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예(techne)와 탐구(methodos), 또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좋음을 모든 것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옳고 규정해 왔다 - P13

모든 종류의 앎과 선택이 어떤 좋음을 욕구하고 있으므로, 정치학이 추구한다고 지적했던 좋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행위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모든 좋음들 중 최상의 것은 무엇인지 논의해 보자.

대중들과 교양 있는 사람들 모두 그것을 ‘행복 eudaimonia’이라고 말하고, ‘잘 사는’(eu zen)과 ‘잘 행위하는 것’(eu prattein)을 ‘행복하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P17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제일원리들로부터 *출발하는 논의와 *제일원리들을 *향해 나아가는 논의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플라톤 역시 탐구의 길이 제일원리들로부터 난 것인지, 아니면 제일원리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인지를 물으며 올바르게 이 점을 문제로 지적했던 것이다.

마치 *달리기 경기장에서 *심판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반대편 끝까지 달리는 것과 그 역으로 달리는 것에는 차이가 있듯이 말이다.

우리는 물론 알려져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알려져 있다’는 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그러하다.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고, *다른 어떤 것들은 *단적으로 알려져 있기 대문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 P18

*플라톤의 *‘좋음의 이데아’는 *감각될 수 있는 좋은 것들로부터 *독립해서, *그 자체로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 P18

*제일원리(arche)는 사실이며, 이것이 *충분히 분명하다면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는 전혀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습관을 통해 훌륭하게 자란 사람은 제일원리들을 이미 가지고 있거나 쉽게 취할 것이다. 가지고 있지도 않고 쉽게 취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면 헤시오도스의 다음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스스로 깨닫는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람이요,
좋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 역시 고귀한 사람이지만,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을 가슴속에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니라" - P19

인간의 기능을 *이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 혹은 이성이 없지 않는 영혼의 활동이라고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 P30

그래서 *각각의 기능은 자신의 *고유한 **탁월성에 따라 *수행될 때 *완성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적인 *좋음은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일 것이다.

또 만약 탁월성이 여럿이라면 그중 최상이며 가장 완전한 탁월성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 인간적인 좋음일 것이다. - P30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살펴볼 차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재 탐구의 길은 "우리에게 더 알려지고, 더 명석한 것에서 출발하여, 자연에 있어(physei) 더 명석하고 더 알려진 것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물론 그에게 있어 가장 *존귀한 학문은 *신적인 것(to theion)을 다루는 학문이다. 즉 독립적이고, 움직이지 않고, 영원한 실재를 다루는 *제일철학이 가장 존귀하다(<형이상학> 6권 1장)

그러나 *학적 탐구의 *출발은 제일철학이 아니다. 학적 탐구는 *자연학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 P3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