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가을 > 진화론의 3대 교주, 도킨스의 위대한 역작!
이기적 유전자 - 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냉철한 지성의 상징, 다윈의 후계자, 무신론자, 환원론자...... 이러한 표현들은 '리처드 도킨스'에게 지겹도록 따라붙는 수식어이다. 도킨스는 다윈과 헉슬리를 잇는 진화론의 신봉자, 좀 짓궂게 표현하자면 '진화론의 3대 교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존 호건'의 "과학의 종말"에 따르면, 그는 우주에 또다른 생명체가 탄생해 진화해 왔다 해도, 지구의 진화 메커니즘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할 만큼, 진화론의 논리적 아름다움에 매료된 인물이다.

 도킨스는 더 나아가 진화생물학계의 역사에서 진화론을 능가하는 패러다임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의 전망에 따르면 진화생물학계에 남아 있는 앞으로의 과제는 진화론의 거대한 틀 내에서, 부분적 내용을 채워나가는 용접이나 납땜질 식의 소소한 '퍼즐 맞추기' 작업만이 기다릴 뿐이라고 예견한다. 적어도 진화론은 그에게 종교였던 셈이다! 그의 이런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많은 적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도킨스는 이 시대 최고의 '과학의 전도사'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문자가 탄생한 이래 가장 논리적으로 글을 쓴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도킨스를 지목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논리적 완성도는 그가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해도, 모든 이들을 믿게 할 정도다! 그의 "눈먼 시계공" "확장된 표현형"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 보라! 소름이 돋을 정도로 천재성이 번득이는 그의 작품들은 진화생물학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하나 같이 당대의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충격을 몰고왔던 도킨스의 작품들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충격파를 몰고와, 진화생물학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작품은 단연 "이기적 유전자"이다!

 그렇다면 "이기적 유전자"의 세계로 충격적인 지식여행을 떠나보자.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진화의 메커니즘에서, '개체의 이익'은 가장 근본적인 전제로 간주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이해의 폭이 확대될 수록, 그 전제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커져만 갔다. 이를테면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집단을 지키려하는 꿀벌의 이타성은 개체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으로 말하자면, 생면부지의 사람을 구하고자 종종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지 않던가?

 논리적 모순에 직면한 진화생물학계는 더 나은 이론체계를 필요로 했다. 그것은 개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생명체나, 이타성을 발휘하는 생명체 모두에게 모순되지 않을 만큼 포괄적이며 논리적 완성도를 갖춘 이론틀이어야 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도킨스는 몇몇의 선행연구를 근거로, 개체의 이익이 아닌 유전자의 이익 즉 "유전자의 자기 복제와 보존"이야말로 생명의 궁극 목적이자 진화의 전제라는 혁명적인 이론을 정립했다. 그 이론은 꿀벌과 인간의 이타적 행동이 개체의 이익이 아닌, 동일 유전자 집단의 이기적인 증식과 보존에 기여할 수 있다는 명쾌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지금은 진부한 감도 없지 않으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설은 진화생물학계의 수많은 모순을 바로잡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도킨스의 충격 발언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과연 인간의 몸이란 무엇인가라는 도발적인 물음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그는 인간의 몸이란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복제와 보존에 유리하도록 프로그램된 기계에 다름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좀 극단적으로 비유해서 우리의 몸체가 '로버트 태권브이'라면, 유전자는 태권브이를 조종하는 소년 '훈이'였던 셈이다!

