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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진민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9월
평점 :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진민 (지은이) 동양북스 2024-09-10
재미있을 것같은 제목입니다. 단어의 탄생부터 신화, 어원, 쓰임새... 모든 것을 아우를 것같은 제목입니다. 내용은 약간 부족한듯 16개의 단어와 해설이 들어있습니다. 제목의 강렬한 느낌에 비해 내용이 조금 적다 싶지만 한편한편 단독으로 되어 있어 16개의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Feierabend. 축제가 있는 매일 저녁으로 해설합니다. 파이어아벤트, 축제, 파티의 파이어와 저녁이라는 아벤트가 합쳐진 단어랍니다. 일끝났다, 이제부터 축제다하는 느낌일까요. ‘생업에 종사한 사람들이 평일 근무의 끝자락에 외치는 단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종료인사가 아니고, 학생들끼리도 쓰지 않는답니다.
Servus. 매일 건네는 인사말입니다. 제어부스라고 들린다고 합니다. 우리말 안녕 처럼 만나고 헤어질 때 사용합니다. 어원이 노예(slave), 종(servant)에서 나왔습니다. 신기합니다. 저자는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제가 당신을 섬기고 살필께요‘라고 해석하는데 참 낭만적인 상상입니다.
Gefallen. 당신의 내 마음에 들어오는 방식으로 해설합니다. ‘마음에 든다‘라는 게팔렌입니다. gefallen은 좋아, 마음에 들어, 괜찮은 것같아의 느낌이고, 좋아한다는 뫼겐(mogen, 알파벳o위에 점이 두개붙어있습니다)이랍니다. 그다음은 리벤(lieben, 사랑하다)입니다.
내가 너를 다섯 시 반에 만나고 싶은데 다섯 시가 뭐였더라? 그러니까 열두 시에다가 다섯 시간 반을 더하면... 우리는 과연 만날 수 있을까.
불편하지만 신기했다. 이곳의 세상은 다른 틀 위에 놓여 있다는 신선함. 세상은 단순하게 한 가지 방식으로만 파악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독일어 숫자 시스템에서 느낀다.
51p
숫자, 날짜의 순서가 나라마다 다르군요. 영어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헷갈릴 것같습니다. 저자는 이 부분을 멋지게 이해합니다. 독일에서는 나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배치한다. 그래서 숫자를 가까운 것부터 셈한다고 합니다.
arbeit는 일보다는 노동이 가까운 개념이고, 독일에서는 노동, 일, 작업, 과제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읿본에서 여기에 임시 부업, 시간제 근무, 단기 근무 등에 이름을 붙이고 우리도 이 개념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하나의 단어가 이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면서 의미가 변화하는 겁니다. 어원 orbh-는 ‘아비가 없는‘이라는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fast는 영어의 빠르다인데 독어에서는 ‘거의‘라는 뜻입니다.
chef는 요리사인데 독어에서는 ‘보스, 상사‘랍니다.
gift는 선물인데 독어에서는 ‘毒독‘입니다. (선물은 게셍크입니다)
이런 단어는 참 괴롭겠습니다. 똑같은 단어인데 왜 나라마다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을까요. 괴테의 시대까지만 해도 기프트에 선물의 의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기프트, 선물, 재능의 다른 면에 독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설합니다. 에엥? 그게 무슨 말일까 고민할 때 ‘김소연 시인의 한글자사전에 옥이라는 단어가 보석의 뜻도 되고, 감옥도 된다는 중의적 의미‘를 덧붙이니 이해가 됩니다.
kindergarten. 유치원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이들을 위한 정원‘이라고 해설합니다. 멋집니다. 그러나 상상으로 꾸민 것이 아니라 실제 독일의 유치원이 친구들과 뛰어놀 수 있는 뜰이고, 흙, 물, 풀이 어우러진 곳에서 온몸으로 구르고 만져보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아 선진국이네요) 게다가 1840년 세계 최초의 유치원을 만든 나라입니다.
그밖에도
Rauswurf: 내던져진 존재들
innere Schweinehund: 내면의 돼지개들
melden: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aufwecken: 꿈과 현실 사이
Stolperstein: 걸려 넘어진다는 것
Weltschmerz: 이 통증의 약은 무엇일까?
Sicherheit: 독일을 독일답게 하는 단어
Habseligkeiten: 축복으로 여겨지는 만큼의 소유란?
가 있습니다. 단어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여행입니다. (나의 내면도 모르지만, 외부의 내면은 보기 싶지 않을까요)
16개 단어이지만, 한 단어마다 그 나라의 감각과 인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뒷표지의 안희연 시인의 추천사가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평면에 불과했던 단어들이 입체가 되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황홀한 폭죽놀이를 본 듯 마음이 크고 넓고 다채로워졌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였다. 익숙한 것은 새로워지고 새로운 것은 놀라워졌다. 그 어떤 백과사전보다 흥미롭고, 그 어떤 인문학 서적보다 나를 배우게 한 책이 여기 있다.
안희연, ‘당근밭 걷기‘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