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의 쇼 -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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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는, 본인이 역사 부인주의자는 아니지만 아마도 가족이나 교회의 지인들 중에서 그런 사람을 몇 명 알고 있는 사람들, 그런데 진화를 옹호하는 주장을 펼치기에는 스스로 아는 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런 독자들을 무장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p.21)

 

세심한 추론이 실제 관찰보다 훨씬 믿음직할 수 있다. (...)영상을 본 뒤에 나는 슬펐지만, 그만큼 현명해졌다.”(p.30)

 

 

흔히 주장의 힘을 싣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나와 같은 주장을 펼치는 이들과 힘을 합쳐 반대파를 고립시키거나, 반대파의 주장을 철저히 반박하여 무력화시키는 방법. <지상 최대의 쇼>는 정확히 후자의 방법을 취함으로써 궁극에는 전자의 목적까지 달성한 매우 영리한 책이다.

 

<지상 최대의 쇼>는 리처드 도킨스의 열 번째 책이다. 도킨스는 이 책을 자신의 잃어버린 고리라고 밝혔는데, ‘사람과 다른 동물들 사이에 빈틈이 있다라는 게 잃어버린 고리의 뜻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전작들은 모두 진화를 명백한 사실로 가정하고 그 작동법에 관해 논의했다면, 이 책은 진화가 사실인가 하는 근본질문으로 돌아가며 진화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가? 그렇다면 어떤 증거들이 있는가?”라는 두 질문에 끈질기게 답한다.

 

이 책이 매우 공격적이고 속 시원히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명확한 타깃층 때문이다.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에 대한 반박으로 구성된 이 책이 상정한 독자는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이다. 진화론이 너무도 익숙해진 지금, 그런 사람이 몇이냐 되겠냐며 의문을 던질 수 있지만, 이 책이 발간될 당시만 해도 미국 인구의 4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만연해있었다.

 

도킨스는 진화의 다면적 증거들과 현재진행형 진화 사례들까지 총망라하며 창조론자들의 주장 하나하나를 정확히 겨눈다. 이런 촘촘한 사례와 더불어 논쟁적인 투사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문체와 멋진 비유까지 겸비한 저자의 능력은 이 책을 진화론의 살아있는 화석으로 만들며 이 책을 어느 측면으로 봐도 만족스럽게 변모시킨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나서, 과학 분야를 비롯해 다른 분야에서도 도킨스 같은 논쟁적인 투사들이 발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 과정이 때론 지난하고 슬프겠지만 그만큼 우리는 현명해질 것이다, 도킨스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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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미래 - 인간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가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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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우리가 우주에서 발견한 것 중 가장 경이로운 구조물이며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p.512)

 

의식이 존재하는 모든 순간은 말할 수 없이 값지면서 깨지기 쉬운 선물과 같다. 이 사실을 안다면 삶의 목적을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커다란 목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511)

 

두뇌스캔, 텔레파시, 염력, 기억 저장, , 외계인의 두뇌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의 영역이었던 분야들에 답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답하는 이 책은, ‘문제해결의 답은 우리 안에 있다는 흔한 명제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구현해낸다.

 

이 책의 저자 미치오 카쿠는 물리학을 주제로 한 교양 과학서를 다수 집필하며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애써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인간의 마음과 뇌를 다룬 <마음의 미래>를 통해 대중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는 데 성공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집필하며 고수한 두 가지 원칙을 밝힌다. “첫째, 물리학 법칙에 기반하고, 둘째, 시제품이 존재하는연구 사례만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눈에 보이지 않던 수많은 영역에 가시적이고 논리적인 증거들을 제시하며 대중의 물음표를 성실하게 느낌표로 바꾼다.

