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는 스물세 살(1763년)의 창창한 시기부터 서른여덟 살(1778년)에 기약 없는감옥 생활로 곤두박질치기까지 그야말로 방탕의 구렁텅이를 이 어떤마음껏 뒹굴었다. 이 시기 사드의 행보를 두고 모리스 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감각의 전격적인 폭발 상태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 어떠한 종교적, 사회적, 윤리적 관습도 그에겐 장애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선과 악을 초월해, 불안하고, 열정적이며, 고생스러운 인생행로를 때로는 의기양양하게 때로는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번갈아가며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는 신과 인간의 법칙에 저항할 것이며,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의 고뇌에 추락한 천사한 천사의 오만을 자랑스레 접목시키리라.
15쪽.
D.A.F. 드 사드 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1740, 6. 2.~ 1814.12.2.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그는 유서 깊은 프로방스지방 대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장래가 촉망받는 군인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20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불같은 기질과 극단을 탐하는 상상력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격리가 요망되는 이단아의 삶을 살게 된다.
평생 두번의 사형선고와 15년의 감옥살이, 14년의 정신병원 수감 생활을 거치면서, 최소 열한 곳 이상의 감금 시설을 전전했다. 이는 프랑스대혁명을 통한 구체제의 충격적인 붕괴와 피비린내 나는공포정치, 혁명전쟁 그리고 나폴레옹의 등극과 몰락에 이르는 유럽 최대의 격동기와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험난한 삶을 헤쳐가며 그가 써낸 엄청난 분량의 기상천외한 글은 상당수가압수당하거나 불태워졌고, 그나마 발표한 작품들도 명성보다는 오명으로 그의 운명을 구속했다.
사후에 혜안을 지닌 극소수 작가들이 진가를 알아보았으나, 20세기 초현실주의의 정신 혁명을 만나기 전까지 100여 년 간 그는 이상성욕을 발광하는 일개 미치광이 작가로 줄곧 어둠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필리프 솔레르스는 이렇게 말했다.
"18세기를 휩쓴 자유의 파도가 사드를태어나게 했다. 19세기는 그를 검열하고 잊어버리느라 무진 애를 썼다. 20세기는 야단법석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를 드러내는데 아주 열심이었다. 이제 21세기는 명확한 의미로 그를 고찰하는 일에 매진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문학뿐 아니라 언어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 의학, 신학, 예술 등 인 ‘간을 논하는 거의 모든 분야의 담론에 등장하고 있다.
이는 그의 독보적 상상력이 펼쳐 보인 전인미답의 세계가 인간의 가장 심오하면서 치명적인 영역의 비밀들을 폭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 모두는 사드적sadique이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아마, 아직까지도, 그는 사람들이 작품을 잘 읽지 않는 작가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한 중요한 작가일 것이다.
7쪽.
사디슴이라는 단어는 부아스트(Pierre-Claude-Victor Boiste, 1765~1824)가 편찬한 『프랑스어 대사전(Dictionnaireuniversel de la langue française)』의 사후 판본(1834년)에 처음 등장한 신조어였다.
그 후 1862년 평론가 생트뵈브가 플로베르의 『살람보』를 평하면서 ‘사디슴적(sadique)‘ 이라는 표현을 썼고, 1886년 정신의학자이자 초창기 섹솔로그(성(性에 관한 학제 간학문인 섹솔로지에 종사하는 전문가)인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Richard vonKrafft-Ebing, 1840~1902)이 자신의 명저『프시코파티아 섹수알리스(PsychopatiaSexualis, 성 정신병)』에서 본격적으로 사디슴을 거론했으며, 1905년 프로이트가 <<성욕에 관한 세 편의에세이』 에서 보다 심도 깊게 해석했다.
11쪽.
