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언명처럼, 인간뿐 아니라 기술도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자기반성과 성찰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듯, 기술 또한 그러하다.

기술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세계의 바깥에 존재할 수 없다. 기술은 이들을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주조하면서 동시에 공진화한다.

/ 들어가는 글

북유럽 최고의신 오딘은 세상의 *지혜를 너무도 갈망했던 나머지 자신의 *눈을 후벼 파 *현인의 제물로 바쳤다. 아니 이도 모자라 자신의 몸을 던져 저승을 넘나들 정도로 실천적이었다.

그에게 세상의 지혜란 몸뚱이를 바쳐서라도 얻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무엇이었다. - P5

*사회적 반성과 *성찰이 없는 *기술의 향연은 결국 *오늘만도 못한 미래를 만들어 낼 공산이 크다. - P8

시몽동, 매클루언, 라투르 등 기술철학자들에 대한 천착은, 다른 무엇보다 기술과 미디어가 인간과 연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기술의 자기 생성적 동력을 갖는다는 것을 밝히는 기술 유물론적이고 기술 계보학적 탐구이며 현재까지 줄곧 공백지였던 영역에 대한 관찰을 보장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판적 인문 연구의 전통에 입각해 인간 *주체와 과정에 개입하는 테크노-권력 작동의 문제를 살피는 연구 영역이다. - P11

*무요류와 *완전체의 기술이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고, 기술은 인간 사회와 *관계 맺으며 *진화하는 속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 P12

*시몽동의 ‘휴머니즘’은 한마디로 *기술과의 *관계 단절로부터 *소외된 인간 *실재를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김재희는 시몽동이 *기술(적 대상)을 인간에게서 *적대화하고 단절시키고 주종 관계로 전락시키는 *인문학적 편견과 폄하를 거부했다고 본다.

시몽동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계와 *공존하며 *공진하고 *상호 협력하는 *관계적 ‘인간-기계 앙상블’을 주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 P13

김재희는 시몽동에게서 고유의 내적 발생과 진화의 계기를 지닌 기술적 대상과 인간 사이의 *끊어진 단절의 고리를 *메꾸고 *상생하는 일이,

곧 *기술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호혜의 존재로 존중하며, 사회 변혁을 위하여 인간 개체를 초월해 집단화된 기술의 발명을 이루어 내며, 인간-기계 간에 상호 정보 공유의 네트워크 역략을 최대한 회복하는 데 있다고 본다.

오늘날 현대인의 기술에 대한 주인-노예 접근법이나 만연한 *기술만능주의를 무력화하는 데 장차 시몽동의 매력이 커질 것이라 본다. - P13

심혜련은 2장에서 *벤야민이 **기술을 또 다른 차원의 자연, 즉 ‘**제2자연’이라 불렀고, 이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학습 과정이 중요하며, 그 학습의 중요한 방식으로 예술의 역할론을 제기한다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벤야민 스스로 기술을 *제1기술과 *제2기술로 나눠 보고, 전자를 *억압적/도구적 기술로 후자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유지하는 공생의 해방적 기술로 바라봤다. - P14

이 둘의 현격한 차이는 제1기술이 기술에 주인 행세를 하는 인간의 *도구적 기술이라면 제2기술은 인간이 이와 함께 *놀고 어울리는 *해방의 기술이라는 데 있다.

특히 이 놀이의 기술은 위계의 기술과 달리, 인간, 자연, 예술이 *상호 평등하게 공존하도록 매개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기술 복제로 탄생한 영화는 바로 이 제2기술에 해당하며, 이는 아우라의 몰락을 가져오는 한편 기술적 이미지들의 반복과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분산적 지각을 발달시켜서 ‘*놀이적 요소’를 증진시킨다.

심혜련은 벤야민의 당시 진단을 통해서, 아우라의 몰락으로 인한 예술 형식의 급진적 변화와 실험 정신의 출현, 그리고 분산된 지각 구조에 의한 대중의 사물에 대한 거리 두기가 새로운 현대적 수용 주체들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고 판단한다. - P14

백욱인은 매클루언이 기본적으로
"*미디어가 *일상 삶의 *환경이 되고 이것이 인간 *감각과 *상호 작용하면서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기반 조건이 되는 현실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며, 이는 닐 포스트먼 등 후대 학자들에 의해 *미디어 생태학 연구를 태동시키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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