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해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감탄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 P13

<고흐, 영혼의 편지>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우리 두 사람 모두 아직은 *산 자의 땅에 있다는걸 확인시켜 주었다. 너와 함께 산책을 하니 예전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것 같았다. 

*삶은 좋은 것이고 소중히 여겨야 할 값진 것이라는 느낌 말이다.

근래 내 생활이 더 보잘것없어지면서 삶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비관적인 생각에 젖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너와 함께 보낸 시간 덕분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유쾌한 기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 P14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다정하고 애정 어린 관계나 친밀한 우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세련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런 애정이나 우정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며, 무언가 *공허하고 *결핍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 P15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어,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다.

그래서 늘 변하게 마련인 우리 마음과 날씨를 생각해 볼 때,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 P16

그동안 너는 나에게 이방인이 되어버렸고,
나도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너에게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 같다. - P16

이를테면 빵을 먹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책에 대해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정신을 고양하고 탐구할 필요를 느낀다. - P18

영혼에 깊이 새겨진 것은 영원히 살아 있어서
계속 그 대상을 찾아다닌다고 하지 않니.

나는 향수병에 굴복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네 나라, 네 모국은 도처에 존재한다고.
그래서 절망에 무릎을 꿇는 대신
적극적인 멩랑콜리를 선택하기로 했다. - P19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노력을 멈춘다면,
나는 *패배하고 만다.

*묵묵히 한 길을 가면 무언가 얻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 P20

나의 최종 목표가 뭐냐고 너는 묻고 싶겠지.

초벌 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유화가 되듯,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음어감에 따라

그리고 덧없이 지나가는 최초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황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도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예술가뿐 아니라 복음 전도자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아야 한다. - P20

제발 내가 포기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나는 꽤 성실한 편이고, *변했다 해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니까.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내가 무엇에 어울릴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어떻게 *지식을 더 쌓고 이런저런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뿐이다.

게다가 *고질적인 가난 때문에 이런저런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고, 온갖 *필수품이 내 손에는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우울해질 수밖에 없고, *진정한 사랑과 우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또 *내 영혼을 갉아먹는 *지독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사랑이 있어야 할 곳에 *파멸만 있는 듯해서 넌더리가 난다. 

*이렇게 소리치고 싶다. 
**신이여, 얼마나더 기다려야 하나요!

- P22

어쩌면 네 영혼 안에도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누구도 *그 불을 쬐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곤 *굴뚝에서 나오는 가녀린 연기뿐이거든. 
*그러니 그냥 가버릴 수밖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힘을 다해 내부의 불을 지키면서, 누군가 그 불 옆에 와서 앉았다가 계속 머무르게 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려야할까?(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끈질겨야 할까!) 
*믿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빠르든 늦든 *오고야 말 *그때를 기다리겠지.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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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청소부>


/ 결론: 근대철학의 경계들

*주체와 *진리라는 두 개념으로 요약했던 데카르트의 문제설정은 신학과 교회의 지배 아래 있던 철학을, 그 *중심을 **‘나‘라는 **주체로 전환함으로써 *중세 전체와 구별되는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철학적 *‘시대‘를 여는 *새로운 *사고방식의 출발은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철학적‘ *근대가 시작되었습니다. - P437

이 철학적 근대를 특징짓는 **근대적 문제설정은, **주체의 통일성과 **중심성을 가정하며 그것을 개념적 *연역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다는 점에서

**‘주체철학‘이란 특징, 모든 지식을 오직 *‘참된 지식‘ *‘과학‘이란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정당화하는 점에서 *‘과학주의‘란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성의 빛‘으로 만물을 비추어야 하며, *인간의 몽매한 삶과 **실천 역시 이 *이성의 빛에 의해 *‘계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계몽주의‘라는 특징도 갖고 있었습니다.

