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적 판단이란 *개념이나 법칙을 *만들어 *포섭하는 판단입니다.

이런 개념들을 만들어 붙이는 데에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것을 미적 판단이라고 하는데, 이런 미적 판단은 반성적 판단입니다.

반성적 판단에는 상상력이 필요하고, 미적 판단도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칸트의 미학에서 *상상력이란 어떤 대상을 파악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포섭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일종의 자유로운 놀이, 유희를 말합니다.

그런데 놀이에도 규칙이 있듯, 미적 판단도 *상상력의 놀이지만 최소한의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 P485

칸트는 미적 판단의 조건으로 *4가지를 제시합니다.

*성질 범주에 따른 조건은 *무관심한 관심, 분량 범주에 따른 조건은 *주관적 보편성, 관계 범주에 따른 조건은 *목적 없는 합목적성, 양상 범주에 따른 조건은 주관적 필연성이라고 합니다.

/ 무관심한 관심


*미적 판단의 *첫 번째 조건은 *무관심한 관심입니다.

쾌적한 곳에서 살면 편안하겠지만, 불결한 곳에서 살면 불편하겠죠? 이것은 *감각적 쾌/불쾌입니다.

세상에 좋은 일들만 일어난다면 기쁘겠지만, 불행한 일들이 일어난다면 슬퍼할 것입니다. 이것은 *도덕적 쾌/불쾌입니다.

길을 걷다가 꽃을 발견하면 즐겁지만, 어떤 그림은 보면 불쾌해집니다. 이것은 *미적 쾌/불쾌입니다. - P485

*감각적 쾌와 도덕적 패는 *‘관심‘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는목이 마르면 물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추우면 옷에 대한 관심이 생기죠. 감각적 쾌

마찬가지로 우리는 굶주린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관심이있고, 뺑소니 차량을 잡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죠. 도덕적 쾌.

*미적 쾌는 이러한 관심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성적인 이성의 그림을 보고 즐거운 것은 미적 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뭔가 다른 데 관심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명품을 보고 즐거운 것도 미적인 쾌가 아니에요. 역시 과시 등 관심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죠.

*미적인 쾌란 *무심코 길을 가다가 길가에 핀 꽃을 보고 느끼는 *즐거움 같은 것입니다.

이런 즐거움은 *감각적 관심이나 *도덕적 관심과 관련이 없고, *그냥 보는 것이고 *관조하면서 *즐거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관심의 의미입니다.

*미적인 쾌는 그러면서도 일종의 *약한 의미의 *사회적 관심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여성이 외출할 것도 아니면서 집안에서 조금이나마 얼굴을 꾸미고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고 합시다. 딱히 누구한테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요?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아마 평생 무인도에 살게 된다면, 다른 사람을 볼가능성이 없다면, 막연한 관심조차 없기에 꾸미기는커녕 옷도 입지 않을 수도 있을 거예요.

미적 판단은 이처럼 도덕적 판단이나 사회적 관심과 관련이 없지만, 집안에서 얼굴을 꾸미는 등 *약한 의미의 *사회적 관심과는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무관심한 관심이라고 합니다. - P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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