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 수업>

/ 논리 수업에 필요한 용어 정리


결론 : 추론의 도달점이자 일정한 명제를 전제로 하여 이끌어 낸 판단.

귀납 논증 : 결론이 전제에서 개연적으로 도출되는 논증.

근거 : 결론에 대한 전제나 결과에 대한 원인.

논리 : 타당한 추론을 이끌어가는 원리와 규칙.

논점 : 논의나 논쟁의 중심이 되는 문제점.

논증 : 전제와 결론으로 구성된 명제들의 집합으로 추론과정의 언어적 표현.

명제 : 어떤 문제에 대한 논리적 판단 내용과 주장을 언어 또는기호로 표시한 것으로,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내용.

모집단 : 통계적인 관찰의 대상이 되는 집단 전체.

부당하다 : 논증이 타당하지 않을 때에 한해 ‘부당하다고 한다.

상대방 : 논증을 반박하려는 사람.

상정想定 : 논증이나 논증 제시자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명제.

양상相 : 진술 명제의 필연성, 가능성 혹은 불가능성을 다루는 진술.

연역논증 : 결론이 전제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논증. - P18

오류 : 논증에서 부당한 추론을 쓰는 것.

전제 : 추론의 출발점이자 결론의 근거가 되는 판단.

정의 : 개념이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것을 표시한 것.

조건문 : A이면 B이다. 형태의 진술로, A가 참이고 B가 거짓일때만 진릿값이 ‘거짓‘이다.

청중 : 논증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또는 그 논증이 향하는 사람들

추론 : 어떤 판단을 근거로 삼아 다른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

타당하다 : 전제가 참이면 결론이 거짓일 수 없는 논증을 타당하
다고 한다.

표본 : 모집단 전체에 적용되는 추정치를 구하기 위해 조사하는 모집단의 일부.

P1, P2 55 등등 : 이 기호는 ‘진술 1, 진술 2 등등‘을 뜻한다.

이 기호는 따라서‘를 뜻한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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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래에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한 나라의 *복지 척도를 규정하는 다섯 가지 범주

- **교육, 건강, 삶의 질, 경제력 및 정치적 환경 - P13

영국 노동당 당수인 에드 밀리밴드는 다음과 같은 깜짝 발언을 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원한다면, 핀란드로 가십시오." - P14

노르딕 5개국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영미권에서는 다섯 노르딕 나라를 흔히 ‘스칸디나비아’라는 용어를 쓰지만,
유럽권에서는 문화적 정치적으로 통합된 지역임을 가리키기 위해 *노르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 P16

미국은 오랫동안 자유와 독립, 개인주의, 기회의 빛나는 등대였다.

적지 않은 미국인이 노르딕 국가들을 가엾은 *사회주의 유모 국가라고 여긴다.

행복을 증진하기는커녕 의존성, 무관심, 절망을 양산하는 복지 프로그램이나 애지중지하는 국가들로 치부하는 것이다. - P18

노르딕 나라들에서 우울증, 알코올 중독 및 자살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을 역설했다.

어둡고 차디찬 겨울이 오래 지속되는 탓에, 핀란드 국민 다수는 연중 상당 기간 침울하게 지낸다. - P18

사람들은 21세기 초에 노르딕 국가를 떠나 미국에 정착하는 것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굉장히 특이한 - 특이하게 힘겨운 - 경험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네 삶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는지에 관해 충분히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P19

영국의 배우 헬렌 미렌은 이런 말을 했다.

"여성이라면 누구든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경제적 독립이다. - P27

겨울 헬싱키에서 해가 보이는 건 하루에 세 시간 뿐이다.

외국에 갈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정신건강을 위해 한겨울의 태국 여행을 꿈꾼다.

게다가 핀란드인들은 삶이란 원래 끝없는 장애물과 실망의 연속이라고 여겨 시시콜콜한 잡담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따라서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과묵하고 심지어 무례하게 비칠 수 있다. - P28

핀란드의 우울한 분위기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미국 특유의 낙관주의, 진취성, 창의성 그리고 험난한 상황을 유리한 이점으로 탈바꿈시키는 재주

시수 sisu 투지 강단. 영어로는 그릿 grit에 가깝다 - P28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맛살을 연신 찌푸렸던 것이다.

