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추락한 곳은 절망의실연...
평화나 희망 따위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고통의 지역이었다. / 24쪽

- 그러나 아무런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그의 분노와 권세가 제아무리 강해도 나의 의지와 용기는 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나의 무서운 팔을 의심하던 그의 왕국의 권세에도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오! 왕자시여!
우리의 생각과 영혼은 허물어지지 않고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정복자가 우리의 영혼과 힘은 원래대로 놔둔 이유가...? 영원한 형벌의 고통을 견디게 하기 위해서라면요? / 27쪽

- 영원히 죽지 않는 우리의 열정을 가두어 둘 수 있는 심연은 어디에도 없다. 49쪽.

- 나는 아무도 시기하지 않는 왕좌에 앉게 되었다. 이렇게 가장 높으면서 동시에 가장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자리를 대체 누가 시기할 수 있겠는가?

- 우리는 그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 신의 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창조주가 그의 사랑하는 자식들이 여기서 우리와 함께 고통받는 것을 보고 괴로워하면 우리의 기쁨이 샘솟을 것이다. 58쪽

- 기억해보세요. 천국의 왕에 대항할 음모를 꾸미던 천사들의 회의 도중에...
갑자기 지독한 고통에 휩싸인...
당신의 머리에서 불꽃이 나왔고, 나는 바로 거기에서 나왔지요.
모든 하늘의 전사가 깜짝 놀라서 나를 죄라고 불렀어요.
그대는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나와 은밀하게 향락을 즐겼죠. 내 배 속에는 생명이 잉태되었고요.
그때 하늘의 들판에서는 전쟁이 일어났죠.
우리 군단은 추락했고 그때 나도 함께 추락했어요.
내게는 영원히 지옥을 문을 닫아두라는 임무가 주어졌어요.
그대로 인해 잉태한 내 배는 난폭하게 열렸고...
내 몸을 변형시켰지요.
그리고 저 증오스러운 우리 자식이 치명적인 창을 휘두르며 나왔죠.
나는 "죽음이다!"라고 소리쳤어요!
그리고 지옥조차도 그 소름끼치시는 이름에 떨었지요." /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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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훈련 도중에 포기하는 신병들 중 그 이유가 능력이 부족해서인 경우는 드물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태도였다.

27쪽.

실패한 두에도 계속 시도하는 의지가 매우 중요하고도 쉽지 않은 특성인 듯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잘해내지만 잘 안 풀릴 때는 무너져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왜 그렇게 끈덕지게 자신의 일에 매달렸을까? 그들 대부분이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큰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이 늘 부족해 보였다.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과는 정반대였다.

그럼에도 불만을 가지는 자신에게 정말로 만족을 느꼈다. 그들 각자가 비할 바 없이 흥미롭고 중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목표의 달성만큼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족을 느꼈다.

그들이 해야만 하는 일 중에서 일부는 지루하고 좌절감을 안기고 심지어 고통스럽다고 해도 그들은 추호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열정은 오래 지속됐다.

요컨대 분야에 상관없이 대단히 성공한 사람들은 굳건한 결의를 보였고 이는 구 가지 특성을 나타났다.
첫째, 그들은 대단히 회복력이 강하고 근면했다. 둘째,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매우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결단력이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갈 방향도 알고 있었따. 성공한 사람들이 가진 특별한 점은 열정과 결합된 끈기였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그릿grit이 있었다.
(Grit은 사전적으로 투지, 끈기, 불굴의 의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29쪽.


우리가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과 그 잠재력의 발휘는 별개라는 사실이다.

37쪽.

골턴은 아웃라이어outlier(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치, 각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탁월한 사람이란 뜻)에게는 세 가지 두드러진 특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들은 비범한 ‘재능‘과 함게 남다른 ‘열의‘와 ‘열심히 일할 능력(노력)‘을 지니고 있었다.

45쪽.

재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맥킨지 저자들은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재능은 개인의 고유한 소질, 기술, 지식, 경험, 지능, 판단력, 태도, 성격, 충동 등 인간 능력의 총합이다"

52쪽

논문 <탁월성의 일상성>의 주요 결론은 제목에 압축되어 있듯이 빛나는 인간의 업적이 실은 평범해 보이는 무수한 개별 요소의 합이라는 것이다.

"최상급 기량은 사실 수십 개의 작은 기술 및 동작 하나하나를 배우거나 우연히 깨치고, 주의 깊은 연습을 통해 습관으로 만들고, 전체 동작으로 종합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부분 동작들 중에서 비범하거나 초인적인 동작은 하나도 없다. 정확하게 실행된 동작들이 합해져 탁월한 기량이 나올 뿐이다."

63쪽

니체는 말했다.
"모든 완전한 것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묻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마치 그것이 마법에 의해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현재의 사실만을 즐긴다.

