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할 수 없이 슬픈 기분으로 3시에 눈을 떴다.

슬픔, 광기, 우울함, 절망을 연구하기 싫다는 반항적인 기분도 들었다.

나는 승리를 연구하고 싶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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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무엇인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초연한 상태만이 자유로운 것이다.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결코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뭔가에 의해 각인되고 결정되고 구속된 상태이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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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서임권 투쟁, 즉 *주교와 *대수도원장을 교황이 아닌 군주가 임명할 수 있는가와 관련해 다툼이 벌어졌다. 

당시 **고위 성직자들은 *교회의 일만이 아니라 **토지 소유 같은 *세속의 업무도 처리했다. 그래서 **군주들은 자기 사람을 고위 싱직자로 임명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교황은 당연히 이를 반대했고, 이런 긴장이 교황그레고리우스 7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결국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에서 사흘 동안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사면을 청한 하인리히 4세의 굴욕, ‘카노사의 굴욕‘ (1077)이라는 장면을 역사에 남긴다.
- P36

그런데 이 사건으로 교황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황제가 무릎을 꿇었을 뿐 *실리를 챙기면서 교황과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문제는 이탈리아 내부의 분열이다. *이탈리아 여러 도시의 권력투쟁이 *외부의 힘에 의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의부의 힘이 바로 교황과 황제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교황파와 *황제파로 갈라진 것이다. 

로마에서 거리가 *먼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들은 *황제에 가까운 편이 있고, *로마와 그 주변 도시들은 *교황에게 의지했다. 

게다가 *내부 갈등에 따른 정권 교체도 자주 일어났는데, 피렌체가 바로 그런 도시다. *피렌체가 속한 토스카나 지역은 황제파와 교황파의 대립이 특히 심했다. 

이 대립에서 승리한 *교황파가 지배하게 된 피렌체는 몬테풀치아노 볼로냐 · 오르비에토 등과 동맹하고, *황제파가 장악한 피사 · 루카 · 시에나 · 이레조 등과는 대립했다. - P36

피렌체 사람들은 아주 *세속적이었으며 *도덕적 당위보다는 **실제적 이익을 중시한 것 같다. 『군주론』 15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 십상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하는 군주는 **필요에 따라 *부도덕을 이용하거나 이용하지 않을 수있음을 배워야만 합니다."


*도덕주의자보다는 *현실주의자가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실주의자는 현 상황을 주시하고, 그에 맞춰 행동한다. 

**부도덕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도덕 또는 부도덕을 주장하는 것이다. - P42

마키아벨리가 실리를 추구하는 상인의 감각을 정치에 적용했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그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이 이익을 기준으로 한 *합리적 판단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그것을 분석하면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 P43

마키아벨리가 *종교를 *정치적 효과 면에서 바라본 것도 그가 *세속화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영역이라서 그 권위에 도전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종교를 그가 인간의 눈으로 본 데는 피렌체 특유의 분위기가 작용했을 것이다. 

피렌체 북쪽 도시 프라토데서 14세기에 활동한 거상 다티니Francesco Datini의 *회계장부에 **"하느님과 수익의 이름으로" 라고 적혀 있었을 만큼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상업과 이익에 익숙했다. 

**이해관계에 따라 세상을 보는 순간 **윤리와 도덕뿐만 아니라 그 종합체로서 *종교는 힘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당시 기독교는 이자 수익을 반대했다. 

**노동의 대가로 거두어들이는 *이익만 합당하다고 본 것이다. 단테도 『신곡』에서 고리대금업자를 지목에 둔다. 

그런데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들은 은행업자였다. 이들이 시장에서 *긴 의자, 즉 이탈리아어로 *‘방코banco‘에 앉아 환전을 비롯한 업무를 모았기 때문에 나중에 이 말이 은행을 뜻하게 되었다. 물론 영어 뱅크bank도 이 말에서 왔다. 

- P44

어쨌든 피렌체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자본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었고, 이런 세속적인 힘을 기반으로 시민들이 공화국을 경험할 수 있었다.

*상공업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도시를 만든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에 나섰다. 바로 *도시 공화정의 대두다. 

*상공업자들은 동업조합인 **길드를 만들고 *자치적으로 운영했다. *평의회와 *법정을 만들고 *규칙을 정해, *밖으로는 배타적이지만 안으로는 공화적인 조합이었다.

이 중 힘이 세지고 발언권이 커진 조합들이 정부에 대표를 파견해 정치를 관할하는 체제가 성립된다. 물론 하층 노동자들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하거나 권력을 주지는 않았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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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같은 종의 개체들을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특히 사회적 동물의 경우에는, 같은 종인 집단 내의 성원들이 있는 편이 **사냥은 물론 특히 **방어에서 그 자신의 성공을 위해 중요하다. 