자신감은 위협밥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가해지자 비로소 나 자신과 조국에 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미국 정치인 여럿의 지적에 따르면, 노르딕 국가들은 시민에게 **무책임을 조장해 **진취적인 기질을 억누른다.

그 결과가 정부에 불건전하게 *의존하는 *무기력하고 순진하고 유치한 국민들의 나라다. 그런 사회다 보니 나 같은 *약골이 나온다는 것. - P37

미국에서 새로 만난 지인들과 조금 친해지고 보니, 놀랍게도 다들 나처럼 때로는 *나보다 *더 심각하게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거의 모두가 **버거운 일상을 감당하느라 부단히 애썼는데, 치료를 받고 *약을 복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 국립정신보건원(NIMH)이 추산하기로, *미국의 *성인 *다섯 중 한 명은 **불안장애를 앓으며, 가장 흔히 처방되는 정신과 약물은 불안 치료제— **자낙스라는 상표명으로 알고 있는 알프라졸람-였다. - P38

이제 나는 심하게 외롭지도 자책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안도했을지 상상해보라.

2006년에 한 생명보험회사가 행한 연구 결과, 설문에 답한 **미국인 여성 중 **90퍼센트가 *경제적으로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으며 **46퍼센트는 결국 *노숙자로 길바닥에 나앉을지 몰라 실제로 심각하게 *두렵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46퍼센트의 여성 중 거의 *절반은 *연소득이 *10만달러 이상이었다.(심지어 금융 위기 전에 실시된 연구였다.) 연간 10만 달러 이상 버는 여성들이 밑바닥 인생으로 떨어질까 두려워하고 있었다면, 미국인들이 무더기로 느끼는 불안감을 나도 느꼈던 셈이다.

차이라면, 그 두려움이 내겐 생경했지만 그들한테는 단지 일상이었다.

나는 뒤집어 생각해보았다. 내가 이민자라서 불안했던 것이 아니라 미국인이 되어가느라 불안했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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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는 ‘상권‘과 ‘하권, 그리고 ‘나의 소원‘으로 이뤄져사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김구의 본명은 김창암이었다.

김창수는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의 일환으로 일본일을 죽였고, *김구(金)로 개명했다. 김구는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애국계동주의의 *민권 사상과 *일제에 맞서는 *국권 사상을 배웠다. - P21

이름을 다시 김구(金九)로 바꾼 그는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해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임시정부에서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령을 맡았고, *이봉창 의거와 윤봉길 의거를 주도했다.

1930년대 이후 임시정부를 대표하고 *주석에 취임했으며, *광복군 창설 등 독립투쟁을 이끌었다. 1945년 광복이 이뤄지자 **11월 그리운 조국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김구는 반봉건 반외세를 외친 동학의 접주였고, 애국계등을 내세운 교육운동가였으며, 민족독립을 추구한 독립운동가다.

김구의 삶은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민족이 최치은 가시밭길을 상징했다. 백범일지》를 읽노라면 우리는 **한족이 누구이고, **나라 사랑이란 무엇인가의 질문들과 조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민족과 애국의 현재적 의미를 성찰하게다. 책습일지 가 안겨주는 선물이다. - P21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 혈통적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남는 것이다.

(…)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 P22

김구의 민족주의 사상을 집약한 말이다.

도진순은 **김구의 민족주의가

**혈연을 기반으로 하는 **단일민족론,
**문화와 역사의 공통성을 강조하는 **문화민족론으로 구성돼 있고,
**이 민족주의가 내부적으론 **자유민주주의, **남북 간에는 **민족단결론, **대외적으론 **열린 민족주의와 연결돼 있다고 정리했다.

현재의 시점에서 민족에 대한 김구의 *혈통주의적 접근은 *방어적 민족주의론으로 볼 수 있다.

*세계화에 따른 *다문화사회의 도래를 고려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이라는 *당대의 시점에서 *완전한 독립국가의 건설은 *더없이 *중대한 민족적 과제였다.

지난 20세기 전반 우리 민족은 억압됐고, 상처받았으며,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 P22

인간은 본디 복수적 자아들로 구성된다.
실존적 자아, 민족적 자아, 지구적 자아가 그것이다.

1945년 이후 전후 시대가 막 열렸던당시 우리나라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고, 민족은 의당 그 **주체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구의 민족주의가 안겨주는 울림이 컸던 이유다.

