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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순례
헤르만 헤세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6년 1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동방순례
헤르만 헤세, 육혜원 역 이화북스 2026.1.15. 원제 Die Morgenlandfahrt
얼핏 보기에 결맹이라는 비밀 조직의 여행입니다만, 전문적인 평가는 인간의 정신적 성숙과 믿음,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여행이라고 합니다. (얼핏 본 내용이 맞는 것같은데요)
이 책을 처음 읽으면 미친 소리처럼 느껴집니다. 글이 어렵고 알 수 없는 세계로 갑니다. 댜 읽고 나면 이거 헤세가 맞는걸까, 재미없으니 헤세가 맞는 것같아 투덜거립니다.
두번째 읽을 때가 진짜입니다. 결맹에 참여하고 쫓겨나고, 작은 실마리를 찾아 헤매이고, 결맹을 다시 가서 ‘세상의 기록‘을 확인합니다. 나름 기막힌 전개입니다.
세번째 읽을 때는 여유가 생깁니다. 이런 애매한 묘사가 복선으로 숨긴거네, 이 사람 천재구나 감탄하면서 읽게 됩니다.
1부 결사와의 만남과 여행의 시작
주인공은 비밀 결사단(결맹)에 가입하여 ‘동방‘으로 순례를 시작합니다. 결맹에는 역사적 인물, 문학 속 주인공, 예술가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들에게 동방은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영혼의 고향이고 빛의 근원입니다. 순례자들은 계속 움직입니다.
2부 모란테의 위기와 붕괴의 전조
순례단이 스위스 모란테(Morante) 협곡에 이르렀을 때, 하인 레오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레오는 하인이지만 동물과 대화하고 노래를 부르며 순례단의 분위기를 유지했습니다.
하인 하나가 사라져서 순례단이 와해됩니다.
3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나는 내 의지를 관철시키기로 결심했다.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고 매번 같은 심연 앞에서 멈추게 되더라도, 나는 백 번이라도 새로이 다시 시작할 것이다. 비록 그 모든 장면들을 하나의 의미 있는 전체로 다듬어 내지는 못하더라도, 장면의 작은 과편 하나하나라도 가능한 한 충실히 붙잡아두려 한다.
77p, 3부
이런 대목은 뭔가 일기장같으면서도, 비장함이 느껴지지요.
기억을 기록하려고 하지만, 과거의 찬란한 경험은 (아직 안써서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파편이 되어 글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에 사라진 하인 안드레아스 레오의 정보를 알게 됩니다.
4부 레오와의 재회와 심판
결국 레오를 찾아갑니다. (헤세의 소설에서 동료는 참 특이하게 등장합니다) 휘파람 소리를 듣고 과거를 기억합니다. 레오와 대화를 하게 되었지만 레오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간에 대화는 됩니다. 이런 분위기가 좋습니다.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모르고, 모르는데 대화는 합니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은 계속 괴로워합니다. 괴로움 끝에 집에 돌아와 스무 장이 넘는 편지를 씁니다.
(그거 쓸 시간에 3부에서 못한 기록을 남기라고...)
5 자아의 소멸과 결합
레오가 다시 찾아와 받은 편지를 결맹에 전한 일을 알려줍니다. 결맹에 참석하여 소명해야합니다. (아니. 신비결사에도 이런 번거로운 일이...)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갑니다. 재판이 열리고 하인 레오는 알고보니 최고 지도자였습니다. 여전히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이야기는 계속 전개됩니다.
끝도 없는 상징들로 이어진 이야기입니다. 다양한 현실의 인물과 소설의 주인공들이 모두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특정 종교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방‘이라는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순례라고 하니 육체적인 여행, 정신적인 여행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평범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방황도 있습니다. 꿈을 잃고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인간들은 항상 결맹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쫓겨났다고 느끼는 거죠.
이 책 동방순례(1932)에서 버전업하여 유리알유희(1943)가 나왔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이렇게 알 수 없는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듯한 기억입니다. 제 기억도 역시 과거와 상상이 혼재되어 전혀 다르게 인식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결맹이 무슨 공동체로 변화하고, 하인 레오가 명인 크네히트 아닌가요. 그래도 짧아서 재미있게 몇번을 다시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