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사람들>
/ 악의 심리학을 찾아서
자녀들에게 있어서 부모란 하나님과도 같은 존재다. 그것은 사춘기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기 부모가 살아가는 방식 그대로 자기들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는 자기 부모와 다른 아이들의 부모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에 결손이 있게 되면 아이는 십중팔구 그 결함의 원인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그로 말미암아 비현실적인 부정적 자아상을 갖게 된다.
(...)
부모에게서 어떤 악을 보게 되면 아이는 진짜 악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지혜롭고 안정감 있는 어른이라 할지라도 악과 마주치게 되면 일단 혼돈을 경험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다. 하물며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의지하는 사람, 즉 부모에게서 악을 보게 된 천진한 아이의 반응은 어떠하겠는가?
그와 동시에 정작 악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고 자신의 악을 다른 사람 탓으로 투사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생각해 보라. 아이가 상황을 잘못 해석해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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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정신과 의사가 보기에는 시급히 치료를 받아야 할 중증의 정신 질환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그들은 쉬벡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도 치료를 마다한다.
물론 그 사람들이 모두 모두 악하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악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신 치료를 가장 완강히 저항하는 사람들 무리에는 반드시 악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들이 끼어 있게 마련이다.
좀 슬픈 사실이긴 하지만 정신 치료를 가장 쉽게 받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가장 건강한 사람이다. 가장 정직하고, 사고 유형이 가장 덜 왜곡돼 있는 사람이 치료 효과가 크다는 것이 정론이다.
반대로 환자의 병세가 심하면 심할수록, 행동이 부정직하고 사고의 왜곡된 정도가 더하면 더할수록 그들을 성공적으로 돕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워진다. 만약 그들의 부정직과 왜곡의 정도가 아주 심하다면 치료는 아예 불가능하다.
정신 치료를 하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어떤 환자의 특정 정신 병리 현상을 놓고 ‘치료 불가‘라는 진단을 내리는 경우도 이따금씩 있다. 우리는 미로와도 같이 뒤얽힌 환자의 거짓말들, 배배꼬인 동기들, 자꾸만 왜곡해서 말하는 표현들 등에 글자 그대로 불가항력을 느낀다. 정신 치료라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런 환자들과 함께 작업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부정직과 왜곡은 필연적으로 부딪치지 않을 수 없는 모습들이다.
우리는 종종 그런 치료 속에서는 환자들을 그 병리 현상의 곤경 속에서 건져 내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치료자마저도 그 속으로 같이 빠져 들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하는데, 대게 그런 느낌은 아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우리는 그런 환자들을 돕기에 너무 약하다.
우리를 휘감아 버릴 그 미로에서 끝을 찾아내기에는 우리의 시력이 그다지 좋지 못하며, *그들의 증오를 직면하면서도 여전히 사랑을 지키기에는 우리의 그릇은 너무나 작다.
**정신 치료로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적어도 환자를 향한 *최소한의 긍정적인 감정, 그 아픔을 향한 *동정심, 그가 처한 곤경에 대한 *공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존중, 인간으로서 그들의 잠재력에 대한 최소한의 *희망 따위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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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악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주 경험하게 되는 감정은 **혐오감이다.
*혐오감은 잘만 다루면 치료자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어느 것보다도 유용한 진단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치료자가 한 악한 인간 앞에 있다는 사실을 그 어떤 방법보다도 더 사실적이고 신속하게 알려 주는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날카로운 메스와 마찬가지로 혐오감도 주의를 기울여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도구다. 만약 혐오감이 환자 쪽의 요인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 아니라 치료자 자신의 병적인 부분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라면, 치료자가 겸손하게 그것을 자기 문제로 인정하지 않는 한 엄청난 해악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감이란 싫은 대상을 즉각적으로 피하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감정이다.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 평범한 상황 속에서 악한 대상을 만났을 때 으레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감정이기도 하다. 즉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악이 혐오감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위험한 까닭에서다. 악과 너무 오래 마주하게 되면 그 악은 반드시 사람을 **오렴시키거나 파괴시키게 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악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상황에서 특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그저 다른 길로 내빼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혐오감이라는 역전이는 하나의 본능인 동시에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이 주신 조기 경보 및 구조 레이더인 셈이다.
(...) 뿐만 아니라 정신 치료자들은 대부분 인정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자기 안에서 그렇게 심한 부정적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들의 자아상에 대한 하나의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악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반응에는 혐오감 말고도 또 하나가 있다. **혼돈이다. 어떤 사람은 악한 사람과 만났던 일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마치 한 순간에 사고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거짓을 사람을 혼돈시킨다. 악한 사람들은 ‘거짓의 사람들‘이다. 자기 기만을 켜켜이 쌓아 올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속이는 사람이다.
악한 사람을 치유하려는 시도는 결코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심리적/영적 힘을 충분히 갖춘 사람에 의해선만 실시되어야 한다.
그런 힘을 갖춘 치료자가 악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여전히 지녔으면서도 그가 또한 *연민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깊이 깨닥고 있다는 것, 그것만이 악한 사람을 치유하려고 시도하는 유일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악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가장 겁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모습이 빛 가운데 드러나는 것을 끊임없이 피하면서 **자신의 목소리 듣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완전한 *공포 속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더 이상 지공게 갈 필요가 없다.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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