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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쾌변 - 생계형 변호사의 서초동 활극 에세이
박준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문가의 슬쩍 털어놓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변호사라는 오래 공부해야 하는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려운 법정공방의 애로사항을 전문용어를 나열하면서 어렵게 풀어가면 참 재미없겠지요. 그런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생계형 직장인이라니 시작부터 내용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역시 쾌변이라는 책 제목부터 기대하게 만들더니 내용 역시 범상치 않습니다.
변호사 배지를 빛내면서 이의있습니다 하고 소리지를 것만 같은데, 판사한테 그러면 안되죠 하고 배지는 그저 냉장고 자석과 비슷하죠 폄하하기도 합니다.
변호사님하며 높이 치는 세상의 평가를 변호사놈? 하면서 직업의 장벽을 아무렇게나 깨는 살아있는 이야기가 술술 읽힙니다.
책 구석구석 유머가 넘쳐흐릅니다. 읽다말고 혼자 낄낄거린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얘기할 거 같으면 제가 변호사 안 샀죠. 안 되는 걸 되게 해주는 게 변호사 아니에요?
아닌데요. (21p)
수십년간 서초동 자리를 지켜온 탓인지 수십 년간 맛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국밥집에 마주 앉아... (35p)
금강역사의 금강은 金强이 아니라 金剛이라는 사실, 안타깝게도 네 팔뚝 그림에는 치명적인 오타가 있다는 얘기를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이었다. (63p)
상황이 이쯤 되면 판사는 별다른 증거가 없긴 하지만 열정적인 변론에 감탄해 어쩐지 주인공의 손을 들어준다. 선량하지만 말 못할 사연으로 세상 억울했던 의뢰인은 어느새 눈가가 촉촉히 젖어든 채, 쿨하게 돌아서서 법정을 나가는 주인공의 뒤통수에 연신 꾸벅거린다. (134p)
오늘 뭘 할지조차 못 정했으면서 향후 10년의 포부를 꾸역꾸역 읊었으며,.... (161p)
무협지나 웹툰도 아니면서 (읽으면서 이런 내용을 만화로 다시 풀면 우리나라도 꽤 괜찮은 변호사 만화가 만들어지겠구나 생각도 했습니다. 아소우 미코토의 만화 "어떻게 좀 안될까요?"가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찌질하면서도 읽고나면 시원스런 책을 읽게 되서 기분좋은 하루였습니다.
변호사란 거창한 직업을 생계형 직장인으로 표현한 것이 그저 조금 겸손하게 표현했겠지 생각했는데 오산이었습니다. 진짜 하루하루 먹고 사는 생계형 직장인 그대로였습니다. 너무 현실감나는 생활이어서 본인의 힘겨운 회사생활도 떠오르고 결국 일하는 게 다 이렇게 힘든거지 하고 알수없는 위암도 받고, 하루 열심히 사는 모습에 격려도 해주고 싶고 위안도 받았습니다. 최근 저도 회사에서 일이 너무 많아져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건가 하는 기분이 있었는데, 고생고생하는 변호사님 이야기를 들으니 그렇지,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편안해졌습니다.
다만, 너무 법정드라마에 익숙해져있어 화끈하게 변호사가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 나오나 했더니 중식당 쓰레기통을 뒤져 증거를 찾는 장면에는 애뜻한 삶의 애환이 느껴졌고, (역전재판의 시원한 한마디를 계속 기대했습니다. 끝까지 생계형 변호사의 처절한 생존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