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책을 읽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만,
학문에도 넌더리가 났죠.

명예나 행복은 학문에서 비롯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란
멍청이들인 것이고,
명예란 행운이 따라야 하는 문제여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민첩해야 하는 것뿐이었죠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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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레이첼 카슨의 경고는 *화학 살충제의 사용, *과학의 책임, 기술 진보의 한계에 관한 전국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DDT의 미국 내 제조 금지와 환경보호를 위한 주 정부와 연방 정부 차원의 규제를 요청하는 시민운동을 이끌어냈다. 카슨의 저작은 인간과 자연계의 관계 변화를 불러오고 환경 문제에 대한 각성을 촉구했다.

<침묵의 봄>이 맞이한 당시의 문화적 기상도를 기억하기란, 또 의지확고한 지은이에게 퍼부은 분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카슨의 주장은 오늘날 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1962년 <침묵의 봄>이 출간될 당시에는 혁명적이었다.

<침묵의 봄>은 *새로운 부가 등장하고 사회적 순종이 강조되던 시기에 이 글을 썼다. **냉전으로 인해 *의심과 *불관용이 극도에 이른 시대였다. 화학 산업은 전후 기술 발전의 최대 수혜자였고 국가의 부를 이끈 중요한 견인차 중 하나였다.

핵폭탄이 미국의 군사적 주적을 완전히 격멸했듯이 살충제는 인간과 자연 사이 힘의 균형을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빳빳하게 풀 먹인 흰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일하는 화학자들은 **신에 필적하는 지혜를 가졌으리라 대중은 기대했으며 또 확신했다. 화학자들의 연구는 대단한 혜택을 가져다 줄 것으로 여겨졌다. 전후 미국 사회에서 과학은 신이었고 또 과학은 남성 위주의 영역이었다.

카슨은 과학적으로 탁월한 업적을 거둔 적 없는 **아웃사이더였다. 그녀의 경력은 기존 관습에서 한참 떨어져 있었다. 특정 학회에 가입하지 않았고 특정 기관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몇몇 전문가가 아닌 다수의 일반 대중을 위해 글을 썼다. 그런 독립심 때문에 상당한 손해를 봤다.


기사에 R. L. 카슨이라고 서명했는데, 독자들이 필자를 *남자로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사람들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좀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카슨은 대중 앞에서 강연을 할 때면 늘 새롭게 등장한 불길한 징조에 관심을 표현했다. "**제 힘에 취해서 인류는 제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을 파괴하는 실험으로 한 발씩 더 나아가고 있다." 그녀는 과학 기술이 인류의 **도덕적 책임감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인다고 걱정했다.

그녀는 과학과 기술의 산물은 ‘**전체 생명계‘의 안전과 이익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저 침묵하고 있다면, 나에게 평화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13-18쪽

<서문 2>


부단한 노력의 산물인 <침묵의 봄>은 결과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유독성 화학물질을 생태계에 그대로 흘려보내도록 허락한 정부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었다.

또 **과학과 기술이 **이윤과 시장 점유율에 전념하는 화학업계의 시녀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잠재적 위험에서 대중을 보호하기는커녕 책임 매커니즘조차 수립하지 않은 채 새로운 화학제품의 발매를 허용했다.

카슨은 물리적으로 피할 수도,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는 화학제품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지 않는 정부의 *도덕적 권한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화학물질은 살충제가 아닌 살생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대중이 이에 항의하면 정부는 **‘절반의 진실이라는 안정제‘를 선택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피해 증거를 부인하곤 했다. 카슨은 이런 **도덕적 공백에 도전하며 이렇게 썼다. "참야햐 하는 의무를 지고 있기에 알 권리 역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만하게도 자연을 지배하려 한 전후 과학계의 분위기는 이 문제의 철학적 근본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부분이 생존하려면 결국 전체가 건강해야 한다.