《백범일지》를 출간한 이듬해인 1948년 김구는 통일정부 수립을 요구한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을 발표했다. 그리고 김규식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남북연석회의에 참여했다. 김구의 남북협상은 *국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좌절됐다. *1949년 6월 김구는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운명했다. - P23

역사학자 서중석은 《한국 현대사 60년》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김구는 이승만의 가장 유력한 정치 라이벌이었고, 1948년에남북협상을 주장한 이래 통일독립운동의 *민족적 지주로 존경을받았다. 김구의 장례 행렬에는 무려 *50만여 명이나 참여해 역사상 최대 인파를 기록했다."

강화도조약이 맺어진 해에 태어난 김구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에 이렇게 안타깝게 세상을떠났다. - P23

민족주의의 미래

김구의 사상은 *혈통과 *문화와 *역사를 *중시한 **민족주의였다.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광복 이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이념이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민족주의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 P23

*서구 지식사회에서 **민족주의에는 두 이론적 전통이 맞서왔다.

바로 **영속주의와 **현대주의다.

**영속주의가 민족을 과거로부터 이어진 영원하고 불변하는 존재로 본다면,

**현대주의는 민족을 현대성의 발명품으로 파악한다.

**민족의 기원을 고대나 중세로부터 찾는 게 영속주의이며, **근대화가 민족주의를 만들고 이 민족주의가 민족을 창조했다고 보는 게 현대주의다. - P24

주목할 것은, **서구 민족주의와 **비서구 민족주의 사이에 상당한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비서구 민족주의의 경우 *반제국주의성향이 두드러지고 민족의 역사성이 강조된다. 김구의 민족주의는 이러한 전통 속에서 배태됐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서구와 달리 **근대 이전에 *민족과 *민족주의는 *실재했다고 보는 게 온당하다.
사회학자 신용하는 우리 역사에서 민족이 먼저 형성되고 이어서민족주의가 출현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 P24

그렇다면 21세기 현재 민족주의의 미래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한편에선 **세계화 시대가 *열린 이후 **서로 다른 **민족주의들이 격렬히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세계시민사회의 등장과 **다문화사회의 도래에서 볼 수 있듯, *민족주의의 **배타성이 시험대위에 올라서 있다.

분명한 것은, 강대국과 약소국이 경쟁하는 지구적 차원에서 민족주의를 일방적으로 거부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G2 시대에 민족주의는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은 정치적 기획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민족주의에 **내재된 권위주의와 **인종주의를 승인해서도 안 된다.

**민족주의의 배타성과 폐쇄성은 *극복돼야 한다.

**민족적 정체성과 **세계시민적 정체성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공존시킬 것인지는 새로운 100년으로 가는 우리 사회에 부여된 매우 중대한 과제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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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1945>

/ (해제)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하여, 이만열


사진은 대부분 외형을 가진 실체를 순간적으로 포착한것이다. 한순간의 실체를 드러내려고 한 것이지만, 그것은 그 순간 속에 **응축된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말과 글로 표현되지 않은, 수많은 자기 이야기들을 갖고있는 것이다.

*포착 순간의 공간적 상황 외에도, 이해하기에 따라서는 *그 앞뒤의 *역사적 상황도 풀어낼 수 있다. 공간만이 아니라 그 공간이 형성되기까지의 시간도 그 속에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진 한 장은 *수많은 글자와 *문장으로 만든 책자보다 *더 많은 사실을 이야기할때가 있다. - P8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것은 사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활동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임시의정원은 오늘날의 **국회와 같은 기능을 맡아 *임시정부가 *법적 뒷받침 속에 기능할 수 있도록 했고, **임시정부는 오늘날 **행정부와 같아 임시의정원에서 제정한 법률에 따라 그 기능을 수행했다.

*어떤 때는 구성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기도 했고, 어떤 때는 *임시의정원 의원이 *임시정부 *행정직을 맡기도 하여 그 *구분이 애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립 초기와 *마지막 1940년대에는 그 양자가 *명칭뿐아니라 *활동에서도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 P9

대한민국은 **제헌 헌법 전문에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하였고,

**현행 헌법 전문에도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힘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민족사적 위상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조선 - 대한제국 -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진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에 나타난 **자주독립 이념을 기반으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민국‘을 표방하면서 수립된 **독립운동의 **총지도 기관이었다.

