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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현장에 서 있습니다 - 안전유도원의 꾸깃꾸깃 일기
가시와 고이치 지음, 김현화 옮김 / 로북 / 2022년 12월
평점 :
오늘도 현장에 서 있습니다
안전유도원의 꾸깃꾸깃 일기
가시와 고이치 (지은이), 김현화 (옮긴이)
로북 2022-12-31
안전유도원의 세계입니다. 가끔 공사장을 지나가다 보면 도로 한쪽에서 완장을 찬 유도원이 머리를 조아리며 차를 막기도 하고, 내가 갈 수 있는 순서가 되면 멋지게 팔을 휘두르며 가라고 신호하는 그들입니다. 이 동작이 직업이었습니다. 그동안은 공사장에 나온 근로자들이 번갈아가면서, 혹은 그냥 막내가 나가서 일을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다른 분야의 사람이 파견을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군요. 막내라고 하기에는 다들 얼굴들이 관록이 있어보였습니다.
저자 가시와 고이치는 출판사 일을 하면서 잘 나가다가 꺽이게 되면서 인전유도원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1946년생입니다. 78세네요. 책에서 계속 일흔이 넘었다는 말을 하는데 가벼운 나이는 아닙니다.
일본의 안전유도원이 55만명이라고 합니다. 상당한 숫자네요. 읽다보니 너무 자잘한 이야기도 다 담아서 이건 마치 일기처럼 정리했네, 매일 기록을 한걸까? 생각이 들었는데 표지를 보니 ‘꾸깃꾸깃 일기‘라고 쓰여있습니다. 뭔가 직업의 세계에 있는 사람이 조근조근 정리한 일기를 읽는 것이 독자에게는 재미와 즐거움을 줍니다.
지금까지 내가 일한 경비회사 네 곳에 대해 말하자면 자택에서 현장으로 가는 교통비가 나오지 않는 회사가 한 곳, 70세 이상은 일당이 1000엔 저렴해지는 회사가 한 곳 있었지만 대체로 9000엔 전후로 일당을 지불했다. 그런데도 나는 감사히 여겼지만, 전직 영업사원이었던 동료 하시모토는 “회사가 영업을 해서 우리한테 안전유도원 일을 제공하는 거예요. 불만을 토로하면 벌 받아요˝라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나한테는 출판편집의 본업도 있어서 지금까지 경비회사와는 모두 아르바이트로 계약을 했다. 사원 계약을 한 안전유도원은 후생연금이나 고용보험료가 공제되기 때문에 상당히 열심히 일해야지만 수중에 남는 게 있다.
이야기를 되돌리면 야근은 플러스 1000엔, 2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1000엔이 수당으로 더 붙는다. 대장 수당은 한 달에 1만엔, 더구나 연말에는 소소한 성의(나는 2만 5000엔)를 표하는 회사도 있다.
44-45p
자기 직업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분명하게 수당을 이야기하는 책은 처음 봤습니다. 다들 점잖게 돌려서 말을 하는데 정확하게 금액을 표시해주니 오히려 이 분야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후 2시부터 안전유도원이 배치되어야 한다. 서둘러 주문 도시락을 먹고 시나노 강에 걸쳐진 오테오 다리로 향했다. 불꽃 경비는 혼잡하다. 사람과 자전거 경비가 주된 업무다. 소속된 회사의 안전유도원은 총 열다섯 명 정도로, 다른 지사 안전유도원이 대장인 듯했다.
나가오카 불꽃축제는 시나노 강의 하천 부지를 중심으로 8월 2일과 3일, 이틀간 열리며 대략 100만 명의 인파가 예상된다. 조세이 다리에서 오테오 다리 사이가 주요 장소로, 직경 650미터로 펼쳐지는 몇 천 발의 샤쿠다마‘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나는 오테오 다리를 다 건넌 언덕길 중간에서 경비를 서게 되었다. 오후 2시가 넘어서부터 이미 인파가 붐벼, 다리 위에서도 계속해서 사람과 자전거가 내려왔다.
95p
이 대목에 조금 놀랬습니다. 일본은 지방 축제에도 이렇게 안전요원들이 배치되는군요. 부러운 대목이었습니다.
아내가 어느 날 ˝당신은 대학씩이나 나와서 안전유도원 일을 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라고 물은 적이 있다. “부끄럽다든가 부끄럽지 않다든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라고 답하자 아내는“그럴 줄 알았어. 요컨대 당신은 자존심이라는 게 없다는 소리네˝라고 더한 소리를 했다.
분명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기도 하지만 나는 정말 자존심이 없는 남자일까. 하지만 경비원으로서 풍채가 보잘 것 없는 할아버지나 젊고 건방진 안전유도원이 사사로운 일로 잘난 체하면 썩 유쾌하지 않다. 사람을 깔보는 듯한 언동을 하는 짓궂은 안전유도원이있으면 반발심도 생긴다. 그리 생각하면 나한테 절대 자존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평소에는 자존심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것을 가지고 있으면 안전유도원이라는 직업상 아무 것도 플러스가 되지 않을 뿐이다.
100-101p
세상의 아내들이란 아무 도움이 안되는군요.
나는 단독주택 건축 안전유도원으로 함께하게 된 베테랑 경비원 곤노에게 어떤 것을 물어보았다. 곤노와는 이미 안전유도원 일을 대여섯 번 함께 한 적이 있어서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나이도 비슷했다.
“안전유도원의 기쁨은 뭘까요?” 그러자 곤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딴 거 없어”라고 답했다. 나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일찍 끝나면 기분도 좋고 편한 현장은 왠지 모르게 즐겁지 않나요?”라고 살짝 요점에서 벗어난 질문을 거듭했다.
“가시와 씨는 그게 안전유도원의 기쁨이라는 거야? 그건 아니지. 이 현장의 감독이나 도편수라면 집을 한 채 다 지었을 때 무에서 유를 만들어냈으니 기쁨을 실감하겠지. 하지만 우리한테 사물을 만들어내는 기쁨은 없잖아. 안전유도원은 하루 일하면 다리도 뭉치고 추위랑 더위를 직격탄으로 맞으니 기쁨보다 피로만 쌓이는 일이야. 난 안전유도원 일은 인내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안전유도원은 곤노가 한 말처럼 생산성이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동네 주민한테 ‘힘드신데 수고가 많으십니다’라든가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기쁘지 않나요?˝라고 내가 더더욱 끈질기게 묻자 곤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 말이야. 그런 건 안전유도원에만 한정된 게 아니잖아. 신문 배달도 우편물 배달도 그건 마찬가지야. 안전유도원 일에 우선 기쁨이란 건 없어. 납득 못하겠으면 다른 유도원한테 물어보는 게어때? 어떤가 말인지. 오히려 안전유도원은 힘든 일 뿐이야. 싫어하는 감독도 있고 잔소리가 심한 운전자도 많아. 더구나 일당도 적지 않아?˝
125 - 126
만담같이 이어지는 끝없는 잡담인데 왜 웃길까요. 어느 분야든지 소소한 즐거움이 존재하고, 거기서 실오라기같은 보람과 재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업작가로 인세받는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앗. 그렇게 되면 다음 책이 안나오게 되는걸까요. (이미 일흔 후반인데 은퇴해도 되겠지요)
#에세이
#오늘도 현장에 서 있습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