‘인간이 몸담고 있는 환경 전체의 오염‘으로 식물, 동물, 인간의 세포 속에 유해물질이 축적되고 유기체의 유전 구조가 변형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외부 물질의 침투에 쉽게 노출되어 있으며 환경 속에 존재하는 유독물질에 취약하다고 카슨은 경고했다. 노출 정도를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과학자들은 세포 내 유독물질 축적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화학 혼합물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정확히 **예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몸은 유독 성분을 무해하게 만드는 ‘자정능력 assimilative capacity‘을 지니는 데다 유독물질에 대한 ‘문턱‘이 존재한다는 업계의 주장을 그녀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인간의 건강은 환경 상태의 궁극적인 반영이라고 카슨은 믿었다. 과학계가 카슨의 이런 주장을 조금씩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 몸을 생태계로 이닉하게 된 것은 그녀가 끼친 매우 중요한 영향 중 하나다.


화학 산업계는 레이첼 가슨이 화학제품의 신뢰성을 뒤흔들고 그 신뢰에 의문을 던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녀는 소란을 일으키고 혼돈을 불어오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위엄과 신중함을 갖추고 말았다.

레이첼 카슨은 전문가의 역할이 **민주적으로 제한되어야 하고 **기술의 위험에 관한 공청회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적 증거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과학자들은 어쩔 수 없이 해악의 확실한 증거를 부인하게 된다.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가 과학의 본질적인 문제로 혼란을 겪게 되면 합당한 공공 정책 수립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레이체 카슨은 자신이 그토록 확신한 생태계의 **미래를 끌어안을 뿐 아니라 **인간 정신의 고양이라는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그녀는 지구의 화학물질 오염을 대면하라고, **생존을 위해 스스로 *탐욕을 조절하라고 주장했다.

경이와 겸손은 온전한 감정이고 파괴에 대한 욕망과는 절대 함께할 수 없다. 경이와 겸손은 <침묵의 봄>이 준 선물이다.


18-23쪽

<1. 내일을 위한 우화>


어떤 사악한 마술의 주문이 마을을 더핀 듯했다. 마을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했다.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전에는 아침이면 울새, 검정지빠귀, 산비둘기, 어치, 굴뚝새 등 여러 새의 합창이 울려 퍼지곤 했는데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들판과 숲과 습지에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

이렇듯 세상은 비탄에 빠졌다. 그러나 이 땅에 새로운 생명 탄생을 가로막은 것은 사악한 마술도, 악독한 적의 공격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저지른 일이었다.

**불길한 망령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찾아오며 상상만 하던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적나라한 현실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수많은 마을에서 활기 넘치는 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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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나는 그대에게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여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아이가 되는가를.

내면에 외경심이 깃들여 있는 강력한 정신, 인내심 많은 정신은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 있다. 그 정신의 강인함은 무거운 짐을, 가장 무거운 짐을 요구하는 것이다.

무엇이 무겁단 말인가? 인내심 많은 정신은 이렇게 물으며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는 짐을 가득 싣고자 한다.

가득 짐을 실은 채 사막을 달리는 낙타처럼.

하지만 고독하기 그지없는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정신은 사자가 된다. 정신은 자유를 쟁취하려 하고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정신은 여기에서 그의 마지막 주인을 찾는다. 정신은 마지막 주인, 최후의 신에게 대적하려 하며, 승리를 위해 정신은 이 거대한 용과 일전을 벌이려 한다.

정신이 더 이상 주인으로 신으로 여기지 않으려는 거대한 용은 무엇인가? **너는 해야 한다, 이것이 그 거대한 용의 이름이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은 이에 대항하여 **"나는 원한다."라고 말한다.

"모든 가치는 이미 창조되었다. 모든 창조된 가치, 그것이 바로 나다. 진실로 말하노니 *나는 원한다라는 요구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용은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가치를 위한 권리를 쟁취하는 것. 이것은 인내심 많고 외경심을 가진 정신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소득이다.