사드와 글쓰기(écriture)‘
가령 극한(極限)을 향한 갈증으로 인간의 영혼을 정의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글을 쓰는 일, 글쓰기의 금지된 욕망으로부터 한없이 인간을 유추하여 극한의 존재 방식에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사드는 그 길에서 아마도 가장 멀리 나아간 영혼일 것이다.
하여,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사드와 비교할 때, 다른 모든 작가는, 거의 모든 면에서, 푸른 초원을 자유로이 뛰노는 행복한 양 떼를 연상시킨다고.
사드를 읽으며 경험하는 거의 물리적이기까지 한 거북함은 문학적으로는 아주 희귀한 쾌감에 속한다. 인간은 그 ‘희귀한 쾌감‘을 온전히 누리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우선은, 오로지 거북함뿐인 시절이 있다. 사드는 더도 덜도 말고 그냥 악마, 괴물이며 그의 글은 당장 불살라버려야 할 패악의 물증에 지나지 않는다. 글과 글쓴이의 구분이 없고, 예술과 윤리의 변별도 통하지 않는 그아말로 원시나 다름없는 시절이다. 이런 시절 난무하는 것은 검열과 금지라는 단어이고, 힘을 쓰는 것은 제도와 행정이다.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이런 답답한 상황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드의 경우는 의학계에서 최초로 손을 내민다. 사디슴(sadisme)‘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텍스트에서 느껴지는 거북함에 객관적인 조명이 가해진다. 사람들은 이제 놀라고 경악하는 데서 한 걸음 비켜나 자기를 기겁하게 만든 현상의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하며, 사드는 광란을 일삼는 자이기보다 광란의 장면을 연출하는 작가로 인식되기 시 ‘작한다.
11쪽
사디슴이라는 보편적 개념이 구체화되면서 사드의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이 비로소 가능해지는 식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철학과 종교의 관점에서도 조심스럽게 이루어진다.
요컨대 사드의 광기를 사회와 종교의 거대 담론과 연계해 변증법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샤를 푸리에가 "충족되지 못한 욕망과 공격성의 등가(等價) 문제"를 사회적 관점에서 제기하고 나섰을 때, 거기 드러나는 "정념의 응혈 현상에 대한 반작용"이 곧 사디슴에 해당한다는 논지다.
이는 결국 사드라는 한 작가의 사안을 구성원의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회의 문제로 끄집어내서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태도다.
플로베르와 공쿠르 형제, 위스망스 등 19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은 매우 역설적이게도 "가톨릭의 최종 발언"으로서 사드의 작품을 이해했다. "자연과 육체, 생리적 충동에 대한 거부의 극단"을 보여주는 징후라는 것이다. 사드와 푸리에, 사드와 칸트의 교차 독서를 제안하는 피에르 클로소프스키나 자크 라캉의 해석 방식, 니체와 헤겔을 통해 사드를 이해하고자 하는 철학적 시도 등은 모두 그에 대한 즉물적 거부반응을 넘어 보다 진지한 접근을 가능케 해준다.
그리고 이제 ‘희귀한 쾌감‘에 이르는 궁극적이고도 불가피한,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경로라 할, 언어 자체에 대한 관심이 도래한다. 아폴리네르, 모리스 엔, 질베르 렐리 그리고 장자크 포베르는 오늘날 우리가 그 어떤 편견 없이 사드를 하나의 ‘언어 텍스트‘로 향유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준 장본인들이다.
사드를 사랑하는 증오하든, 심취하는 무시하든, 20세기 이래 그를 입에 올리는 모든 이는 저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학의 전통적 개념을 전복시키고 글쓰기(écriture)‘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본 텔켈(Tel Quel)그룹의 비평가들에게 사드는 무엇보다 하나의 ‘텍스트‘다.
