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서임권 투쟁, 즉 *주교와 *대수도원장을 교황이 아닌 군주가 임명할 수 있는가와 관련해 다툼이 벌어졌다.
당시 **고위 성직자들은 *교회의 일만이 아니라 **토지 소유 같은 *세속의 업무도 처리했다. 그래서 **군주들은 자기 사람을 고위 싱직자로 임명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교황은 당연히 이를 반대했고, 이런 긴장이 교황그레고리우스 7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결국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에서 사흘 동안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사면을 청한 하인리히 4세의 굴욕, ‘카노사의 굴욕‘ (1077)이라는 장면을 역사에 남긴다. - P36
그런데 이 사건으로 교황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황제가 무릎을 꿇었을 뿐 *실리를 챙기면서 교황과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문제는 이탈리아 내부의 분열이다. *이탈리아 여러 도시의 권력투쟁이 *외부의 힘에 의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의부의 힘이 바로 교황과 황제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교황파와 *황제파로 갈라진 것이다.
로마에서 거리가 *먼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들은 *황제에 가까운 편이 있고, *로마와 그 주변 도시들은 *교황에게 의지했다.
게다가 *내부 갈등에 따른 정권 교체도 자주 일어났는데, 피렌체가 바로 그런 도시다. *피렌체가 속한 토스카나 지역은 황제파와 교황파의 대립이 특히 심했다.
이 대립에서 승리한 *교황파가 지배하게 된 피렌체는 몬테풀치아노 볼로냐 · 오르비에토 등과 동맹하고, *황제파가 장악한 피사 · 루카 · 시에나 · 이레조 등과는 대립했다. - P36
피렌체 사람들은 아주 *세속적이었으며 *도덕적 당위보다는 **실제적 이익을 중시한 것 같다. 『군주론』 15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 십상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하는 군주는 **필요에 따라 *부도덕을 이용하거나 이용하지 않을 수있음을 배워야만 합니다."
*도덕주의자보다는 *현실주의자가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실주의자는 현 상황을 주시하고, 그에 맞춰 행동한다.
**부도덕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도덕 또는 부도덕을 주장하는 것이다. - P42
마키아벨리가 실리를 추구하는 상인의 감각을 정치에 적용했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그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이 이익을 기준으로 한 *합리적 판단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그것을 분석하면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 P43
마키아벨리가 *종교를 *정치적 효과 면에서 바라본 것도 그가 *세속화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영역이라서 그 권위에 도전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종교를 그가 인간의 눈으로 본 데는 피렌체 특유의 분위기가 작용했을 것이다.
피렌체 북쪽 도시 프라토데서 14세기에 활동한 거상 다티니Francesco Datini의 *회계장부에 **"하느님과 수익의 이름으로" 라고 적혀 있었을 만큼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상업과 이익에 익숙했다.
**이해관계에 따라 세상을 보는 순간 **윤리와 도덕뿐만 아니라 그 종합체로서 *종교는 힘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당시 기독교는 이자 수익을 반대했다.
**노동의 대가로 거두어들이는 *이익만 합당하다고 본 것이다. 단테도 『신곡』에서 고리대금업자를 지목에 둔다.
그런데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들은 은행업자였다. 이들이 시장에서 *긴 의자, 즉 이탈리아어로 *‘방코banco‘에 앉아 환전을 비롯한 업무를 모았기 때문에 나중에 이 말이 은행을 뜻하게 되었다. 물론 영어 뱅크bank도 이 말에서 왔다.
- P44
어쨌든 피렌체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자본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었고, 이런 세속적인 힘을 기반으로 시민들이 공화국을 경험할 수 있었다. *상공업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도시를 만든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에 나섰다. 바로 *도시 공화정의 대두다.
*상공업자들은 동업조합인 **길드를 만들고 *자치적으로 운영했다. *평의회와 *법정을 만들고 *규칙을 정해, *밖으로는 배타적이지만 안으로는 공화적인 조합이었다.
이 중 힘이 세지고 발언권이 커진 조합들이 정부에 대표를 파견해 정치를 관할하는 체제가 성립된다. 물론 하층 노동자들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하거나 권력을 주지는 않았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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