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덕주의자였더라면, 어떤 명칭을 부여하게 될지 알겠는가!

아마도 **‘자기극복’이라는 명칭일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는 도덕죽의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철학자는 그럴듯한 말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 P11

한 *철학자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마지막에도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자기가 사는 *시대를 자기 *안에서 *극복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가장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대상은 무엇인가?

그를 그 시대의 아들이게끔 만드는 것이다.

황폐해진 삶과 종말에의 의지와 큰 권태가 거기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도덕은 *삶을 부정한다.

이런 과제를 위해서 나는 나를 단련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 목표를 위해 과연 어떤 희생이 불필요하다고 할 것인가?

어떤 *‘자기 극복’이! 어떤 ‘자기 부정’이!

나의 가장 큰 체험은 병의 *치유였다. 바그너는 내가 가졌던 병증들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철학자는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를 마음에 걸려 하지 않으면 안 되며 - 그러기 위해 그는 그 시대를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현대성은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 P13

작품 해설

<바그너의 경우>

1888년 초에 니체가 집중하고 있던 문제 주으이 하나는 바로 데카당스의 문제이고, <바그너의 경우>는 이 문제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 P570

여기서 *바그너라는 *이름은 전형적인 *데카당스 예술가이자, 데카당스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성에 대한 총괄 개념으로 등장한다.

니체는 자기의 시대, 즉 *데카당스 시대를 자기 스스로 *경험한 후 자기 안에서 *극복하여 시대를 *초월하는 철학자이고 싶어 한다.

그런 철학자 니체의 눈에 바그너는 음악을 *병들게 한 자이자, 음악이 데카당스 예술로 변질되어가는 운동을 가속시킨 주범이며, 데카당스 미학의 설교자로 비친다. - P571

바그너의 배우 기질이나 음악의 연극화나 극장에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바그너의 예술이 *이상주의를 무기로 해서 *지쳐 있는 것, *죽어버린 것, *삶에 위협적인 것, 세계 비방적인 것을 보호하면서 *이상이라는 허울하에 *반계몽주의를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데카당스 종교를 *그리스도교가 장려하는 것, 즉 황폐해진 삶의 토양에서 자라는 것, *초월과 *피안이라는 날조된 것을 바그너의 예술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바그너는 전형적인 데카당스 예술인 현대 예술가로 지목된다. - P571

이런 *데카당스 예술과 미학은 *현대의 *도덕을 표현한다.

즉 *하강하는 삶의 도덕이자, *삶과 세상을 *부정하고 *상승하는 삶의 도덕을 증오하는 도덕을.

니체는 이런 데카당스 미학과 이런 데카당스 예술에 이별을 고한다. *삶의 *자기 긍정과 *자기 지배를 장려하는 *주인도덕을 표현해주는 아름다운 예술과 위대한 예술로의 회귀를 위해.

고전 미학으로의 회귀를 위해. 자연과 건겅함과 명랑성과 젊음과 덕으로의 회귀를 위해. - P571

<우상의 황혼> 해설

<우상의 황혼>은 *모든 가치의 전도라는 과제를 염두에 둔 작품이다.

‘안티크리스트’와 ‘우상의 황혼’은 마치 쌍둥이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상의 황혼’이라는 *제목은 <*신들의 황혼>을 작곡한 *바그너에 대한 적의가 서려 있는 제목이다 - P572

<우상의 황혼>에서 니체는 *모든 가치의 전도를 위해 *우상들을 캐내고, 우상들을 *망치로 부숴버리는 철학적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것도 *한 시대의 우상이 아니라, *영원한 *우상들이 그 대상이다. - P573

<소크라테스의 문제>에서는 *이성 = 덕 = 행복이라는 공식, *이성, *변증법 등이 *우상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이성 = 덕 = 행복이라는 공식을 도출시키는 *데카당이자 *이성에 대한 *굴복과 복종을 유발시키는 자로, 변증법은 복수의 형식으로 등장한다. - P573

<철학에서의 ‘이성’>은 철학자들의 특이 성질을 부숴버려야 할 우상으로 상정한다.

*역사적 감각의 결여, 생성에 대한 증오, *실제적인 것의 박제, 개념의 숭배, *감각과 육체에 대한 불신과 경시, *최후의 것과 최초의 것에 대한 혼동 등은 그 대표적 예이다.

더 나아가 니체는, *참된 세계와 *가상 세계로 세계를 나누는 *이분법적 방식은 그것이 *그리스도교적이든, *형이상학적이든 간에 *데카당스의 징후이자 *하강하는 삶의 징후에 불과하다는 점,

철학자들이 *참된 세계라는 것은 가상이고, *무의미한 담론에 불과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점을 다시 한번 주장한다. - P573

<어떻게 참된 세계가 결국 우화가 되어버렸는지, 어떤 오류의 역사>는 우상희 황혼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다.

이 대목은 아주 간결한 몇 단어와 형식으로 *형이상학의 역사를 *오류의 역사로서 개괄하고 있다.

