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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전 시집 -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탄생 100주년 · 서거 70주년 기념 시집
박인환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1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박인환 전 시집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탄생100주년/서거70주년 기념시집
박인환 저, 스타북스 2026.01.05.
고리키의 달밤을 가만히 읽으니 이건 소설에 대한 서평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시로 감상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소낙비가 음향처럼 흘러간 다음
지금은 조용한
고리키의 달밤
오막살이를 뛰어나온
파펠들의 해머는
눈을 가로막은 안개를 부순다.
24p,
전혀 읽을 생각이 없던 막심 고리키의 소설을 챶게 됩니다. 참 멋집니다. 선생은 소설책을 원서로 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리키, 어머니는 1920년대 중반 김기진 선생이 번역했습니다. 옛날에도 책은 있었습니다.
그러한 잠시
그 들창에서 울던 숙녀는
오늘의 사람이 아니다.
49p, 침울한 바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 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58p, 목마와 숙녀
저는 ‘잠시 내가 알던 소녀‘라는 구절을 좋아합니다. 선생이 어딘가에서 스쳐 지나가던 인연이려니 생각했는데 뒤편 수필에 소녀의 사연이 나옵니다.
골목길을 지나 막 다음 골목으로 빠지려고 할 때 한 소녀가 울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물어볼 필요도 없었지만 술의 힘을 빌려 왜 우는가를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날 밤의 죽음 나는 술이 활짝 깼다. 집이라고는 말뿐 판잣집 속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그의 어머니도 역시 흐느껴 울고 있다.
200p, 크리스마스와 여자
이런 슬픈 사연이었나요. 아아. 그 소녀가 장성하여 남은 사연도 밝혀지면 좋겠습니다.
1장 사회 참여의 적극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시
시인의 시선으로 본 세계입니다. 말레이시아, 러시아, 인도네시아, 불란서, 투르키스탄, 중국... 경박하다는 비평이 우스워집니다. 비평갸들은 자신이 비난하면 그렇게 될거라 믿는걸까요.
2장 6.25를 겪은 가족과 사회를 보여주는 시
제가 좋아하는 시들은 2장에 다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쟁을 겪은 세대라 시 곳곳에 파괴된 모습과 사람들의 슬픔이 배어나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라는 상징을 통해 모두의 상실감을 표현하고,
명동의 선술집에서 탄생했다는 세월이 가면은 소리내어 읊어보면 덧없는 시간 속에서 치유받는 기분이 듭니다.
3장 미국 여행의 체험을 통한 외국에 대한 시
기자라서 그랬는지 미국 여행을 합니다. 정치인들은 관광지가서 돈만 쓰는데 시인은 아름다운 시가 나옵니다.
단조로운 글렌 밀러의 랩소디가 들린다.
많은 사람이 울어야 하는 아메리카의 하늘에 흰 구름
입 맞추는 신사와 창부
그 향기를 품에 안고 조용한 바다 위로 흐른다.
4장 6.25를 겪으면서 변모해 가는 모습의 시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시인이 변모해가는 과정을 보는 것같습니다. 종군 기자로 활동하며 목격한 죽음의 현장을 묘사합니다. 죽음과 허무, 불신이 현실에 있습니다. 전쟁전 모더니즘의 신사가 보는 사물과 달라지는 사물입니다.
5장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와 추가 발굴한 시
도시에서만 노래했을 것같은 시인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강원도 인제의 풍경이나 서정시들은 감수성이 넘쳐 흐릅니다.
6장 영화를 좋아한 시인의 영화 평론과 수필
몇편 안되지만 한편한편이 주옥같은 글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인물과 작품세계‘를 보니 ‘목마와 숙녀‘의 탄생 비화를 읽는 듯합니다. 그의 산문은 앞부분의 시적 언어들과 이어지는 연장선에 있습니다.
마지막 뒷부분 평론 3편이 좋습니다. 김수영이 박인환 선생에게 안좋은 말을 했었군요. 참 비겁합니다. 죽기 전에는 한마디도 못하고 후에 하면 무슨 소용있나요. 거기에 그저 비난하기 위한 말뿐입니다. 안타깝네요.
단순히 시집만 읽었을 적에는 멋진 이국의 신사였는데 (혹은 감상적인 허무주의자) 6.25를 겪으며 미국여행을 하면서 마지막 수필까지 읽으니 전쟁의 폐허 속에서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실존적 고뇌를 말하는 시대의 ‘증언자‘였습니다.
거기에 편집이 좋습니다. 그저 시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영화, 외국 문학에 대한 평론, 그리고 수필까지 수록하여 독자가 시인의 내면세계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구성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수필을 읽고 다시 「목마와 숙녀」를 감상하면 시어가 품고 있는 상징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미국 여행의 체험을 담은 시편들과 비평을 교차해 읽으면 센티멘탈 저니의 의미가 와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