는 단어는 늘 우리 삶속에서 어딘가에 잊지 못하도록 꼭 붙어다녔던 것 같다. 내가 아니면 그 누군가에게라도. 그 가난은 주인공 봉천에게도 그랬다. 봉천의 아내는 암에 걸려서 다리는 썩어가고 있었고, 처음부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면 고쳐졌을 병을 가난이라는 환경 때문에 결국에는 아파하며 먼저 저세상으로 가게 되고, 첫째 아들은 돈을 벌겠다며 중학생의 나이에 서울로 도망치듯 떠나버리고, 아내가 죽은 후 남은 두 자녀를 데리고 봉천마저 서울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서울 생활은 정말 운이 어쩌면 저리도 없을까 싶을 정도로 하는것 마다 놀랍도록 되질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정신을 잠깐만 놓으면 내 코가 베어지는 지도 모르는 서울. 아마 주인공 봉천이 느꼈던 서울은 냉수 한잔도 인심으로 얻어먹을 수 없는 그런 얼음장 같은 도시였다. 나 아니면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정직하게 살면 손해보는 그런 삶이 처절하게 힘든 도시. 그런데 왜였을까? 봉천이 몸소 겪으면서 살고 있는 그 도시 서울이 지금을 살고 있는 나에게 전혀 낯선곳이 아니었다.
조정래씨가 이야기하고 싶은 비탈진 음지. 그것은 아마도 주인공 봉천이 살고 있는 그 시대가 지금의 시대와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것. 지금도 그만큼의 생과 사를 미친듯한 경쟁으로 인해 살아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아주 작은 것 조차 경쟁하면서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아야만 하는 그런 시대.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 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만든 의무교육을 받으면서 그 아이들 안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아이와, 먹지 못하는 아이, 그 아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과, 서로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를 아주 어린나이 때부터 몸소 가르쳐주는 이런 환경들...
주인공 봉천이 살고 있는 그 시대의 차가움이 지금의 시대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힘든 시대를 겪어오면서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변화되어 온것이며 과연 우리의 후손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알려줘야 할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이 험난한 세상을 잘 이겨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한번쯤은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겠느냐고...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세상이 이런 세상이었느냐고...
그렇지만 또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내가 살아보고픈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조정래씨가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중에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세상에 대한 희망의 끈은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것 하나는 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마다 내 머릿속을 늘 떠나지 않았다.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