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미치도록 걷다 - 방랑작가 박인식의 부처의 길 순례
박인식 지음 / 생각정거장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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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
방랑작가 박인식의 부처의 길 순례
박인식 (지은이) 생각정거장 2025-09

불교의 기원지 인도를 걷는 멋진 산책같은 여행기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름다운 낭만 여행의 길이 아니라, 인생의 길이고, 등산가, 작가, 방랑인, 술꾼의 길입니다. (술이 무섭습니다. 공업용 알콜이 섞인 가짜 술을 마시면 죽는답니다. 친한 척하며 나눠주는데 안마실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 일단 구성은 룸비니동산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서부터 백일간 1,500km를 도보로 순례합니다.

‘불효자는 웁니다’에서 떠나야하는 이유를 찾습니다. 타고난거죠. 역마살로 이미 40대에 실크로드도 두번이나 다녀옵니다.
‘박수를 치다’에서 죽기 직전의 비행기를 탑니다. 영화의 모험가입니다.
‘안개’에 룸비니를 찾아갑니다. 갑자기 전생의 인연인듯한 오스트리아 여인을 만납니다. 은근 여인들을 많이 만납니다. (일부러 찾는듯합니다)
‘집을 나서다’에서 카필라바스투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제부터 도보 여행입니다. 카필라성의 4대문의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불교답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는 거지요.

도보로 걸으니 들르는 마을마다 사람들을 만나고 (차량으로 이동하면 겪을 수 없는 부분이죠) 매번 안개 속에서 전생과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사랑을 만나고, 죽음을 만나고, 코뿔소, 코끼리도 만납니다. 왜 마을마다 사연을 들어주는 걸까요. 어쩔 수 없습니다. 걸어가니 인간의 속도인거죠. 마을마다 들르다가 받아주는 곳이 없으면 들판에 텐트를 치고 잡니다. (나이 60에 대단합니다)

아. 부처님은 케사리아에서 알라라칼라마를 첫 스승으로 만나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배웁니다. 다음 마을 바이샬리에서 웃타카 라마푸타라를 만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를 배웁니다. 바이샬리는 유마거사가 있던 곳입니다. 부처님도 말년에 바이샬리의 가뭄을 해결해주고 석달후 열반에 들어간다는 것을 선언하는 장소입니다. (근교의 차팔라 언덕) 후대에 제2결집이 있은 곳입니다. 따로 존재하던 불경들이 이렇게 장소와 결합되면서 삼차원으로 현현됩니다. 저는 걷지도 않는데 실감나게 표현하여 같이 걸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닌 경지에는 '나'라는 존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어서 아직은 분별심이
있다는 말이고 분별심이 있다는 것은 여태 번뇌에 물들었고 매달림이 있다는 말이니 이 경지로는 해탈에 이룰 수 없다.
149-150p, 부처님 말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부처님의 수행 이야기는 중아함경 권56, 204경 라마경(羅摩經)에 나오고,
데바닷타의 배신은 중일아함경에 나온다고 GPT가 이야기했지만 아닙니다. (괜히 한시간 헛짓을 했습니다) 십여개의 경전에 나오는데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에 특히 자세합니다.

도보길은 룸비니(부처 탄생지), 보드가야(깨달음의 땅), 사르나트(최초 설법을 한 곳), 쿠시나가르(열반처)를 잇는 불교 사대성지와, 바이샬리(유마힐대사의 집), 날란다(불교대학), 라즈기르(영취산 설법지)을 모두 둘러갑니다. 마지막에 부처의 길의 끝, 카필라바스투로 돌아가며 ‘모든 것은 변한다. 다만 끝없이 정진하라.’는 부처님 말씀으로 끝맺습니다.

백일간 천오백킬로미터를 걸으니 체중이 13kg이 빠졌답니다. 죽음을 곁에 두는 도보여행은 하나도 안부러운데 살빠진 이야기는 솔깃합니다. 그저 걸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계속 전생의 삶을 느껴보는 엄청난 여행기입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술마시고 여자만나는 이야기가 상당히 많은데, (죽음의 위험도...) 읽고 나면 뭔가 엄청난 세계를 대신 본듯이 머리가 맑아집니다. 책을 읽는 이 곳이 안전해서 그럴까요. 어쩌면 그냥 여자만나 히히덕거리며 노는 것이 아니라 모두 미처 끝맺지 않은 전생의 미련을 마무리짓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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