 도킨스의 이론이 제시되었을 무렵, 사람들이 얼마나 커다란 충격에 빠졌을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결국 인간들은 "이기적 유전자"라는 미물에 놀아난 셈이었고, 인간의 숭고한 도덕성도 그 미물들의 생존전략에 따른 진화의 산물로 생겨났으니! 심지어 어떤 학자는 유전자로부터 독립된 자신의 주체성을 천명하고자, 독신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사실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매트 리들리'가 "이타적 유전자"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듯, 진화의 산물로서 등장한 인간의 덕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자연과학이 이기적 유전자 이론으로 사회과학의 권위에 치명상을 입혔다 해도, 자연과학이 직면한 딜레마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안은 바로 사회과학에 있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천재뮤지션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왜 탄생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
박지향, 김일영, 이영훈 외 지음 / 책세상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왜 탄생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1. 2』(책세상, 이하『재인식』) 발간과 이에 대한 보수 층의 폭발적 관심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집권으로 연이은 패배를 당한 우익 보수세력의 대응이라는 정치 정세와 맞물려 있다. 참여정부는 그동안 금기 시 되었고 이전의 정부가 손대지 않았던 역사 문제를 친일파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냈고, 이 때문에 보수세력은 역사적 명분을 박탈당하는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과거 정권에서 이루어졌던 국가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재검토하여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사죄할 것은 사죄하며, 민주화운동을 재평가하는 이러한 작업은 과거사 정리를 통해 새로운 민주사회로 이행했던 여러 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법적, 인권적,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시기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내부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에 다가설 수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50여 년이 넘는 기간의 역사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기 때문에 짧은 기간 내에 어떤 결과물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반공 보수세력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이 같은 이행기가 자신의 아버지와 과거를 부정하는 뼈아픈 작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에 대한 재평가는 보수세력이 비난하는 것처럼 불온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정부가 추동 한 사안만은 아니며, 그동안 여러 주체가 그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시대에 따라 통비 분자, 폭도, 반체제인사, 불순 폭력세력 등으로 매도되던 피해자가 있었고, 새로운 자료와 연구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밝히려 애쓴 연구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피해자가 있는 한 진정한 국민통합은 어려우며, 국가의 정당성과 애국심을 국민에게 요구할 수도 없다는 점을 자각한 국가(정부)의 조치가 국가 차원에서 지난날의 역사를 다시금 성찰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국가 공권력의 남용으로 발생한 과거사 문제는 없던 일로 덮어버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에 대한 해결 없이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보수세력의 집권이 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역사는 주요한 싸움의 장으로 등장했다. 일사분란하고 긍정적인 역사인식은 신세대에 대한 보수적 애국 교육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기존 세대에 자긍심을 불어넣는 데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인식』은 이러한 정치적 맥락에서 몇 개 출판사를 전전한 끝에 발간되었다.『재인식』은『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이하『해전사』)을 주요 비판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공언했지만,『해전사』는 10여 년(1979˜1989년)의 세월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집필하여 총6권으로 나온 책이기 때문에 일관된 시각과 관점을 확보하고 있지는 못하다.『해전사』는 한국현대사가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도 확립되지 못한 시기에 발간되어, 민족문제와 국토분단의 문제를 학문적으로 제기하면서 현대사 연구 붐을 조성하였다. 당시『해전사』는 사회학계와 역사학계의 최신 연구성과와 동향을 수록하여 해당분야의 길잡이 역할을 하였고 한국현대사 연구를 촉발시켰지만, 자료 부족 등의 상황으로 해당 주제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에 머물렀다.
『해전사』가 새로운 주제, 새로운 필자, 새로운 문제제기로 이루어졌던 것에 반하여, 이번에 출간된『재인식』은 기존에 이미 발표된 논문들 ― 심지어 1960년에 발표된 논문을 요약한 글도 있다 ― 을 편집자가 주제에 따라 새롭게 배열하는 것을 통해 각 논문의 위상을 부여했다.『재인식』필자들과 편집자간에는 시각이나 역사상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재인식』을 하나의 통일적인 주장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재인식』의 편집자들이 개별 논문들을 배치하고 이용한 '편집 기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들의 주장이 비교적 분명히 드러나는 머리말과 토론을 보면, 이 책의 발행 목적이 이른바 '좌파 민중주의'를 겨냥하고 역사적 기억을 정치적 싸움의 장으로 택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논문 형태로 별도로 존재하던 각 분야의 논문을 하나의 단행본으로 묶어내려 한 것은 역사상에 대한 개별적 수정이 아니라, 한국현대사의 역사상(歷史象)에 대한 '전면적' 수정을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개별적으로 분산되어 있던 보수적 시각을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좌파 역사상에 대한 전면적 수정 시도는 과거사 청산 국면을 적극 돌파하려는 보수 우익세력의 구도와 맞닿아 있다.『재인식』편집자들 중 일부는 뉴 라이트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재인식』은 탄생부터 순순한 학문의 장이 아니라, 보수 정치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생산되고 유포되었다. 『재인식』 발간에 즈음하여 조선일보는 유례 없이 매일 한 면 이상씩을 할애하고 찬반 논쟁을 유도하여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결과 『재인식』은 서점에 즐비하게 깔렸고, 인문서적으로서는 예외적으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독자들 대부분은 이 책에 실린 논문 모두를 읽고 소화할 만큼 전문적인 소양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또 논문을 꼼꼼히 읽어볼 만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보수적 학자들이 정리한 대로, 좌파 민중주의에 치중하지 않은'균형 잡힌 역사', 자신의 과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도 좋은 '영광스러운 역사'를 주장하는『재인식』을 구입함으로써 과거에 대한 보수적 역사상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만족을 얻고 싶을 따름이다.

『재인식』은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재인식하려 하는가?

