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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평점 :
인조仁祖 1636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은이) 북루덴스 2023-03-10
조선왕이 몇명이었던가요. 27명인가요. 그중 제일 한심한 임금이 선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같습니다. 인조가 일등입니다. 아니. 꼴등입니다.
인조 29세에 재위하여 26년 2개월
선조 16세에 재위하여 40년 7개월
고종 11세에 재위하여 43년 9개월. (고종은 재위하고 첫마디가 인조의 후손임을 외쳤다고 합니다)
세 명 모두 만만치 않습니다. 무능할수록 오래 머물렀나요.
인조는 1623년 3월에 임금이 됩니다. 호란이 일어나기 13년전입니다. 도대체 13년간 뭘 한걸까요.
"1부 병자호란 전 인조" 편은 한마디로 혼군이 맞습니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납니다. 혁명을 같이한 공신을 2등공신으로 책정하고 병력을 줘서 변방으로 보냅니다. 무슨 짓인가요. 오직 명나라바라기를 하며 후금이 오니 강화도로 도망갑니다. (정묘호란) 그 와중에 13살 세자를 앞세웁니다. 이런 비겁한 인간이라니.
중국에서는 역사를 기록하는 3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로서, 중국의 수치스런 내용은 철저하게 감춘다는 말이다. 둘째, '긍초이누이적(矜鞘而陋夷狄)'인데, 중국을 높이고 상대국을 깎아내려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상내약외(詳內略外)'로 중국의 역사는 상세히 적고 상대국의 역사는 간략하게 적어야 한다는 말이다.
…
원숭환은 위기에 빠진 북경성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그가 고의로 길을 내주어 오랑캐들이 북경성 턱밑까지 쳐들어왔다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가 북경 일대에 나돌기 시작했다. 이것은 위충현 밑에서 권세를 누리던 엄당 일파의 소행이었다.
123p
조선이나 명나라나 하는 모습이 비슷합니다. 명은 망했지만 조선은 근근히 이어간 걸 보면 조금 더 낫다고 해야할까요.
명나라는 망하고 청나라 사신이 왔는데, 신하의 상소내용이 가관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그가 보낸 사신을 죽이고 그 국서를 취하여 사신의 머리를 함에 담아 명나라 조정에 주문한 다음 형제의 약속을 배신한 것과 참담하게 천자의 호를 일컫는 것을 책하면서 예의의 중대함을 분명히 말한다면, 우리의 형세가 더욱 확장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133p.
어느 시대나 이런 고집부리는 인간들이 있나봅니다.
2부 병자호란 중 인조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쌍령전투와 겨우 이긴 김화전투가 돋보입니다. 이렇게 병자호란 중의 전투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놓으니 답답한 상황은 이해는 되지만 더욱 애가 탑니다.
1636년 11월에 시작한 전쟁이 불과 2개월만에 삼전도의 굴욕으로 패전입니다.
패전후의 청으로 끌려간 김상헌과 최명길의 편지가 망국 신하의 아까움이 나옵니다.
成敗關天運 須看義與歸
雖然反夙暮 豈可倒裳衣
權或賢猶誤 經應衆莫違
寄語明理士 造次愼衡機
성공과 실패는 천운에 달렸으니
모름지기 의로 돌아감을 보여줌일세
비록 아침과 저녁이 바뀐다 해도
저고리와 치마를 거꾸로야 입을손가
권도는 혹 어진 이도 그르칠 수 있으나
경은 모두가 어길 수 없는 것이니
이치에 밝은 선비에게 말하노니
급한 때라도 저울질을 신중히 하시게나
최명길 역시 답시를 준다.
https://m.blog.naver.com/gunchoi1/222768313935
靜處觀群動 眞成爛漫歸
湯氷俱是水 裘葛莫非衣
事或隨時別 心寧與道違
君能悟斯理 語默各天機
고요한 곳에서 뭇 움직임을 볼 수 있어야
진실로 원만한 귀결을 지을 수 있는 것
끓는 물도 얼음물도 다 같은 물이요
가죽옷도 갈포 옷도 옷 아닌 것 없느니
어쩌다가 일이 때에 따라 다를지라도
속마음이야 어찌 정도와 어긋나겠는가
그대가 이 이치를 깨닫는다면
말함도 침묵함도 각기 천기라오
최명길이 이곳에 잡혀온 연유를 짐작하고 있던 김상헌은 그의 시까지 보고 나서 그가 주장하던 주화론이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연다.
236p.
3부는 병자호란이 끝나고도 무능한 인조의 이야기입니다.
심기원은 병자년 변란 때 팔로의 병사를 거느리고서 산골짜기에서 미적거리며 물러나 움츠린 채 관망만 하고 있었다. 이에 남한산성을 지척에 두고서도 끝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고, 또한 위급한 상황을 구제하지도 않았다. 나라에 기율이 있다면, 기원이 어찌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삼남을 순검하는 것이 어떤 임무인데 묘당의 천거가 기원에게 돌아간단 말인가!(『인조실록』 16년<1638> 4월 5일)
253p.
아. 나라에 기율이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리거나 늙어서 임금이 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한심한걸까요.
256-259의 임경업장군의 명나라 장군明將 이야기는 놀랬습니다. 가끔 무당의 굿하는 자리에 가면 최영장군, 남이장군, 임경업장군 순서로 나오는데 그게 인물로 되는게 아닌가봅니다.
저자 유근표 선생은 병자호란에 관계된 책을 내기 위해 20년간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이렇게 세부적인 상황까지 알 수가 없었을 것같습니다.
명나라 원숭환이나 청나라 오삼계의 이야기까지 잘 정리되어 김용의 벽혈검과 녹정기가 떠올라 현실과 소설이 교차되는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 시기가 우리의 혼군 인조 시절이었습니다.
인조의 묘호는 본래 열종(烈宗)이라고 정한 것을 아들인 효종이 병자호란을 극복(? 지나간)한 것을 인정해 달라고 하여 인조라고 고쳤다고 합니다.
#역사
#인조仁祖 1636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