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윌리엄 제임스)

이 책에서 윌리엄 제임스가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 삶의 다양한 현상들이란 삶과 유리된 관념이나 논리로는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현상을 파악할 때 우리는 다른 현상들과의 *상호관련성이나 *맥락성을 고려하지 않고는 그 현상의 *실재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226

제임스에게 *종교의 근원적인 의미는 지성적이고 객관적인 표현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표현들을 존재하게끔 해준 종교적이고 *내적인 경험들,

이를테면 양심의 갈등, 죄의식, 구원받았다는 확신, 소망, 기쁨, 감사, 겸손, 자비, 공허감 등등 인간 *개개인이 표현하는 *감정들과 *행위들 *속에 놓여 있다. - P226

/ 인간 삶의 근원적인 요소로서 존재하는 종교현상


종교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19세기 과학주의자들이 흔히 예상했듯이 종교현상은 역사의 발전에 따라 악화되거나 없어질 미신과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존재해왔듯이 지구가 없어질 그날까지 계속 존재할 것임을 종교사의 구체적 이해를 통해서 깨닫는다.

종교현상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인간 삶의 *근원적 요소로서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도대체 *무엇이 종교를 살아 있도록 움직이게 하는가? 그리고 *그토록 종교를 살아 있도록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 목적은 무엇인가?

전자의 질문은 종교의 의미나 원천에서 이미 대답을 하였다. 그 대답은 바로 인간의 *종교적 경험이 객관적으로 보인 *종교현상을 *역동적으로 살아가게끔 해주었다는 해석이다.

만일 그 현상을 통해서 또는 위해서 인간 자신이 어떤 *본질적 삶의 경험을 *갖지 못한다면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 P230

제임스는 *인격의 *내면 속에서 *두 개의 자아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의식적이지만 현실적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무의식적이지만 매우 이상적 자아이다.

일반적으로 그 두 개의 자아는 평화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투쟁적 관계를 지니고 있다.

현실적 자아가 이상적 자아를 억누르면 평면적으로 드러나는 인격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실질적인 것같이 보이지만 이상적 자아를 누르고 있어서 *심연의 깊은 *고통을 갖고 있다.

그 반대로 이상적 자아가 현실적 자아를 억누르게 되면 황홀감을 줄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매우 비현실적이고 도피적 삶을 살아간다. - P230

제임스는 그 분열되어서 *상호투쟁 관계에 있는 *자아를 *통합하여 조화로운 상태, 즉 *평형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을 *종교적 경험의 목적으로 보았다.

특히 현실적 자아의 억누름 때문에 갇힌 다양한 무의식적 충동들을 의식적으로 소화시켜서 보다 내면적 평온을 되찾게 하는 것이 그 경험의 목적이다.

특히 현실적 자아의 억누름 때문에 갇힌 다양한 무의식적 충동들을 의시적으로 소화시켜서 보다 내면적 평온을 되찾게 하는 것이 그 경험의 목적이다.

계속해서 종교가 회심자에게 분열되었떤 자아를 통합하도록 하나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다한다면 그 회심자의 삶은 계속해서 헌신적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기능을 담당하지 못한다면 그 회심자는 다시 회심 이전 의 상태인 분열된 자아의 고통을 더욱 깊게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불행이란 *내면적 자아의 *분열 그 자체도 *인식하지 목하는 삶의 태도이다.

오히려 고통스러워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태도는 보다 넓은 의미의 *자아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므로 결코 불행한 삶이 아니다.

즉 *억눌린 *무의식적 본능들을 *의식적으로 순화시키려는 삶의 태도가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이러한 *통합의 경험은 *회심이라든가 *신비주의의 경험 속에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회심의 경우에는 내면적 투쟁을 삭감하여 그 분열된 자아를 연결시켜주는데 이른바 외면적 종교가 어떤 것과도 비교가 안 되는 *통합적 인격을 만들어주는 *매개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치 *종교적 상징이 *신앙인들로 하여금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하여 *원형적 자기를 경험하게 해주듯이, 회심자에게는 자신이 고백적으로 받아들인 종교를 *내면화시켜서 자신의 *분열된 인격을 *연결시켜 *전인적 삶을 살아간다. - P231

그런 회심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회심을 하기 전에는 종교의 다양한 요소들이 자기와는 전혀 *무관한 것들이어서 의식의 *주변부에 놓여 있지만

*회심 후에는 정반대로 모든 삶의 *중심이 받아들인 *종교의 의미에 모아져 있다. 더 나아가서 전인격을 모아서 그 의미를 구체적 삶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

종교적 경험 이전에는 삶의 모든 에너지를 세상적 일에 쏟아부었다고 한다면 그 이후에는 종교적 삶에 쏟아 붓는다

*계속해서 종교가 회심자에게 *분열되었던 자아를 *통합하도록 *하나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다한다면 그 회심자의 삶은 *계속해서 *헌신적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기능을 *담당하지 못한다면 그 회심자는 다시 *회심 이전의 상태인 *분열된 자아의 고통을 *더욱 깊게 받을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비주의 경험의 경우에는 어떤 *매개물을 통해서 *분열된 자아를 통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자아를 *통합시킨다.

이 경우 *의식적 자아는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이상적 자아가 주도가 되어서 일어나는 통합과정이다. 이러한 통합의 경험은 *종교전통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다양한 형태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제임스는 그 통합의 경험은 두 가지 형태를 띠면서 나타난다고 하였다. 하나는 *점진적 통합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통합과정이다.

전자는 *의식적이고 자발적 결단을 통해서 이루어지면, 후자는 *비자발적이고 무의식적이며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붙잡혀서 이루어진다.

이 점에서 제임스는 스타벅의 연구를 참고하고 있다. 스타벅은 전자의 통합을 ‘*의지적 유형’ volitional type으로 후자를 ‘자기포기의 유형’ the type of self-surrender으로 명명하였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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