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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을 견디는 기쁨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은이), 유혜자 (옮긴이) 문예춘추사 2022-12-01
2014년에 나온 책의 개정판입니다. 표지가 멋있어졌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만 많이 쓴 것이 아니라 에세이도 꽤 쓰고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책 사이사이 살며시 놓여있는 그림들이 괜찮습니다. 전부 본인이 그린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내 삶은 때로는 힘겹고 불쌍하게 채워졌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나 가끔 내가 느끼기에도 멋있고 어려움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삶은 어둡고 슬픈 밤과 같아서 가끔 번개라도 쳐서 잠시나마 주변의 어두움을 당당하게 물리친 것처럼 보이게 해 주지 않으면 잘 견뎌 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하는 어두움은 우리 일상에서 반복되는 끔찍한 일일 뿐이다.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하루를 보내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일까?
64p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어두운 밤에 왜 번개가 쳐야하는 걸까? 얼마전 읽은 이해못할 프랑스철학자같은 소리입니다. 느닷없이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는 것이 뭐가 나쁘다고 하는걸까요. 인생은 항상 파격과 변신만 있어야할까요.
그러나 그 맛은 너무나 썼고, 세상은 밤새도록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연기를 내뿜으며 도는 것 같았다. 여기에는 눈을 감은 자연이 있고, 저기에는 모든 것을 보는 영혼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영혼은 계속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생명이 없고, 황량한 것으로 탈바꿈한다. 도덕, 철학, 규범 앞에서 눈감은 자연은 자꾸만 다시 한쪽 눈을 뜬 채 부끄럽게 밖을 내다본다. 그 어떤 것도 그것의 이름에 걸맞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 어떤 이름도 사물에 어울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이름일 뿐이고, 그냥 사물일 뿐이었으며 모든 것 뒤에 생명의 성스러움과 비밀이 계속 새롭게, 더 멀게, 더 두려운 반사경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래서 나는 축이 존재하는 한 연기를 내뿜고 계속 돌아가는 내 세계를 좋아한다.
113p
소설가입니다. 그림도 곧잘 그립니다. 아니, 이 사람 도대체 정체가? 철학자인 것같습니다. 이 대목은 꿈의 한 부분입니다. 독일사람은 어렵게 생각해야 머리속이 잘 굴러가나 의문스러운 대목입니다. 어쩌면 너무 쉬운 생각의 흐름인데 제가 문해력이 떨어져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걸까요.
헤세의 에세이라길래 상당히 가벼울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습니다. 그림 아래에 싸인도 멋들어지게 H.H 헤르만 헤세를 줄여쓰고 어감도 명랑한 사람이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중학시절에 싯다르타, 데미안을 읽어서 쉽게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닌가 봅니다. 너무 난감해서 데미안을 다시 찾아봤습니다.
모두들 인간이 되라고 자연이 내던진 존재다. 우리는 모두 근원을, 어머니들을 공유한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깊은 계곡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제각기 깊은 심연에서 내던져진 시도로써 자신만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저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데미안 | 헤르만 헤세, 김인순 저
아하, 원래 이렇게 쓰는 인간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헤세의 글은 아마 문고판의 축약본이거나 처음부터 요약된 줄거리였나 봅니다. 오히려 부처님의 거대한 생애를 너무 표면적으로 싯다르타에서 다룬게 아닌가 사뭇 우습게 생각했는데 충분히 어렵습니다. 싯다르타도 제가 가볍게 생각한 이유는 고타마 붓다(세존)이 나오고, 친구 고빈타가 나오고 싯다르타가 붓다와 같은 이름의 주인공으로 주장이 좀 억지스러워서 입니다. 게다가 주인공이나 친구나 가공의 인물이잖습니까. 헷갈리잖습니까. 뭔가 떼쓰는 듯한 징징거림이 있어 시시하게 봤는데 다시 보니 상당히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영부영 대충 읽고는 에세이지만 쉽지 않은 글이다 마음먹고 다시 읽었습니다. 아! 두번째는 천천히 읽어보니 괜찮습니다. 약간 소리내어 읽는듯한 느낌으로 느긋하게 읽으니 아주 좋습니다. 평상시의 습관으로 건성건성 읽으면 안되는 글이었습니다.
단지 무엇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누구나 사소한 기쁨을 느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꽃이나 열매에서 나는 아주 특별한 향기를 맡는다든가, 눈을 감고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는 것이라든가, 아이들이 조잘거리며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 경험 같은 것 말이다. 어떤 노랫말을 흥얼거리거나 휘파람을 부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면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소한 일들과 그로 인해 얻은 작은 기쁨들을 하나하나 꿰어 우리의 삶을 엮어 나간다.
20p.
천천히 장면을 떠올리면서 내 경험이나 상상을 동원해보면 뭔가 공감대가 만들어집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내 인생을 바라보면 나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또 착각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불행했던 것 같지도 않다. 사실 행복과 불행에 대해 묻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누구나 인생을 돌아보면 즐거웠던 날보다 불행했던 날이 더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
60p.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듯한 소리입니다. 이런 대목에서 같이 과거를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간단한 문장 하나조차, 책의 한 구절조차 삶과 연결된다. 삶 속에서 지혜를 깨우쳤을 때 하나의 문장은 새롭게 다가온다. 지식은 삶의 지혜와 연결된다.
뒷표지.
그런데 뒷표지의 글은 본문 내용에 없습니다. 뭔가 전체 문장의 한 부분인 것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안보입니다. 어찌 된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