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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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1 역사학의 가장 큰 목표는 우리가 평상시 고려하지 않는 가능성들을 인지시키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이 과거를 연구하는 것은 그것을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제목 <호모 데우스>는 '신이 된 인간'을 뜻한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 인류의 큰 과제는 신처럼 창조하고 파괴하는 힘을 획득해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수많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증명됐는데, 대표적인 예가 책 속에 등장한 의학의 사례다.
 
저자는 “의학은 언제나 표준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을 구하는 일로 출발하지만 그다음에는 같은 도구와 노하우로 표준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형수술이 그렇고, 유전공학이 치명적 유전자를 수선하는 기술에서 최적의 유전자 조합을 지닌 아기를 선택하는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는 예측 또한 납득가는 설명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훌륭한 점은 미래의 모습을 다루는 저자의 관점에 있다. “역사학자들이 과거를 연구하는 것은 그것을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설명은 인류가 그동안 저지른 수많은 과오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을 내포한다. ‘신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실수를 범하는 인류의 본능을 인지하고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사례들을 다루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인류의 미래를 논의할 훌륭한 장을 마련한다. 종교나 진화심리학을 설명하는 저자의 냉철한 설명이 마냥 무책임하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이 책에 담긴 예측은 적어도 인류가 통제할 수 있는 범주의 것들을 다룬다. 과거에는 통제할 수 없는 비극이었던 기아,역병,전쟁이 오늘날에는 관리할 수 있는 난제가 되었다. “연극의 1막에 등장한 총은 3막에서 반드시 발사된다.”는 체호프의 법칙을 현 인류는 과연 깰 수 있을 것인가. 갈림길 앞에선 인류에게, <호모 데우스>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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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가 짧기 때문이라고요? - 유럽에서 중동, 아시아까지 성평등을 위한 카투니스트들의 외침
카투닝 포 피스 지음, 김희진 옮김,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서문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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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형마트 제품을 유기농 수제품으로 속여 팔아 논란이 된 미미쿠키 사태가 구매자들을 맘충이라며 비난하는 것으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사건을 다룬 온라인 기사 댓글을 보면 7개 중 1개꼴로 사건의 피해자인 구매자, 즉 자녀를 둔 여성을 비난하는 댓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여성 혐오와 더불어 성범죄의 피해자, 혹은 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며 비난을 가하는 건 사후확신 편향이라는 인지적 오류에서 기인한다.

 

사후확신 편향이란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편향에 빠져 판단과 결과 분석을 그르치는 것을 말한다. 페미니즘 카툰 <치마가 짧기 때문이라고요?>의 제목은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가해지는 대표적인 사후 확신 편향 멘트인데, 이를 단순히 인지적 오류로 이해하기엔 남성 중심, 가부장제 사회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을 단두대 위에 올리며 자신들의 위치와 권력을 유지해왔는지 책 속 그림들은 날카롭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림의 장점이 이 책에서 십분발휘된다. 전 세계 여성들이 겪는 고충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한 몇 장의 글보다, 한 장의 이미지는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 무력감과 절망을 더욱 직관적이고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마지막 장엔 한국 대표로 <며느라기>의 수신지 작가님의 카툰이 실려 무척이나 반가웠는데, 이번 추석 명절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한숨으로 책을 덮어야 했다.

 

프란츠 카프카는 진실에 대해 이렇게 썼다. “진실의 길은 허공이 아니라 땅 위에 가까이 매여진 밧줄 위에 있다. 그것은 걸어가라기보다,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 같다.” 사이다는 전혀 없고, 시종일관 고구마뿐인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다. 모성애에 대한 강요와 가부장제, 성폭력과 가부장제까지, 이 책이 담은 여성의 삶은 모두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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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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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제목에 충실한 책이라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것이라는 책 소개에 걸맞게, 이 책은 1979년에서 2010년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미발표 에세이와 단편소설, 문학상 수상소감 등을 엮은 잡문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 속의 머리말에서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이라고 밝혔는데, 말 그대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면면을 그의 글로 명징하게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잡문집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100마디 덕담보다 더한 감사와 힘을 얻고 갈 수 있다.

 

복주머니 안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이 책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는 것보다 목차를 펼쳐 끌리는 제목의 글을 무작위로 읽는 것이 이 책을 더욱 즐기는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글은 하루키의 소설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자기란 무엇인가>와 서점 경영인들이 뽑는 신부상 수상 소감인 <제아무리 곁가지가 거세게 흔들려도>였다.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입니다." (p.19)

"요즘 소설이 힘든 시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특히 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세간의 통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의 모든 장소에서 이야기라는 불꽃을 꺼뜨리지 않고 줄곧 지켜왔습니다. 그 빛은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서든 그 빛으로만 밝힐 수 있는 고유한 장소를 가지고 있을 게 틀림없습니다. 우리 소설가들이 해야 할 일은 각자의 시점으로 그 고유한 장소를 하나라도 더 많이 찾아내는 것입니다." (p.76)

 