『재인식』은 좌파적 역사인식에서 벗어나 한국 현대사의 역사상에 대한 근본적 시각 전환을 주장하고 있지만, 새로운 사료 발굴 그리고 이에 기초한 엄밀하고 정확한 사실적 접근의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단 한 명의 전문 역사학자도 참가하지 않은 『재인식』은 사실에 대한 취사선택과 특정 사실에 대한 부조적(浮彫的) 방법이 주로 사용되고 있어 일일이 사실을 확인한다는 것은 소모적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의 중요한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편집자 토론 등에서 분명하게 의견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재인식』이 의도하는 현대사 재인식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재인식』의 편집자들은 좌파 학자들이 한국현대사를 침체, 좌절, 혹은 왜곡의 연속 등 암울하고 부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편집자 중의 한 사람은 부정선거 등의 이미지에 갇혀 이승만 정권을 부정적으로만 보았었는데, 그게 아니라 '시대의 총체적 경험 부족의 결과'였다 라고 생각하게 됐으며(657쪽), '우리 역사를 부끄러워하지 말자'(683쪽)고 말한다. 다른 한 사람은 1950년대를 혼돈, 무질서, 무계획, 방임의 시대라고 지적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치밀하고 일관된 정책이 있었으며, 이승만 정부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졌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경제적으로는 수입대체공업화를 추진했고, 정치-군사적으로는 한미방위조약이라는 최대의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평가한다. 1950년대의 이런 성과가 있었기에 1960년대의 건설이 가능했다는 것이다(676˜677쪽).
편집자들 주장의 밑바탕이 된 것으로 보이는 유영익의 논문(『거시적으로 본 1950년대의 역사 ― 남한의 변화를 중심으로』)은 1950년대의 긍정적인 공과를 '창조적 변혁의 전환기'라는 시각에서 정리하고 있다. 그는 1950년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자조증(自嘲症)', '역사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과거를 긍정적으로 볼 것을 제안하면서, 1950년대가 '자유, 평등, 민주주의 등 보편적 이상을 향해 전진을 계속했던 시기'라고 투영하며, '1950년대에 축적된 민력(民力)을 바탕으로 1960년대의 경제기적과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이 가능했다'고 과감하게 주장하고 있다.『재인식』의 편집자와 일부 필자들의 이 같은 주장은 전후 세대 민주교육을 '자학사관'으로 비판하는 일본 우익세력의 논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1980년대 이후의 역사연구가 과거 부정으로 일관하면서 자학한 것은 아니었다.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긍정을 볼 수 있는 곳은 보수 역사학자들이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통치자에서 벗어나 '역사의 다른 결'을 읽을 때만이 가능하다.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키워 왔던 역사의 동력은 이승만, 박정희 같은 '지도자'가 아니라 밑으로부터의 힘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반발하여 일어났던 학생과 시민의 4월 혁명이 그렇고, 1980년 광주시민의 투쟁이 그랬으며, 전두환의 호헌 성명에 반발한 1987년 민주화투쟁이 그러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이룬 역사적 성과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랑스러운 역사이며, 아직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제도적 민주주의의 안착과 인권 영역의 점진적 확대는 수십 년 간 진행되어 온 민주화운동의 성과라 할 것이다.
『재인식』의 편집자들은 이러한 긍정적인 면과 희망을 외면한다. 그들은 지도자에 대한 부정적 평가=역사에 대한 부정적 평가라고 단정하면서, 지도자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첫 번째 대상이 초대 대통령 이승만인데, 그는 '건국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박지향은 제1공화국 시기의 정치적 무능력과 악행을 '누가 대통령이 되었건, 어느 누가 정치엘리트가 되었건 한 번은 겪었어야 할 혼란'(657쪽)으로 가볍게 넘기려고 한다. 지도자가 감당하기 힘든 버거운 주제가 나타날 때는 역사에 대한 구조적 인식이 드러나는 것 같지만, '이스라엘과 베트남을 제외하곤 한국이 미국 원조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인데, 그것만 생각해도 이승만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677쪽)라는 언급을 들어보면 구조적 연관을 생각할 부분에서 개인의 공적으로 돌려버리는 전도를 목격하게 된다. 사실 편집자들의 역사인식은 지도자에게만 편중된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적이며 영웅주의적이다.
분단정권이라는 업보를 갖고 탄생한 이승만 정권은 지지 세력의 빈약함 때문에 정권수립 초부터 내적 저항에 직면해야만 했다. 지지기반의 공백은 국가보안법이나 계엄령 같은 법제적, 물리적 조치를 통해 봉합되었고, 한국전쟁 전후 약 100만 명의 민간인이 군경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자국의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경이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한 것을 '시대의 총체적 경험 부족의 결과'라고 한다면, 지배세력의 경험이 축적되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져야만 하는가?
지도자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은 과거를 무조건 긍정하려는 보수적 태도를 갖게 하고, 없다면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박지향은 '1948년에 나라가 생겼는데 1960년에 그만한 정도의 민주운동이 생겼다는 것은 그렇게 흔한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요.'(657쪽)라고 언급한다. 그녀는 4월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을 이승만 정부의 12년 간에 걸친 민주주의 '가르침'(658쪽)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현대사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에 이르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건국의 아버지'나 이전 세대들의 업적을 찬미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발언권을 강화시키려는 시도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 조선일보는 '이승만과 나라 만들기'라는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하였고, 비슷한 시기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는 이승만 전기를 장기간에 걸쳐 연재한 바 있었다. 독재자로 각인되어 있던 초대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살리기 위한 운동에는 유영익 교수 등도 한 몫을 했다.
민족통일 담론을 비난하면서 이영훈이 민족통일 담론이 '자기를 키워준' 국민국가(대한민국)를 부정하는 짓이라고 말할 때는 가부장적 분위기까지 느껴지기조차 한다(672쪽). 대한민국 국가 유지를 위해 내전적 상황과 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당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정말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혹시나 국가가 자유로운 개인의 발전을 도모하기보다는 공식 이데올로기와 법제적 장치를 통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지배적인 이념 외에는 다른 이념을 인정하지 않은 채 타자의 생명을 빼앗았다면 어떻게 그런 국가가 우리를 '키워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도자에 대한 깊은 관심과는 달리 『재인식』에는 민주화운동 또는 저항적 성격을 가진 인물이나 조직을 다룬 논문은 잘 눈에 띠지 않으며, 노동운동조직을 다룬 박지향의 글(「한국의 노동운동과 미국, 1945˜50」)이 유일하다. 박지향은 해방 후 노동운동의 실패 원인이 전평의 강경한 정치우선투쟁 노선에 있다고 하면서 대다수 노동대중은 이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한 민주적-자주적 노동조합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던 미국을 상대로 우리가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토론에서 박지향은 '당시 노동자들은 계급이나 사회주의 건설에는 관심이 없었다.'(666쪽)거나, 김일영이 '일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민족담론이나 계급담론을 생각하고 살았을까요?'(667쪽)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이념과 운동 주체를 분리시킴으로써 계급담론을 해체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지식인은 주로 이념을 통해 운동에 참여하지만, 대중은 실제 생활을 통해 운동에 돌입한다. 지배체제가 대중을 동원하거나 침묵시키는 것도 실제 생활을 통한 신체의 속박을 통해서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들이 처한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상태에 대한 자기 인식의 발전과정을 통해서라는 점이다. 해방 후 친일파가 다시 활개치고, 식량배급이 원활히 되지 않으며, 농지개혁이 미루어지고 뜻하지 않은 분단정권이 탄생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반발이 해방 후 사회운동의 주요한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전쟁을 거치면서 소멸되었던 노동계급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크게 성장하였다. 성장한 노동계급이 이러쿵저러쿵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족벌체제의 재벌구조로 이루어진 한국의 자본가에게는 매우 위험스러운 것이며, 노사협의는 쓸데없는 비용으로 간주되고 있다. 노조 없는 삼성이야말로, 사용자 측에게는 지향해야 할 유토피아인 것이다. 계급 담론의 해체는 노동자를 무이념적인 존재로 만들며, 궁극적으로 노동자가 스스로를 경쟁을 통해 도태된 존재로서 인식하게 하고, 성공한 기업가는 그만큼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불어넣음으로써 자본 운동의 무제한적 자유를 지지한다.

