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C 월드
플레이어 지음 / PAGE NOT FOUND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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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월드
플레이어 (지은이) PAGE NOT FOUND 2025-11-19​

세상 살면서 ‘서버종료‘를 얼마나 볼 수 있을까요. 의외로 애착하는 게임이나 서비스, 매장이 종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라떼는 이런~ 을 외치며 아쉬워하지만 망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지요.
모두 4부 구성인데 NPC가 되는 과정, 역사, 탈출, 망겜으로 뒤로 갈수록 내용이 줄어듭니다. 게이머들이 자동사냥, 매일접속으로 NPC가 되는 건줄 알았는데 큰 오산입니다. 저도 어느샌가 NPC로 자리잡고 그저 스크롤만 하고 있었습니다.

1부는 ‘우리가 NPC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심심함‘의 빈자리에 들어가는 플랫폼은 들어가자마자 미리보기로 이미 재생합니다. 마치 ‘너는 이미 재생되고 있어‘하는 기분이네요. 영상을 다 보면 끝이 아닙니다. 바로 다음 콘텐츠가 이어집니다. 끝없는 재생입니다. 나는 그저 쉬는 시간에 영상 한편을 보고 싶은데, 한편이 한편이 아닙니다. 무한스크롤, 자동재생, 세분화된 사이에는 나의 호기심을 채우는 광고, 볼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옛날 상세페이지는 아무리 길어도 바닥이 있었습니다. 바닥의 회사소개나 댓글창이 뜨면 끝났구나 하고 생각할텐데 ‘플랫폼은 바닥을 만나기 직전에 내용을 미리 불러‘ 옵니다.

책의 챕터 끝, 기사 한 꼭지의 종결선, 드라마 한 회의 엔드 크레딧 같은 경계. 경계는 ‘정리, 판단, 재시작‘의 3단계를 자연스럽게 부른다. 무한스크롤은 경계를 제거한다. 콘텐츠는 하나의 강물처럼 연결된다. 연결의 미학은 좋다. 다만, 경계가 없으면 판단도 줄어든다.
29p, 왜 멈추기 어려운가.
넷플릭스, 유튜브, SNS 등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출구가 없습니다. 저는 하루 한시간 자전거를 타는데 유튜브를 한번 들어가면 1시간 뚝딱 입니다. 심지어 1시간이 지나도 영화가 안끝나 계속 갑니다. 무서운 플랫폼입니다.

짧은 콘텐츠로 계속 보고 결국 사게 됩니다.
무한스크롤로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보기만 합니다.
자동 재생으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알고리즘으로 선택의 폭을 좁혀 보는 것만 반복하게 합니다. 친절한 추천처럼 보이지만 ‘진입로를 줄이는 공사‘입니다.
기본값으로 판단이 미뤄지고 세팅되어 효력을 발휘합니다.
좋아요, 알림 등의 휘발성 보상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킵니다.
실패 비용이 무서워서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북사,붙여넣기만 늘어납니다.
강한 감정으로 주의를 붙잡고 노출을 늘리는 일은 알고리즘, 데이터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체크리스트는 공허한 생산성만 키웁니다.
이 모든 짓을 제가 하고 있네요. 나는 자유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마약인가. 신종마약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알고리즘에 부여하고 있는 권한의 배분이다. 당신의 하루에서 추천이 가져가고 자연스레 점유하고 있는 권한을 조금이라도 되돌리면 된다. 시작은 순서의 복구다. 적어도 목적을 먼저 세우고 소스를 직접 고르고, 추천은 참고자료로만 활용하는 수준으로 낮춰라.
40p, 알고리즘은 선택지를 어떻게 좁히는가.
자동을 수동으로 바꾸는 겁니다. 쉽지 않죠. 이미 길들여졌는데요. 하지만 ‘좁힘‘을 느슨하게 만들면 알고리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2부는 ‘NPC, 방관과 순응의 역사‘입니다. 침묵하는 자들이 방관과 순응으로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1995년 보스니아 동부의 유엔 ‘안전지대‘인 스레브레니차에 군대(보스니아)가 들어와 8000명의 무슬림을 학살했습니다. ‘나는 어느 평도 아니다‘는 말은 ‘나는 결정을 남에게 맡긴다‘는 말이랍니다.
1938년 9월말 뮌헨 협정은 유명한 일화죠. ‘평화를 가져온‘ 체임벌린은 다음달, 다음해 히틀러를 막지 못했습니다.
1932-33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회색 정치로 중도를 가는 정치인들은 결국 나치의 집권을 초래했습니다.
1994년 르완다에서 내정 불간섭과 중립유지로 유엔이 멈춰있는 동안 대학살로 100일간 80만명이 사망했습니다. 중립이 방관이 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중립이라고 방관하는 사례들이 꽤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걸쳐있기는 한데 어중간한 태도로 점점 구렁으로 들어갑니다.