(...) 아무도 예술가의 작품 속에서 그것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지 못한다. 그 편이 나은 점도 있다.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게 되는 경우에는 언제나 반응이 다소 시들해지기 때문이다.

(...)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 누군가를 신적인 존재로 부르면 우리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67쪽

사고를 한 방향으로 모아 모든 것을 소재로 활용하며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부단히 관찰하여 어디에서나 본보기와 자극을 찾아내고,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의 방식으로 결합시키는 사람들이 위대한 업적을 이룬다.

68쪽.


재능 X 노력 = 기술
기술 X 노력 = 성취

여기서 재능은 노력을 기울일 때 기술이 향상되는 속도를 말한다. 성취는 습득한 기술을 사용했을 때의 결과물이다.

내 이론에서는 동일한 환경에 놓인 개인들을 고려할 때 각자의 성취는 오직 재능과 노력 두 가지에 의해 좌우된다고 본다. 물론 기술이 향상되는 속도인 재능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노력은 위의 등식에서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인수로 고려된다.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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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는 스물세 살(1763년)의 창창한 시기부터 서른여덟 살(1778년)에 기약 없는감옥 생활로 곤두박질치기까지 그야말로 방탕의 구렁텅이를 이 어떤마음껏 뒹굴었다. 이 시기 사드의 행보를 두고 모리스 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감각의 전격적인 폭발 상태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 어떠한 종교적, 사회적, 윤리적 관습도 그에겐 장애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선과 악을 초월해, 불안하고, 열정적이며, 고생스러운 인생행로를 때로는 의기양양하게 때로는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번갈아가며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는 신과 인간의 법칙에 저항할 것이며,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의 고뇌에 추락한 천사한 천사의 오만을 자랑스레 접목시키리라.

15쪽.

D.A.F. 드 사드
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1740, 6. 2.~ 1814.12.2.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그는 유서 깊은 프로방스지방 대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장래가 촉망받는 군인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20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불같은 기질과 극단을 탐하는 상상력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격리가 요망되는 이단아의 삶을 살게 된다. 

평생 두번의 사형선고와 15년의 감옥살이, 14년의 정신병원 수감 생활을 거치면서, 최소 열한 곳 이상의 감금 시설을 전전했다. 이는 프랑스대혁명을 통한 구체제의 충격적인 붕괴와 피비린내 나는공포정치, 혁명전쟁 그리고 나폴레옹의 등극과 몰락에 이르는 유럽 최대의 격동기와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험난한 삶을 헤쳐가며 그가 써낸 엄청난 분량의 기상천외한 글은 상당수가압수당하거나 불태워졌고, 그나마 발표한 작품들도 명성보다는 오명으로 그의 운명을 구속했다. 

사후에 혜안을 지닌 극소수 작가들이 진가를 알아보았으나, 20세기 초현실주의의 정신 혁명을 만나기 전까지 100여 년 간 그는 이상성욕을 발광하는 일개 미치광이 작가로 줄곧 어둠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필리프 솔레르스는 이렇게 말했다. 

"18세기를 휩쓴 자유의 파도가 사드를태어나게 했다. 19세기는 그를 검열하고 잊어버리느라 무진 애를 썼다. 20세기는 야단법석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를 드러내는데 아주 열심이었다. 이제 21세기는 명확한 의미로 그를 고찰하는 일에 매진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문학뿐 아니라 언어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 의학, 신학, 예술 등 인
‘간을 논하는 거의 모든 분야의 담론에 등장하고 있다. 

이는 그의 독보적 상상력이 펼쳐 보인 전인미답의 세계가 인간의 가장 심오하면서 치명적인 영역의 비밀들을 폭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 모두는 사드적sadique이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아마, 아직까지도, 그는 사람들이 작품을 잘 읽지 않는 작가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한 중요한 작가일 것이다.

7쪽.

사디슴이라는 단어는 부아스트(Pierre-Claude-Victor Boiste, 1765~1824)가 편찬한 『프랑스어 대사전(Dictionnaireuniversel de la langue française)』의 사후 판본(1834년)에 처음 등장한 신조어였다.

  그 후 1862년 평론가 생트뵈브가 플로베르의 『살람보』를 평하면서 ‘사디슴적(sadique)‘ 이라는 표현을 썼고, 1886년 정신의학자이자 초창기 섹솔로그(성(性에 관한 학제 간학문인 섹솔로지에 종사하는 전문가)인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Richard vonKrafft-Ebing, 1840~1902)이 자신의 명저『프시코파티아 섹수알리스(PsychopatiaSexualis, 성 정신병)』에서 본격적으로 사디슴을 거론했으며, 1905년 프로이트가 <<성욕에 관한 세 편의에세이』 에서 보다 심도 깊게 해석했다.

11쪽.