다음으로는 한미관계를 살펴보자.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시각은 분단의 책임을 소련에 돌리는 것과 바로 연결된다. 이정식은 미국보다 먼저 1945년 10월에 소련 군정과 북한이 이미 단독정부를 구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사 연구자들 대부분은 소련과 미국이 내부적으로는 점령 초기부터 단독정부를 구상하고 있었으며 이 같은 단독정부 구상은 분단이 고착화되고 미소냉전이 심화되면서 현실화하게 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1950년대 한미관계를 '서양에 대한 경멸적인 태도를 버리고 서양문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나 '우리 민족이 우수한 외래문명을 적극 수용했던 전통'이라는 주관적인 의도에 기대어 해석하는 데 있다. 그 결과 세계의 헌병이었던 미국은 한국이 '이용'한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유영익, 436˜443쪽).
1950년대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으로 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시기에 한미관계가 절정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배려는 5.16쿠데타 시기의 미국 태도에 대한 김일영의 평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장면이 수도원에 피신한 상태에서 미국에 쿠데타군을 진압해줄 것을 요청한 내용이 담겨 있는 최근 공개 문서를 역사학자들이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660쪽). 김일영에 따르면 미국은 간접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한국정치에 개입한 바, 미국에 이 사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해도 미국은 내정간섭이라고 욕먹을 짓은 안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요구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또 좌파 민족주의적 관점이라면 윤보선대통령이나 장면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주체를 빠뜨리고 미국에 쿠데타 진압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잘못된 평가라는 것이다.
쿠데타 당시 미국은 유약한 민주당 정권을 신임하지 않고 있었으며, 더 강력한 새로운 지배세력을 바라고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매그루더 주한 미 대리대사와 주한 미 사령관이 쿠데타 직후에 진압방침을 세웠음에도, 본국에서는 이런 이유를 들어 진압방침을 저지했던 것이다. 미국이 장면을 수도원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면서 쿠데타성공을 방조한 이유는 이런 데 있었다. 미국은 며칠 후에 군부 쿠데타를 승인했다. 미국이 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에서 무력과 공작을 통해 정권전복을 직접 시도한 예는 무수히 많다. 만약 미국이 군부 쿠데타세력을 원하지 않았다면, 진압작전에 직간접적으로 나섰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김일영은 미국이 노골적으로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 나라라는 잘못된 편견을 근거로 미국에 쿠데타 진압 방기의 책임을 묻지 말고, 대신 윤보선 대통령이나 장면 같은 '주체'에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하던 미국의 책임은 두말없이 면해주는 반면, 수도원에 갇혀있던 장면이나 민주당정권에 반대하던 윤보선의 책임을 묻는 것은 매몰차다. 이것이 사료를 독해하고 민족주의를 비판하는『재인식』 편집자의 방식이다.
미국에 대한 무비판적인 평가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과 떼 놓을 수 없다. 미군정시기에 자본주의의 초석을 쌓은 한국경제는 1950년대 중반까지 미국 원조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없었다면 자본주의 성립은 물론 생존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 의존은 한국경제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재인식』의 논문과 편집자들의 기본적인 인식과 글의 맹점은 자본주의를 주어진 체제로 본다는 점이며 양적인 경제성장만을 발전의 지표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른바 '자본주의 근대화론'으로 수렴되는 필자들의 주장은 민주주의 발전과 민중운동에 대한 무시, 계급적 주체 해체, 한미동맹의 강조 등을 통해, 어떻게 하면 한국자본주의를 저항 없이 양적으로 팽창시킬 것인가라는 현실적 문제의식에 모아지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재수정을 목표로 하는 『재인식』의 편집자들은 박정권 시기의 한국자본주의 발전을 우리 역사의 거대한 성과로 전제한 다음, 1950년대를 1960˜70년대 경제성장의 밑바탕을 이룬 시기로 규정한다(소급적 적용과 기원 찾기는 일제시기로까지 확장된다). 이런 방식을 통하여 침체기로 규정되었던 1950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사유재산의 보호 및 자유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원칙이 확립되었고, 공업과 상업을 중시하는 경제체제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으며 높은 경제성장률이 지속된 긍정적 시대로 부각된다.
자본주의 발전을 사회발전의 진정한 목표로 설정하고, 다른 분야의 발전을 도외시하거나 부차적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 근대화론은 일제시기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그 역사적 기원이 상당히 깊다. 일제시기 안창호의 근대화론과 개량주의자들의 주장에서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만만세!' 구호는 박정희 경제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에 넓게 파급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박정희 경제개발 신화로 남아 현실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양적 경제개발을 사회발전의 최고 가치로 평가하는 개발론자에게 노동운동을 억누르며 개발연대를 장기지속 시킨 박정희는 하나의 준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근대화를 통해 평균 9%를 웃도는 GNP 성장률을 이룩한 박정희 개발연대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박정희 정권기의 자본주의 발전을 바라보는 보수적 시각은 ① 경제발전의 공적을 박정희(정권)의 개인의 지도력과 창조력으로 돌리면서 ② 다른 요소보다, 다른 부문을 희생해서라도 경제성장이 제일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성장 제일주의󰡑와 ③ 경제성장이 사회발전과 민주화의 필수적인 전제라고 보는 경제성장 우선주의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1960˜70년대와는 달리 1950년대는 미국 원조와 차관으로 한국 경제가 간신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경제개발의 신화는 그 내용을 변형시킬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미국의 경제 장악력과는 관련 없이, 이승만과 관료자본의 자율적 영역만을 높게 평가한다던지, 수입 대체화 정책을 높게 평가하는 등의 논리이다. 결국 1950년대 경제발전에 대한 평가는 박정희 신화에 근거한 1960˜70년대의 자본주의 근대화론을 시대적 상황에 맞게 풀어낸 또 하나의 판본에 불과하다.