3부는 드디어 수동적인 (중립적인) ‘NPC 탈출하기‘입니다.
감정 자동화에 빠지지 않게 바로 반응하지 말고 메모장에 적는 것처럼 ‘감정과 행동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봅니다.
뇌는 항상 보상을 원하기에 계속 되면 보상은 약해지고, 자극은 커져야합니다. 도파민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1. 예측 가능한 자극을 차단한다.
2. 즉각적인 보상을 늦춘다.
3. 무자극의 시간을 확보한다.
186-187p, 도파민 다이어트.
당연한 습관, 행동은 없습니다. ‘자연적 보상 시스템의 재구축‘이 필요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거기에 기억의 원본 되찾기, 캡처 기억법 버리기도 재미있는 방법입니다. 아. 스마트폰의 수많은 캡처들이 의미없는 것이었습니다.

AI 추천 알고리즘은 ‘당신이 불편해한 장면‘을 기억했다가 비슷한 자극을 다시 띄운다. 그 결과, 우리는 실제로 위험에 노출되지 않아도 지속적 경계 상태에 머문다. 이때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심박수, 혈압, 코르티솔이 상승하고 판단력은 저하된다. 분노는 행동 에너지가 아니라 피로로 남는다.
204p, 분노라는 예산
왜 계속 싫다고 차단하는 사진들을 올리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의 주체적인 행동들이 거의 NPC의 모습이었음을 알게 되어 충격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사진과 캡처로 내 능력을 분산하고 있는 줄알았는데 영 아니었습니다. 2부의 과거 역사를 통해 중립과 방관이 능사가 아니었습니다.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책을 읽고 충격을 받고 반성하게 되는 걸 보니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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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부처의 가르침 - 당신의 오늘을 밝혀줄 366가지 지혜
알루보물레 스마나사라 지음, 심지애 옮김 / 시그마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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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부처의 가르침 - 당신의 오늘을 밝혀줄 366가지 지혜
알루보물레 스마나사라, 심지애(옮긴이) 시그마북스 2025-12-01

하루 하나의 가르침을 듣고 따라하거나 되새길 수 있습니다. 필사를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떤 가르침을 들어야 할까요. 스토아 학파, 프랭클린, 인문학, 심지어 부자의 가르침도 있습니다. 이번에 잡은 책은 ‘부처의 가르침‘입니다.
처음에는 읽어나갔습니다. 가볍습니다. 묵직한 부처님의 말씀이 이렇게 쉽게 넘겨도 되는 것일까. 여시아문부터 진지해지고, 아라한, 아란야, 어려운 용어가 나오고, 머무름이 없는 세계란 무엇일까, 나란 누구일까 하고 본격 광활한 세계 속에 나자신을 찾는 가르침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무엇을 택해도 각각 나름대로 고통이 있습니다. 고통의 질이 바뀌는 것뿐입니다. 어쩌면 고통의 양은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14p)
이들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아무리 탐구해도 정답을 모른 채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27p)
불교는 갈 때도 즐겁고 돌아올 때도 즐겁습니다... 불교란 그런 길입니다.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권하지 않습니다. (38p)
평상시의 식사를 명상으로 체험해 보세요. (386p)
어렵고 깊숙이 들어가야하는 불교가 아닙니다. 가만히 서서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는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불교였던가. 내가 알고 있었던 등신불이나 백척간두진일보, 야밤삼경에 깨어나는 것들은 무엇이었나, 다 집착이고 버릴 수 있는 것이었구나 반성하게 됩니다.

