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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평점 :
원청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은이), 문현선 (옮긴이) 푸른숲 2022-11-29
여기가 원청입니까? 하고 잃어버린 도시를 찾는다길래 샹그릴라같은 고대의 비경으로 가는건가, 아니 중국이니 무릉도원같은 고립된 공간으로 가는걸까, 둘다 중국이니 그나라는 왜이리 신비한 구석이 많을까 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잃어버린 것에는 신비가 가득하죠.
소설인데 너무 현실적입니다. 청나라 말기에서 민국 초기까지의 시대에 사람들의, 마을의 이야기입니다.
의리. 충성. 믿음. 인내. 올바른 의식을 가진 사람도 나오고, 토비들은 잔인하고 사람들을 유괴하여 인질의 귀를 자르기도 하며 돈을 줄때까지 감금하는 내용도 나옵니다.
수호지 시대에 사람을 죽여 만두속에 넣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이건 불과 120여년전인데 참 안타깝습니다. 하긴 비슷한 시기의 아큐정전에서 사형수의 피를 묻힌 만두를 먹는 장면도 있는 나라죠.
위화선생의 강연을 보면 소설은 별로 안읽어보고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야 열심히 읽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러기에는 타고난 이야기꾼입니다. 거의 600페이지의 두께인데 다음, 그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듭니다. 린샹푸의 순진함에 놀라고, 텐다 형제들의 신뢰에 감탄하며, 장도끼의 지독함에 답답하게 만들고, 천융량의 복수에 주먹을 불끈 쥐게 합니다. 구이린의 조문에 처연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그나저나 예전에는 소설에서 이렇게 엇갈리는, 빗겨나가는 대목이 나오면 가슴이 아팠는데 이젠 무덤덤한걸 보니 나이가 들어 감정이 무뎌져버렸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빗나가는게 현실이지 하며 인정해버려 더 놀라웠습니다.
말하는 사이에 낡은 궤짝을 새것처럼 깨끗하게 고쳐놓은 것이다. 린샹푸의 칭찬에 천소목이 담담하게웃으며 말했다.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옷장이나 궤짝, 탁자, 의자, 걸상을 만드는 건 물론이고 특별한 능력도 키워야 해. 오래된 물건을 고치는 거지.˝
천소목은 자신은 연목 목수일 뿐이라며, 목공에서 최고는 경목 목수라고 말했다. 경목을 제대로 다룰 수 있으면 당연히 연목도 잘 다룰 수 있고, 경목 장인은 오래된 물건을 새것처럼 고칠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새것을 옛것처럼 만들 수도 있다고했다. 또 목공에서 제일 하급은 서양 목수라고 평가하면서 서양인이 하나둘 경성으로 들어와 사회 기풍이 무너졌고, 서양식 가구가 유행하기 시작한 뒤로 자기처럼 나름 유명한 인물까지도 결국에는 의뢰처를 잃어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거기까지 말한 뒤 천소목은 쓴웃음을 지으며 세상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보통 가구에는 마구잡이식으로 못을 박지 않잖아. 경목 목수는 쐐기조차 거의 쓰지 않고. 그런데 서양 목수는 아무 데나 못을 박는다니까.˝
58-59
별거 아닌 이야기인데 옆에서 같이 듣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못을 쓰지 않는 경지라니 궁금합니다. 이렇게 글의 흐름이 좋습니다.
매파는 생월생시와 띠를 알아야만 상생인지, 상극인지 알 수 있고 길흉화복을 점칠 수 있다고 했다. “말띠는 소띠와 어울릴 수 없고 양띠는 절대로 쥐띠와 사귀면 안 돼요. 백마는 푸른 소를 두려워하고 양과 쥐는 만나면 싸운다는 말이 있지요. 뱀과 호랑이의결혼은 칼부림과 같고, 토끼가 용을 만나면 눈물을 흘리며, 닭과개는 재난을 피하기 어렵고, 돼지와 원숭이는 끝까지 함께할 수없답니다. 개 두 마리는 한 구유를 쓸 수 없고, 용 두 마리는 한 연못에 있을 수 없으며, 양은 호랑이 입에 떨어지고요……………. 도련님은양띠니까 두 사람은 양과 쥐였거나 양과 호랑이였을 거예요.”
매파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사주단자도 안 쓰고 궁합도 안본 데다 여자 생월생시와 띠도 모른다지만, 결혼식 날 가마로 맞이하긴 했겠지요?˝
린샹푸는 또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에는 매파가 두 손으로 허벅지를 치면서 소리쳤다. ˝세상에 이렇게 기이한 일이 있을 수가. 속담에 찢어진 부채도 부치면 바람이 일고 망가진 가마라도 타면 당당해진다고 했어요. 당당함은 일단 제쳐놓고 가마에 태워 오지 않았으면 여자 발은 도련님 게 아니라 여자 것이지요. 언제든 갈 수 있다고요.˝
64p
맞든 틀리든 이야기에 빨려들어가죠?
썩은 살을 제거하지 않으면 새 살이 돋기 어려우니 독성과 부식성이 강한 승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승약, 그러니까 수은과 초석, 백반 등을 승화시킨 약을 약방에서 받아와 구운 석고와 곱게 간 뒤 구이민의 온몸에 발랐다. 승약의 독성 때문에 구이민의 부패한 상반신이 완전히 문드러졌다. 한의사가 썩은 살을 계속 긁어내면서 구이민의 방에서는 매일 한 사발씩 썩은 살이 나왔다. 그의 처첩들은 구이민 몸에 살이 남아나지 않겠다며 하염없이 슬퍼했다. 승약으로 썩은 살을 제거해낸 뒤 한의사는 맵고 따뜻하면서 독이 없고 소염과 항균에 탁월한 마늘을 빻아 구이민의 몸에 발랐다.
370.
중국 의사인데 굳이 한의사라 번역할 이유는 없을텐데, 웬지 치료법이 민간요법의 폐해같습니다. 심한 고문을 받고도 살아났으니 효과를 본걸까요.
그런데 서문에서 어느 독자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원청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얘기하는데 그게 무슨 뜻일까요? 갈 수 없는 곳?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곳? 마음에 갈 수 없는 곳을 가진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모든 사람에게 있다니 부처님의 불성이나 일원상인가요.
또 찾을 수 없는 독자가 공명한다는데 아무렇게나 말하는 걸까요. 아님 저 높은 수준의 언어인가요.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