뉴 라이트 세력은 김영삼이나 김대중 정권 하에서 구 보수세력이 주장했던 이른바 산업화세력과 민주세력의 수렴조차 말하지 않는다. 양대 세력의 화합을 주창했던 구 보수세력은 자본주의 발전을 수행했던 박정희 등의 이른바 '산업화 세력'과, 집권자들의 권력행사 방식을 비판하고 독재에 저항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재야 민주화 세력이나 운동권을 통합시키려고 시도한 바 있다. 김종필은 1993년 5월에 이른바 '기승전결론'을 주장하여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 역사에서 동일한 비중의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발언은 김대중 대통령에게서도 나왔다. 수십 년 간 제도권과 재야를 넘나들던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정권에 김종필 등의 산업화세력이 참여하게 되자, 역사적 과정이 상이했던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운동세력의 역사를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가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박 정권의 탄압으로 죽음의 위기까지 경험했고 이를 남들에게 항상 자랑스럽게 얘기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은 6?25 이후 실의에 빠지고 폐허 속에 있던 나라에서,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분이며, '역사 속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기념사업 지원을 약속했다.
역사적 경험이 상이했던 두 세력을 통합시키고, 과거를 영광으로 채색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김대중 정권이 근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운동세력과의 연합이라는 정치권력의 분배에 기초해 있었다는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현재 근대화세력의 맥을 잇고 있는 보수우익세력(한나라당, 뉴 라이트세력)은 권력지분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야당 신세에 머무르거나 구보수를 혁신하는 신보수를 표방하며 정권과 대치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정세는 민주주의 운동사에 대한 무시, 과거정권의 경제개발 성과에 대한 찬양 등으로 더욱 더 보수적인 역사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대한민국 국가형성의 문제이다.『재인식』은 기본적으로 민중주의 역사관을 비판함과 아울러 민족주의의 과잉에 대해서도 비판의 화살을 겨누고 있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국가 형성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면에서『재인식』편집자들의 얘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김일영은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이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승만 정부의 국민형성은 반공에 근거하고 있고 인권침해 등의 부작용을 낳았지만, '반공정책이 지닌 억압성 이외에 또 다른 측면 즉 한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형성을 통한 통합의 효과'를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669~670쪽). 김철도 반공을 이용하여 국민을 포섭하고 배제했던 공포의 역사를 비판하고 있다(671쪽).
편집자의 말 그대로 국민 국가형성의 역사는 포섭(통합)이든 배제이든 폭력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656, 669, 673쪽). 1950년대에 국민이란 반공국민이었고 국민통합이란 반공국민을 만들어 나가는 역사였다. 반공국민 형성은 이승만 정권 수립 초기부터 시작되어 한국전쟁 전에 어느 정도 법-제도적, 조직적 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반공국민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국가보안법 제정과 보도연맹 창립 그리고 민간인학살이었으며, 성과조차 의심되는 농지개혁은 상당히 부분적인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승만 정부는 여러 계기를 통해 국민 개개인을 국민으로 인정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비국민(빨갱이)을 분류하는 살벌한 과정을 진행했다.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는 이미 한국전쟁 전부터 철저한 배제의 대상이었으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반공 국민임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만 했다. 따라서 반공정책이 지닌 억압성이 따로 있고 통합의 긍정적 효과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김일영은 왜 이 시점에서 민족주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민국가형성 과정을 살펴봐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 동요를 절감하고 있는 그로서는 '정체성 위기의 시기'(670쪽)를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비록 억압적인 면이 있어도 국민 통합(형성)에 효과가 있다면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통합적 정체성 형성을 국민국가형성의 제일 목표로 삼고 있는 지극히 우익적인 사고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통일적인 국민형성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도 지배층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지만, 반공의 이름 아래 국민에서 배제되어 그 정부의 손에 죽어간 수십만의 피해자들 앞에서 약간 억압적인 면이 있어도 국민을 위해 좋은 것이 아니냐고 과연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이와 같이『재인식』편집자들은 민족주의 비판을 위해 민족국가형성의 이론적 틀을 빌려 왔으나,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우리 역사에서 되풀이되어 왔던 우익적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반공국가형성 역사와 반공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상당히 표피적으로 진행될 뿐이며, 반공주의의 작동방식이 자신을 대상으로 하여 겨누고 있다고 생각될 때만 강한 비판이 퍼부어진다(671쪽).