임시정부는 **27년간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1945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긴 세월 동안 **풍찬노숙하면서 국권 회복과 항일 전선을 이끌었다.

1.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성립

*1392년 창건 이래 숱한 내우외환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져 오던 조선조는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 포기와 함께 사라졌다.

**519년간이나 지속되었던 조선조는 그 말기에 **민권民權을 신장시켜 *국권權을 회복할 기회가 있었으나 끝내 비운을 맞았다.

**한말 국권을 수호하려는 **민중의 자각이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운동으로 나타났으나, 제국주의 일본과 그 배후 세력은 한국민들의 이 같은 끈질긴 저항을 압살하고 끝내 한반도를 강점했다.

강점 초기 한국인들의 국권회복운동은 국내외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운동의 조직은 *와해되었지만, 국내는 물론 *만주와 *연해주에서 *국권회복운동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강점 초기의 **국권회복운동은 *조선왕조를 회복하려는 **복벽 운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복벽 운동은 *구왕조를 회복하고 *구질서를 온존시키려는 것이었다. *반상의 차별을 그대로 두겠다는 것은 **구시대의 혈통 신분제를 그대로 두겠다는 것이고, 따라서 **민중이 계속 억압과 수탈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같은 **복벽 운동은 한국인들의 **전폭적이고 **자발적인 국권회복운동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 - P10

**국권회복운동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국민주권론을 공론화한 **대동단결선언‘이었다.

**1917년 7월 신규식 · 박은식 · 신채호 · 조소앙 · 신석우 등 *14명의 이름으로 발표된 이 선언은 *주권 행사의 권리와 의무가 **국민에게 있다는 **국민 주권론을 주장하면서 **‘정부 수립 의지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선언은 **"우리 한국은 한인韓人의 한이요, 비한인韓人의 한이 아니다. 한인 간의 **주권 수수授受는 역사상의 불문법이요, *비한인에게 *주권 양여與는 *근본적으로 **무효이다. 경술년 *융희 황제의 주권 포기는 우리 국민에 대한 **묵시적 선위禪位이다"라고 하여 국민 주권론과 주권 양여론을 주창하였다.

이선언은 **한국의 주권이 **한국인끼리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주권은 **순종純宗으로부터 **일반 국민에게 전해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일본의 한반도 강점이 무효라는것을 선언한 셈이다.

‘대동단결선언‘에서 주장한 국민 주권론은 **신한청년당활동과 **3·1 독립선언을 거쳐 **1919년 4월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현실화되었다.

*3·1 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언하면서 한민족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설립하려고 했다. 이는 *3·1운동 민족 지도자들의재판 진술에서도 나타났다. *독립을 선언하였으니 *국가를 세워야 했는데 이것이 대한민국으로 나타났고, 이 국가를 운용하기 위해 정부를 세워야 했는데 *이것이 *‘임시정부라는 것이었다. - P11

**임시정부는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정부‘, 그리고 *서울에 세워진 **한성정부‘ 등 **세 갈래로 나타났다.

그중 **상하이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한 **13도 대표 **29인이 1919년 4월 10일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 모여 ‘임시의정원을 설립한 뒤 그 이튿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는 나라를 세우고 *10개조로 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해 발표했다.

**임시헌장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함"이었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고 헌법 제1조를 민주 공화제‘로 못박은 민주국가가 건립된 것이다.

이는 곧 *종래의 복벽적 독립운동이 *민주적 독립국가 건설 운동으로 전환한 결실이며, **한민족 최초의 민주국가가 건설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을 운영하려는 임시정부가 세 군데나 서게 되어 혼선을 줄 *우려가 없지 않았다. 1919년 5월, 상하이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으로 임명된 *안창호는 상하이에 도착한 뒤 이 *세 정부를 *통합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한성정부의 정통을 잇고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면서 *세 정부를 아우르는 **‘통합 임시정부가 **1919년 9월 **상하이에서 재출범했다.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하는 정부였다. 통합 임시정부는 국내의 *비밀 행정조직망인 *연통제와 *임시정부 통신 기관인 *교통국을 설치하고 *애국공채를 발행하여 *국민 의연금을 모금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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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국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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