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과 제왕학의 고전, 《한비자》
/ 해제
주나라의 몰락과 춘추전국시대의 서막, 그리고 법가의 탄생
우리가 알고 있는 봉건제封建制는 분봉分封제도라는 것을 기반으로하여 천자天子가 있고 그 아래 제후諸侯들이 있어, 천자는 하늘의 명을 받아 온 천하를 다스리는 상징적 존재이고 각 지방의 제후들은 천자가 나눠준 땅을 다스리는 제도이다.
천자는 제후를 다스리며, 제후는 자신의 영역에 속한 백성을 거느리는 것이다. 이 제도는 주周나라 때 가장 잘 갖춰졌으며, 그 핵심은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적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이처럼 자신의 영지에서 일정한 통치권을 인정받는 반독립 상태를 유지한 고대의 분봉제도는 구조가 단순해서, **예禮와 형刑이라는 두 규범만으로도 질서가 유지될 수 있었다. 즉, 지배층의 기본적인 관계는 윤리규범인 ‘예‘로써 유지되었으며, 그 아래 대부大夫들은 자신의 영역에 속하는 백성들을 복종시키기 위해서 ‘형‘이라는 형벌의 도구를 사용하면 되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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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패자들은 **힘의 논리로 무장했다. 그 당시의 제자백가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으나, 대부분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정책뿐이어서 통치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여 현실을 똑바로 보고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한 자들이 있었다. 이들을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아는 인재‘라는 뜻의 *‘법술지사法術之士‘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바로 훗날 법가라고 일컬어지는 사상가들이다.
한비자는 군주의 군력 유지를 핵심으로 하는 법치 리더십의 창시자이다.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린다. 유학자 순자의 문하에서 이사와 함께 학문을 배웠다.
한비자는 나라를 법률로 다스리는 방법을 아는 인사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터트리며 <한비자>라는 책을 지었던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본 전통적인 유가의 관점은 그에게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았다. 그는 법 술 세라는 세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데 강한 자신감과 신념을 가지고 단호한 어조로 견해를 피력하였다.
법은 통치 수단인 동시에 구속의 수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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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변화의 요구와 개혁정신, 그리고 인간관
중국인들이 과거의 경험을 중시한 것은 유가·도가 묵가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고대의 권위 있는 성인을 내세워 자기들의 학설을 펼친 일에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공자는 주나라 인문정치의 꽃을피운 *문왕文王과 주공을, *묵자는 치수사업으로 유명한 *우임금을, *맹자孟子는 성군인 요순舜 임금을, *도가道家는 복희씨와 신농씨神農氏를 내세워 논거로 삼았다.
그러나 한비자는 **시대의 변천에 따른 **사회적 요구를 정확히 파악해 이에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비자는 유가를 비롯한 제자백가들이 고대의 성현들을 숭상한 것은 그들이 가지고있는 순박함과 덕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지만, 사실상 그들이 그러한 품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적인 환경에 적응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역사란 진화하므로 문제가 발견되면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순응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감정적인 인간이야말로 가장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보았다.
- P26
<법가사상의 집대성자, 한비자>
한비자는 법가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그가 나오기 전에 이미 세 갈래의 큰 학파가 있었다.
첫째는 *법을 강조한 상앙, 둘째는 *술을 강조한 신불해申不害, 셋째는 *세를 강조한 신도到였다.
상앙이 주장한 ‘법‘은 백성들의 *사익 추구를 막고 **나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원칙을 의미한다.
신불해의 ‘술‘은 신하들이 내세우는 이론과 비판을 그들의 *행동과 일치시키는 *기술로서, 신하들을 잘 조종해 군주의 자리를 더욱 굳게 다지는 *인사정책을 말한다.
신도의 ‘세‘는 군주만이 가지는 *배타적이고 유일한 권세를 말한다.
**한비자는 이 세 학파의 주장을 두루 수용해 발전시켰다.
한비자에 의하면, 일찍이 현명한 군주가 *제도를 시행할 때는 *공평하게 원칙을 지키고, *인물을 가려 뽑을 때는 귀신같이 밝았으므로 그를 비난하거나 곤경에 빠뜨리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권세를 이용해 법을 *엄하게 시행해도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백성이 없었다.
**이렇게 세 가지 요소가 갖춰진 뒤에야 비로소 법을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비자는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 가지고 통치할 수있는 것이 아니고, 군주는 반드시 법·술·세의 세 가지 통치도구를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한비자의 법 사상은 *이전과 어떻게 다른가?
한비자에게 **법이란 지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행위준칙이다. 또한 이 법은 군주의 통치도구이며 전제법專制法이다.
군주는 법률을 제정하고 법에 따라 신하와 백성을 다스리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법은 만인에게 두루 적용되지만 **군주는 법률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는 봉건사회에서 "예는 일반 백성에게 미치지 않고 형벌은 대부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유가의 관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 P30
한비자는 법을 제정할 때는 몇 가지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공리성功利性이 있어야 한다. 둘째, **시세時勢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셋째,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넷째,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과 감정에 들어맞아야 한다. 다섯째, *분명하고 명확해야 한다. 여섯째, *상은 두텁게 하고 *벌은 엄중하게 해야 한다.
게다가 그는 통치권과 상벌권은 군주가 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법의 권위를 세우는 것 또한 군주의 고유 권한이라고 보았다.
군주에게 **권세가 있다는 것은 마치 *한 자밖에 안 되는 나무라도 높은 산 위에 서 있으면 *천 길의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권세가 있으면 설령 재능이 부족하고 현명하지 못할지라도 현명한 사람들까지 굴복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한비자는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는 어질고 현명한 사람이 나타나 혼란을 평정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군주가 권세를 쥐고 법을 시행하면 빠른 시간 내에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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