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집요한 가혹함에도,
인간이란 언제나 *날씨가 화창할 때면
**희망을 품기 마련 아니겠는가?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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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위를 보리라.
과오는 지나갔다 -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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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해서 마시는 거야,
사랑스러운 형제!

삶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을 수 있겠나!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지!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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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아감벤과 한하운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은 이런 문둥이들을 호모 사케르 homo sacer라고 불렀을 겁니다.

호모 사케르는 살해하는 것은 가능해도 희생으로는 바칠 수 없는 존재를 말합니다.

지렁이와 벌레처럼 죽여 버릴 수는 있어도 희생으로 쓸 수는 없는 존재들, 즉 호모 사케르로 지목된 인간이 바로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생명체가 *벌거벗었다는 이야기는 *사회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P311

문둥이들만 호모 사케르일까요?

동남 아시아 출신의 노동자들,
을지로 지하철 역 안의 체념한 노숙자들,
취업을 하지 못하고 거래를 배회하는 젊은이들,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과 집시들.

한하운의 시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바로 이런 모든 벌거벗은 생명들의 목소리, 다시 말해 배제된 자들의 울부짖음을 강렬하게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 P312

"서양 정치의 근본적인 대당 범주는 ‘동지-적‘이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정치적 존재‘, ‘조에zoe-비오스bios‘, ‘배제-포함‘이라는 범주쌍이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한 여러 겹의 옷을 결쳐야 하지요. 아감벤이 말한 *‘벌거벗은 생명의 정치화‘란 바로 이런 과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 P315

카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을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계엄과 같은 예외 상황에서 대통령에 의해 수행되는 정치적 행동을 이야기하려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감벤은 슈미트가 말한 예외 상황이란 것이 결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에서는 항상 존재하는 상례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적과 동지라는 범주를 넘어서 ‘조에와 비오스‘, 혹은 **‘벌거벗은 생명과 정치적 존재‘라는 범주로 정치를 사유하려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지요.

결국 적과 동지라는 외적인 대립 관계의 핵심에는 벌거벗은 생명과 정치적 존재라는 대립 관계가 이미 전제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 P316

예외적인 상태가 사실 상례에 지나지 않는다는 역사철학적 통찰은 벤야민으로부터,
그리고 정치는 생명정치 biopolitics일 수밖에 없다는 정치철학적 통찰은 푸코로부터 유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P317

아감벤은 **‘지배 자체‘는 변하지 않았고
**‘지배의 양식‘만 변해 왔자는 벤야민을 떠올립니다.

고대 민주주의에서는 적대 관계가 공동체 외부의 벌거벗은 생명(조에)와 공동체 내부의 정치적 존재(비오스) 사이에 그어졌다면,

이제 근대 민주주의에서는 그것이 한 개체 내부에 ‘벌거벗은 생명과 정치적 존재‘를 함께 각인시키는 식으로 이행했다는 겁니다.

- P319

문둥이들에게 돌을 던질 때, *사실 우리는 자신도 그렇게 *벌거벗은 생명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그런 *과도한 행위를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떤 학생이 *집단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현상은, 그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이 자신들도 언젠가 조금만 잘못하면 곧 *왕따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 P20

그러나 한번 반대로 생각해 볼까요.
문둥이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포용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신 또한 *벌거벗은 생명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공포감에서 일정 정도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벌거벗은 생명이 되어도 *나를 포용해 줄 *타자의 몸짓을 기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것은 결국 ‘조에와 비오스‘를 할당하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 P321

/ 리오타르와 이상, 포스트모던의 모던함


"어느 시대에 등장하든 간에, **모더니티는 기존의 *믿음을 *산산이 부수지 않고서는 그리고 *"실재의 결여"를 발견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가 없었따. 동시에 모더니티는 다른 실재들을 발명하면서 존재하는 것이다."