행복이란 ‘내일‘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언젠가‘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내일‘은 변함없이 내일입니다. (349p)
물 한 잔 제대로 마시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의미 없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욕심내서 허겁지겁 물을 마시는 건 개나 고양이도 하는 행동입니다. (388p)
그러면서 너무 생각없이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고 슬쩍 가볍게 이야기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남이 나에게 화를 내면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당한 입장이라 화가 나지 않은 듯 보여도 사실 화가 많이 난 상태입니다. 우울해지는 것도 공격적으로 맞서는 것 못지않게 매우 위험한 분노의 표출이라 할 수 있습니다.
49p, 우울해지는 것도 위험한 분노.
맞습니다. 우울하다가 갑자기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화가 많은건가 걱정했는데 동전의 양면입니다. 화가 나는 것은 거친 표현이라 외향적이고, 우울해지는 것은 침참하는 느낌이라 내향적이라 생각하고 별개라고 생각했었지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런 놀랄 생각은 정말 불교의 가르침일까요. 찾아보니 딱 저런 문장은 없고 앙굿다라 니까야에 분노, 탐진치가 많이 나옵니다. 어쩌면 불교공부하시는 분들이 분노가 많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는 좋은 글귀를 체크하며 읽습니다. 표시하면서 읽는데 10개를 넘어가니 더이상 표시할 의미가 없습니다. 다 좋은 내용이구나, 굳이 표시할 것이 아니라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책이네 즐거워하며 (바로 이겁니다. 책을 읽으며 즐거울 수가 있습니다) 틈나는 대로 넘겨볼 수 있습니다. 하루 한페이지를 읽다가 마음에 들면 계속 읽을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필사하기에 제격입니다. 한페이지 문장이라 슬슬 써보면 5분도 안걸립니다. 그런데 써볼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아름다운 문장은 쓸수록 창조하는 느낌이 들어 즐거웠는데, 마음다스림의 문장은 쓸수록 비워지는 기분이 듭니다. 필사한다는 것이 무엇을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써서 내버리는 비움의 과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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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팬케익 : 뒤집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남선우 지음 / 뉘앙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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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팬케익 : 뒤집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남선우 (지은이) 뉘앙스 2025-11-14

시작에 멋진 말이 나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책 한 권을 쓰려면 그것을 전공하거나 그것에 통달했거나, 그것에 대한 나만의 비법이 있거나, 적어도 그것을 긴 시간 깊게 애호했어야 할 텐데, 팬케이크에 대한 책을 쓰는 나는 어느 축에도 속하지 못했다. 전공, 통달, 비법은커녕 가장 애호하는 대상도 사실 팬케이크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6p, 남선우
그런데 왜 팬케이크 책을 썼을까요. 379미터 팬케이크 달리기를 해야하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진 한장으로 팬케이크의 정점을 찍은 거지요. 혹은 겸손의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읽다보니 상당히 팬케이크 전문가입니다.

모두 3장으로 팬케이크의 이론, 현실, 자신으로 풀어갑니다.
1장은 ‘팬케익의 이론‘으로 이름, 오리지널, 변검술, 슈뢰딩거, 최종적으로 완벽한 팬케익이 있습니다.
팬케익은 평범하고 친숙한 간식이지요. 팬케익의 다양한 명칭을 사전과 검색으로 찾아봅니다. 저는 핫케이크라고 생각했는데 압도적으로 팬케이크(팬케익, 팬케잌)가 많습니다. 팬이 핫을 이기는군요. 영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위가 pancakes입니다. 한 장만 먹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에스가 붙었습니다.
오리지널에서 최초의 팬케이크를 찾아갑니다. 7만 년전 지금의 이라크 동굴의 곡물 탄화 흔적에서, 1만5천 년 전 아프가니스탄의 농경 시작, 드디어 1만 년 전 근동 지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변검술에는 저자의 검색실력을 발휘하여 팬케익과 관련된 단어들을 찾아냅니다. 팬케익이라는 이름의 골퍼도 있습니다. 와플하우스의 후원을 받습니다. (이런 내용 재미있네요)

결국 슈뢰딩거의 프라이팬 위에서 양자 중첩에 놓인 팬케익을 성공의 상태로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실패를 무릅쓰고서라도 뒤집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성패가 눈으로 어느 정도 보인다고 해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금빛 기쁨을 온전히 누리려면 그것을 입에 넣어 황홀한 성공의 맛을 음미해야 한다. 실상 설익거나 타버렸다고 해도 그것을 맛봄으로써 이를 성공으로 바꿀 수도 있다.
44p, 뒤집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편에서 팬케익을 ‘뒤집기 전에는 완성 여부를 알 수 없다‘을 이야기합니다.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았거나 중첩되지만, 팬케익은 잘 익었거나, 타버렸거나, 설익었거나, 다양한 결과가 예상됩니다.
‘완벽한 팬케익을 만드는 방법‘은 논문처럼 잘 썼네, 대단한 내공이구나 생각했는데 진짜 논문입니다. 영국에서 발간되는 간행물을 찾아 번역하였습니다.

