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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지나가게 하라 -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의 지혜
박영규 지음 / 청림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노자는 도교의 경전이죠. 예전부터 한번 읽어보려고 해도 시작부터 도가도비상도로 나와버리고, 중간에 무슨 현빈, 곡신같은 어려운 소리가 나와서 항상 읽자가 멈추게 됩니다. 그렇게 몇번을 읽으려다가 포기했는데 인생에 한번은 노자를 만나라는 부제로 책이 나왔으니 솔깃한 내용입니다. 드디어 노자를 읽어보게 되는구나 했습니다.
구성이 특이합니다. 저자 박영규 선생의 에세이 사이사이에 노자의 가르침이 녹아있습니다. 대략 56편의 글에 노자 56쪽이 들어있습니다. 거기에 다른 좋은 책들도 양념처럼 들어있습니다. 사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은퇴후에 식물원을 다니면서 걷기를 하고, 현역 시절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반성도 나오고, 집안을 정리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해외여행을 갈 때 캐리어는 하나만 가지고 가자는 다짐도 합니다. 그저 세상사는 이야기인데 내용들이 휘리릭 읽고 넘기기에 깊이가 있습니다.
어딘가 시골 툇마루에 앉아계신 선생님이 이번에 책에서 좋은 글을 봤는데 말이야... 하면서 조근조근 이야기해주는 것같습니다. 직접 들으면 뷰담스럽겠지만 책으로 읽으니 부담이 없습니다.
˝무릇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를 모욕한 후에야 타인이 그를 모욕하며,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를 훼손한 후에야 타인이 그 집안을 무너뜨리고,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를 망친 후에야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침공한다.˝
원하는 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지도 않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새 식물원 한바퀴를 다 도는 것처럼 내 삶의 후반기도 그런 기분으로 가볍게 살아갈 것이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뚜벅뚜벅 걷다 보면 마침내 고운 석양빛이 머리 위에서 빛나는 날이 올 것이다.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짙은 어둠에 짓눌려도 좌절하지 않고 그 어둠조차 당당하게 즐길 것이다. 식물원을 걸으면서 ˝걱정하지 마. 내일은 내일의 해가 또 솟을 거야˝라는 따뜻한 말로 힘든 시간을 묵묵히 견뎌나갈 것이다. 어두운 밤, 곁을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해도 혼자 나의 등불을 들고 그 어둠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22p
좋은 문단을 적어봤는데, 적고 보니 맹자였습니다. 저런...
일단 노자 인용문구에 정성이 있습니다. 인용한 내용이 짧아서 좋습니다. 원래 노자 문장이 짧은 것같지만 말하는 내용을 듣다 보면 딱 적절한 인용운구가 나옵니다. 그것을 번역, 한자, 독음 순서로 되어 있어 한번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무성의하게 한자만 나열해서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죠. 심지어는 각주에 한자 원문을 달어놓기도 하죠) 그 점에서 독자들에게 섬세한 배려를 해줍니다.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다시 볼 때 노자 인용구만 읽어보면 의외로 노자의 내용이 머리 속에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인용구에 걸맞는 에세이가 같이 펼쳐집니다. 무조건 경전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렇게 읽어봐야 읽기가 어렵습니다) 저자의 친절한 가이드를 따라 노자의 여러 면모를 살짝 엿보는 것이 인생에 한번 읽어볼만한 고전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