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 - 현대 의학이 놓친 마음의 증상을 읽어낸 정신과 의사 이야기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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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 의학이 놓친 마음의 증상을 읽어낸 정신과 의사 이야기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 (지은이), 신소희 (옮긴이) 심심 2022-12-06

환자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고민하지 말고
그 병이 어떤 사람에게 생기는지 고민하라.
윌리엄 오슬러 William Osler, 1849~1919

전염병 모델이란 감염원이 확인되면 이를 공격할 항생제나 약물을 개발하여 치료를 실시하는 방식이다. 전염병 치료는 현대 의학이 최초로 거둔 중요한 성공이었고, 근거 중심 치료가 독단과 미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순전히 과학에 입각한 이 모델은 여러 의학 분야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암, 심장병, 신장병을 비롯한 많은 질병의 기전이 밝혀지고 치료법이 개발되었다. 그리하여 전염병 모델은 지난 수십 년간 의학에서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
하지만 의학계는 자꾸 질병의 과학적 측면에만 집중하고 질병의 사회적 측면을 무시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과학적 접근만으로는 환자가 증상을 외면하거나 치료를 거부할지, 병에서 낫기 위해 생활 방식을 바꿀지, 가족의 지지를 받을지, 우울증에 걸려 자살할지, 그 자신도 몰랐던 회복력을 발견하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질병의 과학적 측면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환자가 얼마나 잘 치료될 것인지 알아내기 어렵다.
종합병원의 정신과 의사 17p.
의학의 발전은 과학과 근거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만 또 성장에 따른 반작용도 나타납니다. 질병의 사회적 측면이 이제야 부각되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마이클 샤프는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교 교수인 동료 모니카 그레코 와 함께 ‘병‘과 ‘질환‘의 개념 구분에 나섰다. ‘병‘은 환자 본인이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는 주관적 증상의 경험이며, ‘질환‘은 의사가 검사 결과로 내리는 진단이다. 질환은 스캔 검사, 혈액 검사, 신체 검진을 통해 ‘실제‘로 확인되고 객관적 입증이 가능하다. 반면 병은 일련의 증상일 뿐 반드시 의사가 내린 진단을 통해 입증되는 건 아니다. 그리하여 질환이 아닌 병은 흔히 ‘실제‘가 아니라고 여겨진다. 검사를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자가 느끼는 고통은 의심받으며 그들의 상태는 일종의 도덕적 결함처럼 여겨진다. 어떤 사람이 어지럼증으로 의사를 찾아간다고 해보자. 검사 결과 아무 문제도 찾지 못한 의사는 병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은 소식입니다. 검사 결과 완전히 정상이에요.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안심이 되시겠죠.” 그러나 병자의 고통은 그대로다. 그의 병이 정당화되지 못했을 뿐이다. 검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병자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병자의 동료와 가족은 그의 고통이 정말인지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과잉 검사, 차가운 병원 57-58p
정말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죠. 검사결과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알수없는 증상에 괴로워하는 환자들이 가득하죠. 과학은 아직 다 밝혀내지 못한 것이 맞습니다. 중세의 신학, 현재의 과학, 그다음은 무엇이 나타날까요? AI가 해결할 수 있을런지요.

긴 의자에 누운 환자의 머리맡에 턱수염 난 의사가 앉아 있는 일러스트가 그려진 유머러스한 생일 축하카드를 아직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재 의대에서는 프로이트 심리학을 가르치기는 커녕 거의 언급하지도 않는다. 1856년에 태어나 1939년에 죽은 프로이트는 분명 통찰력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구시대의 인물로 잊혀가고 있다.
무기력과 우울증 72p.
잊혀진 현자인거죠. 그럼에도 프로이드의 이론을 설명해줍니다. 과학이 아닌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정신이다리고 밝힌 공로가 있는 사람이죠.