- P437

이것이 중세철학과 단절하면서 근대철학이 힘차게 그었던 *새로운 *경계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문제설정은 **주체와 **대상 간의 **일치를 **보증할 수 없다는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는 *주체철학과 *과학주의, 나아가 *계몽주의라는 *근대철학의 입장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는 주체철학과 과학주의, 나아가 계몽주의라는 **근대철학의 입장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근본적 난점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근대철학의 **근본적 딜레마로, 이로 인해 *이후 *근대철학에서는 *다양한 흐름과 입장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 P438

한편 로크는 영국의 유명론적인 전통에 입각해 데카르트 철학을 새로이 변형시킵니다. 즉 *본유관념과 *실체를 *유명론의 입장에서 비판함으로써 흔히 *‘경험주의‘라고 부르는 독자적인 흐름을 이루어냈습니다.

이것은 분명 근대철학의 경계 안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데카르트적 흐름과는 매우 다른 독자적이고 새로운 흐름임에 틀림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경험론을 통해 *유명론은 *‘근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명론과 근대철학은 해소하기 힘든 긴장을 갖고 있었고, 이 긴장은 *흄에 이르러 극한에 다다릅니다.

즉 그것은 근대철학의 딜레마를 극한까지 밀로 나가 근대철학의 출발점과 목표 전체를 해체시켜 버립니다. 이론 인해 ‘근대철학의 위기‘가 나타나죠. - P438

칸트는 위기에 처한 근대철학에 *‘선험적 주체‘라는 새로운 기초를 마련함으로써 그것을 재건합니다.

그것은 모든 주체들에게 *공통된 *보편적 *사고구조를 찾아냄으로써 그들이 **보편적 판단에 이를 수 있음을 밝히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서 그가 사용한 방법은 *진리를 **주체 내부로 이전시킴으로써 주체를 *객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객관적 진리를 *사고 주체의 속성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주체에게는 **객관성을 주는 방법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주체와 *객체를 *동일한 것으로 결합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주-객 동일성‘의 이념은 이후 독일철학 전반을 특징짓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 데카르트나 로크와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철학적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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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세계>


/ 프롤로그

*2006년과 1931년 사람들의 이런 차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뉴기니 고원지대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서는 *수천 년이 걸린 변화를 지난 *75년 동안 압축적으로 겪었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 - P15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 계통에서 분리되기 시작한 이후로 거의 *600만 년 동안, 인간 사회에는 금속을 비롯한 현대 사회의 특징들이 없었다.

이런 특징들은 기껏해야 1만 1,000년 전, 그것도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을 뿐이다. - P15

뉴기니인을 처음 만났을 때는 색다르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그 후로 확인한 이런 모든 *유사성 때문에 나는 *"인간은 어디에서 살든 기본적으로 똑같다" 라는 *잘못된 생각까지 품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 결국 나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많은 점에서 *똑같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예컨대 뉴기니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식으로 수를 헤아리고(추상적인 숫자를 사용하지 않고 시각적인 매핑을 사용한다), 부인이나 남편을 다른 식으로 선택하며, 부모와 자식을 다른 식으로 대하며, 위험을 인식하는 방법도 다르고,
우정에 대한 개념도 다르다. 

**차이점과 **유사점의 이런 *복잡한 혼재가 외부인에게 *전통 사회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다. - P18


*전통 사회가 우리 *관심을 끌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또 다른 이유는 *조상들이 실질적으로 *수만 년 동안 살아온 특징들이 그 사회에 *간직돼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의 전환은 **약 1만 1,000년 전에야 시작되었다. 

**금속 도구는 *약 7,000년 전에야 처음 만들어졌고,

**최초의 정부와 최초의 문자는 **약 5,400년 전에 등장했다.

- P18

인류의 역사에서 ‘현대적‘ 조건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고, 그것도 국한된 지역에서였다.

*모든 인간 사회는 *현대화의 누린 시기보다 *훨씬 오랫동안 *전통적이었다. - P19

전통 사회는 대다수의 문화적인 풍습에서 *현대산업사회보다 *훨씬 **다채롭다. 

이런 *다양성이란 스펙트럼에서, *현대 사회의 많은 *문화적 규범이 *전통적 규범에서 훌쩍 벗어나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띤다.

