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1: 전근대>
/ 내재적 발전론과 한국사 인식
내재적 발전론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읽는다면, 시회발전의 계기가 사회 내부에 있다는 주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한 역사인식은 *맑스주의의 유물사관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회 내부의 *생산력 발전을 계기로 *생산관계의 변화가 초래되고, 그것이 *사회계급의 분화로 나타나 새로운 사회계급이 *계급투쟁을 통해 *새로운 사회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한 사회가 다음 사회로 이행해간다고 보는 맑스의 *역사발전원리는 *사회 내부에서 발전의 계기를 찾는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내재적 발전론이다. - P307
*유물사관은 역사 전체의 *합법칙적 발전원리르 체계화하지만 *분석의 주대상은 *근대 자본주의사회로의 이행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고,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함으로써 *사회주의 사회로의 *혁명적 이행을 전망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맑스주의의 유물사관이 보여주는 내재적 발전론이 역사발전의 합법칙적 전재, 근대사회로의 이행 법칙,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전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 P308
그런데 유물사관의 내재적 발전론은 유럽사회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을 또한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맑스는 *아시아 사회의 생산양식과 그 전개에 대해서는 *유럽사회와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다.
아시아는 유럽과 다른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지닌 독특한 사회로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생산력이 정체된 독특한 아시아적 공동체사회가 이어졌다고 보았다.
그는 아시아 사회에 대해서는 내재적 발전론이 아니라 오히려 *정체론에 입각해서 이해했다. 유물사관의 내저적 발전론은 아시아 사회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 P308
/ 식민주의 사관
근대국가 수립 과정에서 제국주의로 발돋움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은 *수천 년의 **정체된 체제를 유지하여 **자주적 근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식민지의 길을 통해 **근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제죽주의 국가들의 아시아 인식이었다.
후진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서 한국을 *병합하여 *식민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의 후진성과 *정체성이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P309
**식민주의 사관은 대체로 *한국사를 **타율성과 **정체성을 특징으로 하는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P309
**타율성이란 한국인이 한국 역사의 주인공, *역사발전의 주체로 등장하지 못하고, *역사의 전개도 인접한 *외세의 영향에 의해 수동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역사인식을 말한다.
일본과 한국의 조상이 동일하다는 *일선동조론, 지정학적으로 반도에 위치하여 대륙과 해양의 지배를 피하지 못한다는 *반도적 성격론, 고대 한반도 남부에 일본의 식민통치기관이 있었다는 *임나일본부설, 한국사를 만주 역사에 포함시켜서 보려는 *만선사관 등, 한국사의 *열등함을 강조하는 여러 내용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 P309
*정체성이란 한국 역사가 *주체적으로 *발전을 추진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사회 내부적으로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는 등 발전의 길을 찾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천 년 동안 *정체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역사인식을 말한다.
*사회적 계급이 분화되지 못하고, *도시와 상공업이 발달하지 못하고, *사유재산제가 성립되지 못한 정체된 사회, *봉건제 이전의 *씨족적 사회가 그대로 유지되었고 한다.
또 조선시대에 대해서도 500년 동안 *기술의 발전이나 *자본의 축적이 전혀 없이 *동일한 생활이 반복되는 정체된 사회였다고 한다. - P309
**식민주의 사관의 타율론/정체론은 일제가 한국을 신민지로 만들면서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을 강조하고, *식민지를 통해 *비로소 **근대적 발전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닌다.
이런 식민주의 사관은 *내재적 발전론과 *정반대되는 역사인식이다. - P310
/ 식민주의 사관 비판
*식민주의 사관에서 주장하는 타율론이나 정체론은 한국사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역사학자들은 일본인 역사학자와 논객들이 만들어낸 식민주의 사관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국 민족은 *수천년 동안 *독자적 문화를 창조해낸 *우수한 민족이라 주장하고, 그 자취를 들추어내 대중에게 알리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한 우수한 민족으로서 *스스로의 역량을 동원하여 *역사를 발전시켜왔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 주장은 *독립운동의 *이념적 기반이 되기도 하고, *그 자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생각되기도 했다.
*신채호, 정인보 등 우리가 *민족주의 역사학자로 부르는 인물들이 이런 주장에 앞장섰다. 이들의 주장은 주로 *식민주의 사관의 *타율론을 비판하는 데 집중되었다.
*다만 타율론을 비판하고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독립국가를 추구하지만, 그것이 *어떤 사회여야 하는지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했다. - P310
식민주의 사관이 *정체론 비판은 *1930년대 맑스주의 역사학자 *백남운에 의해 제기되었다.
맑스주의 유물사관이 기본적으로 *내재적 발전론이면서 아시아 사회를 정체된 사회로 규정한 것은 앞에서 본 바와 같지만, 백남운은 유물사관의 내재적 발전론을 *한국사에 적용함으로써 *맑스의 아시아사회 정체론을 비판했는데, 그것은 곧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론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선 경제사는 조선 민족의 사회적 존재를 규정하는 각 시대에 있어서 경제조직의 내면적 관련, 내재적 모순의 발전 및 거기서 일어나는 생산관계의 계기적 교대의 법칙성과 불가피성을 과학적으로 논증하는 것이다." - P311
백남운은 고대 노예제 사회와 중세 아시아적 봉건사회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지만, 근대사회로의 이행이나 식민지 사회와 그 이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를 제시하지 못했다.
조선 후기 자본주의 맹아의 발생가능성, 식민지 이식 자본주의의 발달을 언급하는 정도였으며, 맑스가 분석의 주대상으로 삼은 근대 이후의 사회변화 연구에는 미치지 못했다. - P311
이상에서 식민주의 사관에 대한 비판은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거나 경제발전의 내재적 법칙성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민족주의 사학이 *타율론을 비판하여 *민족문화의 역량과 우수성을 강조한 것을 내재적 발전론이라고 명백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맑스주의 사학이 정체론을 비판한 것은 내재적 발전론의 개념에 근접하는 것이었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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