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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행
호시노 도모유키 외 지음 / 문학세계사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소설책은 처음 이벤트 신청을 해서 살짝 걱정을 했습니다. 줄거리 요약만 하면 그저 스포일러가 될거고, 느낀점만 쓰면 도대체 뭔소리야 소리를 들을것같고, 고민하다가 뭐 읽다보면 생각이 떠오르겠지 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끌렸던 이유는 단 하나, 오에 겐자부로가 국가를 흔들리게 하는 규모의 소설을 쓴다고 평가했답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우리나라에 문학 전집 24권이 번역되어 있고, 불문과를 나왔는데 199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지요. 대단한 사람인데 한권도 안읽어봤네요. ㅠㅠ 1935년생이고 아직 살아계시네요. 현재 85세. 1957년부터 글을 썼다고 하니 이거 몇십년인가요. 22세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63년간 글을 써온건가요? 그러니 무슨 말을 안했겠습니까?
사실 제목만 보고는 영화 The Farm (인간목장) 에서 아이디어를 얻은건가? 비슷한 주제를 다룬건가 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더 팜은 유투브의 요약된 내용을 보시면 충분합니다. 숨막히고 답답한 상황은 다 넘어가고 줄거리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는 이 숨막히는 순간이 핵심인데 다 건너띄어도 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세상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게다가 그걸 생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드는구나 놀랩니다.
앗 전혀 다른 내용이있습니다. 정말 인간은행이었습니다. 제목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될 일입니다.
호시노 도모유키는 일본 작가분인데, 책 서두에 한국어판 서문을 따로 썼습니다. 번역가 김석희씨와의 우정이 느껴집니다. 책 말미에도 김석희씨가 번역하게 된 이유를 써나갔는데, 저는 정작 소설 내용보다는 서문과 말미를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사이가 안좋아져도 이렇게 문학이라는 분야에서 서로가 존중하고 아끼는 모습이 웬지 애뜻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나이탓인가, 이렇게 서로 위해주는 모습을 보면 눈시울이 촉촉해집니다)
작품은 모두 11편으로, 단편이라 편하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단편이 좋습니다. 이제 장편은 2권, 3권 넘어가면서 등장인물조차 머리속에 사라집니다. 단편은 그나마 기승전결이 연결이 됩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인간은행
스킨 플랜트
읽지 마
모미 쵸아요
핑크
선배 전설
지구가 되고 싶었던 남자
눈알 물고기
쿠엘보
치노
그런 저의 개인사가 김석희와의 공동작업으로 꽃피어,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읽을 수 있는 모습으로 낱타난 것입니다. 이것을 행복이라 부르지 않으면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
뜨거운 공기는 습기를 흠뻑 머금어 질긴 날것들의 무리처럼 피부를 감싼다. 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녹아 흐르는 것 같다. 풍경 역시 액체로 만들어져 방치된 모둠 아이스크림처럼 하나의 색으로 뭉쳐 방울지며 떨어질 듯했다. 기온이 너무 높아지니 풍경도 녹는구나, (109p)
준비 완료. 이제 출발이다, 하며 버스에 올라타는데, 마치 지구를 떠나는 듯한 흥분에 휩싸였다. 이제부터 나는 무한한 우주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221p)
다른 사람들의 서평들을 보면 책에서 본인이 제일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을 한두줄 적잖아요.
누군가가 책 수백페이지에서 제일 머리에 남는 부분을 적는 것을 공유한다는 것이 뭐랄까 책과 별도로 나와 다른 독자의 같은 느낌을 경험해볼 수 있어 좋습니다.
어쩄든 오에 겐자부로가 칭찬을 했습니다. 저명한 작가는 한줄평을 하더라도 촌철살인, 국가가 흔들릴 정도의 내용이 너무 궁금합니다.
스킨 플랜트를 읽으면서 아, 이것이 국가를 흔들리게 하는 내용이었구나 공감을 했습니다. 식물을 심는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세대를 내려가면서 세상이 바뀝니다. 이런 세상이 실현되도 재미있지 않겠어 생각하다가 그럼 국가 따위는 필요없는건가 로 넘어가면서 아하 그래서 국가를 흔들리게 한다고 했구나. 오히려 역으로 이 평가가 절묘하게 일치하면서 적절한 한마디에 혼자 소스라치게 놀랬습니다. 아니, 그냥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면 되지, 어찌 이런 멋진 표현이 나오는건가,
모미 쵸아요를 읽으면서 도대체 일본사람이 왜 한국에 와서 노숙자들과 축구를 하는거야. 어디가도 누구와 부대끼며 살 수 있는 세계인인가 생각을 했지만 소설이 아니라 잔잔한 수필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오히려 이 글이 쉽게 읽히면서 작가의 알 수없는 세계관이 이해가 됩니다. 아하 저기는 회오리춤이 기본인 세계구나, 저기는 인간이 지구와 합체되는 세계구나 하며 다양한 이색적인 세계들을 골고루 접할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더욱 강하게 느낀 것은 작가와 번역가의 서로 이해하는 기분 좋은 분위기, 오에 겐자부로의 탁월한 평가가 계속 머리속에 남았습니다.
준비 완료. 이제 출발이다, 하며 버스에 올라타는데, 마치 지구를 떠나는 듯한 흥분에 휩싸였다. 이제부터 나는 무한한 우주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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