 예컨대 *현대 산업사회와 비교할 때, 노인을 훨씬 잔혹하게대하는 전통 사회가 있는 반면에 노인들에게 훨씬 쾌적한 삶을 제공하는전통 사회가 있다. 현대 산업사회는 후자보다 전자에 가까운 극단적 성격을 띤다. 

- P20

현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다양성을 완전히 파악하지 않고 *한정되고 *비전형적인 부분에 대한 *연구만을 근거로 **인간 본성을 일반화한다. 

가령 2008년에 발간된 *유수한 심리학 학술지들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논문들이 다룬 *피험자의 96퍼센트가 *서구 산업사회에 속한 사람들(북아메리카,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이스라엘)이었고, *68퍼센트가 *미국인이었다. 

또한 *80퍼센트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었다. 대학생이고 사회를 대표하는 집단이라 할 수 있는가. 

여하튼 사회과학자 조지프헨리히(Joseph Henrich), 스티븐 하이네(Steven Heine), 아라 노렌자얀(AraNorenzayan)이 말하듯이, 

*인간 심리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WEIRD(westerm,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and democratic) 한 사회에 속한피험자를 주로 연구한 결과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피험자가 *세계문화의 *다양성이란 기준에도 크게 *어긋난다. 연구 범위를 세계 전역으로 크게 넓혀 추출한 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많은 연구에서 그들은 국외자로판명 났기 때문이다. 

*표본을 추출하는 *현상들에는 *시각적 인식, *공정성과 협동, *징계, *생물학적 추론, *공간적 방향, *분석적인 추론과 *전체론적인 추론, *윤리적인 추론, *관심에 따르는 동기, *의사결정, *자아인식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인간 본선에 대해 일반화하려면 연구 범위를 지금처럼 WEIRD한 피험자에 국한하지 않고 전통 사회까지 크게 넓혀야 한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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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었지요.
내일도 그걸 거예요.
내일이 오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
당신은 모르실 거예요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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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1: 전근대>


/ 내재적 발전론과 한국사 인식

내재적 발전론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읽는다면, 시회발전의 계기가 사회 내부에 있다는 주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한 역사인식은 *맑스주의의 유물사관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회 내부의 *생산력 발전을 계기로 *생산관계의 변화가 초래되고, 그것이 *사회계급의 분화로 나타나 새로운 사회계급이 *계급투쟁을 통해 *새로운 사회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한 사회가 다음 사회로 이행해간다고 보는 맑스의 *역사발전원리는 *사회 내부에서 발전의 계기를 찾는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내재적 발전론이다. - P307

*유물사관은 역사 전체의 *합법칙적 발전원리르 체계화하지만 *분석의 주대상은 *근대 자본주의사회로의 이행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고,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함으로써 *사회주의 사회로의 *혁명적 이행을 전망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맑스주의의 유물사관이 보여주는 내재적 발전론이 역사발전의 합법칙적 전재, 근대사회로의 이행 법칙,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전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 P308

그런데 유물사관의 내재적 발전론은 유럽사회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을 또한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맑스는 *아시아 사회의 생산양식과 그 전개에 대해서는 *유럽사회와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다.

아시아는 유럽과 다른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지닌 독특한 사회로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생산력이 정체된 독특한 아시아적 공동체사회가 이어졌다고 보았다.

그는 아시아 사회에 대해서는 내재적 발전론이 아니라 오히려 *정체론에 입각해서 이해했다. 유물사관의 내저적 발전론은 아시아 사회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 P308

/ 식민주의 사관

근대국가 수립 과정에서 제국주의로 발돋움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은 *수천 년의 **정체된 체제를 유지하여 **자주적 근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식민지의 길을 통해 **근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제죽주의 국가들의 아시아 인식이었다.

후진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서 한국을 *병합하여 *식민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의 후진성과 *정체성이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P309

**식민주의 사관은 대체로 *한국사를 **타율성과 **정체성을 특징으로 하는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P309

**타율성이란 한국인이 한국 역사의 주인공, *역사발전의 주체로 등장하지 못하고, *역사의 전개도 인접한 *외세의 영향에 의해 수동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역사인식을 말한다.