사드와 글쓰기(écriture)‘

가령 극한(極限)을 향한 갈증으로 인간의 영혼을 정의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글을 쓰는 일, 글쓰기의 금지된 욕망으로부터 한없이 인간을 유추하여 극한의 존재 방식에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사드는 그 길에서 아마도 가장 멀리 나아간 영혼일 것이다.

 하여,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사드와 비교할 때, 다른 모든 작가는, 거의 모든 면에서, 푸른 초원을 자유로이 뛰노는 행복한 양 떼를 연상시킨다고.

사드를 읽으며 경험하는 거의 물리적이기까지 한 거북함은 문학적으로는 아주 희귀한 쾌감에 속한다. 인간은 그 ‘희귀한 쾌감‘을 온전히 누리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우선은, 오로지 거북함뿐인 시절이 있다. 사드는 더도 덜도 말고 그냥 악마, 괴물이며 그의 글은 당장 불살라버려야 할 패악의 물증에 지나지 않는다. 글과 글쓴이의 구분이 없고, 예술과 윤리의 변별도 통하지 않는 그아말로 원시나 다름없는 시절이다. 이런 시절 난무하는 것은 검열과 금지라는 단어이고, 힘을 쓰는 것은 제도와 행정이다.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이런 답답한 상황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드의 경우는 의학계에서 최초로 손을 내민다. 사디슴(sadisme)‘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텍스트에서 느껴지는 거북함에 객관적인 조명이 가해진다. 사람들은 이제 놀라고 경악하는 데서 한 걸음 비켜나 자기를 기겁하게 만든 현상의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하며, 사드는 광란을 일삼는 자이기보다 광란의 장면을 연출하는 작가로 인식되기 시
‘작한다. 

11쪽

사디슴이라는 보편적 개념이 구체화되면서 사드의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이 비로소 가능해지는 식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철학과 종교의 관점에서도 조심스럽게 이루어진다.

 요컨대 사드의 광기를 사회와 종교의 거대 담론과 연계해 변증법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샤를 푸리에가 "충족되지 못한 욕망과 공격성의 등가(等價) 문제"를 사회적 관점에서 제기하고 나섰을 때, 거기 드러나는 "정념의 응혈 현상에 대한 반작용"이 곧 사디슴에 해당한다는 논지다. 

이는 결국 사드라는 한 작가의 사안을 구성원의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회의 문제로 끄집어내서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태도다.

 플로베르와 공쿠르 형제, 위스망스 등 19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은 매우 역설적이게도 "가톨릭의 최종 발언"으로서 사드의 작품을 이해했다. "자연과 육체, 생리적 충동에 대한 거부의 극단"을 보여주는 징후라는 것이다. 사드와 푸리에, 사드와 칸트의 교차 독서를 제안하는 피에르 클로소프스키나 자크 라캉의 해석 방식, 니체와 헤겔을 통해 사드를 이해하고자 하는 철학적 시도 등은 모두 그에 대한 즉물적 거부반응을 넘어 보다 진지한 접근을 가능케 해준다. 

그리고 이제 ‘희귀한 쾌감‘에 이르는 궁극적이고도 불가피한,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경로라 할, 언어 자체에 대한 관심이 도래한다. 아폴리네르, 모리스 엔, 질베르 렐리 그리고 장자크 포베르는 오늘날 우리가 그 어떤 편견 없이 사드를 하나의 ‘언어 텍스트‘로 향유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준 장본인들이다.

 사드를 사랑하는 증오하든, 심취하는 무시하든, 20세기 이래 그를 입에 올리는 모든 이는 저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학의 전통적 개념을 전복시키고 글쓰기(écriture)‘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본 텔켈(Tel Quel)그룹의 비평가들에게 사드는 무엇보다 하나의 ‘텍스트‘다.


 모리스 블랑쇼는 사드의 글쓰기를 자연과 신, 인간을 말살하는 부정(否定)의 체험으로 보면서, 글쓰기야말로 사드의 고유한 광기"라고 정의한다. 사드의 문장에서 보이는 끊임없는 반복 현상도 자유를 표명하는 글쓰기의 순환"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롤랑 바르트 역시 사드를 "언어의 창안자"
로 보는 입장이다. 그는 사디슴이 사드의 텍스트에 담긴 "투박한 내용"에 지나지 않는 반면, 보다 중요한 핵심은 그 에피소드와 장면들, 행위와 자세들을 조작하는 문법과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발명에 있음을 간파한다.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에 혼비백산하여 사드를 화형대에 세우는 그야말로 사디슴적‘인 행위와 이처럼 희귀한 쾌감‘을 찾아 텍스트의 켜를 한 겹씩 벗겨 들어가는 독서의 거리는 상상 이상으로 멀 다. 이제 시작하는 사드 전작(全作) 번역의 험난한 길은 바로 그 런 먼 거리에 대한 쓰라린 자각에서 시작한다.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가 수록된 원고 뭉치의 마지 막 장 여백에는 "1782년 7월 12일 탈고"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는 사드가 1778년 결정적으로 뱅센 감옥에 수감된 지 4년째 되 는 해이자, 마흔둘 나이에 갓 접어들 무렵 작품이 완성되었으을 말해준다. 