(사진출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www.genocide.or.kr))
1950년대에 국민이란 반공국민이었고 국민통합이란 반공국민을 만들어 나가는 역사였다. 이승만 정권 수립 초기부터 시작되어 한국전쟁 전에 법-제도적으로 틀이 잡혀가기 시작한 반공국민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국가보안법 제정과 보도연맹 창립 그리고 민간인학살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여러 계기를 통해 국민 개개인을 국민으로 인정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비국민(빨갱이)을 분류하는 살벌한 과정을 진행했다. 사진은 2000년 5월 지리산 외공 학살지 발굴 현장 사진. 범국민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밝혀진 것만 94곳에서 국군과 경찰 등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학문과 정치의 경계?

금년 초 전경련, KDI, 재경부 등은 서로 합심하여 시장과 경쟁을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경제관련 교과서의 내용들을 수정하거나 삭제하였다. 경제단체들은 학생들에게 자본주의, 시장, 경쟁, 기업의 목적, 산업개방, 세계화 흐름을 이해하게 함으로써 경쟁이야말로 개인과 사회발전의 동력이며 교역확대를 위해 자유무역협정(FTA) 등이 필요한 것임을 받아들이도록 교과서 내용을 개편하였다.
경제관련 단체가 교과서 내용에 대해 수정을 요구한 것처럼, 역사교과서에서도 이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수십 종의 검인정 역사교과서 내용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 여의도연구소는 초-중-고 역사교과서가 북한체제에 대해서는 내재적'중립적'우호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자학적 대한민국 관을 가지고 서술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교과서가 반시장'반기업'반세계화 경향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여의도연구소, 『초-중-고 교과서의 편향성 분석』).
여의도연구소도 인정하는 것처럼 무엇보다 교과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술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의도연구소의 지적을 보면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오류를 지적한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의 지적사항이 '……했을 것이라고 암시', '……지나치게 부각' '…성향을 보임' 등의 주관적인 판단 기준으로 교과서 내용을 평가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의 세계정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모택동의 사진과 비동맹운동을 소개한 것을 두고, '진보세력(전교조)의 반미-노선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거나, 한국의 현대사를 '분단의 역사'라고 서술한 것에 대해 산업화'민주화'세계화를 무시하고 분단만을 강조하여 우리 현대사를 부정하고 폄하했다고 주장하였다.
뉴 라이트 진영도 『창작과 비평』과『역사비평』등을 좌파 잡지로 규정하고, 이들과 사상전을 전개하기로 하는 한편, 대안교과서를 발간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방식은 일본 우익세력이 자국의 교과서를 자학사관으로 비판하여 문제화하고, 이를 통해 대중적 관심과 경제단체의 후원을 얻은 다음 보수적 연구자들로 하여금 후쇼사 교과서를 펴내게 한 전례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인식은『재인식』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재인식』은 '교육현장의 교과서가 좌파에 의해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우려'(681쪽)하면서 자신의 역사를 부끄럽다고 가르치는 역사교육이나 '증오와 원한의 철학'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683쪽)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재인식』의 편집자 대부분은 토론과정에서 최근의 역사학계와 사회과학계가 '현실적-정치적 이념에 봉사'하고 학문을 도구화시키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심지어는 한국지성의 위기이자 파탄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나『재인식』을 발간하려 마음먹은 문제의식의 출발 그리고 발간, 소비 과정은 정당, 언론, 교육 분야에서 서로 호흡을 맞추면서 지극히 정치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재인식』은 정치와 학문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비난하고 우려했지만, 그들의 경우에도 이 경계는 여지없이 허물어져 버렸던 것이다.
역사학의 기초는 무엇보다 사실에 대한 엄밀한 검증과 평가이다. 이런 의미에서 편집자의 한 사람인 이영훈이 사료에 대한 기초 연구를 먼저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은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는 일제시기의 친일파 상황을 일별할 수 있는《총독부 및 부속관서 직원록》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면 수많은 친일협력자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고 수십 편의 논문을 쓸 수 있는데, 이런 기초적인 작업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는 기초 연구도 안 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연구자들이 정치와 결탁하고 있다고 개탄했지만, 그는 이 자료들이 이미 인터넷에서 데이터베이스로 제공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한국사 데이터베이스로 직원록자료는 1908년판 ≪대한제국 직원록≫, 1910년부터 1943년까지의 ≪조선총독부 직원록≫, 1952년판 ≪대한민국 직원록≫을 디지털화 하여 (http://www.history.go.kr)에서 제공되고 있다).
『재인식』의 편집자들은 학문이 정치적 수단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기 이전에 과연 자신들의 주장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된 것인지를 먼저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이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확인과 검증은 주장이 주장으로 성립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재인식』에 실린 논문들의 주장은 필자마다 차이가 있고, 일부 필자들은 편집자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재인식』을 통틀어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머리말과 토론에서 드러난 편집자들의 주장은 학문적 토론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를 의심할 정도의 검증되기 힘든 과감한 정치적 주장들로 채워져다.
이제 한국현대사에 관한 역사적 기억은 정치적 쟁투의 한 복판에 들어와 버렸다.『재인식』의 출간으로 힘을 얻은 뉴 라이트 진영은 앞으로도 대응 교과서 개발 등의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겠지만, 과연 얼마만큼의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양적 경제성장만을 제1의 가치로 여기고, 경쟁이야말로 개인과 사회발전의 동력이라고 믿으며 경제개발만을 근대화의 목표로 추구하는 한,『재인식』의 편집자들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근대화론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남 이승만 연구 - 한국 근대국가의 형성과 우파의 길 역비한국학연구총서 26
정병준 지음 / 역사비평사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유명한 작품이 된 것은 미 남북전쟁기 전쟁을 겪는 미국인의 유형을 네 가지로서 주인공 네 사람을 표방하여 분석한 것이나 다름없어서이라고 나는 판단하고 있다. 레트 버틀러는 그 중 경쾌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결코 유쾌한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 전쟁을 활용하여 치부를 하고 그것으로 종전 이후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다져간다. 그러나 그는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려고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쓰며 자신의 마을의 어른들에게 빠짐없이 인사를 하고 애쉴리의 나약함을 비웃고, 그 아내의 진실성을 간파하는 인간미를 과시한다.

갑자기 레트 버틀러가 생각난 것은 왜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려지는 이승만이라는 인간형에 대한 점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초대대통령인 그의 인간형을 그리면서, 레트 버틀러라는 인간형에서 경쾌함마저 배제한 싸늘한 시선을 포함한 점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좋은 가을 밤, 아이들을 간신히 재우고 얻은 독서시간에 나도 참, 시나 소설을 읽지 못하고 결국은 손뻗은 것이 이 책이다. 술술 읽혀가는 것이 야밤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며, 잠깐 읽다 멈춘 것은 휴게소에 잠시 내려 담배 한 대 끄슬릴 때 그 기분이다. 나야 관심사의 '바로 그!' 책이고 손안대고 가려운 곳을 긁게 되는 기분으로 저자의 수고에 감사하며 읽는 처지니 아주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 어떨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재밌고 흥미로운 사실들로 가득 찬 책이다.

이렇게 잘 읽히는 책 자체에 대한 기분을 잡치는 것은 이 책을 풍부한 자료로서 드러나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풍모.

이 책에 대한 서평, 다분히 감정적이지 않을 수 없겠다.

