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 회사 앞 카페에서 철학자들을 만난다면?
필로소피 미디엄 지음, 박주은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회사 앞 카페에서 철학자들을 만난다면?
필로소피 미디엄 (지은이), 박주은 (옮긴이) 한국경제신문 2022-11-02

니체와 장자를 번갈아가면서 이야기할 줄 알았습니다. 이런. 시작부터 하이데거가 나옵니다. 책이 잘못 온 줄 알았습니다.
사르트르, 마르크스, 카뮈, 드디어 니체입니다. 그러고 보니 출근길엔 서양철학, 퇴근길엔 동양철학입니다.
이쁜 표지에 비해 살짝 속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마르크스와 공포를 극복하자.
사르트르로 불안을 해결하자.
라고 하면 책을 안잡겠죠. 출근길엔 니체. 이런 멋진 제목이어야 눈에 보일 것같습니다.
원서 제목은 MEET HEIDEGGER IN THE LOUNGE. 라운지에서 하이데거를 만나자
茶水間遇見海德格. 해덕격이 하이데거인가봅니다.

하이데거는 나치에 협력한 전력이 있죠. 그래도 출근길의 걱정을 하이데거의 죽음철학으로 해결한다고 합니다. 죽음으로 해결못할 문제는 없죠.

불안할 때는 사르트르를 떠올립니다.
사르트르는 공포와 불안 사이에는 한가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포는 구체적 대상이 있어야 생기는 감정인 데 반해, 불안은 대상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는 일종의 의식 상태라는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실직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직장이 있든없든, 누구나 삶이 왜 흔들리는지 몰라 불안해할 수 있다.
37p.
불안과 자유는 쌍둥이여서 불안이 해결되면 자유가 올거라고 하네요. 하지만 불안한 감정과 갑자기 나오는 퇴사와는 조금 다른 방향이 아닌가요.

먹고살자면 어쩔수 없다는 무력감에 마르크스가 등장하네요. 마르크스의 이론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공포에 마르크스를 혁명을 이야기합니다. 서양은 좀 어렵습니다. 마르크스는 철학이라기 보다는 정치아닌가요.

부조리에 카뮈를 소환합니다.
카뮈에 따르면, 부조리를 대면했을 때 일반적인 반응은 삶의 짐이 질식할 만큼 무거우니 자살할 것인가 아니면 종교에 의지해 희망을 찾을 것인가로 귀결된다. 카뮈는 전자의 경우라면 자살이 어느 정도 부조리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인정한다.
60p.
하이데거에서는 죽음을 이야기하더니 무슨 해결책이 자살인가요. 게다가 자살과 종교 양자택일인가요.

드디어 니체입니다. 뜻대로 안되는 세상을 미워하는 혐오입니다. 증오하는 자들, 거부하는 자들, 비극적인 자들, 그리고 초인이네요.

당신을 갈구고 쥐어짜기만 하는 상사, 당신을 이용하려고만 드는 동료와 부하직원들 생각만 해도 불만과 분노가 치솟는가? 타인을 도구화하는 건 도덕도 양심도 없는 짓거리라고 외치고 싶은가? 사람을 도구화하는 행위는 분명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일말의 예외도 없이 반드시 그렇기만 할까?
칸트는 인간의 도구화를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영국의 철학자 데릭 파핏은 인간의 도구화에 대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간 규명과 반성적 사유를 보인다. 특정 조건 하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서로의 도구화를 허용한다는 것.
84p.
말이 너무 무섭습니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철학자를 통해 심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출근길에 가볍게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과 분노를 통해 폭발하라는걸까요.

무슨 출근길에 걱정, 불안, 공포, 부조리, 혐오, 불평, 소진이 있는건가요.
퇴근길에는 용기, 짜증, 잔혹, 자신감, 낙담, 분노, 맹목, 긍정입니다.

쑨요우룽, 존, 쑤즈잉, 한편 한편 저자가 다르길래 책날개를 보니 필로소피 미디엄이라는 철학을 쓸모있게 전달하기 위해 모인 기업이랍니다. 자신도 모를 소리를 하는 철학자들이라 많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제일 좋은 점은 동양철학의 근거가 되는 문장을 뒤에 색인처럼 모아놨습니다. 한자원문도 간체자가 아니라 옛날한자로 표기되어 더욱 반갑습니다. 하지만 진인을 이야기할 때는 간체자 真을 쓰네요. 眞을 안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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