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 왕, 그리고 리더십 - 개인과 조직을 이끄는 균형의 힘
김윤태 지음 / 성안당 / 2023년 3월
평점 :
재미있게 다시 읽어보는 조선왕조실록입니다. 9명 임금의 리더십이라길래 도대체 선조는 어떤 리더십이 있는걸까 궁금했습니다. 제일 궁금한 사람입니다. 연도 순서대로 임금들의 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어떤 리더십이 있는지 알려줍니다.
태조는 나라를 세웠으니 그것으로 리더십이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평가하기를 ˝장자를 버리고 어린 아이를 세자로 삼았으니, 사랑에 빠져 의리에 밝지 못한 허물˝이라고 반성합니다. 게다가 아들과 반목하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리더답지 않은 모습이 나옵니다.
태종은 리더십이 있는 임금이 맞습니다.
태종이 즉위할 때 아버지 이성계는 ˝강명한 임금이니 권세가 반드시 아래로 옮겨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신하들이 권력을 갖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
책임감이 떨어지는 리더는 자신이 욕먹는 일에 앞장서지 않는다. 누군가 해야 하지만 그냥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그에게는 성과라는 결과물도 없다. 목표가 분명한 리더는 자신이 욕먹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과라는 보상이 더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과정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이 있으나, 당시 태종은 그런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자신만의 리더십을 보여 주었다.
75p.
리더십을 보이기 위해 참 많이도 죽입니다.
세종대왕 즉위 초기 4년간에 아버지 상왕에게 물어보겠다는 표현이 40여 차례나 있다고 합니다. 성군도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이런 고충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종의 수많은 치적들과 함께 ˝소통과 위임˝의 리더십을 말합니다.
소통과 위임의 리더십을 말하고 싶다. 세종 국정 운영의 시작은 회의로부터 시작했다. “먼저 그대들의 의견부터 듣겠다.”라며 신하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한 토론을 통해 정책을 결정했다. ‘소수 의견의 대명사‘라 불리는 허조는 모두가 찬성하는 가운데서도 반대하기로 유명했다. ˝허조가 홀로 반대했다.˝라는 기록이 실록에 많이 나타난다. 참을성이 부족한 군주였다면 매번 딴지를 거는 허조를 좌천시켰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종은 그의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중용했다.
그리고 정책이 정해지면 그 일을 맡은 신하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고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정책이 정해지기까지는 신중하지만, 실행 단계에서는 주저 없이 믿고 맡기는 소통 위임형 리더로서의 세종이었다.
118-119p.
성종은 월 25일 이상 경연을 열어 공부를 했습니다. 오전수업, 주간수업, 저녁수업에 이어 야대(야간학습인가)를 할 것이냐고 물으니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공부를 좋아하는건가요.
장인인 한명회를 내쫓는 것이 시작입니다. 경국대전을 완성하고, 삼강행실도, 국조오례의,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금양잡록, 악학궤범... 전부 성종 시기에 만들어집니다.
성종은 견제와 균형의 리더십을 통해 국정을 이끈 현명한 군주였다. 세조 때부터 권력을 쥔 훈구 대신들의 월권을 젊은 사람들을 등용해 견제하고, 대들의 지나침을 대신들로 하여금 저지할 수 있도록 노련한 처신으로 균형을 유지했다. 그리하여 왕과 대신, 삼사의 삼권분립이 자리 잡아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또한 성종은 신하들의 직언이 비록 지나쳐도 이를 수용했던 관대한 리더였다.
192p.
선조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침략을 7년간 당하면서 중국으로 도망갈 생각을 한 인간이 무슨 리더십이 있겠냐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순신의 전쟁 직전 파격적인 등용과 허준에게 참고서적 500권을 주면서 의서를 편찬하라고 한 공이 있습니다.
[선조가 허준에게 지시한 편찬 지침]
1. 병에 걸리지 않도록 수양이 우선이다. 약물 치료는 차선으로 하라.
2. 중국과 조선의 의서를 통틀어 핵심 처방만을 선별하라.
3. 국산약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향약을 장려하라.
208p.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임진왜란은 왜 그렇게 대처했을까요. 거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임진년을 기점으로 선조가 뒤바뀐게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음모론일까요)
기축옥사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정철은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며 주변을 벌벌 떨게 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옥사 직후 선조의 태도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선조는 정철을 향해 ˝호랑이와 독수리의 절개를 가졌다.˝고 칭송했지만, 옥사 직후 정철 때문에 무고한 인재들이 죽었다며 ‘독하고 간사한 정철이라고 비난했다
223p.
마음껏 죽이라고 시켜놓고 너무 죽이니 마음이 변했습니다.
광해군은 참 안타깝습니다. 태자 시절에 그렇게 뛰어난 인물이 즉위하고 변합니다. 인조반정에 따르는 사람이 내시 몇명 뿐입니다. 쫓겨난 임금이 어떤 리더십이 있을까요.
“고상한 말과 큰 소리만으로 하늘을 덮을 듯한 흉악한 적의 칼날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적들이 말을 타고 들어와 마구 짓밟는 날에 이들을 담론으로써 막아낼 수 있겠는가. 붓으로 무찌를 수 있겠는가.”
- 『광해군일기』 166권, 광해 13년 6월 1일
광해군의 의중은 명분이 아니라 조선을 위한 실리였다. 우방인 명나라는 달래고 후금은 자극하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전략으로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으려 한 약소국 군주의 노력이었다.
256p.
조선 임금 중 제일 가는 균형감각이 있습니다.
저자 김윤태 선생은 서문에서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는 조선이 518년이나 유지된 것에 착안합니다. (그러고 보니 말도 안되는 세월입니다. 수많은 전쟁을 버티고 견뎌내는 조선입니다) 그 세월에서 배울민한 리더십들을 찾아냅니다. 3년의 수고와 노력끝에 이렇게 책이 나오고 즐겁게 읽을 수 있어 헹복한 독서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