나는 어쩌다 한국현대사의 여러 자료를 관심읽게 읽어가고 있을까, 애초에 몰랐다면 마음편히 살 것을.

읽어갈수록 부끄럽고 치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라에서 아옹다옹하면서 산다는 것 자체가.

새삼스럽게 냉소적이고 새삼스럽게 부끄러울 필요 없고 어차피 새로 돋는 아침이면 다 잊고 또 하루를 살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기분은 "윤치호일기" 읽을 때와 동일한, 아니 더 수치스럽다는 기분이다.

일제 치하 이후 해방과 건국과정의 격동기에 이 땅의 지식인계층,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의 모양새, 사적이고도 공적인 '자수성가' 과정은 어쩌면 이다지도 외세의존적인가? 외다리신세인가? 한 개인의 생존과 안정, 안존을 위한 가치관과 삶의 태도 그 자체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한없이 부끄럽다. 그 얄팍한(미국화, 기독교화=서구화, 근대화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그 현실주의) 꿈과 미래에 의지하여 한 나라를 건설하고 최고위층에서 버젓이 최고의 권력을 영위하였단 말인가? 독재의 기틀을 다지면서?  권력투쟁에서 밀려나간 이 땅의 수많은 인민들의 피가 덧없다. 

그 얄팍함이 이 땅의 모든 다른 새로운 꿈들의 숨통을 조이고 말살시켰다니, 한 사람의 정치적 야망과 생존을 위한 외교술, 선교목적의 식민지 엘리트 그 교육세례를 받은 자의 선택과 그 의식에 남한이라는 땅덩이의 정치적 의식과 발전의 수준이 좌지우지되는 것으로 결론맺었다니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책 읽으면서 한숨을 쉰다. 아, 그래서 이기적인 기독교, 백인우월주의의 그것을 닮은 자본, 미국의 자본주의 그 꿈에 눈먼 채 파랗게 뻘겋게 핏멍들어가는 것이로구나 하면서 말이다.

아직도 키우지도 못한 채 싹틔워보지도 못한 채 잘려나간 자신의 꿈을 어디서 잃어버렸는가 주춤거리면서 말이다.

어쩌면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꿈일런지 모른다. 아직 꿈꾸지 못한 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 16세기와 17세기의 마법과 농경 의식 역사도서관 2
카를로 긴즈부르그 지음, 조한욱 옮김 / 길(도서출판)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밤의 전투>가 출간되었다.

신문화사 계열의 역사서를 주로 번역 소개해온 한국교원대학의 조한욱 교수가 옮긴이. 지금껏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글은 단행본 하나(<치즈와 구더기>(문학과지성사))와 <미시사란 무엇인가>(푸른숲)에 수록된 몇 편의 논문이 고작이었다.

새로운 역사서술의 흐름을 규정지을 때 흔히 우리는 "미시문화사"라는 용어를 쓴다. 이 용어는 이탈리아의 미시사와 영미의 신문화사라는 두 역사학 이론에서 공통되는 부분을 표현한 말이다. 공통되는 부분,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학문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두 역사학계에서 묘하게 일치하는 부분의 교집합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역사방법론에 대한 이론적 고찰과 같은 추상적인 담론에 몰두하는 연구자가 아니라 역사에 관심 있는 범용한 독서인이란 전제 하에 말하자면, 이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미시사가 얼마나 엄밀한 학문적 방법론에 입각해 있는가를 살펴보려면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글을 읽는 것이 최상이다. 미시사와 신문화사 사이의 접점인 "아래부터의 역사학"이란 모토는 사실 그 둘만의 공통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포괄적이고 성근 개념이다.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계량, 수치, 통계에 집중했던 역사학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일반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면서도 역사학의 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이런 장점을 지닌 책이 바로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종교학, 인류학, 민속학, 정신분석학 등 분과학문의 벽을 넘나드는 서술의 묘미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을 것이다. 이 책의 서술을 보면서 바흐친의 민중적 세계관이 생각났고, 오에 겐자부로 소설에 등장하는 잡종적 인간들(예를 들면, "타오르는 푸른나무"의 주인공인 성전환자)이 떠올랐다. 민중적 세계에 대한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견해는 서구역사에 대한 나름의 반성이라 할 수 있다.

질서정연한 고등종교인 가톨릭(정통 그리스도교)이 민중의 토착적 세계를 어떻게 잠식해 들어갔는가를 잘 보여주는 수작이 바로 <밤의 전투>다. 우리 발밑 깊숙한 곳에는 오래전에 용솟음쳤던 물길이 아직도 흐르고 있다. 비학적인 세계와 이단적인 세계의 역사가 사멸하는 순간 근대성의 미약한 첫울음이 들리기 시작했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아직 이 세계의 마법은 풀리지 않고 있다. 여전히 우리 가난한 이들은 믿음을 지푸라기처럼 붙잡고 산다. 옛날에도 그랬듯이! 주술과 마법의 세계에 살아가면서, 생산성과 풍요를 갈구하던 민중세계의 풍속을 기묘한 기하학적 무늬의 만화경처럼 펼쳐내는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솜씨가 감탄스러울 뿐이다. 이 책은 그의 처녀작이다.