2장은 ‘팬케익의 실제‘로 팬케익을 찾아 전국을 다닙니다. 팬케익을 둘러싼 경험과 장소, 사람들이 흘러갑니다. 하루 10장만 판매한다는 데커드, 테이블당 2개 이상 주문할 수 없다는 팬케익 버거, 위에 프라이드치킨을 올린 치킨 펜케익, 서울, 강릉, 전주, 대전, 대구, 분당, 인천을 떠돌다가 세계로 나갑니다. 런던에 가서 타이베이의 팬케익을 회상합니다. (런던 요리가 좀 그렇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제주도에 가서도 팬케익을... 이쯤되면 팬케익 책을 내는 충분한 이유겠습니다. 팬케익을 중심으로 한 일상과 특별한 날에도 팬케익이라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3장은 ‘팬케익과 나‘입니다. 에술작가는 pancakes with butter에 저자의 이름을 녹여냅니다. 예술가가 뛰어난건지 저자가 팬케익과 같이 가야하는 인생인건지 모르겠습니다. 애호가인지 전문가인지 점점 팬케익이 일상이 되고 과거, 현재, 미래마다 팬케익이 들어있습니다. 친구들과 만날때도 팬케익과 연결됩니다. 팬케익의 냄새만 맡으면 떠오르는 기억과 소중한 순간들이 이어집니다. 마들렌인가.

평범한 음식 하나가 사람의 인생에 의미를 갖기 시작하면 삶과 감정을 변화시키고, 존재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재미있는 에세이였습니다. 음식과 기억, 인간관계와 수줍은 감정이 얽히는 순간 그 자리에 팬케익이 있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금빛 기쁨: 삶의 좋은 순간에 팬케익이 있었다‘고 쓰여있는데 이런 감성도 참 좋습니다.
1단계: 따뜻할 때 먹어야 더 맛있는 ‘그것’
2단계: 재밌는 팬케익을 찾아 떠나는 여행
3단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한다
책소개글. 인터넷서점 검색
웬만한 신문 서평보다 내용이 깊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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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2025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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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스즈키 유이, 이지수 (옮긴이) 리프 2025-11

저자는 2001년생 23세 대학원생입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괴테 관련 서적을 500권 가량 읽었다고 합니다. 책소개에 1년에 책을 천권 읽는다고 해서 그런가 했는데 잠깐 생각하면 하루에 2.7권을 읽어야 합니다. 그게 가능할까? 나도 웹소설을 읽으면 하루 7권까지 읽을 수 있는데 저자는 이런 종류가 아니라 괴테에 관한 책을 써야하니 베르터, 빌헬름, 베를리힝겐, 스텔라, 타우리스 등 읽히지 않는 책들을 3권씩 읽었다는 거지요.
스즈키 유이(鈴木結生) 선생. 대단합니다. 찾아보니 인터뷰에서 ‘1작품당 관련 서적 500권 정도 읽는다. 작년 2작품 썼으니 1000권쯤 된다‘고 말한 것이 1년 천권이 된 것입니다. 그래도 하루 10시간 도서관에서 읽으며 통학 중에도 소설 쓰기 모드로 전환된다고 합니다.​​ 아침 8시 기상 후 40~50분 도보 통학하며 읽고 보고서, 작품 자료를 병행해서 읽습니다. ‘읽고 쓰는 인간‘이로군요. 생활 루틴과 연 1000권 독서 과정을 직접 보여 준 영상도 있습니다.

거기에 이 작품으로 2025년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172년이나 된 수상인가 했는데 1년에 두번 상을 시상합니다. 그래도 90년된 상입니다. (1935년)

세번째 포인트는 쓰기 시작해서 30일만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관련서적을 500권 읽었으면 1일3권만 해도 167일이 필요한데, 날림으로 읽은걸까요. 하루에 17권씩 읽어가면서 쓴 것일까요. 그림을 몇분만에 뚝딱 그리고 거액을 청구해서 의문을 제기한 고객에서 자신의 한평생 시간이 들어갔다고 하는 화가도 있는데 30일 완성은 또다른 마케팅입니다.