일본과 한국의 조상이 동일하다는 *일선동조론, 지정학적으로 반도에 위치하여 대륙과 해양의 지배를 피하지 못한다는 *반도적 성격론, 고대 한반도 남부에 일본의 식민통치기관이 있었다는 *임나일본부설, 한국사를 만주 역사에 포함시켜서 보려는 *만선사관 등, 한국사의 *열등함을 강조하는 여러 내용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 P309

*정체성이란 한국 역사가 *주체적으로 *발전을 추진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사회 내부적으로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는 등 발전의 길을 찾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천 년 동안 *정체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역사인식을 말한다.

*사회적 계급이 분화되지 못하고, *도시와 상공업이 발달하지 못하고, *사유재산제가 성립되지 못한 정체된 사회, *봉건제 이전의 *씨족적 사회가 그대로 유지되었고 한다.

또 조선시대에 대해서도 500년 동안 *기술의 발전이나 *자본의 축적이 전혀 없이 *동일한 생활이 반복되는 정체된 사회였다고 한다. - P309

**식민주의 사관의 타율론/정체론은 일제가 한국을 신민지로 만들면서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을 강조하고, *식민지를 통해 *비로소 **근대적 발전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닌다.

이런 식민주의 사관은 *내재적 발전론과 *정반대되는 역사인식이다. - P310

/ 식민주의 사관 비판


*식민주의 사관에서 주장하는 타율론이나 정체론은 한국사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역사학자들은 일본인 역사학자와 논객들이 만들어낸 식민주의 사관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국 민족은 *수천년 동안 *독자적 문화를 창조해낸 *우수한 민족이라 주장하고, 그 자취를 들추어내 대중에게 알리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한 우수한 민족으로서 *스스로의 역량을 동원하여 *역사를 발전시켜왔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 주장은 *독립운동의 *이념적 기반이 되기도 하고, *그 자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생각되기도 했다. 

*신채호, 정인보 등 우리가 *민족주의 역사학자로 부르는 인물들이 이런 주장에 앞장섰다. 이들의 주장은 주로 *식민주의 사관의 *타율론을 비판하는 데 집중되었다. 

*다만 타율론을 비판하고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독립국가를 추구하지만, 그것이 *어떤 사회여야 하는지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했다. - P310

식민주의 사관이 *정체론 비판은 *1930년대 맑스주의 역사학자 *백남운에 의해 제기되었다.

맑스주의 유물사관이 기본적으로 *내재적 발전론이면서 아시아 사회를 정체된 사회로 규정한 것은 앞에서 본 바와 같지만, 백남운은 유물사관의 내재적 발전론을 *한국사에 적용함으로써 *맑스의 아시아사회 정체론을 비판했는데, 그것은 곧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론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선 경제사는 조선 민족의 사회적 존재를 규정하는 각 시대에 있어서 경제조직의 내면적 관련, 내재적 모순의 발전 및 거기서 일어나는 생산관계의 계기적 교대의 법칙성과 불가피성을 과학적으로 논증하는 것이다." - P311

백남운은 고대 노예제 사회와 중세 아시아적 봉건사회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지만, 근대사회로의 이행이나 식민지 사회와 그 이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를 제시하지 못했다.

조선 후기 자본주의 맹아의 발생가능성, 식민지 이식 자본주의의 발달을 언급하는 정도였으며, 맑스가 분석의 주대상으로 삼은 근대 이후의 사회변화 연구에는 미치지 못했다. - P311

이상에서 식민주의 사관에 대한 비판은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거나 경제발전의 내재적 법칙성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민족주의 사학이 *타율론을 비판하여 *민족문화의 역량과 우수성을 강조한 것을 내재적 발전론이라고 명백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맑스주의 사학이 정체론을 비판한 것은 내재적 발전론의 개념에 근접하는 것이었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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