1989년 대작 <밤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있는 긴즈부르그의 관심사, 마법과 주술사, 마녀들의 집회 등 민간신앙에서 유럽문화의 본질과 문명의 본질을 캐내는 뿌리로의 탐색, 그 드넓은 세계로 나가는 첫번째 관문인 셈.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저작들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짚고넘어갈 것 한 가지.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이름을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의 문제에 관해. 나는 외래어인명표기법의 용례에 준해 '긴'이 아닌 '진'으로 알고 있었는데, 옮긴이인 조한욱 선생께서 직접 답변을 주셨다. "카를로 긴즈부르그!"  이게 맞다는 말씀을. 옮긴이 조한욱 선생께서 직접 당사자에게 확인한 바 있다고 하신다. (저자 긴즈부르그가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는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외람되게도 선생의 이탈리아어 실력까지 의구심을 가졌으니 무식이 지나치면 용기가 아닌 만용이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이렇게 한 수 배웠으니, 그럼 다시 쓰자. 국내에 출판된 카를로 '진즈부르그'란 표기는 실제 불려지는 것과는 상관없는 국내용 이름이라고. 프레드릭 제임슨(프레드릭 제머슨)이 국내에서만 통용되듯이. 하지만 당사자가 들으면 자기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매너있고 바람직해 보일 것. 그러니 "카를로 긴즈부르그"라 정확히 부르자. 그리고 이 책은 오랫동안(10여 년) 카를로 긴즈부르그 문하에서 공부한 긴즈부르그 제자인 이경룡이란 분의 눈과 손을 통하는 검토 감수과정을 세밀히 거쳤다고 한다.

역사학 전공자가 착오를 줄이기 위해 겸허히 자신을 내어놓은 모범적인 사례라 생각된다. 학술서에서 감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웬만한 사람은 잘 알고 있을 테니.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전후과정이 얼마나 지난하던가. 옮긴이부터 편집자까지 모든 이의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으니 그걸 잊지 말자.

각설하고, 역사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이 읽어도 그리 어렵지 않은 흥미진진한 세계가 이 책 속에 담겨 있으니 겁먹지 말고 펼쳐읽자. 책을 펼쳐 마법과 주술이 생생히 살아 있는 중세 이탈리아의 농촌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내일은 목요일. 어두운 들판에 나아가 회향풀을 손에 든 베난단티들이 수수를 든 말란단티들과 치열한 밤의 전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베난단티들이 이겨야 이 겨울의 경제불황이 끝날지 모른다. 베난단티의 승리가 풍요와 다산을 가져오기에.

번역본의 표지디자인이나 본문의 레이아웃 등 공들여 책을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명저에 걸맞게 성정을 들여 책을 꾸민 길출판사의 노력에도 격려의 박수를. 길출판사에서 준비중인 다른 인문학 명저들이 속속 출간되길 기대해본다. 특히 벤야민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원미동 시인 > 답사만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경주 답사여행의 길잡이 2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 / 돌베개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경주를 좋아합니다. 시가지 자체는 어수선하고 갑갑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시가지를 벗어나면 느껴지는 분위기는 누구나 좋아할 것입니다. 가을 단풍이 한창일 무렵 아침 햇살을 안고 추령고개를 넘어가 보셨는지요? 혹은 5월말 경주의 보리밭 사잇길을 걸어 보셨는지요? 이런 체험을 가진 분이라면 아마도 그 순간 당신이 전생에 경주에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석양에 물든 인적 없는 감은사지에서 누군가와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이런 체험을 가진 분이라면 아마도 그 순간 당신과 그 사람의 인연은 전생에서부터 비롯된 유구한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저는 경주를 여행할 때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답사 여행의 길잡이”로서 이 책을 가지고 다니리라는 실용적인 이유에서보다는 다만 이 책이 경주에 대해서 다루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이 책을 단순한 “답사 여행의 길잡이”로만 알고 계시는 분들은 제가 이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책은 “답사 여행의 길잡이”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외국에서 출판된 유명한 여행 안내서 시리즈에 못지않게 유용한 정보들을 알차게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가치를 “답사 여행의 길잡이”로만 한정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 이 책이 주는 인상은 여행 정보 이상의 것입니다.

우선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인문학의 아취가 느껴집니다. 여타의 여행 안내서라면 분명히 다루지 못했을 학구적인(?) 글들을 읽으며 이 책만이 선사할 수 있는 우아한 교양을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책에는 경주에 대한 엮은이(들?)의 오랜 애정이 한 줄 한 줄의 문장마다 스며있습니다. 유홍준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같은 책도 좋기는 하지만 이 책의 경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던 땀냄새와 우직한 애정과 기나긴 시간의 흔적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껴집니다. 요즘 나오는 책들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도판이나 현란한 감탄사는 없지만 수수하고 성실할 뿐더러 영민함과 따뜻한 마음까지 갖춘 책이라고 해도 이 책에 대해서는 별다른 과찬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워낙 멋대로 돌아다니는 편이라 제가 경주에 갔을 때 이 책이 제공하는 모범적인 정보들에 의지했던 바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의 실용성에 의지했던 사례를 꼽으라면 좀 엉뚱하게도 원조 황남빵집의 위치를 이 책에서 찾아보고 갔던 경우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 비추어 “황남빵집 찾아가서 황남빵 사먹는 법 200% 활용하기”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황남빵집은 저녁 무렵에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멀지 않은 곳으로부터 가신다면 차를 타기보다는 걸어가는 편이 당신이 경주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황남빵집이 있는 골목까지 걸어가셔서 주위의 여러 황남빵집 중 어느 집이 과연 원조일지 알아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무사히 원조집을 찾아 들어가셨다면 빵집 구경도 하시고 당신의 예상보다는 비쌀 빵값에 불평도 해보시길 바랍니다. 황남빵을 한 봉지 사서 나온 다음 석양을 안고 대릉원으로 천천히 걸어 가십시오. 어지간한 건물 보다 큰 무덤들 사이 사이의 잔디밭을 걸어도 좋고 무덤을 등반(?)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카메라를 가지고 가신 길이라면 주위를 어슬렁 거리고 있을 동네 건달들이나 교복 치마를 걷어올린 깻잎 머리 소녀들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해서 찍어두면 또한 좋은 기념이 되겠지요? 그리고 무덤 위든 무덤 옆이든 원하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황남빵을 한 입 드셔보세요. 천년의 고도위로 달이 뜨고 별도 뜰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삶이 지금의 이 생에만 걸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겨 기억나지 않는 당신의 전생을 더듬어보려 하게 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