정신도 한때 너는 해야 한다를 가장 신성한 것으로서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 정신은 가장 신성한 것에서도 미혹과 자의를 찾아내야 한다.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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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2008년?) 세계보건기구 WHO는 21세기에 인류를 위협하게 될 세 가지 문제로 **빈곤, 기후변화, 대규모 전염병을 들었다. 세 가지 모두 지구환경 변화와 인간행위에서 비롯된 생태적 문제다.

우리의 모든 생활양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생태적 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생태위기는 인간 모두에게 현존하는 위협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위기라는 실체적 위협과 그것의 복원이라는 희망을 모두 담고 있는 말이 생태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는 ‘공해‘만 알았지, ‘환경‘은 잘 몰랐다. 창세기 식으로 표현하자면, **공해는 환경을 낳고 환경은 생태를 낳았다.

6쪽

친환경이라고 할 때는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해가 되는 지금의 방식보다는 조금 나아진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환경적이라는 용어가 물건 하나하나에 작용된다면, 생태적이라는 말은 어떤 지역 전체에 적용된다.

생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인간의 행위, 곧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버리는 경제행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문제에 생태학이 정답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한다. 생태사상의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오히려 생태사상은 단일한 정답이란 얼마나 위험하며, 생태문제에 답을 도출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한계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답보다 질문을 잘 만드는 것이다. 질문을 잘하면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생태사상가들은 지금까지 좋은 질문을 던져왔다.


8-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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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절망을 즐기지 않기>


‘예술은 현실의 재현‘이라는 유서 깊은 논의에서 ‘재현‘이란, 현상의 복사가 아니라 **본질의 장악이다.

(...)
‘본질의 장악‘의 부산물이자 ‘인지의 충격‘의 유발자로서의 고통, 그것은 옳다.

이런 폭력성이 한국 사회의 본질이기 때문에 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본질의 장악), 실상을 충격적으로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가장 간한 자극을 가했다는 것(인지의 충격)

요컨대 ‘본질의 (새로운) 장악‘이 없는 곳에서 도모되는 ‘인지의 (강화된) 충격‘이란 공허할 뿐 아니라 부당한 것이다.


226-7쪽

<시의 천사>
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유명해지기 전에 로댕은 고독했다. 그리고 그에게 명성이 찾아온 뒤에 그는 어쩌면 더 고독해졌는지도 모른다. 명성이란 결국 하나의 새로운 이름 주위로 모여드는 온갖 오해들의 총합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릴케는 그 뒤에 바로 낙관적인 말을 덧붙였다. 로댕의 위대한 작품들이 결국 그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270쪽

<축제로서의 노벨문학상>


한 작가에 대해 신속/정확하게 알고 싶으면 일단 세 권의 책을 읽으면 된다. **데뷔작, 대표작, 히트작.

데뷔작에는 한 작가의 문학적 유전자가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에, 대표작에는 그 작가의 역량의 최대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히트작에는 그가 독자들과 형성한 공감대의 종류를 알려주기 때문에 읽을 가치가 있다.


280쪽

<이상과 김수영>

축구선수가 찬 공은 발의 각도를 그대로 가지고 날아간다. **공이 작품이라면 발은 정신이다." 이 정신을 다른 말로 태도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김수영의 태도를 한마디로 ‘정직‘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그럴듯한 시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기에게 있지도 않은 무엇을 보태어 시를 꾸며내는 일은 그는 혐오했습니다. 그런 사기를 김수영은 포즈 POSE라고 불렀습니다.

포즈는 사진을 찍을 때만 인위적으로 취하는 자세니까요.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현대성보다도 사싱보다도 백배나 더 중요한 일이다."

김수영은 포즈를 버리고 자신의 옹졸함과 폭력성을 시로 썼습니다. 자기 자신을 폭로하는 시 쓰기가 읽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율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입증한 사람이 바로 김수영입니다.


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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