하루키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답변이었지만, 이는 어찌 보면 내가 평소 고민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되기도 했다. ‘소설은 어떠해야 하는가, 출판업의 위기다'라는 질문에 이렇다 할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때, 하루키의 소신 있는 답변은 이것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나 또한 나만의 답을 내릴 수 있는 질문이라는 확신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하루키를 검색하면 나오는 감상평 중 소설보다 에세이를 잘 쓰는 작가라는 평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결코 소설을 못 쓴다는 얘기가 아니라, 개인의 감상과 철학을 담담하고 묵직하게 풀어내는 하루키의 감각이 에세이라는 글의 결()과 매우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책 속의 <폼나게 나이들기는 어렵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에게는 두 가지 타입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면 가까이에 기름층 같은 게 있어서 그것이 저절로 술술 솟구치는 타입, 다른 하나는 땅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지 않으면 기름층을 만날 수 없는 타입 (p.145) 

하루키는 스스로 자신은 후자에 속한다고 밝혔는데, 그 점에 있어 책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하루키가 써 내려간 글을 바탕으로 그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궁극적으로 하루키라는 사람을 만나게끔 해준다. 아직 하루키의 작품을 미처 접하지 못한 독자에게 이 책은 훌륭한 프롤로그가 될 것이고, 그의 팬인 독자라면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난 후 맞이하는 흥미로운 에필로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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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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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신화는 본질적으로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사안이다. 남성에겐 없는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 자격 조건'(Professional Beauty Qualification·PBQ)은 여성에 대한 고용·승진 차별을 정당화한다. 아름다움을 필수조건으로 삼아 사회진출을 방해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고통을 사소하게 여기는 이유는 여성이 그것을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나오미 울프,<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의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는 1991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책이지만, 책 속에 묘사된 여성에 대한 외모 강박과 차별은 약 30여 년이 지난 오늘의 모습과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책은 크게 6부분으로 나눠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의 모습을 판결, 광고, 미디어 등 다방면의 사례를 들며 객관적이고 촘촘한 논리로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2장.일>이었는데, 2개월 전 종영한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비서역할을 맡은 박민영이 타이트하게 맞춤한 옷을 입기 위해 촬영 내내 다이어트를 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반인보다도 훨씬 마른 연예인도 촬영 내내 다이어트를 해야 겨우 입을 수 있는 옷이 과연 비서로서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옷이었을까, 아름답게 보이는데 철저히 초점을 맞춘 옷이었을까? 나오미 울프가 주장한 PBQ(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 자격 조건)가 유독 한 쪽 성에만 요구되는 사회에서, 과연 이것을 자발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이 점에서 최근 불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의 선택지를 늘리기 위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화장한 모습이 디폴트였던 여성들에게 꾸미지 않을 자유를 선택지에 넣음으로써 사회의 요구가 아닌 자신의 선호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드러낼 수 있다는 것. ‘꾸밈’이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 있을 때 여성들에게 아름다움은 자유가 아닌 사회진출을 막는 속박이고 올가미다. 

역사적으로 뿌리 깊고 사회 전반에 스며든 ‘아름다움의 신화’는 결코 단번에 해결될 수 없다. 이 책이 500페이지의 두께를 할애하여 소개한 사례들이 이에 대한 방증이며 동시에 꾸밈 노동의 압박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훌륭한 근거가 돼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남성 독자들이 있다면, 여성을 제재하는 수단이었던 ‘아름다움의 신화’가 이제 남성에게로 향하여 미용 산업이 남성의 자기혐오를 새로운 시장으로 삼고있다는 설명이 충분한 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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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 홍승희 에세이
홍승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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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발붙이는 면적이 커질수록 불화도 빈번하다. 피로를 감내하고 견디는 시간이 늘어간다. 내가 비틀린걸까 세상이 비틀린걸까.” (P.19)

채식주의자, 비독점 다자연애, 영페미니스트, 거리 예술가. 저자를 수식하는 다양한 정체성은 사회에서 흔히 규정하는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는 저자를 단숨에 ‘이상한 사람’ 혹은 ‘프로불편러’로 규정짓고 만다. 
저자가 대통령 풍자 그라피티 건으로 교도소에서 2, 3일간의 수용 생활을 마친 후 출소하는 날, 반말로 이것저것 명령하던 교도관은 존대를 하며 교통비까지 쥐어준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사회에 나가 사회인 대접을 받으며 살라는 역할극의 마무리다. 저자는 “감옥이 따로 있는 건 이 사회 전체가 감옥이라는 걸 은폐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장 보드리야르의 말을 빌려 우리가 교도소 바깥에서도 계속해서 역할극을 수행 중이라고 말한다. 반말, 비아냥거림, 사소한 말투와 억양을 사용하며 재소자의 인격을 제거하는 교도소는 소수자를 배제하고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존재를 부정하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우리는 모두 소수자고, 내 안에도 소수자성이 있다는 논의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작년 한 강연에서 들은 저자 홍승희의 말이 책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내 안에 있는 소수자성을 부정한 채, ‘절대다수’로의 역할극을 수행해야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는 사회. 정말 이상하고 바로 잡아야 하는 건 서로의 얼굴을 지우며 개인에게 무리한 역할극을 요구하는 세상임을, 세상의 폭력이 만든 내상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은 이 책이 비로소 증명해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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