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 - 구십의 세월이 전하는 인생 수업
김욱 지음 / 서교책방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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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
구십의 세월이 전하는 인생 수업
김욱 (지은이) 서교책방 2024-11-05

김욱 선생의 인생은 뭔가 굉장합니다. 보통 퇴직을 하면 안정적인 연금생활을 할건데 하필이면 제주도 백화점에 투자하여 나이 70에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다시 시작하기 어려운 나이인데 길을 찾습니다. 갈 곳도 없어 다른 집안 문중의 묘막으로 들어가 책을 번역하기 시작합니다. (방안에 TV도 있었다고 하니 그렇게 답답하기만 한 곳은 아닙니다) 근 20여년간 200권의 책을 번역하였습니다. 자신의 저서도 십여권이 나왔습니다.
겉으로만 봐도 존경할만한 부분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구십의 세월이 전하는 인생 수업이니 얼마나 깊이 있는 가르침이 들어있을까요.

그런데 책을 읽고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날로 비루해지는 육신에서 후회와 절망이 싹트는 경험은 늙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인생 최대의 공포다 (5p)
생의 말년이 다가오니 이 아픔이 나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다 (16p)
잠자리에서 그를 떠올릴 때마다 누구의 삶이 더 행복인지를 자신할 수 없게 된 데에서 또 다른 두려움을 느낀다. (36p)
알츠하이머, 파킨슨, 노인성치매, 아들의 얼굴을 잊어먹고 아내에게 존댓말을 하며 누구시냐고 묻는 내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찰나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날이 정말로 찾아오기 전에 한 자라도 더 쓰고 싶다. (79p)
당장 내일 아침이 되었을 때 내가 살아있으리라는 확답은 어디에도 없다. (94p)
나는 슬픔이 벅차올라 엉엉 울어버렸다. 우리의 대화를 엿듣던 병실의 다른 사람들도 소리 내어 눈물을 터뜨렸다. (226p)
아아. 한줄, 한문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지난 세월의 무게감과 현실의 답답함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예술가로서 더없이 행복한 비극을 자진해서 헤쳐나간 인물이라면, 마쓰모토 세이초는 우리처럼 거부할 수 없는 타성의 운명에 맞서다가 온몸을 얻어맞고 쓰러진 채 기어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03p
신문사의 급사로 취업하여 20년간 차별당하며 살아온 마쓰모토의 노력, 나이 환갑에 15소년 표류기를 저술한 쥘베른의 호기심. (어떻게 이런 내용을 찾아내는지 대단합니다) 업적을 만들어내는 이면의 동기를 찾아줍니다. 어떤 인물의 내면을 밝혀내는 재주가 있습니다. 김욱 선생의 세상읗 보는 ‘인물지‘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사실 다른 책에서 선우휘선생의 이야기도 즐거웠습니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읽고나면 그렇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잔잔한 이야기 속에서 번쩍 하고 가르침을 줍니다. 쇼펜하우어 평론을 쓰고 출판사를 만나보는데 대부분 3가지 이유로 거절됩니다. 실력(내용)이 부족하다, 전공자가 아니다, 독자가 없을 것같다. 한가지만 해도 이겨내기 힘들 것같은 이유이지만 거기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1년6개월간 쓴 원고 18만자를 다시 편집합니다. 학술서의 느낌, 전공자의 솜씨를 배제하고 대중 독자들을 상대하기에 적합한 문장과 개성으로 재구성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70의 열정과 끈기가 눈부십니다.

농담도 수준이 있습니다. 곰돌이 친구나 블루베리 청년의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앗. 재미나 농담이 아닙니다. 뭔가 지구적인 차원의 농담입니다.

보통의 인생이라면 20대 후반이나 늦어도 40대의 젊은 시절이 화려한 인생의 한장면일텐데 김욱선생님은 지금 이순간, 아침에 깨어나서 원고지 십여매를 적어가는 오늘 하루가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입니다. 감사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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