 

책 속의 사례들은 물리학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물리학을 모르는 누구나 이 책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저자는 친절하고 쉬운 설명으로 대중과 보폭을 맞춰 나간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인셉션><이터널 선샤인> 등의 다양한 영화 속 장면을 분석하며 실현 가능성을 설명하고, “시냅스를 고속도로의 곳곳에 설치된 요금소라 하면, 특정한 약은 요금소의 차단기를 열어서 자동차(정보)가 아무런 방해 없이 통과할 수 있도록 해준다.”라는 설명이 대표적인 예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가장 빛나게 해주는 건 우리는 모두 별의 후손이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는 의식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생명체가 겪어온 길고 험난한 생물학적 사건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아무리 좋고 당연한 말이라도 그것이 구체적 근거 없이 상투적으로 쓰이면 진정성을 잃고 허공을 맴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라는 말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죽은 별의 잔해인 원자로 이루어진 게 우리의 몸이며, 이런 기적 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한 값진 존재가 생명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존재가, 실은 얼마나 많은 변수가 세밀하게 세팅되어 달성한 성과인지 묵묵히 이야기한다. 칼 세이건과 최재천의 과학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을 미치오 카쿠는 또 한 번 불러일으키며 독자에게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을 주는 안내자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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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의 트렌드로 읽는 세계사 - 빅뱅부터 2030년까지 스토리와 그래픽으로 만나는 인류의 역사
김민주 지음 / 김영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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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필승총이라는 말이 있다. 둔한 기록이 총명한 기억보다 낫다는 의미이다. 기록하지 않은 것은 모름지기 기억되지 않는 법이다.(...) 역사의 진정한 목적은 단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투영하는 것에 있다." (P.469)



어떠한 주제를 얼마나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지가 작가의 내공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세계사가 아닐까 싶은데, 이 책은 방대한 세계사도 어떤 설명방식을 택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 같다.

 

트렌드 전문가답게 저자는 트렌드·마케팅·경제·문화·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세계사를 바라본다. 저자는 책에서 여러 분야를 섭렵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폴리매스(POLYMATH)’를 지향한다고 밝혔는데, 그러한 지향점이 곧 이 책의 방향성으로 보인다.

 

유독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이 책의 목차가 전부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추리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 19세기에 이미 빅뱅 이론을 썼다고?’에서부터 ‘2030년 세계의 모습은?’으로 끝나는 에필로그까지,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 형태로 세계사의 주요사건을 언급하고 이에 답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또한, 설명이 끝난 후 각 장에는 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거리를 달아놓았는데 독자들을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 이렇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책을 만난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최근 들어 역사 관련 도서를 연속해서 읽고 있는데, 거시적인 역사를 한눈에 꿰뚫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세계사의 몸통을 먼저 만나기 전 곁가지부터 천천히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 책의 어느 부분을 펼치더라도 만나게 되는 질문들이 우리를 시공간을 넘나드는 세계사 여행의 길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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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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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소설을 쓸 때 머릿속에 많은 서랍이 필요합니다. (...) 소설을 다 쓰고 보면 결국은 쓰지 않은 서랍이 몇 개씩 나옵니다. 그리고 그중 몇 개인가는 에세이 재료로 쓸 만하군, 싶은 것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p.6)

 