*플라톤에서부터 *그리스도교를 거쳐 *칸트에 이르는 *참된 세계와 *가상 세계라는 *이분법의 변천사가 제시되고,

*실증주의를 거치고 *니체에 이르러서 이분법 자체가 *파괴되어버리는 과정을 그러내고 있다.

*오류의 역사의 종말은 곧 *형이상학적 사유의 종말이고, 이 종말은 니체에게서 가능해진다. - P573

<반자연으로서의 도덕>은 *도덕이라는 *우상에 대한 망치질이다.

여기서 파괴되는 도덕은 *반자연적인 속성을 지닌 도덕이다. 이것은 *건강한 *자연주의적 도덕과는 *반대되는 것으로, *삶의 본능들에 적대적인 도덕으로 통찰된다.

*금욕적 도덕이나 *그리스도교 도덕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 P574

<네 가지 중대한 오류들〉에서는 *도덕적 명제와 *종교적 명제가 내포하고 있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오류,

*의지나 *정신이나 *나라고 하는 *내적 사실들을 *원인으로 상정하고 있는 *인과 관계의 오류,

특정한 *원인-해석에 의거하는 오류,

*자유의지라는 오류를 조목조목 분석,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절차를 통해 니체는 우리 *인간을 *판결하고 비교하고 *단죄할 수 있는 우리 **외부의 것은, 이를테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존재의 방식이 *제일 원인으로 소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세계가 정신으로서의 *단일체가 아니라는 것, 신을 부정하면서 인간 삶에 대한 최대의 반박을 부정한다는 것 등을 주장하고자 한다. - P574

《바그너의 경우》에서 제시된 바그너가 그토록 바랐던 *구원은, 그것이 *진정한 구원일 수 있으려면 바로 *세계의 구원이어야 하며, *이 세계의 *구원은 바로 *신을 부정하고 *자유의지를 부정하면서 *책임을 부정할 때에 비로소 달성된다는 것 등이 니체의 결론적 통찰이다.

〈인류를 ‘개선하는 자들>에서는 인류를 개선시킨다는 개선의 도덕Besserungs-Moral이 망치에 의해 파괴되는 우상으로 등장한다.

이런 도덕은 *인류의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인간을 *약화시키고 망쳐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이유를 니체는 인류를 도덕적으로 만들어야만 했던 모든 수단의 비도덕적 성격에서 찾는다.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은 독일 정신과 독일 문화의 *하강에 대한 고발이다.

*독일 문화의 쇠퇴는 *그리스도교나 *바그너적인 독일 음악에 의해 예정된 길이었으며, *독일제국의 등장, 교양의 *민주주의의 확산은 독일 정신과 독일 교육을 부패시켜, *문화 국가로서의 독일은 마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니체는 진단한다. - P574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에서는 니체의 시대 비판과 당대의 여러 특징들에 대해 고찰한다.

르낭, 생트 뵈브, 켐펜, 엘리엇, 상드, 칼라일, 쇼펜하우어 등에 대한 비난과 에머슨과 괴테에 대한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도니다.

속류 심리학이나 다위니즘 그리고 독일인에 대한 비난과 폄하, 순수 예술에 대한 반박과 예술가의 심리 및 예술의 진정한 의미의 고찰 등. - P575

<안티크리스트>


이 작품은 1888년 가을, 우상의 황혼이 씌어진 직후 완성되었다.

니체의 큰 문젯거리였던 *데카당스 문제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격으로 용해되는 이 작품에서는 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것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교적이고 안티 크리스트적인 것이.
니체가 이 작품을 쓰고 있을 무렵에 이미 그리스도교는 비단 나움부르크뿐만이 아니라 독일 내부와 외부에서 일종의 *노쇠해버린 타성으로서, 옛 허섭스레기로 간주되는 경향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실천으로서의 그리스도교는 서서히 하나의 불운으로 있었다. - P576

오히려 <안티크리스트>는 *그리스도교를 *현대 세계의 *가치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공격한다.

즉 *현대의 *도덕과 철학뿐만 아니라, 현대의 *정치적인 면, 이를테면 *정의, *인간의 평등, *민주주의 등까지도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것으로서 통찰되고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니체에게 그리스도교의 *멸절은 사실상의 *‘모든‘ 가치의 전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니체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평가는 아주 *긍정적이며,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그의 예수 그리스도교상을 통해 지적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허무적 종교로, 그리스도교 *신개념을 *힘에의 의지의 *무기력 상태나 *선한 신의 등장으로 반박하는 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진정한 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호의적 평가를 내린다.

예수는 *사랑하며 사는 삶이 *참된 삶이자 *영원한 삶이라는복음, *신과 인간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죄와 그에 대한 *벌이 없다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 이해된다.

*분노하지 않고 *벌도 내리지 않고, 저항도 하지않으며, 자신이 살아왔고 자신이 가르쳤던 바를 몸소 실천한 존재인 예수. 바로 이런 실천만을 인류에게 남겨놓은 예수.

이런 예수 그리스도말로 유일한 그리스도교인이라고 니체는 생각한다. 십자가에서 죽은 유일무이한 그리스도교인을 니체는 아이 같은 존재로, *바보 같은 존재로비유한다. - P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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