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 최신 원전 완역본 코너스톤 착한 고전 시리즈 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미영 옮김, 김선형 / 코너스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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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고전 명작이자 최고의 책

[데미안]이 이번 독서모임 선정된 책이라 진짜 오랜만에 재독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작가나 책이 무엇이냐 물으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헤르만 헤세’와 [데미안]을 꼽는다.

그 정도로 나에게 있어 이 책은 정말 인생책이다.

그런 책이 독서모임으로 선정이 되었으니

어떻게든 참여를 할 수 밖에 없었고

또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했다.

내가 소장한 [데미안]은 민음사에서 출판한 것인데

이 책은 본가에 있어서 한동안 본가를 갈 일이 없어서

도서관에서 대여를 했는데 이번엔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데미안]을 접해보기로 하고 고른 것이

미르북컴퍼니에서 출판한 [데미안:1919년 초판본 오리지널 표지디자인]이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데미안을 읽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민음사 버전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를 할 순 없지만

다시 ‘싱클레어’와 ‘데미안’을 만날 생각에

즐겁고 설레는 맘으로 글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데미안]은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상급생 친구를 만나면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 ‘프란츠 크로머’라는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가 약점을 잡혀서 이용을 당하게 된다.

원래 자신이 속한 가정의 선한 세계와

‘프란츠 크로머’에게 이용당하는 악한 세계에서

방황을 하며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은 힘든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 ‘데미안’을 만나게 되고 ‘데미안’이 ‘프란츠 크로머’와의 악연을 끊게 도와준다.

그 후 ‘데미안’과 큰 접전이 없다가

교회의 견진성사 시간을 같이 듣게 되면서 서로의 인연이 깊어지게 된다.

이 때 이후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있어 멘토같은 존재가 된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성장하면서 방황을 할 때 마다

‘데미안’을 만나면서 구원을 받게 되고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지 점차 깨닫게 된다.


정말 몇 년만에 다시 읽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말 좋은 책이다.

다시 읽어도 이렇게 좋다니 다시 읽기를 정말 잘 했다.

읽으면서 내가 왜 [데미안]이라는 책을 이토록 좋아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생각한 결과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보물같은 문장들이 많기에 그런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데미안]은 마치 소설판 자기계발서라고 봐도 될 정도로

훌륭하고 멋진 책이다.

그러다보니 역시나 책에 수많은 플래그잇이 붙게 되었다.

이걸 다 옮길 생각에 걱정도 좀 되었지만

이런 보물같은 글들을 표시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너무 좋은 책인데 너무 많은 가르침을 얻어서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안되서 리뷰를 어떻게 써야될지 혼란스럽다.


이번에 읽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든 것은

‘나는 온전히 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였다.

세상에 맞춰사는 인생이 아닌

내 안의 나가 원하고 바라는 그런 인생을 지금 살아가고 있는지 참 의문이 들었다.

‘싱클레어’에겐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배움을 주는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을 만나면서

결국 답을 찾았다.

나는 과연 어떤가?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고민을 하고 배움도 얻었지만

명확한 답은 아직도 없다.

단지 내가 현재 바라는 삶만 존재한다.

그건 바로 부자가 되기이다.

남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서의 부자이다.

내가 원하는 차와 바다가 보이는 집 등등.

마지막에 ‘에바 부인’이 ‘싱클레어’에게 말했듯이

진정으로 바라던 꿈을 이루어지게 되어있고

이루고 나면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꿈이 다시 나타난다고.

그렇기에 난 이 꿈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질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건 [데미안]을 읽기 전인 [조셉머피의 부의 초월자]를 읽고

확신을 하게 되었는데 [데미안]을 읽고

더욱 이 믿음이 확고해졌다.

어떻게 보면 ‘끌어당김’의 소설판 같은 느낌도 든다.

난, 진정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 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서문 중

저마다 사람은 그저 자기 자신일 뿐만 아니라, 단 한번뿐이며 아주 특별한, 어떤 상황에서도 중요하고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세상의 많은 현상이 오로지 한 번 그곳에서 서로 교차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하나의 점인 것이다. 저마다 살면서 어떻게든 세상에서 뜻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숭고한 것이다. 누구 안에서든 정신은 형체가 되고, 누구 안에서든 신의 피조물인 인간은 괴로워하고 있으며, 누구 안에서든 하나의 구세주가 십지가에 메달려 있다

서문 중

‘사람들’은 자기한테 편리한대로 자기를 정당화하려고 하지. 사람들은 카인의 자손들이 무서웠던 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그 표적을 원래대로 우월한 훈장처럼 설명하지 않고 반대로 설명한 거야. 이 표적을 지난 사람들은 무섭다고 말한 거지. 또 실제로 그렇기도 했겠지만. 용기와 개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니까. 두려움 없는 강한 족속이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매우 견디기 힘들었겠지. 사람들은 그래서 강한 족속들을 위험에 빠뜨릴 음모를 꾸민 거야. 자신들이 두려움에 떨었던 것에 대한 반감으로 주홍 글씨 같은 낙인과 소문을 만들어서 퍼뜨린 거지. 내 말, 이해하겠어?

