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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없이 농촌 출근 - 워라밸 귀농귀촌 4.0
김규남 지음 / 라온북 / 2023년 3월
평점 :
그저 평범한 귀농일기이겠거니 했습니다. 거기에 '은퇴없이'가 붙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가로 농촌을 즐기는 실용서적일까 생각했습니다.
아. 본격 귀농귀촌 전입 실감 에세이!입니다. 저자 김규남 선생은 앞의 소개글에 농부, 시인, 응용식물과학박사로 나와있습니다. 시인에 박사라서 글이 다릅니다. 일기라기에 보다 섬세하고, 실용이라기에 살짝 문학적입니다. 너무 재미있어 순식간에 다 읽습니다.
배낭을 메고 방문객이 산길을 어렵게 오르다 무언가 찾는 듯 두리번거린다. 이어서 무심히 나타나는 자연인을 보고 방문객은 깜짝 놀라고 자연인은 도통한 듯이 느긋하다. 그렇게 통성명하고 두 사람은 금방 친한 사이가 된다. 방문객은 모르는 척 질문하고 자연인은 잘 못 들은 척 건성으로 대답한다.
단돈 몇십만 원만 들고 들어와 혼자서 지었다는 집 자랑, 그동안 일궈낸 기적 같은 성과에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는 방문객. 이때 고양이나 개가 나타나 이름을 물어보며 관심을 보이자 자연인은 밥값이나 하라며 일을 시킨다. 점심때가 되면 주변에서 채취한 푸성귀와 냇가에서 잡은 물고기로 대충 매운탕을 끓여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듯이 밥을 나눠 먹고, 얼기설기 엮은 전망 좋은 쉼터에서 차 한잔을 나눈다. 그리고 산에 훌훌 올라 온갖 약초와 삼을 캐더니 바지에 쓱쓱 닦아 한입 베어 물고, 가끔 나눠주면 처음 보는듯이 신기해한다.
저녁이면 토굴에서 묵은지와 담금주를 꺼내 돼지고기 안주에 한잔하고 별을 보며 도란도란 산속의 밤이 깊어간다. 아침이 되면 어김없는 이별, 하룻밤 만에 두 사람은 형님 동생이 되고 이별이 아쉬워 자연인이 내미는 담금주에 윗옷을 벗어주며 아쉬운 작별을 한다.
인기 장수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귀농귀촌의 모습은 이렇듯 천편일률적이다.
79-80p. 2장. 귀농귀촌, 이 마음만큼은 가져가자
수백편의 시청한 프로그램이 그대로 떠오르지 않나요. 묘사도 절묘하고 무엇보다 영상이 그대로 머리속에 떠오릅니다. 왜 주인은 자연스럽게 행복하고, 방문객은 부러워만 하는걸까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이렇게 글로 읽으니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최고의 대목입니다.
실용서적의 정보도 충분합니다. 귀농을 하고 싶을 때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출처도 세밀하게 알려줍니다. 이런 부분도 다 밑바닥부터 찾은 노력이겠습니다.
거기에 추가로 소제목들이 절절하게 핵심을 짚어줍니다.
도시에 집은 두고, 마음은 가지고 가라
목숨 걸지 않는 힐링이 되는 귀농귀촌
수익 낼 생각부터 하지 마라
처음부터 욕심 없이 준비하라
창업보다 어려운 게 농업, 농사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은퇴 전의 사회적 지위는 잊어라
울타리부터 치지 마라
공무원 만날 때는 점퍼 입고 가라
정보와 첩보를 구별하라
행복을 다이어트하라
나의 전원생활을 머릿속에 상상해 보라
땅, 함부로 사지 마라
집부터 짓지 마라
빚내서 시작하지 마라
남의 손을 빌릴 때는 명확한 근거를 남겨라
작물은 토양과 기후, 특수작물 재배는 신중히 결정하라
안전사고 대비는 철저할수록 좋다
황혼이혼, 남의 일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준비를 하라
이렇게 좋은 소제목에 해당하는 에세이들이 미소짓게 하다가 눈물이 납니다. 아니. 이 모든 일을 경험한 건가요. 이걸 겪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건가요. 겸손함을 배우려고 농촌에 내려가셨나요 묻고 싶은데 저자는 차분하게 같은 실수를 반복할 필요없다고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보통 내공이 아닙니다.
내가 땅을 고르고 모종을 심으며 가꾼 열매가
내 식탁에 올라오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상상해 보라.
어느 날 꽃이 피고 지더니 열매가 맺혀 그것을 수확하는 경이로움 말이다.
농촌 생활을 관찰일기로 써도 좋고
사진이나 영상을 남겨봐도 좋다.
글로 적으면 책이 될 것이고 영상은 콘텐츠가 된다.
그동안 마트에서 한 팩 사다 먹으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생명의 신비로움과 농부의 노고를 새롭게 느낄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조리된 음식과 와인을
마시는 것만이 즐거움이 아니다.
내가 직접 키워 식탁에 올리기까지의
재미와 즐거움은 다르다.
이제는 허둥대며 정신없이 지나는 길이 아니다.
천천히 살피는 길에서 꽃과 나비를 보는 여유와 눈을 가지자.
224p.
글이 잔잔한 풍경이 연상되는 시詩와 같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막연히 가지고 있는 농촌에 대한 저의 이상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수준있는 시인의 (이제는 여유로운) 농촌 감상기이면서, 너무 쉽게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을 가볍게 눌러주는 깊이있는 귀농안내서였습니다.
#자기계발
#은퇴 없이 농촌 출근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