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 가는 것들
김나영 지음 / 사유와공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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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잃어 가는 것들
김나영 (지은이) 사유와공감 2024-12-18

Prologue
소설을 많이 읽고 넉넉한 위로를 받은 저자가 다시 소설 마법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작은 이야기를 담아‘ 전해준 6가지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모른다
어려운 가정의 현우는 유치원다니는 어린 정우를 챙기고 할머니는 공공근로로 힘든 인생을 푸념합니다. 반면 성찬이는 여유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지만, 부모의 갈등으로 인해 정서적 어려움이 있습니다. 학원비용만 내주고 공부하라고 윽박지르는 가정입니다. 다들 그런거죠. 둘은 집을 싫어하는 친구입니다.

현우와 성찬은 결국 경찰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경찰이 발견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집은 그런 곳이니까. 하지만 돌아가서도 변하는 것은 없다. 마스크 속에 감춰 보이지 않는 입처럼 아이들이 하고 싶었던 말들은 끝내 아무도 모를 것이다.
44p, 아무도 모른다. 김나영
인간의 삶이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스럽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하는지 고민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위안을 찾습니다.

잃어 가는 것들
은찬이가 먼저 욕을 하고 화가난 현석이가 싸움을 걸어 때립니다. 반에서 외톨이인 예지를 선생님이 챙겨주는데 감사인사를 받습니다. 결국 학폭이 열리지만 담임들에게 난리를 치던 학부모는 조용히 조사를 받습니다. 사료주는 것을 잊은 담임은 고양이가 죽은 것을 발견합니다. 김선생은 다육식물에 물을 주는 것으로 도피합니다.

마음이 아팠다. 화수분처럼 끝없이 마음을 내어주던 김선생이 고갈되어 가는 것 같았다. 김 선생마저 저렇게 말라버리면 결국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게 될 테니까. 나는 말없이 물조리개에 물을 담았다. 교무실 이곳저곳에 놓여있던 김 선생의 다육식물에 물을 주었다. 그리고 방학 동안 얼어 죽지 않게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옮겨 놓았다. 그녀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을 잊고 있는 사이,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길 바라면서.
79p, 잃어 가는 것들, 김나영
학교다닐 적에 사소한 다툼은 흔히 있는 일이죠. 그게 싸움이 되고 폭력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사건은 커져만 갑니다. 폭력, 상처는 결국 책임의 문제입니다. 길고양이를 챙기고 반의 외톨이를 돌보고 식물을 기르는 등의 사소해보이지만 일상의 작은 책임의 문제입니다. 책임을 외면하면 길고양이는 굶어죽습니다.

Nineteen’s Kitsch
수빈이 학원을 빼먹습니다. 경찰의 상담사로 일하는 엄마는 사라진 아이를 찾으며 비일상의 세상을 잠시 맛봅니다. 전문가이니 아이를 잘 키울 것같다는 남편의 말도 떠오르고, 집중력이 좋아진다는 보약을 보낸 엄마의 전화도 건성으로 받습니다. 놀이터에서 학원 땡땡이 치고 드리볼연습하는 아이들도 만납니다.
결국 찾아낸 아이는 친구와 웹툰공모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화를 내고 소리 소리 질렀어야 하는데 엄마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춤 연습을 하던 것을 떠올리며 점잖게 마무리 짓습니다. 10대 시절에는 한번 꽂히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야 하는거죠. 그리운 장면들이 떠오르는 소설입니다.

나는 자연을 조성할 뿐 나머지는 이 자연의 몫이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라기도 하는 것, 그래서 더욱 아들다운 것 같아요. 만약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영원히 존재하기만 한다면 의미가 업잖아요. 잘 그린 풍경화 한 장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97p, Nineteen’s Kitsch, 김나영

소행성의 기원
인간관계에서 친구를 무시하는 사소한 행동이 지구로 다가오는 소행성과 연결이 됩니다. 당장 오늘 죽을 지도 모르지만 현실의 부대끼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불을 찾아서
사람을 구조하는 소방관 역시 하루를 살아갑니다. 나름의 직장인입니다. 선덕여왕의 지귀 설화가 묘하게 연결이 됩니다. 무심코 사용했던 불에 대해 다시 소중함과 위험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거기에 불과 함께 열정, 의욕, 생존의 현실이 펼쳐집니다.

쿠키영상
24시간 출장 수리공과 쳇바퀴도는 여자의사와의 이야기입니다. 과연 두 부류가 만날 수 있는 것이냐는 의문은 들지만 느닷없는 여행을 각자 떠납니다. 그러는 와중에 자식에게 욕을 하지만 밥차려줄 자식이 필요한 엄마... 너무 이상과 현실이 교차합니다. 시골장터의 강아지는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아무리 힘겨워도 해결책이 나와야죠.

전 때로 좀비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지금 이 카페 밖에는 좀비들이 창궐하는 거예요. 오직 물어뜯으려는 본능만 남은 채, 굶주림에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한 그들이 쫓아오는 거죠. 그럼 우리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겠죠.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와중에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냥 살고자 하는 욕구, 그것 하나인 거죠. 그리고 우리가 필사적으로 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이미 죽은 자들에 대한 의리이자 예의가 아닐까요?
191-192p, 쿠키영상, 김나영
엔딩 크레딧과 쿠키영상도 절묘합니다. 다들 이야기가 끝난 것처럼 느끼지만, 마지막 쿠키영상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미래를 발견합니다. 삶이 끝났다고 느낄 때에도 항상 새로운 시작이 가능합니다.

6편의 단편 소설인데, 내용이 상당히 압축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다양한 등장 인물들의 진지하고 집중된 언어와 행동에 나는 대충 하루를 사는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잃어 버리는 것들도 있는가 하면 미래를 보면서 새롭게 가져가는 것도 있는거죠. 지금 이순간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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