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빅터 프랭클 지음 / 닻 / 2026년 7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빅터 프랭클 / 닻 / 2026-07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는 누군가의 책입니다. 빅터 프랭클에 빙의된 걸까요. 너무 책을 사랑해서 저자인듯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황제내경, 황제소녀경, 황제음부경 모두 황제가 저술한 것이 아니죠.
제목만 보고 저자가 프랭클인줄 알고 도대체 저자 본인이 자신을 읽는 이유가 뭘까 정말 궁금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빅터 프랭클의 여러 저서를 읽고 느낀 감정과 현실은 와닿습니다. 독서하는 동안 계속 책의 구석구석이 떠오릅니다. 읽을수록 원본을 또 읽고 싶어집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멋진 표현입니다. 그런데 프랭클의 말이 아니라 심리학자 롤로 메이의 문장이라고 합니다.
SNS에 흐르는 위로의 문장들이 있습니다. 그런 문장들이 정말 삶을 견디게 도와줄까요. ‘유예된 환상‘이라고 합니다. 희망를 믿고 위로를 받기는 쉽습니다. 근거없는 낙관은 사람을 거듭 절망하게 합니다.
1부에서 극한의 시련과 마주했을 때 자아를 지키는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강제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 소유와 권리가 박탈되고 벌거벗겨진 존재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합니다.
강제수용소의 아침 프랭클을 일으켜 세운 것은 훗날 강연장에 서서 강연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힘이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상태에서 오직 믿을 것은 미래의 과업입니다. (희망이 아닙니다)
의미를 가진다고 고통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고통을 견딜만한 것으로 바꿔줍니다. 부인의 임종을 지켜본 후 괴로워하는 노의사에서 반대의 상황을 이야기하니 고통을 수긍하게 합니다. 참 멋진 전환입니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Live as if you were living already for the second time and as if you had acted the first time as wrongly as you are about to act now!
74p, 빅터 프랭클
인생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허무해집니다. 허무의 일상을 건너려면 과업과 일을 고민해야 합니다. 죽음의 길에서 살아있는 과업을 찾아야 합니다.
행복과 성공만을 목표로 하면 그것을 이루었을 때 오히려 흔들릴 수 있습니다. 성공은 무언가에 헌신하고 타인에게 자신을 바칠 때 따라오는 부산물입니다. 삶은 매순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우리는 책임 있는 행동으로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운명은 그리 순조롭지 않습니다. 특히 수용소에서는 더 끔찍합니다. 바꿀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나의 태도는 지킬 수 있습니다. 미래는 아직 비어있고, 과거의 경험들은 ‘시간의 창고에 안전하게 봉인되어‘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말 한마디, 문장 한구절을 읽으면 평범하지 않습니다. 죽음밖에 없는 수용소에서 탄생한 위대한 철학자라고 생각됩니다. 노력해도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세상을 볼 때 우리는 쉽게 절망에 빠지고 포기하게 됩니다.그러나 나치 수용소의 지옥에서 하루를 산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저는 단 하루도 견딜 수가 없을겁니다. 빅터 프랭클은 거의 3년간 4곳의 수용소들 돌아가며 살았습니다. 자유, 소유, 이름마처 빼앗긴 채로 무엇이 있었을까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감정적인 질문을 할 것이 아니라, 이 시련을 통해 인생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고통은 괴롭습니다. 거기에 어떤 태도와 의미를 둘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