하지만 내게도 에세이를 쓸 때의 원칙, 방침 같은 건 일단 있다. 첫째,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귀찮은 일을 늘리고 싶지 않다). 둘째,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뭐가 자랑에 해당하는지 정의를 내리긴 꽤 복잡하지만). 셋째,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기(물론 내게도 개인적인 의견은 있지만, 그걸 쓰기 시작하면 얘기가 길어진다). (p.32)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읽은 후 하루키의 다른 에세이가 읽고 싶어져 읽게 된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이 책은 일본의 패션 잡지 <앙앙>의 인기 연재 무라카미 라디오의 일 년 치 글, 52편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무라카미 라디오시리즈는 총 3권이 있는데, 그 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라는 이 책의 제목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책을 읽다 보면 책에 수록된 에세이 중 두 편의 제목을 합친 게 이 책의 제목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무라카미식 유머와 글의 색채가 함축적으로 담긴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 편의 글마다 곁들어진 귀여운 삽화들은 에세이와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각 편의 글 마지막에 하루키의 얼굴 형태와 함께 짧은 단상(혹은 아무 말)이 쓰여 있는데, 처음에는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이 달려있을까라며 추측하게 되고, 이후에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선물꾸러미를 풀어보는 것과 같은 약간의 설렘도 느껴볼 수 있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무척 담백하다. 하루키가 책의 첫머리에서 내가 쓰는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롱차같은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 말마따나 하루키는 소설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은 조금 내려놓고 소설가와는 분리된 정체성으로 에세이를 써 내려간다. ‘소설에서 채 열지 못한 머릿속의 서랍들에서 꺼낸 재료라고 하기엔 짧은 글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감상들이 때론 예리하고 묵직하다. 거창한 재료가 아닌 소박한 재료를 최선을 다해 요리하겠다는 하루키의 목적은 소소한 일상이라는 소재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둔감해졌던 독자들의 감수성이 쉴 공간을 마련해준다. 이 책을 항상 머리맡에 두며 자기 전에 읽었는데, 그만큼 하루의 마무리를 위해 힘 빼고 읽기 좋은 책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하루키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도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2012년에 출간됐다는 시기적 명분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소설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된 이러한 문제가 에세이로까지 옮겨간 걸 단순히 문학적 표현이라고 용인하며 넘어가기엔 그의 젠더감수성과 성적 대상화로밖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의 언어적 빈곤함에 작가로서의 실력이 의심된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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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세계 (양장) -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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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을 들어본 지 오래되었다. 편리성과 속도만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가 과거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과거로의 ‘회기’ 혹은 ‘퇴행’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문명이 시작된 것은 약 1만 년 전이고 문명 이전의 세계는 무려 599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류가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기에 ‘어제까지의 세계’는 무척이나 길다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말한다.

저자는 시종일관 다양한 전통사회의 사례들을 현대사회와 비교분석하며 두 사회를 저울질한다. “차이점과 유사점의 이런 복잡한 혼재가 외부인에게 전통 사회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라는 저자의 시각은 무게의 추를 현대사회보다 전통사회에 실으며 먼지가 쌓여 보이지 않았던 전통사회의 특징들을 선명하게 찾아낸다. 현대사회의 관점으로 전통사회를 바라보는 시혜적인 태도도 아니고, 전통사회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태도도 아닌 균형 잡힌 시각은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몰라도 현대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진단해준다.

일례로 책의 ‘2장. 사고, 그리고 죽음에 대한 보상’에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를 해결하고 보상하는 전통사회와 현대사회의 모습이 소개된다. 현대국가의 민사사법이 피해를 다루는 데 집중하고, 악감정의 해소와 화해는 부차적 문제로 다루는 데 비해, 전통사회의 보상 협상의 목적은 양쪽의 감정을 화해시켜 과거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다. 국가 사회에서 발생하는 분쟁 대부분은 전에도 서로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다시는 거래하지 않을 사람들 간의 문제인 반면, 전통사회에서의 분쟁은 지금도 어떤 관계가 있거나 앞으로도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할 사람들 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사회의 맥락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각각의 사회가 취한 행동이 납득가능한 최선의 방법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후에도 책에는 어린아이와 노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 변화, 위험에 따른 대처방법의 변화, 종교의 기능적 변화까지 흥미로운 주제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사실 744페이지에 달하는 벽돌 책이라는 점이 이 책을 읽는 진입장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진입장벽을 단숨에 상쇄할 만큼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무척이나 자세하고 친절하며 기대 이상으로 재밌다. 게다가 저자가 50년에 걸쳐 뉴기니와 인근 섬들을 비롯해 아프리카, 북미, 남미 등의 방대한 지역에서 진행한 현지 관찰과 연구 성과를 이만큼이나 압축했다는 건, 이 책에 담긴 내용이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낸 ‘정수(精髓)’라는 뜻이다. 한 페이지씩 넘기다 보면 599만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사회를 한 발 한 발 내 딛는 느낌이다. 어느 소설에서 ‘모든 미래는 과거를 품고 있다.’ 라는 문장을 읽었다. 같은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전통사회를 얘기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렇기때문에 가장 정확하고 진득하게 문명의 ‘미래’를 담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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