저자 생전에는 출간되지 못했고, 19세기 내내 파리의 경매시장을 떠돌던 원고가 1920년 11월 6일 드루오 경매자에서 체계적인 사드 연구의 선구자 모리스 엔에 의해 발견되어 1926년 스탕달 출판사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정식 소개되었다.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성찰‘이라는 철학적, 종교적 데마가 서로 대극을 이루는 양자 간 대화의 연극적 장치를 통해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물론과 무신론, 쾌락주의가 혼융된 18세기 무신론적 자유사상(libertinage)을 본격적으로 천착하기 시작하는 사드의 초기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 뜻에서, 비도덕주의가 노골화되는 이후부터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타주의의 도덕적 가치가 아직은 용인되고 있는 장면이 이채롭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향후 초지일관하게 펼쳐질 사드의 진면목이 이 길지 않은 작품 속에 씨앗의 형태로 조목조목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사드의 무신론(athéisme)은 18세기 철학에 만연한 반종교적인 사상들과는 그 격(格)을 달리한다. 특히 백과전서파의 이신론(理神論, déisme)이라든가 자연을 의인화하여 소위 ‘어머니 대자연(Mother Nature)으로 떠받드는 범신론(panthéisme)적 사상과는 결코 혼동될 수 없는 독보적 입장을 갖추고 있다. 

사드의 무신론은 단순히 신의 존재를 요구하지 않는 자연의 개념을 넘어, 인간을 타락시키고, 파멸시키는 무자비한 자연의 개념 위에 정립되어 있다. ("자연에 필요하지 않는 미덕은 단 하나도 없거니와, 뒤집어 말하자면, 그 어떤 악덕도 자연에게는 필요할 것이지.")

그것은 어떤 문제든 하나이 논리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비타협적인 정신세게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론으로, 사드가 앞으로 보여줄 사상적 행복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15쪽.

20세기 초, 누구보다 앞서 새로운 정신의 전도사로 자처한 아폴리네르가 사드에게서 가장 높이 산 덕목은 바로 ‘자유‘였다. 아울러 그 ‘자유‘에서만 나올 수 있는 초지일관한 ‘대담성‘과 기발할 정도의 ‘새로움‘을 그의 문학이 가진 전레 없는 장점으로 보았다.

그것은 시인이 기필코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조건으로 아폴리네르가 침이 마르도록 주장해온 덕목이며, 그를 계승해 초현실주의자들이 받들어 마지않은 미학적 신조다.

작가로서 사드의 문학적 위상을 논하는 것이 아직은 요원하던 시절, 아폴리네르의 이 장문의 해설은 글자 그대로 예언자적 직관을 통해 사드의 작품에 내재된 예언적 가치를 꿰뚫어본 최초의 글인 셈이다.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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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범죄는 범죄동기와 범죄기회가 만나 발생한다. 그렇기에 반대로 두 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차단하면 범죄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말하며, 각종 범죄 사례를 분석하여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알려준다.

또한 범죄가 확산되어 범죄 피해자가 되기까지는 범죄에 대한 공포가 큰 원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무지를 타파하고 공포를 이겨낼 방법을 전달한다. 범죄와 타협하지 말고, 피해를 부정하지 말고, 정보를 공유하라는 것이다.

범죄를 이해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범죄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범죄자들의 두려움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각자 개인화된 두려움은 우리 사회의 두려움이라는 그늘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두려움을 집단화의 과정을 거쳐 당당한 용기로 승화한다면 범죄가 갖는 영역을 포위하고,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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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무시무시한 폭력이나 살인 사건은 나와 관련이 없는, 그저 뉴스와 신문 등을 통해서나 보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다양한 연구를 통해 경악스럽고 충격적이며 엽기적인 사건을 저지른 대부분의 범인이 놀랍게도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책의 저자인 라인하르트 할러 박사는 300명이 넘는 살인 범죄자를 분석하여 악의 근원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로 인해 악의 근원은 병적인 기질과 힘겨운 생활 환경의 영향 속에, 악몽이 된 어린 시절의 경험과 사회적인 비극 속에, 나쁜 본보기와 잘못된 친구로 인한 정신적 각인 속에, 과열된 감정과 범죄 집단의 강압 속에, 전체주의적인 체계의 지배권과 나치들의 자기우월주의 속에, 알코올 중독과 마약으로 인한 혼돈 속에, 무엇보다도 상처 받은 경험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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