더 일반적으로 모든 동물의 경우를 보면 같은 종의 나머지 성원들 또한 강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제거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의 비용이 진화론적으로 비생산적이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강대국들이 그렇듯이 같은 종의 개체들 사이에는 *힘의 균형과 *상호 억지가 존재하는데, 이는그 종의 존속이 아닌 *그들 자신의 생존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동물들은 같은 종뿐 아니라 다른 종의 강력한 적수와도 *폭력적인 대결을 *피하려고 노력하는데, 이상하게도 로렌츠는 이 점을 놓쳤다. 

**싸움과 살해는 이따금 한 번씩, 보상이 크고 승산이 높을 때에만 일어난다.

- P74

진화론적 원리를 둘러싸고 너무도 만연해 있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분명한 점을 중언부언하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다시 말하겠다. 

두말할것 없이 요점은 이런 행동 패턴이 파리, 생쥐, 사자, 심지어 인간의 *의식적결정과 *복잡한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개체는 *다음 세대를 재생산하는 데 *실패해왔고 그들의 *부적응 행동을 유발한 *부적응 유전자는 **선택에서 제외되어왔다는 것이다. 

가장 복잡한 구조공학과 행동 패턴도 그렇게 진화해왔고, *의식이 전혀 없는 유기체를 비롯하여 *단순한 유기체들도 모두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었다. 진화론의 근간을 이루는 이 원리를 항상 유념해야 한다.
- P74

한 개체의 유전자는 자손을 통해서는 물론,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가까운 친족을 통해서도 다음 세대에 전해진다.

 부모와 자녀가 유전자의 50퍼센트를 공유하듯이, 한배의 자녀들도 유전자의 평균 50퍼센트가 같다. 부모 가운데 한쪽만 같은 자녀끼리는 유전자의 평균 25퍼센트를 공유한다. 사촌끼리는 유전자 중 12.5퍼센트가 서로 같다. 

*이것이 피는 물보다진하다는 오랜 관념의 바탕이다. 한 개체와 가까운 친족은 그 개체의 유전자 저장고가 되기 때문에, *관계의 근연성과 친족의 수에 따라서 때로는 개체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 하더라도 **나머지 모두에 대해 그 친족을 보살피고 방어할 진화론적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한개체가 희생해서 두 명 이상의 형제, 네 명 이상의 배다른 형제, 또는 여덟 이상의 사촌을 구하게 된다면 **자신의 희생조차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심지어 그보다 비율이 낮은 경우에도 그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가치 있는 일이다. 

결국 **진화론의 원리는 *개체의 생존보다도 **‘친족/혈연 선택kin selection, 또는 자신과 친족 내 같은 유전자의 ‘포괄 적응도inclusive fitnes를 선호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인 것이다.
- P75

에밀 뒤르켐Fmile Durkeim 부터 시작해, 기능주의 이론가들은 **종교의 주된 역할이 **사회적 응집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마키아벨리Machiaveli, 루소, 그리고 19세기 프랑스 실증주의자들도 대체로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리치드 도킨스RichardDavikins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얼마나 대단한 무기인가! 종교적 믿음은 그 자체로 전쟁 기술 연감의 한 장을 장식할 만하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른바 종교의 시초에 주목하는 이런 관점은 *공동 의례와 *숭배 의식에 더 공을 들였던 지역 집단에서 **사회적 협릭이 관습으로 더 굳어지고 **정신적으로 더 강하게 정당화되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결과가 *전쟁에서 유리하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공동 의례와 의식은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지역 집단 내의 생활에서만 중심적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니다. *의례 유대는 *지역 집단끼리의 **더 큰 동맹과 연합을 위한 주요 토대를 형성해왔다는 사실이 어디서나 확인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인보동맹同盟이 바로 그런 예였고, 그런 동맹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전쟁이었다.
- P90

결국 **크게 확장된 상징 능력이 언어, 종교, 예술, 지역 집단화 등으로 뚜렷이 나타났고, 아마도 **이것이 서로를 보강하며 전쟁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게 유리한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지역 집단은 그들과 달리 *지역적으로 집단화되지 않은 사람들(아마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이전의 인류들)과 싸울 때는 *분명한 이점을 갖고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지역 집단을 이루게 되었을 때에는 그만큼 **결정적인 이점을 갖지 못했다. 

앞으로 보겠지만, **바로 이것이 모든 군비 경쟁‘의 본질이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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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이 주 전에 거닐었던 고향의 도시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휴가라는 것도 없었고 엘리자베스라는 여인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죽음과 죽음 사이에 있는 거친 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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