그런 과햔 마케팅은 있지만 책이 재미있습니다. 노회한 괴테 연구가가 등장합니다. 티백 꼬리표의 수상쩍은 “괴테 명언” 한 줄이 평생 괴테만 파온 독문학자의 삶과 학문, 나아가 언어와 믿음에 대한 그의 세계관을 뒤흔들기 시작하는 과정입니다.

괴테 연구자 히로바 도이치는 이름부터 ‘독문학자‘처럼 들리고 오랜 세월 괴테 연구에 인생을 바쳐 온 학자이다. 결혼 25주년을 맞아 아내와 딸과 함께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찾은 그는 식사 후 주문한 홍차의 티백 꼬리표에서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Goethe”라는 문장을 발견한다.​ 자신이 아는 괴테 텍스트에서도 본 적 없는 문장이라 잠시 의아해하지만, 나중에 출처를 찾아보리라 생각한다. 도이치는 방송 강연 원고를 퇴고하던 중애 이 문장이야말로 자신의 괴테 연구를 압축하는 결정적인 문장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을 받는다.​ 영어 문장을 독일어로 옮겨 “Die Liebe verwirrt nicht alles, sondern vermischt es.”라고 직역해 보지만, 막상 소리 내어 읽어 보니 어딘가 괴테답지 않다는 낯섦을 느낀다.​ 일본어로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라고 재번역하면서 ‘잼처럼 마구 섞여 혼동되는 상태’와 ‘샐러드처럼 각자의 형태를 유지한 채 뒤섞인 상태’를 대비시키며, ‘mix’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다.​ 도이치는 여러 판본의 괴테 전집을 뒤지고, 동료 연구자들에게 문의하며 본격적인 추적에 나선다.​ 그러는 동안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옛 동료의 농담이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며, 한 인간이 과연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괴테는 정말로 모든 것을 말하려 했던 존재가 아니었을까라는 사유가 점점 깊어진다.​

스포하지 않으려고 앞부분만 요약했습니다.
제일 감동적인 장면은 꿈에 괴테 선생이 나타나는 부분인데 오오, 전율이 일어납니다.
노교수가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동료, 학자들에게 물어보는 대목도 인상적이로군요.

그런데 이 책은 한번 읽는 것보다 두번, 세번 읽을 때 색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책 내용이야 위의 한 문장을 찾아가는 여행입니다. 마지막에 번역한 이지수선생이 6번까지 통독하면서 계속 새로웠다는 이야기가 와닿습니다.

책읽는 내내 괴테가 맴돌아서 저서목록을 찾아봤습니다. 주요 작품이 40권이고 시, 산문, 다른 것들을 합치면 140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권 한권 제목만 봐도 평생 읽어야 할것같은 느낌입니다.

괴츠 폰 베를리힝겐 (Götz von Berlichingen), 1773 ​
젊은 베르터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1774 ​
클라비고 (Clavigo), 1774 ​
스텔라 (Stella), 1775 ​
이피게니에 아우프 타우리스 (산문판, Iphigenie auf Tauris), 1779 ​
빌헬름 마이스터의 연극적 사명 (Wilhelm Meisters theatralische Sendung), 1785 ​
에그몬트 (Egmont), 1788 ​
토르콰토 타소 (Torquato Tasso), 1790 ​
식물 변형론 (Metamorphose der Pflanzen), 1790 ​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Wilhelm Meisters Lehrjahre), 1795–96 ​
헤르만과 도로테아 (Hermann und Dorothea), 1797–98 ​
서동시집 (West-östlicher Divan), 1819 ​
이탈리아 기행 (Italienische Reise), 1816–17 ​
파우스트 1부 (Faust I), 1808 ​
친화력 (Die Wahlverwandtschaften), 1809 ​
색채론 (Zur Farbenlehre), 1810 ​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 1~4부), 1811–33 ​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Wilhelm Meisters Wanderjahre), 1821–29 ​
파우스트 2부 (Faust II), 1832 (유고) ​
괴테와의 대화 (Gespräche mit Goethe, 에커만 기록), 1836–48 (사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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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는 문장 100일 원문 필사 - 벤저민 프랭클린이 25년간 모으고 다듬고 쓴, 인생 잠언집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지음, 이혜진 옮김 / 여린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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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는 문장 100일 원문 필사
벤저민 프랭클린이 25년간 모으고 다듬고 쓴, 인생 잠언집
Benjamin Franklin, 이혜진 (옮긴이) 여린풀 2025-11