내가 무척 좋아하는 연구가 하나 있다. 감정이 어떻게 이성을 압도하는지를 주제로 1994년에 데네스라지와 엡스타인이 연구한 내용이다. 피험자들은 뚜껑 덮인 단지에서 빨간색 젤리빈을 꺼낼 때마다 1달러를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1번 단지는 빨간색과 하얀색 젤리빈이 각각 1개와 9개 들어 있어, 빨간색을 꺼낼 확률이 10분의 1이었다. 2번 단지는 젤리빈 100개 중에 9개만 빨간색이고 나머지 91개는 전부 하얀색으로, 빨간색을 꺼낼 확률이 분의 9였다. 여러분은 어느 쪽 단지에서 젤리빈을 꺼낼 것인가?
논리적으로는 1번 단지여야 할 것이다. 2번 단지를 택했을 때 성공할 확률은 9퍼센트인 반면 1번 단지를 택했을 경우 성공률은 10퍼센트니까. 하지만 피험자의 과반수인 61퍼센트가 2번 단지를 택했다. 사람들은 왜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하는 걸까? 바로 감정에 따라 선택하기 때문이다. 피험자들은 자신이 수학적으로 틀린 선택을 했다는 걸 알았지만, 젤리빈이 많이 든 단지를 선택하면 빨간색을 꺼낼 확률도 높아질 것 같다고 느껴서 2번 단지에 이끌렸던 것이다. 그야말로 비논리적인 선택이지만, 사람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린다.
신장기증과 정신감정 94-96 p
이 실험 진짜 재미있습니다. 몇번을 생각해도 저 역시 2번 단지를 고릅니다. 감정의 인간인것같습니다. 하지만 61%이고 나머지 39%는 이성의 인간들입니다.

우리는 긴장성 두통이 뇌종양 같은 신체적 요인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스트레스와 긴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이건 심리 문제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한편으로 긴장성 두통은 통증이라는 뚜렷한 신해 증상을 보이며 아세트아미노펜 같은 진통제를 먹으면 나아진다. 그렇다면 긴장성 두통은 신체적인가, 아니면 심리적인가?
나로서는 이보다 더 쓸데없는 논쟁을 상상할 수가 없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거의 모든 질병에 신체적 요소와 심리적 요소가 모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리고 긴장성 두통을 앓아본 사람이라면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은) 그 병이 지독히 고통스럽다는 것을 안다. 긴장성 두통은 환자가 상상하거나 날조한 가짜가 아니라 끔찍하고 치료가 필요한 실제 통증이다.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여 바로 통증을 없앨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리고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으로 재발을 막을 수 있다면 이 역시 좋은 일이다. 긴장성 두통이 신체적인가 심리적인가 하는 문제로 골치를 썩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의료계는 어떤 병이 ‘신체적인가, 아니면 심리적인가?‘ 하는 사고방식에 갇힌 나머지 건강 개선에 유익할 수도 있는 치료를 환자들이 거절하게 만들고 있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임상의로서 나는 환자의 치료가 실용적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거가 되는 이론이 그럴싸하거나 관념적 이해에 들어맞는다는 이유로 치료를 선택하지 않는다.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증상, 123-124p
세상의 조직들, 협회, 위원회들은 항상 이런 문제에 결론과 정답을 찾고 있죠. 현장에서는 당연한 내용을 자기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답과 설명을 하라고 하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죠. 뭔가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외로움은 우리 사회에서 급증하고 있는 유행병이다. 미국 성인의 47퍼센트 이상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조사되었는데,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하루에 담배 열다섯 개비를 피우는 것과 맞먹는다고 한다.‘ 영국 인구의 5분의 1에 가까운 900만 명 이상의 성인이 자주 혹은 항상 외롭다고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살, 희망과 절망 사이, 133p
외로움이 담배 15개비라는 비교는 어떻게 나올까요. 마치 담배 한개피가 수명울 5분을 줄인다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그래도 15개비라는 숫자에 강렬함이 느껴집니다.

정신과 분야에서 20년을 버틴 엘러스테어 샌트하우스는 그동안 진료해왔던 환자들의 이야기들을 솔솔 풀어내며 정신과의 탄생부터 역할과 존재의미를 설명해줍니다. 내용이 충실하고 재미있어 페이지마다 줄을 치고 체크해가면서 즐겁게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영어 제목은 Head first. 머리가 먼저야. 그런 뜻이겠네요.

#인문에세이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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