모리스 블랑쇼는 사드의 글쓰기를 자연과 신, 인간을 말살하는 부정(否定)의 체험으로 보면서, 글쓰기야말로 사드의 고유한 광기"라고 정의한다. 사드의 문장에서 보이는 끊임없는 반복 현상도 자유를 표명하는 글쓰기의 순환"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롤랑 바르트 역시 사드를 "언어의 창안자" 로 보는 입장이다. 그는 사디슴이 사드의 텍스트에 담긴 "투박한 내용"에 지나지 않는 반면, 보다 중요한 핵심은 그 에피소드와 장면들, 행위와 자세들을 조작하는 문법과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발명에 있음을 간파한다.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에 혼비백산하여 사드를 화형대에 세우는 그야말로 사디슴적‘인 행위와 이처럼 희귀한 쾌감‘을 찾아 텍스트의 켜를 한 겹씩 벗겨 들어가는 독서의 거리는 상상 이상으로 멀 다. 이제 시작하는 사드 전작(全作) 번역의 험난한 길은 바로 그 런 먼 거리에 대한 쓰라린 자각에서 시작한다.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가 수록된 원고 뭉치의 마지 막 장 여백에는 "1782년 7월 12일 탈고"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는 사드가 1778년 결정적으로 뱅센 감옥에 수감된 지 4년째 되 는 해이자, 마흔둘 나이에 갓 접어들 무렵 작품이 완성되었으을 말해준다.
저자 생전에는 출간되지 못했고, 19세기 내내 파리의 경매시장을 떠돌던 원고가 1920년 11월 6일 드루오 경매자에서 체계적인 사드 연구의 선구자 모리스 엔에 의해 발견되어 1926년 스탕달 출판사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정식 소개되었다.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성찰‘이라는 철학적, 종교적 데마가 서로 대극을 이루는 양자 간 대화의 연극적 장치를 통해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물론과 무신론, 쾌락주의가 혼융된 18세기 무신론적 자유사상(libertinage)을 본격적으로 천착하기 시작하는 사드의 초기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 뜻에서, 비도덕주의가 노골화되는 이후부터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타주의의 도덕적 가치가 아직은 용인되고 있는 장면이 이채롭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향후 초지일관하게 펼쳐질 사드의 진면목이 이 길지 않은 작품 속에 씨앗의 형태로 조목조목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사드의 무신론(athéisme)은 18세기 철학에 만연한 반종교적인 사상들과는 그 격(格)을 달리한다. 특히 백과전서파의 이신론(理神論, déisme)이라든가 자연을 의인화하여 소위 ‘어머니 대자연(Mother Nature)으로 떠받드는 범신론(panthéisme)적 사상과는 결코 혼동될 수 없는 독보적 입장을 갖추고 있다.
사드의 무신론은 단순히 신의 존재를 요구하지 않는 자연의 개념을 넘어, 인간을 타락시키고, 파멸시키는 무자비한 자연의 개념 위에 정립되어 있다. ("자연에 필요하지 않는 미덕은 단 하나도 없거니와, 뒤집어 말하자면, 그 어떤 악덕도 자연에게는 필요할 것이지.")
그것은 어떤 문제든 하나이 논리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비타협적인 정신세게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론으로, 사드가 앞으로 보여줄 사상적 행복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15쪽.
20세기 초, 누구보다 앞서 새로운 정신의 전도사로 자처한 아폴리네르가 사드에게서 가장 높이 산 덕목은 바로 ‘자유‘였다. 아울러 그 ‘자유‘에서만 나올 수 있는 초지일관한 ‘대담성‘과 기발할 정도의 ‘새로움‘을 그의 문학이 가진 전레 없는 장점으로 보았다.
그것은 시인이 기필코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조건으로 아폴리네르가 침이 마르도록 주장해온 덕목이며, 그를 계승해 초현실주의자들이 받들어 마지않은 미학적 신조다.
작가로서 사드의 문학적 위상을 논하는 것이 아직은 요원하던 시절, 아폴리네르의 이 장문의 해설은 글자 그대로 예언자적 직관을 통해 사드의 작품에 내재된 예언적 가치를 꿰뚫어본 최초의 글인 셈이다.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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