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늙어간다는 것 - 80대 독일 국민 작가의 무심한 듯 다정한 문장들
엘케 하이덴라이히 지음, 유영미 옮김 / 북라이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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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로 늙어간다는 것
80대 독일 국민 작가의 무심한 듯 다정한 문장들
엘케 하이덴라이히 (지은이), 유영미 (옮긴이) 북라이프 2025-05-27

소제목은 ‘무심한 듯 다정한 문장들‘이라고 하는데... 읽기에 상당히 무심하다는 인상을 더 강하게 받았습니다.

들어가며 ; 인생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지요. 망하거나 멋지거나...는 생각하기 나름인거다를 강하게 주장합니다. 재미있는 비교입니다.

위탁가정에서 부모님과 갈등하고, 담배로 폐 수술을 받습니다. 이혼을 반복하고 방송에서 퇴출당하는 망한 인생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책을 읽게 하고 피아노도 배웁니다. 대학에 가고 중병을 이겨냅니다. 자신보다 어린 배우자와 같이 살며 멋진 집, 좋은 친구들, 다정한 반려견이 있는 여든 살의 멋진 인생도 있습니다.
같은 사람, 같은 인생인데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입니다.

늙음에 관한 좋은 문장들을 많이 수집했습니다. 은근 자신의 서재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내 시력은 더 이상 쓸 만하지 못하고
청력도 서서히 약해져간다.
나는 곧 쓸모없는 사람이 되겠지.
쓰임을 다한 광산 말처럼.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지.
내 의지가 나를 들썩이게 한다.
27p, 크리스티네 라반트.
작은 의지만 남아있다면 들썩일 수가 있는 겁니다. 나이가 드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적응해야 합니다.

젊음이란 무엇일까 ;
‘오늘의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알고 있다‘(37p)는 말이 와닿으면서 안타깝습니다.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면 너무 쉬운 일을 왜 그렇게 고민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인생 반복해보면 정말 쉬울텐데요.

실수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
굳이 나이들어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가파른 산이냐, 넓은 강이냐, 빽빽한 숲이냐, 셋 중의 어느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실수는 누구나 합니다. 무엇을 ‘했더라면 어땠을까‘로 애태워봐야 되돌릴 수 없고,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방향을 바꾸어 멋지고 좋았던 것을 떠올리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찬란한 과거만 돌이키는 인간들도 있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늙어가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

흔들리는 사람은 톨스토이를 읽으면 됩니다.
정신을 귀중한 씨앗처럼 뒤편 땅에 던져라. 어디가 되었든 상관없다. 그리고 이제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는지 초조하게 돌아보지 말라.
52p, 톨스토이.
멋진 말이지만, 씨앗을 냅두면 썩어버리던데 농사를 안지어본걸까요. 뭐, 정신적인 씨앗이겠지요.
늙어감은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늙어가는 과정에서 불안을 느끼고 용기가 필요합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모두 다릅니다.
힌두교도는 하나의 단계, 새로운 실존으로 옮겨 가는 것이고,
유대인은 죽음은 죽음일 뿐 삶이 중요하다고 보고,
무슬림은 영원한 낙원에 들어가는 앞뜰이고,
기독교인은 영이 계속 산다고 믿고,
불교도는 생명이 끝나지 않고 윤회 속에서 영원히 환생한다고 봅니다.
56p, 엘케 하이덴라이히.

불과 1/3 정도밖에 안읽었는데 상당히 피곤합니다. 평상시에 죽음에 대해 그다지 깊이, 아니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생이 얼마 안남았는데 말이죠. 그것만 해도 좋은 책을 잡은 셈입니다. 죽음에 대해, 늙음에 대해 이렇게 무지했다니 놀랄 일입니다. 중간에 나오는 ‘영원히 살 것같은‘ 마음이었겠지요.

우리는 왜 삶이 끝난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할까 ;
노년에 생각해봐야할 소유, 사랑, 존재에 대해 설명합니다.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을 미화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늙는다는 것에 대해 가만히 바로봐야합니다.

‘늙어가기’라는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 ;
젊을 때는 뭐든지 할 수 있지만, 늙을 때도 할 일이 있습니다. 남은 30년을 장롱만 정리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무거운 신발‘을 벗어버리고 어깨에 올려놓은 짐을 내려놓고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감정이 깃든 심장은 늙지 않는다 ;
나이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시간이 적수랍니다. 이런 세밀한 표현은 기가 막히지 않나요. 시간의 신 크로노스는 자식들도 삼켜버리고 손에 날 선 낫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억과 사랑에 빠져있는 심장은 늙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추억에 빠져 영원을 사는 걸까요. 부럽습니다.

옷장은 점점 비워지고 있다 ;
제목은 옷장 정리이지만 친구들, 친척들, 남편들을 정리합니다. (남편들이 웃깁니다) 하지만 다락방의 50개의 바인더, 100권의 노트는 정리못합니다. 저도 사무실 정리할 때 20년전의 은행서류가 나와서 놀랬는데 노년에는 정리하는 것이 일이겠습니다.

나는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 ;
평범한 행복이 나올 줄 알았는데 괴테가 나옵니다. 폴트(친구), 스벤 쿤체, 조지 스타이너, 프로이트, 쥘리앵 그린, 베케트, 볼테르의 말로 행복을 정의(!)합니다. 행복은 어쩌면 주변에 있는 파랑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문학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한다

자유, 존중, 즐거움 등 우리가 전에 당연한 것으로 소유하고 누렸던 모든 것을 점차 빼앗긴다.
이렇게 빼앗기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박탈당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에 살지 말고 현재에 살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과거의 일들이 자꾸 생각나면서 종종 과거를 미화하고 낭만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를 자꾸 돌아본다고 해서 현재가 더 견딜 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깨어서 적극적으로 현재를 살 때 현재는 의미를 획득하고 더 살만해진다.
117p,

멋진 말입니다. 더 나아가 육체노동, 가난도 사람을 늙게 만들지만 아무 도전없는 삶 역시 늙게 만듭니다. 노년은 그저 같은 나이대의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는 자신의 몫입니다.

늙어가는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삶을 잘게 쪼개서 살아가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충고는 옳습니다. 노년이 아니더라도 빛나는 시기에도 통용되는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너무 멋진 말들이 나옵니다. (어떻게 이런 말들을 인용하는지 궁금했는데 출판평론가의 일도 합니다)

사람은 매일 늙는 건 아니다. 늙는다는 느낌 없이 10년, 20년이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고 나서 두 시간 만에 20년이 한꺼번에 덮쳐온다. (110p)
그는 매일 똑같은 책을 읽어. 하지만 똑같은 책이라는 걸 몰라. 읽을 때마다 책이 좋다고 행복해해. (124p)
네가 만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적은 언제나 너 자신일 것이다. (172p)
노인의 세계는 기억의 세계다 (189p)
노년에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만족감이 찾아온다. 이제 아무것도 해야 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203p)

어쩌면 계속 수많은 책들의 문장들을 인용하면서 나는 아직 멀쩡해 하고 외치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그 문장들은 다락방의 바인더 속에 숨어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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