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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史를 넘어 - 붓에 살고 붓에 죽은 서예가들의 이야기
김종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12월
평점 :
요즘은 칼리가 꽤 유행을 탄다. 티비 드라마의 제목이나 신간 서적의 제목들이 대체로 그렇다.
이런 칼리 바람은 어디서 왔나. 아마 농협의 선전문구, 민족주의가 덕디덕지 붙은 "신토불이" 네 글자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적어도 시간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십여년 전부터 슬금 슬금 불어오기 시작한 칼리 열풍은 그 저변에 무엇을 깔고 있나. 두 가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미학이다. 칼리의 미학은 여전히 우리에게 호소력이 있다. 우리가 서예를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어도 붓글씨는 그저 실용의 글씨만은 아니요, 인격의 고아함과 무엇보다 기질적 호방함, 힘 같은 것이 실려 있어 매력적이다.
또 하나는 전통, 문화적 전통이다. 전통은 우각호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면면이 이어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모래, 자갈이 많은 개울 밑을 한참 돌아서 흐르다가 다시 분출하는, 그래서 결국 단속적이지만 세월을 격하여 이어지는 어떤 흐름 같은 것이다. 칼리의 유행은 그런 것이 아닐까.
"추사를 넘어"는 한국 칼리의 대명사인 추사 김정희의 글자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김정희의 중국적 모태였다 할 판교 정섭으로부터 시작해 물줄기 탐색이 이뤄진다. 글씨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우리에게 지은이 김종헌은 붓글씨 쓰는 법, 감상법을 자세히 꼬박꼬박 일러준다. 추사 글씨의 아름다움을 피부에 와 닿게 설명한다.
추사를 넝어서고자 했던 근현대 서예가 다섯 명도 소개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검여 유희강, 소지도인 강창원, 그리고 이 책의 제자를 쓴 송천 정하건의 기운생동한 서예 인생이다. 좀 뜻밖이다 싶은 것은 안중근 의사도 대표적인 서예가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안중근을 서예가로 본다? 언뜻 이해가 잘 안되지만 설명을 들어보면 그럴 법도 하다.
칼리의 세계, 익숙하지만은 않지만 일말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우리의 문화 전통에 이 책이 닿아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서예 작품 앞에 나서 글자를 이리 저리 뜯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