벤저민 프랭클린이 25년간 모은 문장 모음집입니다. 그런 문장을 따라 쓰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25년 인생을 손끝으로 더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1732년부터 1757년까지 25년간 매년 발간된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입니다.
찰리 멍거가 평생 존경한 인물이 프랭클린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책 제목을 ‘가난한 찰리의 연감’으로 지어 그를 기리고, 너무 존경한 나머지 자기 집 정원에 프랭클린 동상까지 세워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에 적어보는 분량이 좋습니다. 영어 문장 한두 줄, 그에 대응하는 한국어 번역 한두 줄, 아래에는 적절한 해설이 붙어 있어 하루 서너 개씩 써볼 수 있습니다. 필사를 하다 보면 한 페이지를 꽉 채우고 싶은 욕심에 종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이 쓰다 보면 이게 지금 나를 위한 시간인지, 숙제를 하는 건지 헷갈리게 됩니다. 이 책의 분량은 그런 부담을 자연스럽게 덜어줍니다. 해설문도 잘 되어 있어 본문을 옮겨 적고 나서 한두 대목은 더 따라 쓰고 싶어집니다.

번역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옮긴이 이혜진 선생이 서문에서 말하듯이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문장은 전혀 다르게 읽힌다‘가 전체 번역에 스며 있습니다. 영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단순히 말을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단어 하나, 어순 하나가 품고 있던 미묘한 온도 차이를 의식하며 고른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한 문장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문장들에도 분명 비슷한 내공이 숨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됩니다.

영어와 한글이 나란히 놓여 있는 구성도 필사하기에 좋습니다. 영어를 따라 적을 때와 한글을 따라 적을 때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회로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느낌입니다. 영어 원문을 옮겨 쓸 때는 소리와 리듬이 와 닿고 (무슨 뜻인지 모르니) 곧바로 이 외계어같은 단어는 이렇게 쓰이는구나 이해합니다. 다음 아래에 있는 한국어 번역을 적어 내려가면 웬지 영어가 스스로 해석되는 기분이 듭니다. 좌뇌와 우뇌를 번갈아 쓰는 것처럼 한쪽에서는 의미와 어휘를 분석하고, 다른 쪽에서는 운율과 이미지를 즐기게 됩니다.

There are no ugly Loves, nor handsome Prisons.
추한 사람도 없고, 멋진 감옥도 없다. (24p)
Experience keeps a dear school, yest Fools will learn in no other.
경험은 값비싼 학교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배운다. (52p)
Death takes no bribes. 죽음은 뇌물을 받지 않는다. (120p)
There is no little enemy. 하찮은 적은 없다. (152p)

필사의 장점이 있습니다. 눈으로만 읽으면 문장이 한 번에 스쳐 지나가 버리지만, 입으로 소리 내어 읽고 귀로 들으면 그 문장이 몸 안에서 한 번 더 공명합니다. 여기에 펜을 잡고 손으로 적어보면 글자를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읽는’ 상태가 됩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써 내려가면 그동안 놓치고 지나갔던 의미들이 떠오릅니다. 그때에 필사는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닙니다. 문장을 통해 온몸으로 느껴보는 독서가 됩니다.
거기에 오늘은 어떤 펜으로 써볼까하는 설레임이 있습니다. 만년필, 젤리펜, 혹은 연필 등 다양한 종류를 고를 수 있습니다. 펜을 고른 후에 한 줄 한 줄을 천천히 적으면서 되새기다 보면 책을 쓰는 기분까지 만끽합니다.

이 책은 평범한 잠언집이 아니라 100일 동안 매일 자신을 정돈하는 의식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페이지만 적어봐도 그날 하루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듯이 마무리가 됩니다. 나의 일기가 프랭클린이 알려주는 좋은 글로 덧씌여집니다. 필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해볼만한 프랭클린의 잠언과 영한문 혼용 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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