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힘이 세다 - 김시습의 금오신화 1218 보물창고 23
강숙인 지음, 김시습 원작 / 보물창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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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힘이 세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강숙인 (지은이), 김시습 (원작)
보물창고 2023-02-20

개령동 골짜기에서 봄 시름을 끌어안고
꽃 피고 질 때마다 온갖 근심 느꼈다네.
초나라 무산 구름 속에 그대를 볼 수 없어
소상강 대나무 그늘에서 눈물만 뿌렸네.
맑은 강 따스한 햇볕에 원앙이 짝을 짓고
푸른 하늘에 구름 걷히니 물총새가 노니네.
이제 아름답게 동심결을 맺었으니
가을날 부채처럼 이 몸 버리지 마소서.
30p
소상반죽(瀟湘斑竹)은 순임금이 순시를 하던 중에 급사를 하게 되자, 두 부인인 아황과 여영이 달려와눈물을 흘린 것이 소상강가 대나무에 무늬로 새겨졌다는 이야기립니다.

무산 열두 봉우리 첩첩 안개에 싸이니
반쯤 드러난 뾰족 봉우리 울긋불긋하구나.
괴로워라 양왕(襄王) 홀로 잠들어 있으니
구름 되고 비 되어 양대(陽臺)에서 만나리.
사마상여가 탁문군을 꾀어내려 할 때
마음속에 품은 사랑 이미 다 이루었네.
담장 머리에 흐드러진 복사꽃 오얏꽃은
바람 따라 어느 곳에 어지러이 지려나
좋은 인연인가 나쁜 인연인가
부질없는 이내 시름 하루가 일 년 같네.
스물여덟 글자 시(詩)로 님에게 전했으니
선녀 같이 어여쁜 님 언제 만나려나.
58p
양대는 뭐고 무산은 뭘까 하고 찾아보니 멋진 전거가 있었습니다. 가끔 한시에 무산이 나오곤하는데 그게 여기서 나온 감정인가 봅니다.

高唐賦 竝序 /文選卷十 -宋玉

昔者楚襄王與宋玉遊於雲夢之臺 望高唐之觀 其上獨有雲氣
崒兮直上 忽兮改容 須臾之閒 變化無窮
옛날 초나라 양왕이 송옥과 운몽대에 노닐고 있었는데, 고당의 관을 바라보니 그 위에 구름이 홀로 있어
바로 치솟기도 하고 홀연히 모습을 고치며 순식간에도 끝없이 모습이 바뀌고 있었다.

王問玉曰 此何氣也
玉對曰 所謂朝雲者也
왕이 송옥에게 묻기를 저것이 무슨 기운인고?
송옥이 아뢰기를 아침구름이라 하는 것이옵니다

王曰 何謂朝雲
玉曰 昔者先王嘗遊高唐 怠而晝寢 夢見一婦人
曰妾巫山之女也 爲高唐之客 聞君遊高唐 願薦枕席 王因幸之
왕이 묻기를 무엇을 朝雲(아침구름)이라 하는고?
송옥이 아뢰기를 ‘옛날, 선왕(懷王)께서 高唐에서 노니실 때, 피곤하여 낮잠을 주무시는데 꿈에 어떤 부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이 몸은 무산의 여자로서 이 고당에 들렀다가, 듣건데 임금께서 고당에 노닌다고 하여 (찾아 뵙나이다.) 원컨데 잠자리를 돌보게 하여 주소서. 왕이 정분을 소통하였다.

去而辭曰 妾在巫山之陽 高丘之阻
旦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
旦朝視之如言 故爲立廟 號曰朝雲
(신녀가)자리에서 떠나면서 이르기를,
˝이 몸은 무산의 남쪽, 고구의 북쪽에 있어 아침에는 아침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내리는 비 되어 아침마다 저녁마다 양대(陽臺)에 있나이다. ˝
아침에 보니 (과연 그녀의) 말과 같은지라 사당을 세우고 부르기를 조운묘(朝雲廟)라 하였다˝ 고 하옵니다.
https://ksd8988.tistory.com/16904276
https://kydong77.tistory.com/18488

旦爲朝雲 暮爲行雨.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내리는 비가 된다. 멋진 표현아닙니까.
그런데 이야기가 흘러내려오면서 주인공이 회왕이 아니라 아예 양왕으로 바뀌게 되어버렸습니다. 양대니까 양왕인가 보다 했겠죠.

만복사저포기는 부처님상 앞에서 내기를 걸어 이기고 대가로 처녀를 만나게 됩니다. 알고보니 산 사람과 죽은 귀신 간의 사랑입니다. 양생은 다시 결혼하지 않고 지리산으로 들어갑니다. 부처님은 성혼을 시켜주려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원했던 건가요.

이생규장전 역시 산 사람과 죽은 부인의 사랑입니다. 현실은 좌절입니다.

취유부벽정기는 시공을 초월합니다. 홍생이 부벽정에 올라가 시를 읊었는데 준왕의 공주가 나타납니다. 현대판 웹소설같은 구성이 조선 초기의 한문소설에 나옵니다. 홍생은 옥황상제에게 불려갑니다.

남염부주지는 꿈속에서 이세계를 방문합니다. 차기 염왕으로 등극합니다.

용궁부연록은 한생이 용궁에 초대받아 공주의 누각 상량문을 지어줍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역시 산으로 들어가 종적을 감춥니다.

살짝 가미하여 다섯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배경을 저자 강숙인선생이 앞뒤로 붙여 6편의 배경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중간에 노산군, 단종이 남긴 시가 있습니다.
월백야촉혼추(月白夜蜀魂啾)
함수정의루두(含愁情依樓頭)
이제비아문고(爾啼悲我聞苦)
무이성무아수(無爾聲無我愁)
기어세상고로인(寄語世上苦勞人)
신막등춘삼월자규루(愼莫登春三月子規樓)
달 밝은 밤 두견새 울 제
시름에 겨워 누대머리에 기대었네.
네 울음소리 슬프니 내 듣기 괴롭구나.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없을 것을.
세상 근심 많은 이들에게 이르노니
부디 봄밤에는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

저는 무이성무아수가 인상적입니다. 여섯자밖에 안되는데 다들 다르게 이해합니다.
˝네 울음 그쳐야 내 수심도 그치리라˝
˝네 소리 없다 한들 내 시름도 없을손가˝
˝그 소리 없으면 내 시름도 없을 것을˝
저자의 번역이 제일 좋습니다.

이렇게 다섯 편을 제대로 읽어보니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내용인줄도 모르고 중국 전등신화를 본떠서 만들었다고만 알고 있었으니 반성할 일입니다. (일부 구조는 가지고 왔어도 멋진 시와 다 내려놓는 가르침은 독창적인 부분이지요)
무엇보다 중간중간 나오는 한시가 굉장합니다. 너무 감정이 들어나는 귀신의 시는 귀신들끼리도 뭐라 구박받습니다. 게다가 한시 번역이 특히 좋습니다.
금오신화는 우리나라에서 제목만 있고 책은 없었는데 육당 최남선이 1927년에 일본에 전해진 금오신화를 찾아 소개한 것이 최초라고 합니다. (그후에 필사본이 두편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매월당 김시습은 자신의 작품이 후대까지 남아있을 거라 예측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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