카인 중

사람은 누구 앞에서든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런데도 누군가가 두렵다는 건 나를 다스리는 힘을 타인에게 맡겨 버렸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네가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치자. 그런데 그 일을 다른 사람이 알아챘다면 그 사람이 너를 지배하는 힘을 갖게 되는거지

카인 중

그 소원이 정말 내 자신 안에 충만하게 스며들어 있고, 나의 모든 존재가 그것 하나로 가득 차 있을 때에만 상상하던 것을 실행할 수 있고 원하는 만큼 강하게 바랄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만 된다면 너의 내부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실행해 보기 무섭게 잘될 거야. 너의 의지를 훈련이 잘된 망아지처럼 다룰 수 있는 거지

예수 옆에 메달린 도둑 중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어.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베아트리체 중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중

나는 그 당시 예상치 못한 피난처를 ‘우연히’ 발견했다. 하지만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필요로 했던 사람이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혹은 자기 자신의 소원과 필연이 그곳으로 자신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중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진 마시오. 가령 자연이 당신을 박쥐로 만들었다면 타조가 되려고 애쓰지 말란 말이오. 당신은 번번이 자기를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소. 그런 생각을 버리시오.

야곱의 싸움 중

나는 시를 짓기 위해서나, 설교를 하기 위해서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도 그것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는 않았다. 이 모든 부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일 뿐이었다. 각자를 위한 진정한 천직이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단 한 가지뿐이다. 그가 설령 시인이나 미치광이나 예언자나 심지어 범죄자로 일생을 마친다 해도 좋다. 그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것은 결국 그리 중대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임의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 운명을 자신의 내부에서 송두리째, 그리고 온전하게 끝까지 지켜 내는 일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일부일 뿐이며, 도피하려는 노력이고, 대중의 이상 속에 숨으려는 재도피의 순응이고, 자기 자신의 마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야곱의 싸움 중

지금 연대로 보이는 것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하지. 인간들은 서로가 두렵기 때문에 서로에게서 도망치고 있어, 신사는 신사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끼리, 학자는 학자끼리 말이야! 그런데 왜 그들은 두려워하는 것일까? 사람은 흔히들 자기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두려움을 느끼지. 그들은 결코 자기 자신에게 귀의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내부의 알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을 품은 공동체라니!

에바 부인 중

“그래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꿈을 발견해야 하는 거예요. 발견하고 나면 길은 한층 쉬워지지요. 하지만 영우언히 계속되는 꿈이란 없어요. 또다시 새로운 꿈이 나타나지요. 어떤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돼요.”

에바 부인 중

표적을 지닌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상스럽다든가, 미쳤다든가, 위험스럽다고 여겨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개달은 자 혹은 깨닫고 있는 자들이었고 우리의 노력은 갈수록 완전해지는 깨달음을 위해 경주하는 데 있지만, 반면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행복 탐구는 그들의 의견, 이상과 의무, 생활과 행복의 기준을 군중의 그것에 점점 더 밀착시키려고 애쓰는 데 있었다. 물론 그곳에도 노력과 힘과 위대성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보기에는 우리들 표적을 지닌 자들은 새로운 것, 고립된 것, 미래의 것을 지향하는 자연의 의지를 제시하고 있는 데 반해, 그들은 다만 고집의 의지 속에 안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에바 부인 중

그녀는 별에 반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바닷가에 서서 손을 뻗치고 별에 예배했고 별의 꿈을 꾸고 자기의 생각을 별에 보냈다. 그렇지만 사람이 별을 끌어안을 수는 없음을 그도 알고 있어거나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충족될 희망도 없이 별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체념과 자기 개선과 정화를 시키기 위한 충실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한 편의 완전한 생명의 시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모두 별을 찾아갔다. 그는 어느 날 밤 다시 바닷가의 높은 벼랑 위에 서서 별을 쳐다보고 별을 향한 사랑을 불태웠다. 그리하여 동경이 절정에 달한 순간 그는 별을 향해서 허공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도약의 순간에 다시 한 번 번개처럼 생각했다. 정말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다! 그는 바닷가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사랑하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그가 뛰어올랐던 그 순간에 단단하고 확실하게 그 일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 정신력이 있었다면 그는 하늘로 날아 올라가서 별과 하나가 될 수 있었을 터였다

애바 부인 중

분명 예전에 읽었을 때도 감상문을 남겼는데

그 당시에는 공책에다가 적어서

확인을 못하지만 나중에 시간 날 때

그 때의 감상과 지금의 감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를 해봐야겠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면 다시 재독을 해야겠다.

그땐 또 어떤 보물들을 다시 발견하게 될지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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