리오타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 P351

산업 자본은 소비자들이 *새로운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횩하는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산업 자본은 기존의 가치나 통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우리는 *‘새로움‘ 혹은 ‘낡음‘과 관련된 *시간 의식을 비로서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P352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을 모던 뒤에 오는 시대라고 보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그는 *포스트모던이란 바로 &모던의 핵심, 즉 **무한히 새로움을 반복해야 할 **강박증적 운동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신마저 낡은 것으로 뒤로 보낼 수 있어야만
‘새로움‘은 진정으로 새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353

"‘숭고 the sublime‘는 상상력이 - 단지 원리적으로만 어떤 개념과 어울리 수도 있는 - 어떤 대상을 표현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어떤 작품도 우선 포스트모던해야만 모던하게 될 수 있다. 이렇게 이해된 포스트모더니즘은 곤경에 빠진 모더니즘이 아니라 발생 중에 있는 모더니즘이고, 이런 상태는 불변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한 것은 모던한 것 속에서 *표현 그 자체 속에서 *표현불가능한 것을 제안할 수 있는 것이며,

도달불가능한 것에 대한 집단적 향수를 공부하도록 만드는 *취향의 동의,

즉 *좋은 형식이란 *위안을 거부하는 것이며,
그것을 *향유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표현 불가능한 것에 대한 더 강한 *느낌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새로운 표현을 모색하는 것이다." - P354

"어떤 작품도 우선 포스트모던해야만 모던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사실 "어떤 작품도 부단히 새로워져야만 진정으로 새로울 수 있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 P354

과거 **모던 사회에서는 **이성의 순수성, 지식의 통일성, 사회의 합리성이 강조되었다.

리오타르는 이제 사회는 변화되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성의 복잡성, 지식의 파편성, 사회의 비합리성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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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인간이란 동시에 폐쇄된 인간을 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들 모두를 완결이라곤 없는 무한한 곳으로 내몰아 버린다.

자기 분열을 일으키는 문제적 본성의 인간들만이 그에겐 예술적으로 형상화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완벽하고 성숙한 인물들을 나무에서 열매를 흔들어 따내듯 흔들어 내친다. 그는 고통을 앓는 자들만을 사랑한다.

자신의 삶을 격상하고자 노력하면서 분열된 형식을 취하고, 혼돈으로 머무르면서 운명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자들만을 그는 사랑한다. - P86

도스토옙스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현실적 삶과의 관계를 알지 못하며, 이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이 인물들만의 독특한 점이다. 그들은 결코 현실 속으로 파고들려 하지 않고, 처음부터 현실을 뛰어넘어 무한한 것을 지향한다.

그들의 제국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모든 현실적 소유물인 가치, 직책, 권력, 돈 등의 그 모든 가식적 형식은 발자크에서처럼 목표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일 작가들에서처럼 수단도 아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삶을 느끼려 한다. - P90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도시나 거리에 있ㄴ느 우물이 아니라 이 원초적 샘에서 물을 마시기를 원한다.

그리고 내적으로 영원과 무한성을 느끼며 일상적 시간성을 끝내려 한다. 그들은 사교적 세계가 아니라 영원한 세계만을 알고 있다.

삶을 배우거나 제압할 의도가 없으며, 삶의 벌거벗은 그대로 느낌으로써 실존의 황홀감을 얻고자 한다. - P92

그들은 뿌리가 뽑히고 방향감각을 잃고 있다.

**고정된 것이라곤 없었고, 어떤 *가치도 확고하지 않았으며, **시대의 기준도 없었다. 믿음의 성좌는 더 이상 그들의 머리 위에서 빛나지 않았고, 법칙이란 것도 이미 그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지 못했다.

전통이라는 뿌리를 상실한 도스토옙스키의 작중 인물들은 순수 러시아 혈통의 과도기적 인간들로서, 가슴에는 *새로운 시대의 *카오스를 안은 채 각종 *장애와 *불확실성에 시달렸다.

그들 모두가 **과도기의 인간, *새로운 시작의 인간들이었다.

- P94

*일반 유럽인의 경우 이미 *굳어져 무감각한 개념이 되어 버린 모든 질문들이 그들에게는 **핏속까지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편안한 길, *도덕이라는 손잡이와 *윤리적인 길잡이를 동반하는 그 길을 알지 못했고, 따라서 그들은 항상 어디서나 멀리서 가물거리는 *무한지대를 바라보며 덤불숲을 지난다.

우리가 교육이라는 것을 통해 태만하게 되어 버린 곳에서 그들은 열정을 불태우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개별 인물들은 *모든 문제를 다시 한 번 *교정하고, **피 묻은 두 손으로 **선과 악의 **경계석을 옮긴다. 각자가 세계를 위한 **혼돈을 창출한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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